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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평론
적멸(寂滅)과 구도의 시
-문인수의 시 세계-
1.
문인수 시인하면 퍼뜩 떠오르는 인상이 몇 개 있다. 우선은 어질고 선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큰 두 눈과 일급 배우 빰치게 잘 생긴 모습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꼬장꼬장한 어떤 정신적 기품을 말할 수 있다.
만나보면 알겠지만 잘 생긴 마스크에 옷도 지천명을 벌써 넘은 나이에 맞지 않게 세련되게 입는 그 모습을 보면 이 이는 분명 모더니즘 취향의 딜레땅트한 시를 쓰는 시인쯤으로 곧잘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큰 눈을 가진 사람이 응당 그렇듯 사람은 너무 순하고 인정이 많으며, 시는 촌스러울 정도로 전통서정과 방랑과 허무의 빛깔에 침윤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허술하지 않고 후배들이 막무가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선 같은 게 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선비의식, 양반정신과 같은 그런 정신의 한 종류로 생각하고 있다. 이 정신의 실체를 파악하는 게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하나의 열쇠가 될 것이다. 가령 여기서 내가 선비의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수직적인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봉건적인 선비나 양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정신의 고결함, 청렴함 등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그의 정신은 시에서도 관철되는 사항인데 이것은 아마 그의 출생이나 성장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문인수 시집의 약력을 보면 1945년 경북 성주 초전 출생으로 되었다. 그가 출생한 곳의 공간적 지형은 조선 중기이래 선비정신의 맥이 흐르는 성주(星州)이다. 이곳은 퇴계 학맥인 한강 정구나, 남명의 학맥인 동강 김우옹, 근대에 와서 독립지사인 심산 김창숙 등을 비롯해 각 고을마다 인재가 수두룩한 반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그가 행동의 허투름 없는 생래적인 선비의식 같은 게 몸 속에 체화 되었다는 사실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945년 생이면 해방둥이인데 이 세대는 아직까지 전통적 가치관에 더 많은 젖줄을 대고 성장한 세대이다, 게다가 산업화의 초입에 이미 진입한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가 아니라 성주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낸 그에게는 소위 반상을 구별하고 체통을 어떻게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규율에 더 익숙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인수가 태어나 자라면서 이런 주변의 환경이나 정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인수의 초기시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주조를 이룬다. 이점은 이미 많은 평자들이 지적한 바이다. "고향과 유년으로 회귀"(김선학) "고향으로의 기나긴 여정"(이진흥) "집으로의 귀로"(송재학) "회귀성 혹은 귀로의식의 비극성"(이하석) "원초적 회귀 의지"(손진은) 등 대부분의 평자들이 그의 시를 고향과 연관지어 파악하고 있다.
이 점에 나는 동의한다. 실제로 그의 시는 고향에서 출발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은 특히 첫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 두 번째 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네 번째 시집 "홰치는 산"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세 번째 시집 "뿔"에는 고향에 살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난 실존의 불안과 슬픔이, 다섯 번째 시집에는 자신의 대안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정선 등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자의 원초적 슬픔이 짙게 배어 있는 데 문인수 시인에게서 이 떠돌아다님은 바로 정신의 고향, 존재의 이데아를 찾아 헤매는 고단한 여정인 것 처럼 보인다.
2.
첫 시집의 첫 작품은 문인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이다. 작품을 보자.
사방으로
언 땅
고향이 없다.
발길 가득히
무성하던
오동나무 이파리
그런 시절도
있긴 있었다
천천히 젖는
비의 후렴
저 술을
깨고나면
잊으리라.
-'겨울비' 전문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고향에서 배제된 사람이다. 고향에서 배제된 자에게 "사방은 언 땅"이라는 냉혹한 인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타향살이에 지친 그에게 "발길 가득히/무성하던/오동나무 이파리//그런 시절도 있긴 있었다"는 식의 추억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술에 젖어 있다. 이 시에서 드러난 문제의식이 이후 그의 시 세계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어머니, 아버지 누이 등과 같은 친족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뿔이나 달팽이, 동강의 새 등의 모습으로 이후의 모든 시집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 나타난다.
첫 시집의 시를 몇 편만 더 보자.
나의 본적은
慶尙北道 星州郡 草田面 大獐洞 大馬里 六三0番地
이 고장 이름字의 뜻모양이 한 장면의 그림으로 물 흐르듯 지어져 있음을
나는 늘 신기해 한다.
손짓 같은 무수한 별빛 떠 흐르고
거기 너른 풀밭을
은빛 갈기의 큰 말 한 마리 달려나가는
눈썹 위의 산천
나는 또 더 많은 것들을 그려넣고 색칠도 한다.
주민등록등본을 떼 보면
내 지나간 주소들의 방황은 어지럽다.
-'본적' 부분
굴 뚝
찔끔찔끔 눈물 나더라.
오매는 고개 돌리고 그렇게 찍어내더라.
나도 치마꼬리 붙들고 맵고 맵더라.
청솔가지 사뤄먹고 펄펄 끓던 구둘목
집 나간 맏형은 그 날도 돌아오지 않더라.
퍼어런 힘줄 다리힘 황혼 속에 서서
아버지.
썩둑썩둑 타들어가던 굴뚝 긴 그림자.
-'고향점묘-3' 전문
(이 작품은 시집에는 셋 째 행과 네 째 행이 '서럽지 않은 눈물이더라//아부지 들여다 보고 꺼얼껄 웃더라.'로 되어 있으나 시인 자신이 붉은 펜으로 삭제한 표시가 있어서 원문 인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필자)
'본적'에서 그는 자신의 본적지 주소를 한자로 표기한다. 굳이 따지자면 이 사실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시인 자신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언어학에서 언어는 기표와 기의가 합쳐져 온전한 하나의 문자를 이룬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호적은 아직까지는 대부분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형상문자인 한자를 그대로 옮겨 적는 시인의 태도에는 자신만이 의도하는(그것이 비록 무의식적이라도) 시성(詩性)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고향에 대한 본원적인 의식이라고 해도 좋을 을 것이다.
이 시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떼 보면/내 지나간 주소들의 방황은 어지럽다."는 구절은 이 시인의 떠돌이 삶을 짐작케 한다. 이런 떠돌이 인생에게 '고향 점묘'는 어찌 보면 자연스런 실존의 조건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실존은 가파르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실존이다. 이 점은 다음 시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작은 산새 한 마리를 품고
겨울 지난 산의 너른 품을 보니
서러워라.
산의 눈먼 귀를 깨우며
방울 굴리듯 앉은 작은 산새 한 마리를 보니
서러워라.
아침에 떠나온
내 둥지의 빈 가지는 남아 있을까
지금
어둡살이 내리고 있어도
나는 세상을 위해 부를 노래가 없나니
서러워라.
-'산새 한 마리' 전문
이 시의 화자는 작은 산새 한 마리를 보면서 "아침에 떠나온 /내 둥지의 빈가지"를 생각한다. 이 빈 둥지가 문인수에게는 두고 온 고향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론된다. 그리고 이 시에서는 산새가 시적 대상이지만 동시에 시적 화자의 분신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화자는 어둡살이 내리지만 부를 노래가 없다. 이 삭막하고 절망적인 정서는 시적 주체가 고향에서 배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문인수 시에 대해 언급한 평자들은 그의 시를 고향에서 배제된 자의 불모의식과 회귀 의식에 대해 실존적, 형이상학적 차원에서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문인수의 시에는 고향상실과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는 모두 심리적 차원에서만 그치고 만다. 이런 점에서 평자들의 평가는 온당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 역사적인 존재이자 당대의 정치 상황에 영향받고 있는 정치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이러한 기본적인 존재 조건 자체가 문인수라고 해서 비껴 갈리는 없다. 연령으로 봐서 해방둥이 세대는, 그들이 20대 청년으로 성장했을 때 우리사회는 5. 16군사 쿠데타를 기점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세계 자본주의 종속체제로의 편입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이렇게 볼 때 문인수의 고향 떠남은 작게는 개인의 주거 이전이지만, 크게는 산업화 물결로 인한 인구이동과 계층이동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농촌공동체의 붕괴로 이농민이 도시 빈민으로 편입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문인수 시에서 특이한 점은 그의 시에서는 이런 사회 경제사적 배경이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고향에서 뜅겨져 나와 객지를 배회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시가 전혀 없다는 점도 문인수 시의 중요한 한 특성이다. 가령 그 보다 한 연배 위인 김지하나, 한 연배 아래인 이시영의 시에서 보이는 사회적 의식이 그의 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점은 좀 더 실증적으로 연구해 봐야될 성질의 것이지만, 가령 두 시인은 당시 상대적으로 소외 받았던 전라도 출신이라서 정치적으로 예민했던 반면 문인수는 근대화 중심 세력이던 영남, 더구나 반촌으로 알려진 성주 출신이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이 고장에서 회자되는 양반은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든가, 양반은 소낙비가 와도 뛰어가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명분을 중시 여기는 사고가 그의 정신적 뼈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산업화 과정 속에서 타의에 의한 자신의 뿌리 뽑힘 조차도 그것이 긍극적으로는 강제에 의한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주체 중심의 실존적인 문제로 받아들였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문인수의 첫 시집에 비교적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첫 시집의 문제 의식이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된다는 점 때문이다.
두 번째 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는 짧은 시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시집에서 고향에 대한 정서가 '언 땅' '서러움' '눈물' 등으로 집약되었다면 두 번째 시집에선 '어머니' '아버지' 와 같은 혈족의 모습으로 보다 첨예화되고 구체화된다.
그리고 네 번째 시집 "홰치는 산"에서는 1. 2 권의 시집에서 보여주던 문제의식이 보다 폭넓고 부드럽게 용해되어 있다. 그리고 훨씬 서정적이다. 그리고 시적 제재도 제2시집의 혈족 중심에서 '방올음산' '선거릿재' 등 자연 풍물로 확장되면서 시 세계가 폭넓어졌다.
나는 그동안 답답해서 먼 산을 보았다.
어머니는 내 양손에다가 실타래의 한 쪽씩을 걸고
그걸 또 당신 쪽으로 마저 다 감았을 때
나는 연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밤 깊어 더 낯선 객지에서 젖은 내 여윈 몸이 보인다.
길게 풀리면서 오래 감기는 빗소리.
-'실' 전문
어머니 우시는 모습은 좀체 볼 수 없었다.
내가 자꾸 험한 객지로 떠나갈 때도 그랬다.
그러나 맑은 날, 천리 밖에서는 잘 보인다.
-'어머니 뒤안에 비 내리다' 전문
붉새 아래 아버지
황소 너머 서 계신다.
붉새 아래 아버지
황소 빗질하시며 서 계신다.
아버지 허이연 입김 훅훅 뿜어 소에게 불어넣는 것인지
소의 거친 콧김이 아버지를 휘감고 있는 것인지 자욱한
안개 서서히 걷히면서 소는 점 점 부풀어 오르고
소는 바깥 마당에 스무마지기 한곳지기 안에 꽉 차서
소잔등 둥두렷한 등성이 넘어 불쑥이
해 떠오르고 붉게
아버지 떠오르는
이른 아침.
-'아버지' 전문
어머니,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었다.
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
달무리만하게 놓이던 부드러운 흰 땅.
나는 거기 살평상에 누워 별 돋는 거 보았는데
그때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 어흠 걸터앉으며
물씬 흙냄새 풍겼다 그리고 또 그렇게
솥 열면 자욱한 김 마당에 깔려.... 아 구름 구름밭,
부연 기와 추녀 끝 삐죽히 날아 오른다.
이 가닥 다 이으면 통화될까.
혹은 긴긴 동앗줄의 길을 놓으면
나는 홀로 무더위의 지상에서 칼국수를 먹는다.
-'칼국수' 전문
문인수 시인과 영남일보에서 함께 근무한 이하석 시인이 수 년 전쯤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는 문인수가 객지생활을 작파하고 대구에 내려와 신문사에 다닐 적이다. 이하석의 말에 따르면 문인수는 매주 토요일만 되면 고향인 성주 초전에 들어가 홀로 계시는 어머니 곁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온다는 것이다. 굉장한 효자라는 이야기였다.
이하석의 이 말 역시 문인수의 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다. 문인수가 객지를 떠돌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배후에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물리적인 어머니 너머 더 깊은 정신의 어머니가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문학을 통해서 추구하는 어떤 절대적 정신, 혹은 진리도 어머니의 몸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것을 위의 시는 보여주고 있다.
'실'에서 시적 화자는 어릴 적 어머니와의 실 감기를 회상하면서 문득 객지에서 젖은 자신의 여윈 몸을 인식한다. 자신의 몸이 젖었다는, 상승이 아닌 하강의 이 인식은 어머니의 부재 때문에 일어난다. 그의 이런 인식은 맑은 날 천리 밖에서는 어머니가 잘 보인다는 역설로 이어진다.
이런 그의 생각은 '칼국수'(제 4시집 "홰치는 산" 수록)에서도 여전하다.
어머니, 아버지와 여름날 살평상에서 칼국수 먹은 추억을 떠올리면서 국수가닥을 다 이어서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부친과 통화하고, 그 국수가닥을 동앗줄로 삼아 다른 세상과 교통할 것을 염원하면서 나는 지상에서 국수를 먹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이 왜 국수로 전화줄을 만들고 동앗줄을 만들어 저 세상과의 통허를 원할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 아버지는 고향의 다른 이름이자 모습이기도 하다.
제 1. 2 시집이 물리적인 고향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면 세 번째 시집은 정신적인 고향, 다시말해 정신적인 불모의 세계를 극복하고 보다 편안한 세계로의 안착을 갈구하는 의식이 보다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 시집 '뿔'은 앞의 두 시집과는 여러모로 대별된다. 앞의 두 시집에 비해 훨씬 더 사변적이고 추상적이다. 이는 비교적 자연발생적이고 또 형상화의 정도가 높았던 두 권의 고향관련 시편들과 그 시편들을 이루어 내던 시정신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뿔'에서부터 시작해 이후의 시들의 시어활용이나 형상화 방법이 훨씬 밀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밀도가 있다는 이 지적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국시의 일단이 보이는 불필요한 사변이나 난삽한 이미지 활용은 문인수 시의 순정성을 훼손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데 나는 세 번째 시집이 그 예라고 생각한다.
가령 현란한 사변이나 이미지를 즐기는 시인들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믿지 않는다. 언어가 지시하는 지시체계로서의 언어로는 이 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언어 너머의 어떤 세계, 언어가 채 그려내지 못하는 초울적 공간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다. 이것은 형식주의자들의 시관이다. 이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이 명제에 대한 시적 대응보다는 시인 자신에게 자기분열이 먼저 오는 경우가 있다. 이 자기분열을 아름다움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문인수의 세 번째 시집은 그가 갖고 있는 기존의 문제의식에 내공을 더하고 정신적인 깊이를 더하는 작업 대신에 현란한 언어사용이나 이미지 사용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이 시집 전체가 보여주는 문제 의식은 여전히 객지에서의 불모 의식, 혹은 자기 소외의식이다. 이것이 앞의 두 시집에서는 보다 뚜렷하고 구체적인 양상으로 나타난 반면 '뿔'에서는 전체적으로 난삽하게 추상화되는 쪽으로 기울었다.
버스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달린다.
여자의 등에 업힌 젖먹이는 아이도 흔들린다.
세상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흔들리는
아이는 희고 순하다.
아이가 쳐다보는 흔들리는 것들.
...............
흰 젖 고요한 냄새 속으로
아이는 박꽃만하게 잠이 든다.
-'그렇다면 평화란 말이냐' 부분
검은 수렁 한복판을 느릿느릿 간다 저런 절 한 채를 뒤집어쓰고 살 수 있다면..... 동해안 아름다운 길 길게 풀린다.
-'달팽이' 전문
두 편 다 아름다운 시이다.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 나 '검은 수렁' 이라는 문제의식은 문인수가 세상을 여전히 불모의 현실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전까지 그의 시에서는 고향부재가 불모의 조건이었지만 이 두 편의 시에서는 그런 전제가 없다. 그냥 세계 자체가 불모이다. 실존 자체가 불모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 있는, 전망이 있는 불모이다.
흔들리는 세상에서도 아이가 박꽃 만하게 잠이 들고, 검은 수렁 한 복판을 걷는 달팽이의 앞에 동해안 아름다운 길이 길게 풀린다는 이 인식은 그가 불모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면 과연 시인은 어떻게 고향부재로 생긴 객지의식과 실존의 불모를 치유할 수 있었을까?
그것에 대한 해답을 '여행'과 '정선'에서 찾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여행이란 것은 따져보면 객지의 연속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이라고나 할까. 객지의식을 아예 여행이라는 영원한 객지의식으로 무화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선'의 발견이다. 다섯 번째 시집은 섬진강에서 선운사, 정선까지의 여행의 기록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정선이 있다. 시집의 제목도 '동강의 높은 새'이다. 문인수에게 동강은 "적멸"('어라연')의 세계이다. 불생불멸의 영원한 세계인 것이다. 다섯 번째 시집 "동강의 높은 새"는 아름다운 시집이다. 그리고 시인의 진면목이 가장 잘 드러난 뛰어난 시집이다. 우선 이 시집의 시를 검토하기 전에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산문 몇 조각을 보자.
나는 그러나 당연하기 짝이 없는 고향의 시대적 변천변화를 한탄하거나 흘러간 것들에 대한 막연하고도 감상에 겨운 향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립다는 것이다. 더러운 것이 정이라고 했다. 어느 시인은 이 말을 '더러운 그리움'이라고 패러디 했던가. 그것이 참상이든 불행이든 잔치이든 과거 속으로 들어간 고향은 전부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리운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정월'이라는 시에서 "이 땅의 神이옵신 그리움이여"라고 쓴 적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금새 닿을 수 있는 고향, 성주 간다. 그러나 고향 성주는 이제 몸이 가서 닿을 수 있는 한 공간이 아니라 내 영혼이 가서 닿을 수 있는 지나간 시간이며 아름다움인 것이다. 고향이란 또 어머니,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내 유년이며 추억과 같은 이름이기도하다. 내 몸과 영혼이 발원한 곳이며 또 자주 회귀해 가는 길의 끝이기도 하다. (중략)
왜 여행이며 하필이면 왜 또 정선인가. 일상이라는 아스팔트 포장은 밋밋하고 깜깜해서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한다. '그 어느 한 쪽으로도 시계가 트인 곳이 없는, 험한 산세로 빙빙 둘러쳐진, 산간오지만이 갖는 그런 위압스런 사위가 돌들을 그렇게 붙박아 놓고 있는...' 정선이야말로 젖어 갇힌 내가 잘 보였다. 정선은 그렇듯 험한 산이 많아 원경이 없다. 앞이 트이지 않는다. 갇힌다. 올려다봤자 '하늘 세 뼘'이다. 그리하여 제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정선에서는 생긴다.(중략)
성주가 내 몸과 영혼의 고향이라면 정선은 우리네 한(恨)의 발원지이며 내 전생의 고향일 것 같다.
-산문 '길 위에서의 시 쓰기' 부분
이 산문에 따르면 문인수에게 있어서 정선은 "제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며 "전생의 고향"이다. 제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는 시를 쓰는 행위이고, 그에게서 시 쓰기는 "자기 용서"이며 "자기자신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뒤의 또 다른 내 모습"(같은 산문에서)을 찾는 행위이다. 이는 구도(求道)이다. 정선이 그에게 적멸의 공간이라는 의미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공간이란 의미이며 이는 구도 끝에 가 닿을 수 있는 해탈의 경지를 뜻한다.
그러면 문인수의 시가 이미 그 공간에 가 닿았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게 내 판단이다. 다섯 번째 시집 "동강의 높은 새"는 그 출발점이다. 물리적인 고향부재의 불모의식에서 출발한 그의 시가 우주적 친연성을 가진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친족의 몸을 거쳐 드디어 인간 염원의 끝인, 구도의 경지 그 입구까지 와 닿아 있다. 그 곳이 동강이다.
동강 물길이 둥그렇게 몸을 바꾼다.
호수처럼 고요한 시간이 어라연이다.
고기들이 와서 소리 없이 논다.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올라가봐라 죄여
다 퍼 울고 오래 물에 어리인 산,
저 험한 산, 거친 삶도
푸른 배냇물 속 깊이 젖어 적멸이다.
-'어라연' 전문
동강은 대뜸 말문을 막는다.
어이없다, 참 여러 굽이 말문을 막는다.
가슴 한복판을 뻐개며 비스듬히 빠져나가는
저기 내려 꽃피고 싶은 기슭이 너무 많다.
몸이 먼 곳,
인생이 저렇듯 아름다울 수 있었겠으나
어떤 죄가 모르고 자꾸 버렸으리라
늙은 사내는 엎드려 산 첩첩 울고
물길은 산에 막히지 않고 간다.
-'동강에서 울다' 전문
두 편의 시에서 인상적인 시어가 '죄' 이다. 험한 산, 거친 삶을 거쳐오면서 인생은 죄를 짖지 않고 피하기 어렵다. 동강의 맑은 물처럼 인생은 애초 저렇듯 아름다웠을테지만 어떤 죄가 그 인생을 버려 놓았다. 그러니 시적 화자가 어라연 푸른 물 앞에 서니 문득 그 죄가 그를 아프게 한다. 시적 화자는 어머니, 어머니 부른다. 그러나 죄는 언뜻 사해지지 않는다. 늙은 사내는 후회로 몸을 떨며 운다. 살아오면서 인생이 어떤 장애에 막히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과는 달리 물길은 산에 막히지 않고 제 길을 간다. 그 물길이 유장허심이다. 그 경지가 바로 적멸이다. 거기서 시인은 죄 사함을 받은 자신의 모습을 찾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이 바로 문인수 시인의 시정신이 근래 동강에 머무르는 이유일 것이다. 동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문인수의 시정신이 동강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시적 화두는 어쩔 수 없이 적멸과 구도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시집을 검토한 내 생각이다. (성주문학 2002년)
김용락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창작과비평사 "마침내 시인이여"로 활동
시집 "푸른별"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시간의 흰 길"
평론집 "지역, 현실, 인간, 그리고 문학"
"민족문학논쟁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