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반존자 혹은 독성이란 분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여러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나반신앙은 인도,중국, 일본 어디에도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속신앙이지만,
조선시대 이전에는 어느 문헌이나 사찰에도 존재하지 않은 분으로,
우리나라 사찰의 삼성당에 나반존자가 모셔저 있어서 궁금을 자아냅니다.
나반존자의 근원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속설이 난무하기에 더욱 궁금합니다.
특히 부처님의 제자중에는 더욱 거론되지 않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나반존자를 홀로 깨우치신분이라는 의미인 독성각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 아라한(나한)의 경지 다음으로 비상비비상처의 차별상이 사라진 '하나'로 깨우치신 분인 벽지불을, '하나'를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잘못 번역되어 하나가 일(1)로 잘못오해되어 홀로로 잘못 번역하여 독각이라고 하는데서 온 유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서 나반과 불교의 깨달음의 경지중의 하나인 아라한의 한자식 발음인 나한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독성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693년(숙종19)이며, 18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찰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또 다른 설로 십육나한 중 한명인 빈두로존자로 보는데, 흰 머리와 흰 눈썹 등 외모상 비슷한 점이 많고 신통력이 있다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말법시대에 나타나 미륵불이 오기 전까지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재앙을 없애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였습니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말에 나반존자 신앙이 더욱 성행한 것은 당연한 일일것 입니다. 영험이 큰 성인이나 성격이 매우 엄하고 무서워 공양을 드릴 때는 목욕재계는 물론이고 공양물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화재청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독성각은
혼자서 스승없이 깨친 독각(獨覺)의 성자를 모신 사찰 당우 중 하나. 독성은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도를 깨달은 자로서, 일반적으로 독성각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봉안하는 것을 통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 독성신앙에 특유의 단군신앙을 가미시켜 새롭게 수용하고 전개시켰다. 이 독성각이 토속신앙과의 접합에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 불교사의 초기 및 중기의 사찰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널리 건립되어 사찰의 한 당우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불교가 핍박받게 되고 말법시대(末法時代)라는 자각이 강하게 대두됨에 따라, 말법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현재에도 일반 서민층에서는 대웅전 등의 중심 당우에서보다 독성각에서 불공을 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독성각 중 유명한 것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雲門寺)의 부속암자인 사리암(舍利庵)과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의 삼성암 등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나반존자의 근원에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글을 스크랩하여 소개합니다.
또 다른 의견이 있으면 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토론하면서 정확하게 공부하고 믿었으면 합니다.
일승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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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daum.net/hanaiim/5034252
나반존자는 불교의 나한이 아니다
불교신도들은 대체로 나반존자那畔尊者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삼성각三聖閣 또는 독성각獨聖閣에 가서 빈다. 일부는 독성각의 나반존자가 우리 고유신앙이 불교적 색채를 입은 인물이란 사실을 아는 이도 있다.

<동국대 독성도> <대승사 독성도>
그런데 불교인들 중에 불교 경전에서 견강부회하여 불교 나한이라 우기는 분들도 있다.
미륵하생경에 따르면, 석가모니부처가 열반에 즈음하여 마하가섭, 쿤다다나 존자, 빈두로 존자, 친아들 라후라 네 명의 큰 제자들에게 천상 도솔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너희들은 입멸하지 말라. 내 불법이 다할 때까지 남은 후에 입멸하라. 마하가섭은 입멸하지 말고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려라.” 당부하였다.
나반존자는 석가부처가 열반 때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라 부촉한 4명중의 한명 빈두로 존자(범어 '핀돌라바라드바자'의 음역)를 가리킨다고 우긴다.
나반존자는 불교인물이 아니라, 한민족 고유신앙에서 유래하는 인물이다. 독성각을 불교의 빈두로 존자라고 하는데, 19세기 이전 불교에 그런 기록이 있는지 알아보라. 일제시대 이전에는 독성각이 단군왕검이라는 설만 있었다.
독성각이 인도 인물이었다면 다른 나라 불교에서도 있어야 하는데, 왜 우리나라만 모시겠는가? "나반'이라는 용어는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사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나라 당집 신앙에서 모셔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해인사 독성각> <해인사 독성각의 내부>
원래 우리나라에는 하느님을 모시는 신앙이 있었고, 큰 영웅인 환웅을 모시는 대웅전이 있었고, 구월산 삼성사의 예에서 보듯 삼성(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삼성각이 있었다. 불교가 나중에 전래되면서 대웅전을 석가부처가 자리잡게 되는 데, 우리 고유의 성인들은 절의 뒤켠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나반존자도 환인, 환웅, 단군과 함께 절의 뒤켠으로 쫓겨나서 홀로 모셔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독성각이 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대로 석가부처가 들어오기 전에, 불교 없이도 홀로 깨쳤다고 해서 독성獨聖인 것은 아니다.
환단고기 삼성기에 보면 나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고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阿耳斯?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삼성기 하)
나반은 인류 최초의 인물이며, 인류의 아버지이다. 지금부터 5만년전에 바이칼호 근처에서 태어났다. 나반이 만나 결혼한 여성은 아만이다. 곧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결혼하였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아이사타 (아사달)이었다.
배달국, 단군조선 이래 한민족의 고유신앙에서 인류 최초의 아버지 ‘나반’을 사당에다 모셔왔던 것이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나반을 모시는 사당은 대웅전 뒤뜰로 쫓겨나, 독성각으로 불리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천태각> <천태각 안의 나반존자>
우리나라 나반존자 신앙이 가장 유명한 곳은 청도 운문사 사리암 천태각이다. 조선 헌종 11년(1845년)에 신파대사가 초창하여 나반존자상을 봉안한 뒤 영험이 있어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첫댓글 좋은 글 대단히 감사 합니다.
나반 존자에 대하여 많이 이해 했습니다.
공부 잘 하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뜻이군요..또 한가지 공부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안심정사 가기 이전까지 청도 운문사 사리암을 기도처로 삼고
열심히 기도 정진 했던 기도처 였습니다,,
운문사 사림암은 새벽기도(새벽3시)와 조상천도가 아주 웅장하면서도,좋은운을 받을수 있는 시간이지요,
법안스님께서도 조상천도제를 아주 중요시 하시지만
운문사 사리암에서도 매일 새벽 조상 천도 시간이 있어
많은 불자님들께서 참배하러 오시는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좋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_()()()_
감사합니다...
공부하고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