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과연 반가운 계절이다. 유난히 더디게 온 듯한 올 봄을 사람들은 마치 묵은 때를 씻듯 산뜻한 발걸음으로 보답하고 있었다. 산천은 진달래로 물들기 시작했고 나날이 눈부신 노란색을 뿜어내는 개나리며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 목련들이 맞장구를 치고 있다.
선바위와 십리 대밭을 찾는 이들의 옷차림은 한층 가벼워지고 걸음걸이 또한 경쾌하다. 선바위는 그 전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어 빼어난 경관과 함께 발걸음을 잦게 만드는 곳이다.
선바위는 범서읍 입암리 앞으로 흐르는 태화강에 높이 솟은 바위로 가지산에서 발원한 태화강은 석남사, 언양, 반천, 사일을 거쳐 하류로 흘러오다 입암들 앞에서 물이 휘돌아 나가는 곳이어서 사연댐 건설 이후 물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깊고 위험해 수영 금지 푯말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높이 33미터, 둘레 46미터, 꼭대기가 삼봉을 이룬 기암괴석인 선바위는 금강산 해금강 한 봉우리를 옮긴 듯 하다 하여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학성 이씨 재실로 이용되고 있는 용암정이 절벽 끝자락에 걸려있다.
용암정은 정각 지붕 기왓장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선종 11년(1831년)에 새로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후기 문신인 지부 이정인(정조 20년~순조 원년인 1796년부터 1801년까지 5년간 울산 부사를 지냄)은 ‘입암정기’를 기록하면서 정자 낙성식 때 참석한 한 나그네가 “이 바위 높이는 촉석암에 미치지 못하고 기이함도 수미산보다 못하니 이 것은 물 가운데 한갓 기이한 돌에 지나지 않는다”며 평가절하하자 그는 웃으며 “촉석암과 수미산은 산에 의지하고 있지만 홀로 물 속에 서있는 이 바위는 풍상을 겪고도 그 태도 변함없으니 가히 범할 수 없는 기상이 있으므로 정자를 세웠다”고 일갈했다.
태화강 상류 사연댐이 생기기 전만 하더라도 상류 망성교에서 하류 백천교에 이르는 구간은 태화강이 자랑하는 은어와 황어 등이 많아 낛시꾼들을 유혹했다. 최근에는 구영리와 천상리 일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 곳 지역민들의 좋은 휴식처 역할도 하고 있다.
강 건너 대밭도 일품이어서 과거에 비해 대나무가 많이 줄어들긴 했어도 울산 12경의 또 다른 모습이 ‘오산 10리 대밭’(십리 대밭)이 망성교 위에 있는 대나무와 함께 이 곳에서 시작된다.
십리대밭 십리 대밭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큰 홍수가 난 태화강변은 전답이 소실되고 모두 백사장이 되어 버렸다. ‘오까다 조베이’라는 일본인이 이 백사장을 헐값에 사들여 죽전(竹田)을 만드는 것을 기점으로 신정동 주민이었던 이종하씨 등이 주변 경작지에 다투어 대를 심어 오늘의 죽림이 형성되었다.
당연히 죽세공품의 인기가 한 때 하늘을 치솟았으나 시대 조류에 따라 시들해지자 이젠 아름다운 경관으로 남아 ‘울산의 허파’ 역할을 하며 새로운 생태 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숲은 일반 침엽수림보다 산소 배출량이 30% 정도 더 많아 훌륭한 환경정화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보전 가치가 높다고 할 것이다.
10여년 전 건교부가 물 흐름에 장애가 된다하여 태화강 대밭을 잘라버리려고 했을 때 “대숲이 홍수 소통에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하천에 나무 심는 것을 권장 한다”며 이수식 교수(울산 과학대)가 올린 보고서 한 장이 십리대밭을 살린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이후 십리대밭은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 속에 보전과 복원을 위한 여러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으며 대대적인 간벌 작업 분 아니라 산책로, 차나무 단지 조성 등을 통해 생명이 숨쉬는 자연 친화형 생태공원으로 조성되고 있어 울산시가 선언한 ‘에코폴리스’의 한 상징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십리대밭 주변의 유적과 명소 몇 곳을 살펴보면 호국 대사찰인 태화사지의 정확한 장소를 알고자 하는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용금소, 봄을 숨긴다는 뜻을 가진 장춘오, 열두봉 마다 달이 떠있었다는 남산 은월봉 등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남산 은월봉에서 내려다본 십리 대밭과 그 앞으로 날아드는 철새들의 날개 짓은 그대로 한 폭의 한국화다. 이처럼 십리대밭은 울산 시민들에게 있어 삶과 풍속 등이 녹아 있어 더욱 애착이 가는 곳이다. 90년대 중반까지 1백 50만 그루 이상의 대나무가 자생했다고 하는 십리 대밭 지금은 절반에 못 미치는 72만 3천 그루가 있다한다.
이제 곧 벚꽃이 만발할 것이다. 난분분(亂紛紛), 어지러이 휘날리며 떨어지는 벚꽃과 함께 봄이 더 잘 어울리는 선바위와 십리 대밭 길을 가족들과 함께 손잡고 나서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