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도 가을호에 실어주신 등단작입니다. 다시고쳐 썼습니다.
어설픈 여행
이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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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해보는 여행이지만 이번처럼 예기치 못한 일로 당황스럽고 힘들었던때는 별로 없었다. 폭풍우라는 자연현상 앞에 속수무책이기도 했고, 일정의 차질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또한 귀국일정에 대한 착각으로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캐나다 동부 쪽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 방문이 첫 목적이었고 가는 김에 뉴저지에 사는 사촌동생네 집도 들려보고, 이어서 미국 동부 쪽 관광도 할 요량으로 스케줄을 정했다. 그런데 패키지관광을 하게 되면 여행 경비도 싸다는 이유도 있어서 딸애 한테는 좀 미안 하지만 관광을 먼저 하고 차례로 방문키로 하고 밤비행기로 인천공항을 떠났다.
뉴욕에 도착하니 그곳도 밤중.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의 안내로, 다른 여행사로 와서 모여진 투어객 9명과 함께 숙소로 가는 동안 이곳의 겨울비가 걱정 스럽게 장대비로 바뀌며 많이도 쏟아졌다.
첫날밤은 긴 비행에 피곤했던지 시차도 모르고 잘 잤다. 이튿날은 화창한 날씨. 우리 여행 시작이 좋아보였다. 먼저 12인승 밴을 타고 서너 시간 달려 일정대로 워싱턴 DC부터 본단다. 워낙 큰 땅이라 서너 시간 거리는 이웃처럼 얘기들 한다. 국회의사당서 부터 백악관까지 관공서가 근거리에 다 자리해 있다. 큰 나라 대통령 관저라는 백악관은 경호 군인도 잘 안 보여 소란스럽지 않고 청와대보다도 작은듯 해서인지 정감이 갔다. 옆에 자리한 역대 대통령 기념관 앞에 펼쳐진 작은 호수 넓은 정원, 많은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찾아 쉬면서 보고 즐기고 있었다.
특히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그 많은 전시물과 자세한 설명들은 ,부러웠다.그것도 관람료가 공짜. 4월이면 링컨 기념관 앞 호수가와 포토맥강가의 벚꽃이 다 피면 그 풍광이 그렇게 좋다는데 지금은 3월 하순, 조금 일러 아쉽다.
저녁은 근처 한국식당에 들러 미국식 된장국으로 회포를 풀었고, 다음날은 다시 북쪽으로 6시간 달려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폭포를 보러갔다. 미국쪽 염소섬에서 보는 것보다 캐나다 국경 바로 넘어가서 보는 게 더 장관이다. 천지를 진동하는 폭포의 굉음과 함께 흩날리는 물보라가 상쾌하다.그 많은 수량이 일년내내 줄지않고 떨어진다니 복 받은 나라들이다 . 근처 호텔서 하루저녁 묵는 동안 밤에도 나가서 보고 또 봤다. 사진도 찍고 또 찍었다. 다시 볼 기회가 있겠냐는 듯이. 많이 볼수록 오래 산다고 해서 그 이름이 ‘나이야 가라’ 란다.
그 다음은 관광계획표에 따라 토론토를 들르고 오타와를 거쳐 몬트리올까지 잠깐씩 들려 보고 차만 타고 달렸다. 아쉽게도 이곳 도시들만의 매력, 역사들은 짧은 시간으론 다 볼 수가 없었다. 딸 먼저 못 봐 마음이 편치 못해 그런지 긴 여행 피로에 졸기도 했다. 그 넓은 예쁘고 순정한 자연풍광을 스쳐 지나기만 한 게 아쉽다. 그래도 ‘퀘백’은 백설속에 뭍힌 동화속의 나라를 보고 온듯하다. 불어를 더 쓴다는 이곳 거리는 눈이 1m가 넘게 왔는데도 상점과 거리가 정말 프랑스의 예쁜 시골동네 같다. 골목안 갤러리들, 폭설과 강풍이 몰아치는 광장 옆에서 귀하게 문을 연 식당에 눈 털고 들어가 먹은 그 뜨거운 슾과 음식은 일행들 추위를 녹여주었고 맛 또한 그만 이었다.
몬트리올에서 하루 더 묵고 우리는 이른 새벽 다시 남쪽으로 오전 내내 7시간쯤 달려 말로만 듣던 보스톤에 들렀다. 먼저 전통 카페거리를 돌아본 후 하버드대 교정을 찾았다. 마주치는 학생들 하나하나가 다 눈빛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왠지 내 학창시절 하버드생이 못돼본 열등감에서 일까? 아무튼 우리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 보람된 일이 여기 보스턴지역 ‘공부 벌레들’이 만들어 낼성 싶다.
내가 제안해 정문앞 카페에서 일행은 커피 한 잔하며 여정을 잠시 쉬기도 했고, 중간에서 하루 더 묵고 아침에 뉴욕으로 들어와 돌아 본 후 투어 일정은 모두 끝나는 걸로 되어 있었다. 뉴욕은 12년전에 한번 와 봤던 곳이라 대충 보면서 오늘 딸애 한테 갈 비행편에만 신경이 자꾸 써졌다. 9.11 참사 현장 ‘그라운드 제로’ 와 배 타고 보는 ‘자유의 여신상’을 끝으로 좀 일찍 일행과 헤어져 우리부부는 공항으로 향했다. 여기까지는 가이드만 따라 다녔기에 달리 신경 쓸 일이 없었지만, 그 다음 부터가 예기치 못한 일로 좀 고달픈 여행이 시작 되었다.
2
JFK공항 대기실 유리창 밖은 또 다시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예정보다 1시간 20분이나 딜레이 되는 캐나다행 비행기에 탑승까지는 했었다. 그런데 이 비행기가 활주로만 이리저리 한 시간도 넘게 육상의 버스처럼 왔다 갔다 하더니 우리가 탑승한 곳으로 다시 돌아와 승객들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못 떠난다는 거다. 기내 방송으로 폭풍우 사정 때문에 이륙 못한다는 멘트를 유창한 영어로 했던 것을 우리만 못 듣고 피곤해 졸듯이 앉아 있었다. 탑승구 게이트 앞에서 직원이 짧은 설명과 함께 내일 같은 시각에 탑승 하라는 티켓을 주길래 받았다. 어디서 하루 묵어야 되나보다 생각하며. 그런데 당연히 항공사에서 안내하고 부담하는 호텔이려니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케나다쯤은 미국에선 국내선으로 보기도 하고 천재지변으로 인한 탑승변동은 승객이 감수하는 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공항 안내 쪽으로 가서 가깝고 비싸지 않은 호텔을 물어 120불짜리 아주 허름한 곳을 찾아 들어가니 황당하다. 탑승 못한 우리 같은 사람이 주로 하루 이틀 묵는 듯한 곳으로 백인 숙박객은 잘 안 보이고 종업원도 거의 흑인 아님 멕시칸 같아 은근히 겁도 났다. 뉴욕천지에서 다 털리고 봉변당하는 거 아닌가 하고. 날 믿고 따라다니는 아내도 걱정되는 모양인지 눈만 껌벅거린다. ‘하룻밤인데,뭘....’견뎌보자는 배짱으로 시끄럽고 커텐도 있으나마나한 1층 방에서 문을 잘 걸어잠그고 불안한 하룻밤을 보냈다.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얘기한 “나는 뉴욕이 혼돈덩어리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혼돈덩어리.” 이 말이 어째 실감이 안 난다.아름다움이란 그 안에 혼돈도 있다는 것인가. 또 한 사람 생각난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 그 친구처럼 트렌치코트 하나 걸치고 총총걸음으로 맨해탄 골목을 멋스럽게 누벼보기는 커녕 이렇게 겁먹고 쪼잔하게 이 뉴욕의 밤들을 보내다니... 어설픈 계획으로 이곳을 찾은 촌티 나는 내방객이라 한 대 먹이는 것인가.
다행히 아무일 없이 아침을 맞았다. 조식은 제공되는 것이라 입맛이 틀려도 잘 먹고, 어떻게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궁리 끝에 멘허탄의 중앙공원(센트럴팍)을 가서 보기로 하고 그 악명 높다는 뉴욕의 지하철도 타 보기로 했다. 겁난다고 택시 타자는 아내의 말도 무시하고 짐도 별로 없으니 경험삼아 추억거리로 타보고 걷자고 했다. 홈리스들이 천지라서 여행객들이 피한다는 것을 자메이카역을 경유, 부르클린 지역을 지나 다리를 넘어 월가까지. 비 내리는 맨허탄거리를 우산 두 개 사서 쓰고 운동 삼아, 아니 추억거리로 12번가에서 부터 북쪽으로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9.11참사 지역을 다시 찾아 어제 관광차로 슬쩍 지나친 것이 아쉬웠던터라 그 당시 희생자들의 긴박함을 잠시 떠올리며 왠지 송구스런 애도의 마음도 가져 보았다. 32번가 한인 타운에도 들려 족탕 한 그릇을 서울보다 더 맛있게 먹고 이것 저것 현지 사정을 물어 65번가 센트럴팍까지 비내리는 거리를 또 걸었다. 그 넓다는(여의도의20배)공원을 남쪽 귀퉁이만 을씨년 스럽게 배회하다 공항 시간에 늦을까 봐 충분히 보지도 못하고 다시 순환 지하철로 공항까지 갔더니, 이게 또 뭔 소린가. 오늘도 비행기가 못 뜬단다. 이날이 토요일인데 다음주 월요일에나 뜰수 있다며 원하면 환불해 주겠단다. 어떡하라는 건가, 난감 하다. 황당하다.
돌아가는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생각다 못해 화요일날 탈 수 있게 해 놓고 계획을 바꿔 그동안 사촌집을 먼저 방문키로 했다. 전화로 사정 얘길 하고 한국인 콜택시를 불러 뉴저지주에 사는 사촌동생 집으로 가 짐도 못 찾아 간 채 3박4일을 보냈다. 하고는 유난히 맑은날 화요일, 드디어 비행기를 2시간 타고 우리부부는 어렵게, 실로 어렵게 딸애를 상봉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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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딸 멀리 보내 놓고 걱정들 하나도 안 되나 보지?”하며 공부하러 떠난 후 여러번 전화로 으름장을 놓던 녀석을 자기엄마가 눈물로 얼싸안았다. 밤새 밀린 얘기로 수다 떨며 된장국 해 먹이고, 홈스테이 아줌마 초청해 저녁도 같이 먹으며 이틀을 정신없이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절,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무심코 꺼내 봤다. 잘 있는지. 그런데 티켓을 한참 보자니 이럴수가,이럴수가?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가 뉴욕서 이날 밤에 아무래도 뜨는것 같았다. 당황, 아니 또 황당하다.
케나다에서 뉴욕까지 가는 비행기는 내일 금요일 오전으로 되어있고, 뉴욕에선 대한항공이 금요일 0시50분에 떠나니 이 시각을 내가 착각한 것이다. 전날 (목요일날) 가서 저녁에 체크인 하고 기다렸다 타야 되는 것을 금요일 밤 출발이니까 금요일날 가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 실수였다. 뉴욕서 하루 까먹은 걸 생각 못한 거다. 서둘러 먼저 한국가는 대한한공을 그 다음날로의 변경이 가능한지 알아봤지만, 내가 타고 온 것은 단체 티켓으로 제일 싼 거라 안 된단다. 오늘 못 타면 부부가 다시 사서 가야 된다니 또 난감 하다.
먼저 수업중인 딸아이 에게 오늘 떠나야 한다는 얘길 했더니 난리가 났다. 성질이 이놈도 날 닮아서 그런지 급하게 오더니 성질부터 부린다. 그런 것도 제대로 못 챙기고 어떻게 여행을 하냐고. 할말이 없어 가만 있었더니 빨리 여행사 가서 오늘 출발 하는 걸 알아봐야 한단다. 딸아이 앞장서고, 우린 뒤 따르고... 여행사 문턱을 들어서선 딸아이가 보호자고 우린 가만히 창구에서 떨어져 딸 눈치만 살핀다. 한참 후 현지인과 영어로 문의하던 딸애가 하는말이 바꿔서 오늘 갈 수는 있는데 1200캐나다불(한화120만원)페널티를 내야 한단다. 기가 막힌다. 두 시간 거리 비행인데 원 티켓보다 150%를 더 달라니? 망할놈의 아메리칸 에어라인사다. 날짜 계산 잘 못한 우리 탓은 잊고 항공사의 제 멋대로만 탓했다.
어찌됐든 돈 더 내고라도 집엔 가야 된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부랴부랴 다시 호텔로 가 짐 챙겨서 빨리 왔더니 그때까지 상담을 하던 딸애가 울음반 웃음반 얼굴로 우릴 반긴다. 돈 더 안 내도 된단다. 그냥 항공사에서 바꿔주기로 했다며 티켓을 건네 준다. 어떻게 돌아 가는지 영문 몰라 하는 우리에게 그곳 여행사 직원들도 환한 얼굴로 축하 한단다. 폭풍우로 제때 에 올수 없게한 항공사 책임도 조금은 반영이 된 듯 했다.
짧은 이틀간의 딸아이 방문, 택시 앞에서 길게 포옹할 시간도 없이 붙잡고 눈물만 흘리며 겨우 이틀 있다 갈려고 그 먼 길을 왔냐는 푸념을 뒤로 한 채 우린 허둥지둥 우린 공항으로 향했다.
새벽에 인천 공항에 내려 공항버스를 타고 오면서 생각해 본다. 여행이란 즐거운 것만도 아닌것 같다. 예상 못한 천재지변도 당혹 스럽지만 잘 안돌아가는 판단력, 의식도 문제다. 요즘 들어 실수가 잦은 게 어찌보면 나이 탓만도 아닌 것 같다.
실수가 또 있었다. 가지고간 된장을 호텔에서 끓여먹고( 이호텔은 취사할수있게 시설이 되어 있는곳)남은 것을 비닐팩에 넣어 아내와 딸 아이가 서로 자기가 들고 간다고 실갱이 하다가 1층 로비에서 그만 떨어뜨려 다 엎질러버린 것이다. 낭패였다. 얼른 치운다고 화장실서 휴지 뜯어오고 손수건도 꺼내 닦았으나 이미 카페트엔 국물이 베어버렸다. 당황 아니 또 황당했다. 먼저 냄새부터가 걱정이라 세 식구가 허둥대며 치우는데 어떤 외국투숙객은 벌써 코를 감싸쥐고 나간다. 허둥대며 많이 미안해 하는 우릴 보고있던 호텔 메니져인 듯 싶은 사람이 그냥 놔 두라며 직원을 시키는 것 같았다. 우리 모양이 말이 아니다. 이번 여행 어째 자꾸 이런가, 실수의 연속이다.
어쨌든 실수는 많았어도 우리 두 사람 이렇게 무사하게 집으로 가는중 아닌가. 실수하고 부족한들 어쩔 것인가, 원래 우리 두 사람 좀 설치고 어설프고 모자라는 걸...
대전발 0시50분이 아닌 뉴욕발, 매일 그 시간에 뜬다는 대한항공. 한 줄에 10명씩이나 앉는 점보기 좌석, 덩치큰 사람들 가운데 끼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온 듯한 아내에게 이번 여행 어땠냐고 물으니 그래도 좋았단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내년에 또 가잔다. 그때엔 ‘터어키나! 그리스로!’
“그래 그땐 된장국 안 쏟아지고 김치도 넉넉하게 넣을 수 있는 아이스박스 하날 가지고 가자구! 아주 큰 놈으로 !”
어짜피 우린, 푼수 같은 여행 부부이니까.
아침 해가 북한산 넘어 밝게 비치기 시작한다. 어설픈 여행, 그래도 집은 잘 찾아온 우릴 반기는듯 하다.
- 끝 -
2008년 6월20일
우선 재밌게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처럼 끝까지 마음을 조리게 만드는 글을 보면서 여행수필의 맛을 짠하게 느낄 수 있었구요. '여행은 도전이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낯선 세계, 환경에 부딫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드라마를 보듯합니다. 혹시 소설을 쓰지 않으셨는지요?
첫댓글 여행때의 실수는 당시에는 황당하고 속이 상하지만 지나고 나면 가장 그리운 추억이 됩디다. 이성상님, 다시 등단 축하드리며, 아주 잘 읽었습니다.
시원치 않은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부족한데 지적은 안해 주시고요? 저도 고향이 충청도 조치원입니다.
우선 재밌게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처럼 끝까지 마음을 조리게 만드는 글을 보면서 여행수필의 맛을 짠하게 느낄 수 있었구요. '여행은 도전이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낯선 세계, 환경에 부딫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드라마를 보듯합니다. 혹시 소설을 쓰지 않으셨는지요?
과찬이시구요.수필과 소설의 차이를 아직도 모르는 초보입니다.열심히 궁리하고만 있습니다.격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따라 저도 같이 유익한 체험여행을 했습니다. 저도 뉴욕 JFK 공항에서 Guide를 만나서 시작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좋은 자료 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