코로나가 일으킨 기적
2020. 8. 21. 금 오전 11시경.
엊그제 8월 15일 토요일 광복절집회 참가자들과 전광훈목사의 사랑제일교회 신도들로 인해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전국으로 확산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들의 소행이 상식 밖이라는 생각에 ‘쯔쯔’ 하고 혀를 차며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역분과장이 단체카톡에 올린 ‘순천시가 자체적으로 2단계 거리두기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글을 본 지 몇 분도 안 되었을 때였다. 광주대교구 사제 가운에 유일한 동창인 매곡동 주임 박성열 신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미사와 모임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했다.
박신부는 평일미사는 중단하더라도 주일미사는 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평일미사는 신자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으니 오히려 별 문제가 없고, 주일미사가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하 소성당에 스크린을 설치해서 주일 교중미사에 나오는 분들을 분산하면 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 채널을 찾아 보니, 곧바로 자막으로 순천과 광양의 확진자 소식이 나왔다. 나는 20일 목요일 뉴스에서 들었던 순천 확진자가 서울 방문판매업소를 다녀온 70대 여성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루밤 사이에 순천과 광양에 여러 명으로 확산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더구나 이들 확진자들의 동선이 주로 우리 연향동 성당 주변이라는 것에 더 놀랐다. 이제 내가 박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미사도 중단해야 할 것 같다고.
순천시에서는 8월 21일(금)부터 9월 3일(목)까지 2단계 거리두기로 격상한다고 했다.
박신부와의 전화를 끊고 곧바로 사목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점심 식사 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오신 회장님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나누었다. 이 정도의 상황이면 교구장의 지침 없이도 자체적으로 지역사회의 방역지침에 따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확정하기 전에 사목회 임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회장님이 사목회 단톡방을 통해 임원들의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사목회장 : [긴급 조사]
코로나19 순천 확산으로 시당국에서 2단계로 격상한 상태입니다.
제 단체 및 소모임 중단 여부
평일 미사 및 주일미사 중단 여부
- 임원들의 의견을 구합니다. 바로 답글을 올려주십시오.
얼마되지 않아 사목회 임원들이 올린 답글입니다.
1. 미사를 중단해야 될 것 같아요
2. 남의 일처럼 생각했는데 ... 막상 확진자가 지역에서 발생하니 피해가야할 것 같습니다. 당분간 미사 및 소모임을 중단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3. 주일미사 외는 중단하심이 어떨까요
4.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5. 미사 중단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6. 저도 미사 중단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7-1. 저희 의견으로 결정되는건가요...? 매우 조심스럽고 염려가 되기는 합니다만 ... 교구 지침에 따라야 되는 게 아닌가 해서요....??
* 류하백 신부 : 순천시 자체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었기에 이 부분은 본당 재량에 가능합니다. (광주에서도 삼각동에서 비슷한 상황에 미사가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7-2. (7-1번 임원이 다시 의견을 올림) 제단체 및 소모임은 중단해도 ... 주일 미사만큼은 그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8. 구역별(지난 번에 지역별로 나누어 미사 참석 시간을 순차적으로 배정했었음) 주일미사만 하고 평일미사는 중단하면 어떨까요?
9.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어 저희두 모두 휴원공지가 나갔습니다. 가까이 있는 카페나 아파트도 모두 확진자 동선에 있어 소독하고 폐쇄하고 있으니 조심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10. 저가 하는 맞춤광장도 방문 중단했습니다. 조심스러운 문제라 일시적으로 상황보면서 하면 좋을 듯 합니다.
11. 우선은 모든 모임을 중단하고 이후 추이를 지켜보고 결정하시면 어떨까요
12. 지금은 모두가 조심해야 하는 시기인 듯 싶습니다. ... 저도 모든 미사, 모임을 잠시 중단하셨음 좋을 듯 싶습니다.
13. 미사 중단에 찬성합니다. 신랑이 원치 않아서 2주 동안 주일미사 참석을 못했어요.
14. 2주 동안만 주일미사 외 평일미사와 소모임은 중단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15. 다수 의견에 동의합니다.
16. 저도 주일미사외 다른 소모임 중단하는데 동의합니다.
17. 개신교 일부에서 지탄받는 것을 보면서 가톨릭 신자임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지금 순천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여럿 생긴 상황은 미사 및 모든 소모임을 중단했던 시기보다 더 엄중하다고 봅니다. 2주 정도 모든 미사와 소모임을 중단하고 지켜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사목회장 : 여러분들의 걱정과 관심 그리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간회의시(오후 6시 30분) 신부님과 의논해서 결정하고 공지해 드리겠습니다. 연향동 홍도식당도 다녀갔네요. 다들 건강 유의하십시오.
18. 개인적으로는 미사 찬성합니다. 무조건 미사 중단이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철저한 방역 지침대로 미사 봉헌 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확진사례 공통점이 있다면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광훈목사, 밀집장소 이용자 등.
그러나 스타벅스에서 확진자가 속출해도 종업원들은 마스크 착용으로 한 명도 확진자 없었고, 전국단위 카톨릭 신자들은 방역 수칙대로 미사 진행되어 확진자가 전무한 편입니다. 기독교 확진 속출은 소모임, 통성기도, 식사 등으로 확진자 급증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비교되어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 참기도가 미사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주변 여건만 고려하여 연향성당 단독으로 미사 중단 보다는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이 현저히 나타날 때 교구와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다. 사목회 임원들의 생각이 모두 하나같이 똑같아서가 아니다. 비슷하기도 하고 같기도 하기고 다르기도 하다.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평소 사목회의 때는 거의 침묵만 하고 있던 분들이, 이번에는 18분이나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다. 평소 얼굴을 맞대고 회의 할 때는 아무래도 먼저 말하는 분의 생각이나 의견에 대해 동의하기도 다른 의견을 내는 것도 편치가 않은데, 카톡에서는 그것이 좀 나은가 보다. 더구나 긴급한 때에 신속하게 의견을 모을 수도 있었다.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단체 화상회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쨌든, 주간회의 때에 참고하기 위해 미리 신자들에게 알릴 내용의 초안을 만들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 미사 전에 보좌신부, 두 분 수녀님, 사목회장과 여부회장 그리고 사무장 이렇게 주간회의를 하는데, 함께 의견을 나누면 풍요로워진다. 초안에 몇 가지를 덧붙여 수정하여, 8월 22일(토)부터 9월 3일(목)까지 주일미사와 평일미사 그리고 예비자 교리, 주일학교와 첫영성체 교리와 모든 모임을 중단한다는 핵심내용을 포함하여 주임신부가 보내는 ‘세 번째 코로나 편지’를 저녁 미사에 나오시는 분들에게는 미사 공지 시간에 알려드리고, 그 외 전 신자들에게는 구역장들을 통해 카톡으로 공지하기로 했다.
주임신부로서 미리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여 결정하고 있을지라도, 그래서 그 생각이 신자들과 같거나 다르거나 상관없이 최종 확정을 하기 전에 신자들의 생각과 의견을 듣고 함께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오늘 그 기분이다. 코로나가 우리를 서로 멀리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 서로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한다. 의견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한번 기탄없이 진솔하게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준 사목회 임원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사목회장님도 고맙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참 좋은 하루였다.
(2020. 8. 23. 연중 제21주일)
이렇게 글을 마치고(한 시간 정도 걸렸음) 확인을 누르려고 했는데, 인터넷 접속 문제인지 무슨 조화인지 저장이 되지 않고 모든 글이 날라가 버렸다. 그래서 새롭게 한글 파일에 처음부터 다시 작성한 후 복사하여 카페에 다시 올렸다.
인터넷, 디지털, 첨단 기구들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그것들도 사람 속과 같은가봐.
기적이 일어났다고 좋았는데. ..... 그 기분 계속 유지해야겠지요.
첫댓글 기적 ㅎㅎ
코로나 때매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조심하시어요
모두 깨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양들을 돌보시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