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상상력이 제게 힘이 되었어요
저는 강북지역에서 주로 성장했고 지금은 강남에 살고 있어요. 대학 3학년 때 강북을 떠나 처음 강남으로 이사를 갔었고, 그 후 결혼과 함께 연희동과 일산을 거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지요. 지금의 삼성동 집으로 이사 온 건 13년 되었어요. 막상 선거에 나와서 서울의 가장 큰 현안 가운데 하나인 강남-강북 문제를 고민하고 또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안의 서울’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에요.
내 안의 서울, 내가 누비고 다닌 서울을 떠올리노라면, 지금은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된 우리 큰언니가 생각나요. 큰 언니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차근차근 집을 늘려가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하여 정착한 사례라는 점에서 강남아줌마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지요.
집안의 막내인 저는 일찌감치 결혼한 큰언니 집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생활했어요. 셋째 언니도 마찬가지로 큰언니 집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큰 형부가 대단히 너그러우셨던 거지요. 큰 형부는 프로바둑기사이세요. 그래서 결혼 초창기에 우리집에서는 형부를 ‘바둑이’란 별명으로 불렀지요.
신혼 초에 언니는 친정 집 근처인 아현동 등지에서 셋방살이를 하였어요. 저는 그 셋방을 우리집처럼 드나들었지요. 돌이켜보면, 70년대에 우리는 경제형편이 지금보다 못하였지만 ‘열려진 동네문화’ 같은 게 있었고 마을 공동체에서 아기자기하게 지지고 볶으면서 재미있게 살았다 싶어요. 그 당시에는 텔레비전도 드물었지요. 제 기억에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처음 텔레비전이 나왔어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텔레비전 드라마 주제가. ‘눈이 나리는데, 산에도 들에도 나리는데, 모두가 세상이 새하얀데, 나는 걸어갔네, 님과 둘이서,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아마도 최초의 TV드라마 아니었나 싶은데, 그 인기가 참 대단했지요. 그 당시 쟁쟁하던 스타 탤런트들 이름들. 이순재, 오현경, 나옥주, 안은숙 등등.
동네 사람들은 죄다 그냥 대문 밖에 나와서 놀았고, 저녁때면 텔레비전 있는 집으로 몰려갔어요. 지금도 네팔, 방글라데시 같은 델 가면 사람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와 있는데, 옛날 우리 서울이 생각나요.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미주알고주알, 지나가는 예쁜 아가씨 구경도 하고, ‘지바고 머리’라고 뒷머리를 드라이어로 말아 올린 스타일도 한때 유행했었죠.
제가 중학교 때 큰언니는 화곡동으로 이사 갔어요. 서울에 주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하고 화곡동도 막 개발될 때였지요. 조그만 시영아파트였는데, 저는 틈만 나면 언니네로 쪼르르 달려갔고, 그 동네 스케이트장에서 놀던 생각, 세계문학 다이제스트판을 읽던 생각이 나네요.
제가 고등학교 때 언니네는 다시 갈현동의 조그만 단독주택으로 옮겼는데, 이때까지도 셋집이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갈현동에 가서 살다시피 하였어요. 마침 고등학교 시절 제 친한 친구도 갈현동에 살았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저는 내성적이었던데 비해 그 친구는 아주 활달하고 그야말로 날리던 친구였고요. 소아과 의사를 하고 있는데, 지금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요. 사람을 웃겨주는 특기는 여전해서, 지금도 만나면 온갖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들, 괴로운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면서 항상 ‘하하하’ 웃게 만들지요.
제 기억에 큰언니네는 갈현동을 마지막으로 강남으로 간 것 같아요. 잠실 시영아파트로 집을 사서 옮긴 것이지요. 서울 각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아파트가 한창 들어설 때였고, 잠실에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며 개발될 때였고요. 그 후 큰언니네는 대치동 개나리아파트 단지 앞 성보아파트라는 25평형으로 이사 갔다가, 나중에 같은 동네의 쌍용아파트 43평형으로 옮겼지요.
큰언니네는 셋집을 전전하는 가운데에도 용케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지니게 된 사람들이지요.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 오른다는 건 삼척동자도 잘 아는 사실인데, 큰언니는 아파트를 팔고서 제가 사는 삼성동의 빌라로 이사 오셨어요. 19세대가 한 단지를 이룬 빌라인데, 그 안에 저를 비롯해 작은오빠네, 큰언니네까지 한 가족 세 가구가 함께 모여 살게 된 것이지요. 지금 제가 사는 삼성동 집은 셋째 언니 소유예요. 창피한 느낌도 있어요. 제게, 집 없는 것도 대물림 같아서요.
저는 원래 올해 책도 쓰고, 월급을 모아 강북에서 조금 한적한 곳에 내 집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하지만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고 말았어요. 내 집보다 먼저 내 도시를 생각해야 하니, 내 집에의 꿈과는 영 멀어져버렸지요? 지금은 나 혼자 살 집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는 도시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 속이 가득 차 있어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내가 사는 도시가 행복해지면 그 어디서 살건 나도 행복해질 테니까요.
첫댓글 저도 서울입성한지 꼭 일년하고도 한달이 지났네요. 결혼하고 줄곧 일산에 거주하다가 직장때문에 서울로 입성했습니다. 항상 그곳이 그리웠는데 이번시장선거 유권자되고보니 서울들어온거 잘한것같은 생각도 드네요..ㅋㅋㅋ
강남도 재개발로 어수선하고,,,강북도 뉴타운으로 어수선하고,,,빌딩에는 부동산,임대 글씨는 점점 많아지고,,과잉 공급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지만,,,,강남은 정이 안가,,강북은 그래도 정이 있어,,이상하지요????ㅋ,
친구따라 강남 간 제비가 강북에 먹이가 풍부해서 다시 날아 오지는 안겠죠??
벌써 지나간것 아닌가요....ㅋ,,2차,,3차로,,따라오겠죠??
저는 서울이 고향이지만 살곳이 없어 중국에서 세살아요.하지만 이땅이 곳 우리땅이 될거라는 망상으로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