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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12(목). 말씀나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의 설교
변 종 길 박사 (고려성경연구소장)
서울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의 창세기 강해 설교 01(창 1:1)과 02(창 1:1-2)를 듣고 간단히 평을 적어 본다.
우선, 김성수 목사는 공부를 많이 한 지성적인 목사로서 우리나라의 지성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력이 있겠다고 생각된다. 기존의 목사들이 너무 평범한 설교를 하고 또 청중의 지적 수준에 맞지 않는 설교를 통해 믿음과 순종을 강요한 측면이 있는 것에 반해, 김성수 목사는 현대 지성인의 수준에 맞게 어느 정도 지성적 논리를 가지고 성경을 설명하기 때문에 진리에 갈급한 많은 성도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아서 솔깃하게 빠져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진화론의 맹점과 허구성을 논리적으로, 지적으로 설명해 나가는 것은 보통의 목사들이 해 주지 않는, 아니 해 줄 수 없는 것으로 오늘날 웬만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과 '영원'을 좀 철학적으로 설명하는데 그럴 듯하고 좋은 설명처럼 보이지만, 따져 보면 맞지 않다. 물질에 시간이 있고 따라서 물질이 있기 전에는 시간이 없으며 그래서 영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시간은 물체의 움직임(운동)에 의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다. 일체의 움직임이 없으면 선후*가 없고 변화가 없고, 그것은 죽음이다. 원자도 움직임이 없고 전자도 돌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영원이 아니라 죽음이다(물리적 죽음). 이처럼 움직임이 있으면 자연히 시간이란 개념이 생겨나는 것이다(이 점에서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천지창조 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교제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있다. 물론 그것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다. 베드로는 하나님께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와 시간 개념이 다르다고 말한다.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한다(벧후 3:8). 하나님은 살아 계시므로 늘 시간이 있고(하나님의 시간), 천지 창조와 함께 이 세상의 시간(피조물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는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이 있는데, 의미 없이 계속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과 교제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복된 시간이다. 곧 영생이다(요 17:3).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이지(영생, 영원한 생명), 그저 시간이 없는 것 또는 물질 세계를 벗어나는 것을 영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엄밀하게 말하면, '선후(先後)'라는 시간 개념은 없다. 단지 '사건'의 이쪽과 저쪽이 있을 따름이다. 이론적으로는 어느 것을 '앞(先)'이라 하고 어느 것을 '후(後)'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종말'로 나아가도록 역사하신다. 그래서 시간은 창조에서 시작하여 종말을 향하여 흐르는 것이다. 창조에 가까울수록 '앞'이며 멀수록 '뒤'가 된다. 사람은, 그리고 피조물은 이 시간의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도 이 정방향의 시간 흐름 가운데 태어나서 자라고 살기 때문에 성경을 이해할 때도 정방향으로 이해해야 자연스럽고 순리에 맞다. 이 순서를 거꾸로 하여 이해하면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고 안 맞는 것이 생길 수 있다. 김성수 목사는 요한계시록에서 창세기로 거꾸로 이해해야 잘 이해된다고 하는데, 일면 이해되는 점은 있지만 그럴 경우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목적론적으로 되고 이상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해하는 것이 피조물된 우리 인간에게 제일 적합한 방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더 중요한 문제는 김 목사가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을 잘 비판했지만(귀담아 들을 만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인이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인본주의, 세속주의는 잘못되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적극 지지함),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고 하고 좀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다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무리의 병을 고쳐 주셨겠는가? 왜 "아픈 게 복이니 그리 알고 계속 아파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왜 배 고픈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적을 행하셔서 무리를 배불리 먹이셨는가? 김성수 목사 같았으면, "배고픈 것이 복이야. 그래야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섬기게 되거든." 이렇게 말했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물론 김 목사가 정말로 이렇게까지 말하진 않았겠지만, 너무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하다 보니 성도의 이 세상에서의 삶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영광, 신본주의, 자기 부정이 비록 옳은 것이고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삶을 부정하게 되고 결국 그가 강하게 비판한 불교의 멸절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김성수 목사의 이러한 경향은 얍복강가의 야곱의 기도(창 32:24-32)에 대해 부정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야곱이 천사와 더불어 밤새워 씨름한 것을 탐욕과 죄라고 설명하는 것은 성경의 의도와 정반대인 것이다. 무서운 에서를 만나기에 앞서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천사와 밤새워 씨름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 것을 나타낸다. "...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호 12:3-4). 그 사람(천사)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은 것은 끈질긴 기도, 간절한 기도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전까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기도이다. 그럴 때 그 천사가 마침내 야곱에게 축복하였다(창 32:29). 만일 이것이 탐욕과 죄의 잘못된 기도였다면 어떻게 축복하셨을까? 그리고 그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다(창 32:28). "하나님을 이긴다"는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한다. 따라서 이 천사가 축복한 것은 곧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며, 이 천사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준 것은 곧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야곱은 환난과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고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믿음의 조상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오늘날 한국의 목사들이 야곱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야곱을 믿음의 사람으로, 기도와 경배의 사람으로 말하고 있다(히 11:21).
하나 더 지적하면, 김성수 목사는 과학을 상당히 잘 아는 것처럼 설교하지만, 물론 많은 부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인정함),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수많은 천체들은 다 질량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이 중력에 의해 한 군데로 끌어당겨져셔 붕괴되지 않는 것은 이적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붙드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럴 듯하고 성경적이고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상당히 과학적 지식이 있는 지성인 같지만, 그러나 조금만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허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물체 곧 질량 있는 물체는 중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잡아당기는 인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 물체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물체는 원심력을 가진다. 그래서 인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면 그 물체가 중심으로 붕괴하지 않고 계속 회전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상식이다. 그리고 우주 전체로 보면 질량이 있는데, 왜 중력에 의해 붕괴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발견된 것이고 지금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또 말하기를, 그 팽창 계수가 1 미만이면 팽창하다가 언제가는 다시 수축하여 붕괴할 것이고, 1이면 꾸준히 계속 팽창할 것이고, 1 초과이면 더욱 빠른 속도로 팽창할 것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1 미만이 되기를 내심 바랐지만 실제 관측에 의하면 1 이상(초과)으로 더욱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끝없이 팽창하는 것이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성경에 의하면 언젠가 예수님의 재림에 의해 우주의 종말이 올 것이고, 그렇게 이 세상은 끝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물리 법칙도 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히 1:3).
우리는 지금 이런 과학적 지식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김성수 목사는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을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그 비합리성과 맹점을 과학적 지식으로, 논리로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그리고 성도들에게 신앙상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그러나 이런 과학적 지식들에 대해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물론 청중은 이런 설교에 환호하고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으나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책을 조금 읽어 본 사람이라면, 김 목사는 과학에 대해 생각만큼 조예가 깊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원심력이라든지, 우주 팽창 같은 것은 초보에 속하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김 목사는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교리적 내용에 있어서도 너무 자신만만하게, 마치 자기가 다 아는 양 말하는데, 이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풀 때에도 조심스럽게 겸손히 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성도들이 너무 분별력이 없고 판단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는 또한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며, 신학 교수들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