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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답글이 안되는구만요...
[출처]
오케이마운틴
부산경남산사람들 카페
조은산님의 자료를 옮겨왔습니다....
호미지맥 5구간
2006.06.25 (일)
산길 : 세계원재~조항산~희날재~금오산~공개산~우물재산~고금산~호미곶 (도상거리 24.6km)
사람 : 이흥섭, 장산, 제이제이, 조은산
시간 : 06:10~13:20 (7시간10분)
세계원재~(3.2)~조항산~(3.1)~희날재~(3.1)~금오산~(4.2)~공개산~(4.8)~우물재산~(4.4)~고금산~(1.8)~호미곶 (24.6km)
(시간표)
06:10 세계원재
06:28 통점마을
07:06 △228.9(불국사419)
07:25 조항산
08:13 희날재
09:09 금오산
10:17 공개산 안부
11:22 ×189봉
11:57 180.6m (△대보301)
13:01 구만리
13:20 호미곶
6/24
주전맴바 둘에 찬조출연 맴바가 둘 붙어 넷이 올라간다.
이미 호미를 마친 장산과 제이제이. 지리산쪽에 비가 온다는 삐리한 예보 영향도 있지만 퐝다리 중교님을 만나러 간다는 감언이설에 꼬였다만 두 사람 다 평소 사모하던 님을 만나러 간다는데야 마다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반가운 표정이다.
중교님 집으로 모셔졌다. 조망조은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소담스런 집이다. 아래채 사랑방 상석에는 두툼한 보료가 깔려있는데 사각팔걸이에 팔을 걸쳐 좌정하고 보니 산만디에서 흔히 보아 온 통정대부나 가선대부쯤 된 기분이다. 가게에서 시작한 전주에 이미 얼큰해진 상태인데 사랑방 식탁에는 사람 수 만큼의 참초병이 기다리고 있다.
........
모두들 잠든 새벽에 빠져나와 오천읍내 해장국집에서 콩나물국으로 아침을 떼우고, 도시락통 채워넣고 세계원재로 올라선다.
6/25
세계원재 (世界阮) 122m
포항 동해면과 장기면의 경계. 버스정류장 명칭은 정천(井泉)이다. 오일뱅크 주유소 여불딱에 차를 대놓고, 맞은편 담배집 옆길로 들어간다. 몇집 지나자 길 양쪽은 밭인데 일손 바쁜 아낙은 벌써 밭에 나와 앉았다가 낯선 길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첫집 개의 신호에 따라 온 동네 개라는 개는 다 짖어댄다. 당황한 발길을 더 바삐 움직여 마을을 벗어날 무렵 급기야 소까지 짖어댄다. “우움 머~!”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뭐 한다더니 영판 그 짝일세. 이 꼭두새벽에 소까지 짖을(?) 일이 뭐 있노 말이다. 덩치 값도 못하는 우공(牛公)이다.
구름이 두텁게 깔렸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는 출발 전부터 나왔었는데, 제발 오더라도 느지막히 와주면 좋겠다. 해가 안나오는걸 다행으로 여기며, 조망은 접어야겠다.
시멘트길 따라 마을을 빠져나간다. 왼쪽 능선이 마루금이다
내리막으로 변할 즈음 우측 솔밭으로 들어서 잠깐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아스팔트길로 내려선다. 진주강씨 앞에서 아스팔트 도로로 내려 몇 발 안가 다시 우측 고추밭 임도로 들어서고 정면 납골묘 앞에서 임도는 우측으로 급하게 꺾인다. 임도따라 돈다.
06:28 통점마을
[허가네 야생고라니농장] 간판을 지나 다시 마을길로 들어선다. 통점마을이다. 수풀이 뒤덮은 수레길을 잠시 지나는데 신발이 금새 다 젖는다. 다시 갈라지는 임도에서 한번 더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진다. 통점마을을 외곽으로 감아도는 길이다. 남동방향이 된다
06:40 우측임도 합류
수레길을 따르다가 우측에서 올라온 넓은 임도에 합류하는데 노면에 탱크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패여져 엉망진창이다. 진창을 피해 갓길을 따라 100여m 나가면 탱크 길은 우측으로 돌아가고 지맥은 좌측 산길로 들게된다. 수레길인데 들머리마다 <최중교의 산길> 리본이 가이드한다.
07:00 오늘 만난 첫봉 쯤 되나. 해발 160 밖에 안되는 봉우리다만 이마에 땀이 배어나온다. 왼쪽으로 급하게 꺾이며 내리막이다. 유인김해김씨를 지나고 해발이 200이 넘어간다. 올라서면 T자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리본이 달렸다, 좌측으로 묘가 여러기 자리하고 있는데 숲이 헐빈하다. 앞서간 제이제이가 배낭을 내려놓고 있다. 바로 우측이 △228.9봉(불국사419)이다. 저 봉을 넘어가면 퐝다리 (최중교님) 집으로 바로 떨어지겠다.
다시 배낭을 매고 잠깐 올라서니 앞이 트이면서 시멘트길이 나온다. 앞 쪽으로 조항산이 보이는 장면이라는데 보이는건 허연 안개뿐이다. 내려서면 좌측에서 올라온 임도와 만나는데 광산에서 올라온 길이다.
(이렇게 조항산이 보여야 되는데...)
07:18 능선을 따르는데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면서 아래는 어마어마한 절개지다. 금광석산인 모양이라. 여기서는 또 포항 앞바다, 영일만이 다 보인다는데... 안부로 내려서면 장기면의 경계는 우측으로 돌아가고, 온전히 동해면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영일만이 보인단다...)
광산 절개지 급사면에 파란 풀이 나는걸 보니 다 파묵었는지, 더 이상 깎아묵을 폼은 아닌거 같다. 임도를 따라 곧장 가면 중계소 시설물을 만난다. [↑조항산 ↓금광 →장기] 이정표 앞으로 연이은 건물들은 모두 방송국 건물이다.
07:25 조항산 (鳥項山)
스텐으로 만든 [조항산 정상 204M] 표지판은 방송국 건물에 밀려나 정위치가 아닌 길가에 서 있다. 조항산 정상은 어딘가? 지형도를 보면, 좌측으로 앉은 방송국중계소 영역 내 인거 같기도 하다.
임도는 한국공항공사 정문 앞에서 막다른다. 좌우로 둘러친 철조망. 우측으로도 간다는데 우리는 좌측으로 간다. 왼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돌다가 철조망이 끝날 무렵, 안쪽에 헬기장을 만드는지 넓게 축대를 쌓은게 보인다. 리본이 안내 하는대로 왼쪽으로 숲을 헤치고 내려간다. 길은 없다. 나침반을 보고 정북으로 내려간다. 잘 살피면 드문드문 리본이 눈에 띈다. 북쪽을 향해 가능한 왼쪽으로 붙어야 지맥마루금이다.
07:40 노랑색 표지목
안부로 내려서니 희미한 길이 보이고, 노랑색 말뚝이 하나 꽂혀있는데 매직으로 ‘형남기맥. 솟대산행...’ 적혀있다. 이 표지목 역시 퐝다리 작품이다. 건너편에 올라서고 다시 좌측으로 틀어 내려간다. 우산나물이 지천인 가운데 까치수영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07:51 경주김씨 묘터 (190m)
공항공사 철조망에서부터 계속 잡목덤불을 헤쳐야 된다. 겨우 주위가 헐빈한 묘터에서 한숨 돌린다. 동쪽 숲 사이로 ‘동양산업’이라 써논 공장 싸이로가 보인다. 다시 묘 뒤쪽으로 뚫고 오르면 ×202봉이고,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는데 역시 길은 보이지 않는다. 넷이서 흩어져 길을 찾았지만 조금 더 긁히고 덜 긁힌 차이만 있을 뿐 길은 없다.
묵은 오솔길이 나오더니 안부에는 집이 한 채 있다. 건축 자재가 여기저기 쌓여있는걸 보니 소위 말하는 함바집인 모양이다.
일제시대 때 토목공사장이나 광산등지에서 노동자들이 숙식을 하도록 임시로 지은 건물을 함바라고 불렀다. 본래 일본말 はんば(한바, 飯場)에서 온 말로 ‘밥을 먹는 장소’를 뜻하는데, 지금도 공사현장 인부들의 식당을 칭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아예 공사장을 따라 다니며 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되돌아보면 함바집 지붕 위로 호빵같이 봉긋한 봉우리가 보인다. 저넘 넘는다고 넷이서 씨껍잔치를 했다. 임도따라 둔덕을 살짝 넘으면 우측 아래로 아까 묘에서 보이던 동양산업(백토공장) 앞을 지나 희날재 도로로 내려간다
08:13 희날재
31번 국도 포항에서 구룡포로 가는 4차선 아스팔트길이다. 다행히 육교가 설치되어 있어 어디처럼 목숨 걸일 없이 안전하게 건너간다. 육교를 건너가면 동산공원묘원 입구다. 지형도(25)에는 한참 위쪽에 白日嶺이라 표기가 되어 있는데 조은 우리말 놔두고 꼭 유식한 티를 내야하는지 모르겠다.
희날재 전설
동해면 약전리와 상정리 사이에 희날재라는 작은 고개가 있다.
신라 어느 왕이 이곳을 돌아보다가 봉상현(장기현의 옛 이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태양이 빛을 잃고 밤과 같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놀란 왕이 일관(日官)을 불러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일관이 왕에게 말하기를 왕의 몸으로 경솔하게 나다니면서 오랫동안 궁을 비워 두었기 때문에 하늘이 크게 노하여 빛을 거두어 간 거라고 했다. 왕은 크게 뉘우치고 환궁을 서둘게 되었다. 어둠 속으로 막 고개를 넘자 태양이 다시 빛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밝은 날이 되었다는 뜻의 흰날재, 희날재, 히나리재 등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자료 : 영일군사)
08:20 동산공원묘지 입구
다 진행하고 돌아보니 여기서부터 12시까지 3시간40분을 임도를 걸었다. 두세군데 좌우로 오르내리긴 했지만 잠깐씩일 뿐, 줄창나게, ‘발바닥 아푸게’ 걸어야된다. 날씨 조은날엔 조망이나 좋겠지만 그것도 한여름엔 땡볕이라.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지루하게 걷고 또 걸었다.
진입로로 올라서면 화장실과 쉼터도 있고 물도 얻어 담을 수 있다. (재)동산공원묘원 간판을 지나고 파평윤씨, 월성손씨, 무슨무슨家 많기도 하다. 그러니 공원이지. 멀리 보이는건 없고 길가에 드물게 핀 노란 원추리. 원추리는 높은데만 사는줄 알았더만 낮은동네에도 사네? 빨간색 나리는 하늘나리, 개망초, 술패랭이, 꿀풀... 야생화 이름 맞추기 시합을 한다. 얼쑤~! 코스모스도 피었다.
09:09 금오산 (金鰲山 230.4m △불국사425)
멀리서도 보이던 망루형 산불초소가 있는 봉우리다. 자라 오(鰲)자를 쓴 금오산이다. 임도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있는데 지루한 임도를 부담없이(?) 버리고 산길로 오른다. 망루형이라 위로 올라설 수도 있는데 온통 구름이라 올라선들 뭐가 보이겠노. 삼각점만 찍고 내려간다. (맑은 날은 사방+팔방=12방, 토함산~운제산~영일만~구룡포 앞바다까지 훤하단다)
뒤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영 희미한데 참옻, 개옻... 옻나무 천지다. 옻 잘타는 사람은 되돌아 내려가는게 낫겠다. 다시 임도로 떨어지고 계속해서 시멘트와 비포장이 반복되는 임도가 이어진다.
09:45 임도갈림길 (×193봉 안부)
남쪽 상정리에서 올라온 임도와 만난다. [대보강사13.4km 동해상정 /동해중흥] [진불사] 이정표가 각각 있는데 동해상정은 동해면 상정리, 중흥리, 강사는 대보면 강사리(里)를 말한다. 우측 임도로 들어서면 방향이 북동이 된다. 대보강사 방향이 호미곶이다. 이제부터 마루금 우측은 구룡포읍이 된다.
임도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구불구불 휘돌며 잔자갈과 시멘트포장이 반복되는데 흥섭형님은 조금이라도 봉긋해 보이면 어김없이 올라간다. 언젠가부터 작은 번호판이 0번부터 5~10m 간격으로 길따라 이어진다.
10:12 ×212봉 우측아래 [42] [영일기업 마라톤 5km지점]
42번 직전에 임도는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데 정면으로 산으로 들어가는 작은 수레길이 보인다만 무시하고 임도를 따라도니 전방으로 봉긋한 주위와 구별되는 봉우리가 보인다. 공개산이다. 마루금과 도로가 만나는 여기쯤이 지형도상 윷판재로 보인다.
10:17 공개산 안부 (孔開山 △213.8m)
앞서간 제이제이와 장산이 기다린다. 말은 안하지만 ‘공개산 올라갔다 오슈~!’ 하는 폼이다.
“하이고~ 노 땡큐 올씨다~!” 맞장구 치고 퍼질러 앉는다. 공개산 들머리로 보이는 소나무 뒤편 무덤 너머로 보이는 수풀도 만만찮아 뵌다. 마루금 찾아나선 흥섭형님을 기다리는 동안 제이제이의 가방에선 얼음이 사각사각 거리는 두유샤베트가 나온다.
10:48 ×208봉 안부
임도 갈림길이다. [대보강사9.8km 동해상정 →구룡포말봉제] 우측 길은 포장, 좌측은 비포장인데 우측 방향은 이정표를 보면 구룡포로 가는 길이다. 당연히 좌측 ‘대보강사’로 간다. 도로 왼쪽 비탈에 머리를 풀어헤친 술패랭이가 모두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원래 미인은 피곤한 법이라~.
임도 우측으로 난대없는 대나무 행렬이 나온다. 일부는 누렇게 시들었는데 보아하니 자연산이 아니다. 엉성한 대나무 너머로 절개지가 보인다. 산을 깎아 묵을라니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라, 대나무로 위장을 해 놓은거다.
11:10 진작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멎을 기미가 없어 배낭커버를 씌운다. 가랑비에 배낭안에 물들어 올라. 차단기가 들려있는 임도 갈림길이 나오는데 모두 4거리가 된다.
임도 사거리 [대보강사8.1km ←동해흥환 →구룡포삼정] 이정표 뒤쪽에 찦차 한대가 서 있다. 여기로는 차량통행이 되는 모양이라. 역시 대보강사쪽으로 진행한다. 하얀 백토가 깔린 길은 더 넓어져 왕복교행도 되겠다. 길따라 전봇대가 이어진다. 고개하나 넘어서니 망루형의 산불초소가 보인다
11:44 우물재산
다시 임도차단기가 설치된 갈림길을 지난다. [대보강사5.4km ←동해발산] 산악자전거 탄 무리가 지나간다. 희날재부터 이어진 이 임도는 중교님 말마따나 “쪼침바리 코스”다. 번역을 하면 ‘달리기하기 좋을만한 길’의 퐝지방 포준말이 되겠다. 5분 후 임도와 갈라선다. 지형도를 보면 이 근방에 ‘우물재산’으로 인쇄가 되어 있는데... 구름이 깔려 있기도 하고, 어느봉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11:50 임도이별
08:20에 동산공원묘지 진입로를 들어서고 여기까지 장장 3시간반을 임도로 온 셈이다. 계속 뻗어가는 임도를 벗어나 좌측 수레길로 올라간다. 묵은 수레길이라 수풀이 장딴지를 스친다. 당연히 신발과 바지가랭이가 젖어든다. 장산과 제이제이는 아랫도리를 비옷으로 갈아입는다. 부산사 교복이 된 몽베루표다.
11:57 180.6m (△대보301)
수레길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는 길은 뚜렷하고 좋은데 삼각점 지나고는 길이 없다. 소나무 사이로 수구리며 겨우 통과해 다시 임도로 떨어진다. 12:00가 넘으며 비가 본격적으로 내린다
잡풀로 덮힌 묵은 수레길을 따르는데 완전한 수중전으로 들어간다. 이미 서너시간 전부터 가랑비를 맞은 몸이라 새삼스레 비옷 입을 일도 없다. ‘기왕 베린 몸, 좀 더 베린들 어쩌랴’
조망은 없으나 GPS 모니터에 대보저수지가 시작될 무렵(×153봉)부터 저수지 영역을 다 지날 때까지 30분간 없는 길 숲속에서 그야말로 난리부르수다. 문득 시멘트 포장길이 잠깐 나오더니 이내 끊기고 다시 숲속이다 잡목 덤불속을 헤맨다.
내리막길에 묘하나 만나고 숲이 없는 묘터로 들어서지만 아래쪽으로 길이 안보인다. 둘러보니 묘 우측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묘 아래쪽에 달린 리본(수정숯불)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그놈을 제거하느라 가시구디로 들어간 장산. 바지까지 째묵는다. 에고~ 아까바라...
극과 극이다. 그 널널하던 임도는 고사하고, 삐댄 흔적이라도 있어야 따라갈꺼 아이가. 비까지 쫄딱맞은 생쥐꼴로 숲속에서 난리를 치고 있으니, 호미 막판에 예상못한 강적을 만났다.
12:50 고금산 갈림길
앞서가던 제이제이가 문득 정면을 가리킨다. 리본은 다 우측 아래로 달렸구마는. 아하~, 여기가 고금산 갈림길이구나. “행님, 고금산 댕겨오셔야쥬~?”
하이고~, 가봤자 넘지도 못하는 고금산(120m)엘, 군부대 정문까지 댕겨오시라고라~?
우측 아래로 리본따라 내려간다. 길은 도랑처럼 파여있다. 계곡 물길까지 넘어 옆 능선으로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니 지뢰경고문이 있고 원형철조망에 ‘과거지뢰지대’ 팻말이 이어진다.
13:00 앞이 훤하게 트이면서 마을로 들어간다. 풍력발전기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이제 호미의 맥이 끝을 내는 장면이다. 마을길 따라 내려오면 929번 도로로 나간다. [↑구룡포 감포 ←호미곶해맞이광장, 등대박물관] 이정표가 가리키는대로 들어간 넓은 광장에는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구만리(大甫面 九萬里)
마을이름치고 참으로 의미있는 이름이다. 호랑이 꼬리, 더 이상은 갈데도 없는 곳.
흔히 구중궁궐, 구천, 구만에서 쓰이는 구字는 아홉을 뜻하는게 아니라 숫자의 끝, 무한대의 의미가 있다.
그 호미의 끝에 구만리가 자리잡았다.
(최중교님이 거들기를...)
옛날 옛적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에~
집나간 마누라를 찾아, 호미곶까지 갔다는 소리를 듣고, 구만리 앞 마을까지 온 어떤 아저씨가 마을사람에게 묻기를~
"호미곶은 얼마나 더 가야 되능교?"
"구만리만 가모 되지예~"
이 소리를 들은 아저씨,
마누라 찾아 몇달간 죽을 고생 다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구만리를 더 가야된다는 소리에
낙담하여 물에 빠져 죽었다나 우쨌다나...
13:20 호미곶 상생의손
해맞이 광장에는 왼손이, 오른손은 물속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바닷물 오른손이 있는데까지 가야 비로소 호미를 마치는 것이라며 바람을 잡는다만, 꺼머튀튀한 물을 보니 담그고 싶은 생각이 동하지 않는다.
호미곶의 자료는 최중교님의 산행기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호미곶의 전설~? ☆ --한번 일거 보셔유~!
①1894년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은 상해에서 자객 홍종우에게 살해된 뒤 능지처참되어 전국 각지에 효시되었다. 그때 토막난 시신 중 왼팔이 버려진 곳이 바로 이곳 호미곶 앞바다였던 것이다.
동해로 튀어나온 호미곶의 지세가 역모의 기운을 담고 있어 그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곳 호미곶 광장에는 2개의 커다란 조형물 '상생의 손'이 햇살을 움켜잡으려는 듯 마주보고 있다' 사람의 양 손을 바다와 육지에 각각 설치하여 상생과 화합을 상징한 청동조각이다.
다행인지 바다에 세워진 것은 오른손이고, 왼손은 반대편 뭍 위에 세워져 있었다.
②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면서 울진 죽변곶과 이곳 가운데 어디가 더 튀어나왔는지 가늠하기 위해 일곱 차례나 드나들었다는 곳, 다산 정약용이 기나긴 유배생활을 시작했던 곳도 이곳 호미등이었다. (여행작가,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이규섭님의 글 中..)
포항시(http://www.ipohang.org)에 가보면 호미곶에 자료는 물론이고, 호미곶 실시간 화면이 돌아간다. 그러고 보니, 우리 졸업식 실황도 저 카메라로 세계 각처에 중계가 되었다는 얘긴가...!
비를 맞다보니 아직 점심도 못 먹은터라, 밥먹을 자리를 이리저리 찾고 있는데 중교님이 벌써 다 왔단다. 근무중임에도 짬을 내어 이 몸들 택배에, 씻겨, 멕이고... 일일이 표현하는게 오히려 님의 베푸심에 누가될꺼 같다. 그야말로 호미의 끝에서 호사를 누린다.
기왕 문땐 김에 이보다 더 호화롭게 마칠 “호화지맥”도 해버려~?
호화지맥(최중교님 작명)
호미곶에서 토함산 아래 토함산목장에서 치술령이 아닌 남쪽 삼태봉으로 달려 문수산을 거쳐 울산 화암추등대까지 잇는, 호미곶에서 화암추까지. 줄여서 호화지맥이다.
차 |
구 간 |
거리(km) |
시간 |
1 |
(5/13) 소호리~백운산분기점~천마산~미호고개 |
10.40 |
07:20 |
2 |
(5/21) 미호고개~치술령~사일고개 |
16.10 |
07:15 |
3 |
(5/28) 사일고개~원고개~토함산~추령 |
21.40 |
09:20 |
4 |
(6/18) 추령~함월산~성황재~만리성재~세계원재 |
25.70 |
10:00 |
5 |
(6/25) 세계원재~희날재~고금산~호미곶 |
24.60 |
07:10 |
|
계 |
98.2k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