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월리엄 듀랜트가 창립한 GM은 여타 업체들을 인수함으로써 규모를 키워 시장에서의 성장을 담보하고 비용을 절감한다는 경영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GM은 1910년 경 올즈모빌, 뷰익, 캐딜락 등 17개의 자동차 제조업체를 인수했으며, 1918년에는 시보레 마저 인수했습니다.
당시 GM의 목표는 오로지 자동차를 파는 것이라, 많은 자동차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제는 당연히 없었고, 심지어는 같은 GM의 브랜드끼리도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와 같은 상황은 아래에 나타난 1921년 GM의 브랜드 및 브랜드별 판매가격을 보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브랜드의 복마전 속에 '알프레드 슬로언'이라는 인물이 경영부문 부사장으로 합류한 것은 1918년이었습니다. 그가 전임자들에게 물려받은 '불합리한 생산라인'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는 제품 모델이 너무 많고, 제품간 복제가 심하다는 것이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뷰익과 캐딜락을 제외한 전차종은 적자의 상태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GM 초·중기 성공신화의 핵심인물인 슬로언은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제품 및 가격 정책을 도입해 아래와 같이 가격을 기준으로 제품들을 차별화하는 개혁을 단행해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는데, 당시 슬로언 개혁의 핵심은 '시장 세분화'의 최초 성공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슬로언의 지휘 하에 GM은 브랜드를 급속도로 체계화했습니다. 또한 슬로언은 마케팅 및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타깃 시장에 따라 사업부를 명확히 분류하고 각 사업부를 담당하는 간부들에게 재량권을 전적으로 부여했습니다.
그와 같은 개혁의 성과는 곧 시보레, 폰티악,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 등 다섯 개의 색다르면서도 강력한 브랜드로 재탄생되었고, GM은 이 다섯 개 브랜드를 등에 업고 미 자동차산업의 57%를 장악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시장과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고 GM이 하는 모든 행동은 곧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곧 '소비자 지향 마케팅'의 승리로 당시 GM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패자였으며,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시장에서 영원히 압도적인(Overpowering) 위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노릇인가 봅니다. 엄청난 성공에서 얻은 자만심에서인지 GM은 시장 점유율의 확대가 불러올 정부의 제재 등을 회피한다는 명분 하에 '더 좋은 차를 더 많이 생산하는' 전략에서 '안정된 매출에서 더 많은 수익을 실현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그 때부터 GM의 시장점유율은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1958년 알프레드 슬로언과는 다른 사고를 갖고 수익에 더 큰 관심을 갖는 회계전문가 출신 프레드릭 도너가 CEO에 취임하면서 GM의 주도권은 'Bean counters(숫자 계산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가 잡게 되었고 이들은 재정적 측면세서 통제력을 발휘했으며, 각 사업부의 재량권을 회수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방향 전환에서 가장 극적인 GM의 패착은 바로 'Badge engineering'(다른 자동차업체로부터 모델을 빌려 자신의 회사 배지를 부착해 또 다른 자동차 모델로 판매하는 방식) 개념의 도입이었습니다. 획일화를 통한 수익증대가 목적으로 '어차피 다 같은 차니까, 부품을 교환한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으로 이 때부터 GM의 자동차들은 차 내부로부터 외부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차별성을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GM은 수익은 약간 증대시켰지만, 슬로언이 힘들게 구축한 브랜드 간 차별성을 크게 손상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Bean counter의 잘못된 집권기의 절정은 또 다른 회계 전문가 출신인 로저 스미스가 1981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입니다.
로저 스미스는 자신과 동류인 회계 전문가들로 각 사업부 최고 책임자직을 채웠으며, 미국 소비자들의 차를 사랑하는 심리적 측면 등 고객을 무시하는 결정을 합리적 혹은 효율적이라는 이름으로 해치우는 등 '소비자 지향의 마케팅'을 팽개쳐 버렸습니다. 또한 자신은 현장근무나 제품개발 등의 경험이 전무한 회계 전문가이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GM의 핵심전략은 로봇공학 뿐이라고 결론짓고 대대적인 투자를 했습니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의 상당 수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CEO들이 이사회의 눈치를 살피며 수익에만 매달리자 각 사업부의 책임자들은 자신이 맡은 사업부의 수치와 자신의 보너스를 증대시키기 위해, 슬로언이 신중히 확립한 사업부별 경계를 무너뜨려 갔으며 결과는 아래와 같은 웃지 못할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즉, GM의 자동차들은 앞서 이야기 한대로 외형만 비슷해진 것이 아니라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유사함을 보여, 알프레드 슬로언이 처음 GM에 출근한 당시로 회귀했으며, Bean counter들의 잘못된 차별화 전략은 같은 GM의 자동차끼리 경쟁을 버리는 혼란상 속에 시장 점유율이 57%에서 28%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결국 엄청난 매출감소 그리고 만성적인 생산능력 과잉과 성장 둔화, 노사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시장 점유율이 곤두박질치자 이사회가 들고 일어나 경영진을 교체하였고, 최근 몇 년 동안은 Bean counter가 아닌 새로운 CEO들이 마케팅 책임자이자 브랜드 관리자로서 GM을 통솔하고 있지만, 한 번 하락한 시장 점유율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 전 GM은 정체를 벗어나고자 사상 최연소인 릭 와고너를 CEO로 기용했으며, 그는 GM을 완벽한 인터넷·디지털 기업으로 빠르게 전환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이 첨단기술로 무장했다는 이유로 GM의 자동차를 사고 싶어하고, 디지털 공급망은 GM이 더 빠르고 저렴하게 고객의 주문에 맞춰 차를 만드는데 기여할까요?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지만, GM은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현재 GM은 자신들을 과거 성공으로 이끌었던 요인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있으며, 지금의 모든 상황이 80년 전 슬로언이 직면했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브랜드들을 차별화하는 동시에 상호 보완적인 견지에서 서로를 조화시키려면 GM은 그것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포지셔닝해야 할 것인가? GM은 1921년 슬로언이 두 개의 브랜드를 정리하고 활동을 통합하고 나머지 브랜드를 재포지셔닝했던 대수술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근 GM의 정책은 그와 상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한 개의 브랜드 정리, 7개의 새로운 브랜드 추가' 계획은 현재의 너무나 많은 비슷한 차종에 복잡함만 한층 더하여 경영전략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GM의 어려움에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공을 경계하라
성공은 종종 자만을 부르고 자만은 실패를 부른다. '자만'은 성공적인 마케팅의 적이며, 마케팅에 필요한 것은 '객관성'이다. 사람들은 성공하면 점점 객관성을 잃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판단으로 시장이 원하는 바를 대체시켜 버린다. 기업들은 종종 성공에 눈이 멀어 무모한 라인확장을 한다.
GM이 절정기를 맞았을 때 GM의 최고경영자들은 시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Bean counter들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계속 GM의 제품을 구매하리라 생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생각은 빗나갔다.
대표적으로 시보레는 경제적인 가족용 자동차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GM이 고가의 스포츠카, 트럭을 포함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려는' 차가 되기 위해 라인확장을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도 시보레의 엄청난 성공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보레가 더이상 미국인의 정서를 대변하지 못하는 4위의 자동차로 밀려난 것은 바로 그 라인확장 때문이었다. 그 틈을 이용해 정상에 오른 것은 도요타였다.
뷰익과 올즈모빌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 고급 자동차였다. GM이 저렴한 자동차가 출시되면 소비자들이 좋아할 것이라 판단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 경우에는 그들의 판단이 옳았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못했다.
▶리더는 경쟁업체로부터 시장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에서는 강력하고도 경쟁력 있는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승리하는 방법을 한 가지 밖에 알지 못하지만. 리더는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해 승리를 거둔다. 즉, 선구자로서 경쟁사의 경쟁력 있는 움직임을 모방함으로써 승리를 일군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리더는 경쟁사가 완벽하게 방어벽을 구축하기 전에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많은 리더들이 자만심 때문에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다. 마케팅 전쟁은 고객의 마인드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공격자가 고객의 마음 속에 강한 인상을 심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거꾸로 말하면 리더가 공격자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그만큼 있는 셈이다. '상황을 지켜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목하자.'하고 있는 동안에 너무나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선두 기업에게는 위험한 전술임에 분명하다. 그러는 동안에 어쩌면 리더는 어느 순간 갑자기 새로운 게임에 참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GM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독일과 일본의 소형차에 의해 미국 시장의 20퍼센트를 잠식당했고, 소형차 시장의 방어에 실패한 후 리더로서의 위상에 치명타를 입었다. 게다가 GM의 품질 기준은 독일 및 일본 자동차의 품질 기준에 못 미쳤다. 그와 같은 상황은 곧 이어 고급차 시장에서도 똑 같이 벌어졌다.
▶시장, 소비자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라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최고경영자가 일선의 근로자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따라서 현장의 목소리와 상황을 지속적으로 세밀히 알 수 있는 정직하며 신뢰할 수 있고 좋은 소식 뿐 아닌 나쁜 소식도 서슴지 않고 들려 줄 사람들이 절대 필요한데, 그 파이프 라인은 낮은 직급의 근로자 혹은 판매상, 고객이 될 수도 있다.
GM에 있어 시마론과 카테라 같은 소형 캐딜락의 경우 시보레와 비슷한 이 모델들이 판매가 부진하다는 사실을 일선의 누군가가 CEO에게 말해 줄 수도 있었지만, 결국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고, GM은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소형 캐딜락 부문에서 완패했다. 시장 및 소비자 지향이 되지 않아서는 결코 시장의 지배자가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