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인 8월 30일 일본 선거에서, 그들의 원자폭탄 패전 이후 거의 전 기간에 걸쳐 집권해온 자민당이 민주당에 참패당했다. 이러한 조짐은 십수년 전부터 있어왔다. 공명당이라는 야당과 연합하지 않으면 1당이 되지 못할만큼 자민당의 인기는 시들고 있었다. 아마도 원자탄 두 방을 맞고 쓰러진 참담한 현실을 이겨보려고 극보수의 자민당에 일본국민들이 그토록 의지했었던 것같다. 육이오 이후 박정희의 산업화 호소에 온국민이 노래 부르며 허리띠 졸라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린 18년만에 그런 역사를 끝냈지만 일본은 50년 넘게 질질 끌려오다 이제야 청산하게 된 듯하다.
일본은 그간 내수 장기 침체와 이번 국제 경기 위기에서도 좀처럼 묘수를 내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다. 이번만이 아니지만 나라는 부유한데, 국민은 가난한 이상한 형세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아마도 자민당이 이끈 전체주의의 나쁜 결과인 듯하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창의력이 없고 변화가 없다. 그래서 답답해진 일본 국민들이 민주당을 택한 듯하다. 변화를 갈망한다는 의미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처럼 바뀌어야 할 때는 바뀌어야만 한다. 안바뀌면 반드시 썩는다. 되지도 않을 일을 붙들고 늘어지면 국민들만 피곤해진다. 고려 말기, 100년이 넘는 오랜 친몽골 정책으로 혼탁해진 조정을 바로잡는 일은 정권을 바꾸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제 36년의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로 지독한데 만일 100년을 그랬다면 뼛속까지 친일화됐을 것이다. 당시 고려는 왕만 몽골피를 받은 게 아니라 조정대신들도 그에 준하는 친원파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사람 몇 바꾸고 왕 하나 바뀌는 것으로 나라의 기틀이 바뀌질 않는다. 정몽주가 그런 썩어빠진 고려 왕실을 지킨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만일 이방원이 그를 때려죽이지 않았더라도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망할 때 망하고 거기서 완전히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나라가 일신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도 그렇다. 그렇게 국민을 많이 죽게 하고 고통을 겪게 한 정권이라면 마땅히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도 국왕 선조는 의병장들을 역모죄로 잡아죽이면서까지 무리하게 왕권을 지켰다. 저 남해안에서는 왜성이 늘어서 있는 와중에도 그는 일본군 잔당을 몰아낼 궁리는 안하고 왕권 수호에만 열을 올렸다. 결국 정유재란이 일어나 또다시 국토가 유린당해도 그는 수수방관했다. 전범으로 치면 국왕 선조가 1급 전범이다.
그때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일어났어야 했다. 왕실의 안위만 생각하는 그런 정권이 그대로 지속되니 나중에 일본에 완전히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는 것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종전 직후 패전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세력 교체를 해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서양 열강이 몰아닥칠 때 우리처럼 쇄국정책 하나로 미련하게 버티지 않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환골탈태를 감행, 단 몇 년만에 국력을 키워 조선을 집어삼키는 위력을 떨쳤다.
우리는 저만 눈 감으면 살 줄 아는 꿩처럼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당시 동학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난을 일으켰지만, 그 드센 세력으로 정치 구조를 바꿀 생각은 안하고 "국왕 전하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전봉준의 고리타분한 유가 사상에 묶여 사기 충천하던 군대를 해산시켜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썩은 유가 사상에 빠져 있던 지도자 전봉준 때문에 혁명이 될 뻔하다가 그만 난으로 추락하고, 난을 넘어 일본군이나 끌어들여 기어이 나라를 망하게 한 빌미를 제공했다.
만일 그때 동학의 주인공이 전봉준이 아니라 민본 사상이 조금이라도 박혀 있는 지도자였다면 대원군과 고종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썩은 왕실과 이권에만 몰두하던 사대부 세력을 몰아내고 동학교도들의 그 혈기와 충정으로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손으로 못하니 일제 강점기를 겪어야 하고, 그마저도 우리 손으로 못끝내니 나라가 반으로 잘려 한쪽은 소련의 감시를 받고, 한쪽은 미국의 감시를 받아 가까스로 괴뢰 정권이 섰다. 김일성은 소련이 지지한 사람이고 이승만은 미국이 지지한 사람이니 실로 국민들이 바라던 인물은 아니었다. 남한은 사일구 혁명과 오일륙 쿠데타, 끝없는 민주화 투쟁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 끝에 오늘날 선진국으로 도약했으나 북한은 일당독재에 묶여 세계 최빈국으로 떨어졌다.
일본이 겪어야 할 변화는 아마도 대단히 클 것이다. 어쩌면 일본이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만일 민주당 정권이 실패하더라도 학습 효과에 힘입어 다음에 자리잡는 정권은 반드시 일본을 혁신시킬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일본의 새로운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웃으로 볼 때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는 게 우리에게는 이로울지 모른다. 저들은 본디 꼼꼼하고 치밀하여, 결코 흥분하여 날뛰는 민족이 아니다. 저 날카로운 지성과 튼튼한 기초 실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감성까지 가세하게 된다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새로운 일본은 우리 상상 너머에 있다. 그들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까지 집어삼킬 수 있는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순신이 이끄는 해군이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20세기, 우리가 칼들고 화살 쏠 때 일본은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수없이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이사 등 동남아시아를 다 차지하고, 마지막으로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전쟁을 벌일만큼 그들은 강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 꼼꼼하지도 못하고, 기초가 탄탄하지도 못하다. 욱하고 치미는 성미에 초가삼간 다 태워먹을 기질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우하는 소리가 들리면 뭔지도 모르고 온 국민이 휩쓸리는 것도 못된 버릇이다. 다양성이 부족하고, 남의 말에 귀를 안기울이는 나쁜 습성을 아직 고치지 못했다. 게다가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김정일이라는 우리 식구가 발목을 잡고 있다. 집안 싸움에 남들 바라볼 여력이 부족하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우리는 더 채찍질하고 정신 빠짝 차려야 한다. 일본은 반드시 비약적으로 일어나 우릴 위협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성장은 반드시 우리나라에게는 큰 재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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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타이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알타이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