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2일 단독 입수한 관계 당국의 판문점 동향 문건에 따르면 북한군은 지난달 19일부터 잦을 때는 하루 서너차례씩 유엔사령부 경비요원을 자극하고 있다. 이때는 지난달 14일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과 관련해 송신 보고를 누락한 해군 작전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정부 합동조사가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다.
일주일가량 계속된 이번 북한군의 심리전 활동은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하기는 어려운 정도에서 교묘하게 이뤄졌다.
이 문건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북한군 병사가 유엔사 초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평소에는 잘하지 않는 행동이다. 22일에는 더 과감해졌다. JSA를 방문한 북측 관광객 2명이 "양키는 집에 가라"라고 외쳤다. 이어 다른 100여명의 북측 관광객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찬양하는 선전구호를 외쳤다. 또 군사정전위원회 제2회의실(T2)에 부착된 감시카메라 앞에서 욕설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날에도 북한군은 북측 초소에서 김 위원장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유엔사 초소를 향해 "야, 야"하고 외쳐댔다. 24일에는 북측 병사가 판문점 군사정전위 회의실을 경비하고 있는 유엔사 요원에게 "겨우 그 정도로 싸울 수 있겠어"라고 비아냥거렸다.
북한군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북한 정보에 밝은 군 관계자는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NLL 무력화와 함께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오는 10월부터 유엔사가 관할하는 JSA의 실질적인 경비를 한국군이 맡게 된 데 따른 심리적 압박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최근 북한군이 경비정을 내려보내 NLL을 침범하고 거짓 내용의 송신으로 해군을 기만한 사건과 유사하다. 그때 북한군은 우리 해군의 NLL 수호 의지를 시험했다.
군사분계선을 휘젓는 북한군의 심리전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2001년 6월에는 북한 상선이 우리 영해를 무단으로 침범했다. 대북 햇볕정책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무장하지 않은 상선을 사전 통보 없이 우리 영해로 들여보냄으로써 남측 사회에서 무해(無害) 통항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해군으로서도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비무장 북한 상선을 무력으로 정선시키는 데 부담을 느꼈다. 더군다나 북한 상선의 침범을 정전협정 위반으로 항의하기도 어려웠다.
1994~96년에는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의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유엔사의 정전 기능을 무력화하려고 했다.
당시는 북한이 유엔사를 무시하고 미국과 직접 장성급 대화를 하자고 요구하고 있을 때다.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책임을 가진 유엔사의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의 행동이 도발 수준은 아니지만 지켜볼 일"이라면서 "북한에 말려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kimseok@joongang.co.kr>kimseok@joongang.co.kr> 2004.08.03 06:25 입력 / 2004.08.03 09:54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