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가야산 해인사에서 맞는 새벽이네. 낯선 곳에서 맞는 새벽의 질감은 두터움 그것이네. 손톱으로 긁으면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새벽의 껍질. 한마디로 외로움이네. 집을 떠난 지 겨우 3일째인데 슬슬 외로움이 밀려오기 시작하네. 아들 녀석이 곁에 있는데도 말일세.
이번 여행은 아들하고만 함께 한 두 번 째 여행이네. 작년 이맘때는 서해와 남해를 다녀왔었네. 안면도의 휴양림과 꽃지, 강진 영랑생가와 백년사, 다산초당, 여수 오동도와 향일함을 겉 핥듯 맛만 보고 왔었지. 그래서 좋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는 대답하겠지만 나보다는 아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네. 그 녀석을 위한 여행이었으니 말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아들 키우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네. 자네는 아들과 함께 종종 산엘 오르지 않나. 지난번에 아들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르네. 나 역시 산에 오를 자신이 있으면 호연지기를 길러주기 위해 산에 올랐을 것일세. 그럴 수 없기에 차선책으로 이렇게 여행을 다니네. 아버지와 함께 한 이 시간들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길 기대하면서 말일세.
첫날은 정선에 갔었네. 정선이나 태백은 기차를 타고 가야 제 맛이 나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 참맛은 후일로 미루고, 난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진부IC에서 정선으로 곧장 향했네.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러울까 걱정했지만 이면도로나 산간도로의 제설작업이 잘 되어있어 차량이 제 속도를 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네. 먼저 들른 곳은 정선군 동면에 있는 화암동굴이었네. 금을 캐던 천포광산을 테마동굴로 개발해 놓은 곳이데. 폐광이 된 광산의 막장과 갱도를 이용해 관광지로 탈바꿈 시켜놓은 아이디어가 참 신선했었네. 동굴은 역사의 장, 금맥따라 365, 동화의 나라 금의 세계, 천연동굴의 다섯 개 테마로 이루어져 있었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른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1,803미터의 코스가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성류굴이나 환선굴보다 경이로움이 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네. 초등학생들에게는 재미있고 유익한 관광이 될 것 같았네.
왔던 길을 다시 달려 정선군 북면에 있는 구절리역으로 향했네. 정선선의 마지막 역이네. '구절리'하고 불러보면 정선아리랑의 마지막 소절을 부려놓은 것처럼 쓸쓸함이 묻어나는 이름이네. 난 자꾸 산비탈이나 들길에 핀 구절초가 생각났었네. 구절리역 어딘가에 구절초가 무리 지어 피어있을 것만 같았지. 이 엄동설한에 말일세. 간이역이 기다림이 있는 곳이라면 종착역은 긴 여행을 마친 평온함이 있는 곳이라고 해도 될까? 그러나 구절리역은 텅 비어 냉기가 엄습해오고 있었네. 시 '사평역에서' 등장하는 톱밥난로와 나무의자 몇 개 정도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 어느 구석도 평온함이 묻어있지 않았네. 빈 역사의 벽에는 열차시각표와 운임표만 묵묵히 세월을 지키고 서 있었네. 철길은 녹이 슬었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그 어떤 비애감이 침목마다 흐르데. 사람이 더 이상 들지 않는 깊은 곳, 첩첩 산중으로 떠나는 몇 사람이 보이는 듯 했었네.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라네. 섶다리를 건너서 여송정이라는 정자와 전설 속의 처녀상을 보았네. 한 손을 살포시 가슴에 얹고 먼데 님을 그리는 눈빛이 애처롭기도 했지만 전설의 흔적을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었네. 현재의 눈으로 전설이나 역사를 읽는다는 자체가 난해한 문제일세. 물론 학자들은 역사를 현대에 맞게 재조명하고 해석하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우리 같은 범인에겐 요원한 일일세. 최근에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이네만 역사의 현장을 가거나 유적을 답사할 땐 철저하게 과거의 눈을 가져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네. 남한강 일 천리 뗏목길이 이 곳에서 시작됐다고 하니 무명바지 저고리 입은 사내들의 억센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네. 푸른 물이라도 찰랑찰랑 넘쳤으면 풍치가 볼만한 했겠지만 겨울 이 가뭄에 그런 걸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으나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만큼은 기운이 철철 넘쳐났었네. 정선 팔경을 다 섭렵하지 못해서 서운한 일이었지만 꽃피는 봄날이나 여름에 다시 한 번 찾기로 하고 동해를 향해 떠났네.
조금 시간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어둑해지기 전에 바닷가 한적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네. 번잡한 곳 말고 한적한 어촌 같은 데 말일세.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데. 결국 발 닿는 데로 가다보니 삼척에 있는 추암해수욕장에 이르게 되었네. 가로등이 점등되고 그 빛에 흰 파도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열리는 기분이었네. 추암이 어딘가. 달력에 자주 나오는 추암 촛대 바위가 있는 곳일세. 그 곳의 일출도 대단하다네. 일출을 보려고 온 것은 아니지만 기대가 되기도 하였네. 민박을 정하고 아들과 마주앉아 회 한 접시를 먹었네. 종일 묻지 않으면 말 한마디도 안 하는 녀석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녀석과 함께 여행하는 목적이 가슴으로 느끼자는 것이었으니, 그래도 녀석이 기꺼이 여행에 따라나선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웠네.
한파와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동해의 파도는 무척 사나웠네. 아침을 먹기 전 촛대바위를 둘러보고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네.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들이 하얀 깃을 세우고 사납게 달려들었네. 강풍의 맞바람을 뚫고 달려오는 파도들이 눈보라 같기도 하고 흰고래떼 같기도 했네. 며칠 전에 본 강화와 오늘의 동해, 한반도의 옆구리가 서로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동해는 척추가 솟은 등줄기 같고 서해는 지방이 적당히 낀 뱃가죽 같았네.
아침을 먹고 한반도의 등줄기를 훑으며 남으로 달렸네. 목적지는 영덕 강구항. 7번 해안 도로를 따라 그 곳까지 이르는 길은 처음 가는 길이었네. 근덕, 원덕, 평해, 영해, 생소한 지명들을 보며 바다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상상해 보게. 보일 듯 말 듯 하다 와락 품에 안겨들고 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마치 나와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네. 흰 눈을 뒤집어쓴 태백산맥의 준령들도 참 보기 좋았네. 흰 눈 맞은 산을 백두를 향해 달려가는 짐승이라고 표현한 어떤 시인의 통찰력이 다시 한 번 가슴에 와 닿았네.
영덕 가는 길에 덕구온천엘 들렸네. 난 온천이나 사우나를 즐기는 편인데, 강과 바다를 좋아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아마도 내가 물고기자리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인지 몰라.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있으면 세상 근심 다 없어진다네. 더구나 아들과 함께 사우나 하는 걸 상상해보게. 서로를 남자로 느끼게 돼. 이 동류의식이 부자간을 더 끈끈하게 엮는 매개도 된다네. 아무튼 예정에 없던 온천을 들려 가뿐한 마음으로 강구항에 들었네. 자네도 알겠지만 영덕 대게로 유명한 곳이네. '그대 그리고 나'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네. 나도 언젠가 한 번 가족들을 데리고 가서 맛있다는 영덕 대게를 꼭 먹고 싶었었네. 온 가족이 함께 오지 못했지만 '대게 거리'의 수족관에는 대게들이 넘쳐나고 있었네. 심해에서 건져 올려진 그것들을 찜 하는 수증기와 냄새들이 강렬하게 미각을 자극했네. 한 곳에 들러 내 생애 가장 맛있고 가장 많은 게살을 발라먹었네. 살아있어 싱싱한 것이 주는 육질의 쫄깃함, 함평 한우 생고기를 먹을 때와 다를 바 아니었네.
한파와 강풍에 얼어붙은 항구를 뒤로하고 해인사로 향했네. 둘째 날 둥지를 틀 곳이었네. 아들에게 팔만대장경판을 직접 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라 생각해 선택한 곳이네. 내륙 깊숙이 박혀 있는 곳은 좀체 오기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일정이 느슨할 때 오는 게 낫겠다 싶었네. 대구를 지나 고령을 지나 가야산 해인사. 오후 네 시 무렵의 해인사에는 일본 관광객 한 무리가 서둘러 내려오고 있었네. 절에 오르는 길은 추운 날씨 탓에 인적이 드문 을씨년스러움이 가득했네. 3대 법보종찰의 위엄은 천여 년 된 고사목에서 부터 읽을 수 있었네. 신라 애장왕때 심은 거라고 하니 그 때가 언제인가. 유구한 세월을 버티어 온 수목과 석탑과 대웅보전, 그리고 팔만대장경판. 인간은 한낱 바람에 날려가는 풀씨 같은 존재가 아닐까? 내려오는 길에 현대적 조형미가 물씬 풍기는 성철 스님 사리탑을 보았네.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무엇을 남기려는 이것 또한 버려야할 욕심이 아닐는지.
어제 민박집도 그랬고 오늘 여관도 그러는데 웃풍이 너무 세네. 허술한 집에 한파까지 겹쳤으니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네.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 편지를 쓰네. 몇 겁의 시간 속에서 친구라는 인연을 맺고 삶을 살아가는 자네와 나. 참 행복한 일이네. 부디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산에 오르지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