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소재로 하여 수묵 위주로 그려진 묵매, 묵란, 묵국, 묵죽 등을 합쳐서 四君子라 부른다.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수많은 식물들 중에서도 매화는 설한풍 속에서 맑은 향기와 함께 봄을 제일 먼저 알리며 피고, 난초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고, 국화는 늦가을 찬서리를 맞으면서 깨끗한 꽃을 피우고,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는 등, 그 생태적 특성이 모두 고결한 군자의 인품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옛부터 동양인들은 덕성과 지성을 겸비한 최고의 인격자를 가리켜 군자라 불렀다. 이러한 군자적 성품은 누구나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찬미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당시의 知的 엘리트였던 문인 사대부들은 실현해야 할 인생의 궁극적 지표로 설정하고 적극 추천했었다.
사군자 그림은 바로 이러한 문인사대부들의 삶을 확충, 고양시키고 그 마음의 뜻을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문인사대부들은 사군자를 사시사철 그리고 감상하면서 윤리적 규범을 함양하고 성정을 바르게 순화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나타내고자 하는 등, 사군자 그림을 자기 계발과 자기 표현의 긴요한 수단으로 애호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사군자 그림은 지식층을 중심으로 갖추어야 할 예술적 교양의 하나로 여겨지면서 시문, 서예와 함께 일상 생활화되었으며, 이러한 풍조는 시대가 내려올수록 더욱 확산되었다.
옛부터 군자에 대한 인식은 그 신분성보다는 고매한 품성에 의한 인격적 가치로서 존경되었기 때문에 사군자를 그릴 때도 대상물의 외형보다 그 자연적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 더 중시되었다. 그래서 문인사대부들은 사군자의 형상 너머에 있는 정신과 뜻을 마음으로 터득하여 마치 시를 짓는 기분으로 추상적인 구도와 모든 색을 함유하고 있다는 수묵의 표현적인 붓놀림을 통해 진솔하게 그리는 경지를 높게 여겼다. 다시 말해서 사군자 그림은 외형의 단순한 재현이나 형식의 답습이 아니라 대상무이 자라고 성장하는 자연의 이치와 조화의 정신을 깊이 생각하면서 느껴진 자신의 감정과 마음의 정서와 뜻을 표출, 즉 寫意性을 통해 가치가 추구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군자 그림은 동양화와 수묵화의 중심사상과 핵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寫意畵의 정수이면서 동양회화의 대종을 이루었던 문인화의 대표적 화목으로서 크게 성행했으며, 마음을 수양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매체로서 널리 다루어졌다. 이는 곧 사군자가 그림뿐 아니라 동양의 문화와 정신의 본질적 가치와 의의를 집약시킨 하나의 표상으로서 전개되어 왔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군자는 일반적으로 매,난,국,죽의 순서로 소개되는데, 이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에 맞추어 배열된 것이다. 그러나 기법의 습득단계는 전통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난초에서부터 시작하여 대나무, 매화, 국화의 순서로 진행된다.
■매(梅)
매화는 추위를 이기고 눈 속에서 피는 강인하면서도 고귀한 운치를 그 특성으로 한다.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도 풍기는 매화의 향기는 맑고 깨끗한 인품으로, 눈 속에서도 아름다운 자태는 봄을 알려주는 선구자적인 뜻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반드시 늦겨울 이른봄의 추위속에 피는 강건한 특성은 훌륭한 덕성을 지닌 군자의 강인한 절개와 지조 및 세속을 초월한 은일로 상징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매화를 가리켜 雪中君子, 淸香, 玉骨, 花御史, 淸客, 世外佳人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매화가 재배되고 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매우 오래 전부터였으나 수묵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북송 때였으며 창시자는 선승인 仲仁이었다. 그는 호남성 華光寺의 주지로 문인사대부였던 蘇東坡, 黃庭 등과 교유하면서 매화를 사랑하고 이에 대한 시를 읊고 지내다가 우연히 창문으로 매화나무의 성근 그림자가 빗겨드는 것을 보고 그 소쇄한 맛이 너무 좋아 붓으로 그 형태를 따라 그리다가 墨梅三味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발생된 묵매화는 같은 禪僧인 妙高에 의해 이론적 체계화가 시도되었으며, 南宋 때에는 꽃잎의 윤곽을 그리는 圈法이 완성되기도 하였다. 묵매의 이러한 전통은 원대에 와서 王, 吳太素 등에 의해 크게 성행되었으며 구도에서 북방식인 形式보다 남방식인 貫式이 더 유행하였다. 명대부터는 화보 등의 출현으로 다소 형식화되었지만 청대에 이르러 金農등의 개성파 화가들에 의해 보다 담채가 많이 곁들어진 화사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매화는 묵죽과 함께 고려 중기부터 그려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각 시기마다 구도와 기법을 달리하면서 독특한 양식으로 전개되었다. 조선 초, 중기에는 선비들의 기상과 밀착되어 고담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후기에는 문인화의 담백한 분위기가 강조되다가 말기에 이르러 趙熙龍 등에 의해 봄의 화사한 계절적 정취와 함께 보다 회화성을 짙게 나타내었다.
난초를 곡선미, 대나무를 직선미로 본다면 매화는 굴곡미에서 그 조형적 특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매화를 그리는 데는 전통적으로 다섯 가지의 필수적인 방법(五法)이 있다. 뿌리는 서로 얽혀야 하고 대목은 괴이해야 하고 가지는 말쑥해야 하며 줄기는 강건하고 꽃은 기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36가지의 병(三十六病)이 있다 하여 한 가지라도 잘못 그리면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기본수련의 중요성과 함께 매화 역시 높은 경지에 들기가 어렵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으로 문제는 형식의 충실한 모방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자신의 감성과 뜻을 얼마만큼 구현시킬 수 있는가에 참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필법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세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매화의 품종으로는 白梅, 紅梅, 朱梅, 時梅, 綠梅, 千葉梅, 九英梅 등이 있다. 그리고 많이 다루어졌던 화제로는 月梅, 雪中梅, 老梅, 羅浮梅, 西湖梅, 庭梅, 梅, 夜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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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난초는 옛부터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고고하게 향기를 품고 있는 모습이 세속의 이욕과 공명에 초연하였던 고결한 선비의 마음과 같다고 하여 '幽谷佳人', '幽人' 또는 '香組', '君子香' 등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정절과 충성심의 상징으로 찬미되기도 하였다.
난초의 상징성은 楚나라의 시인이며 충신이었던 屈原이 난의 고결한 자태를 거울로 삼았다고 읊었듯이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되었다. 그러나 난초가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北宋때부터였으며, 처음에는 화조화의 일부분으로 그려지다가 米 에 의해 수묵법에 의한 독립된 화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미불은 서예에도 뛰어났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로 그의 난화에 대해 비평가들은 잎이 서로 교차하는데도 혼란치 않고 실로 희대의 奇品이라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같이 화조화의 배경에서 하나의 화제로 독립된 묵란을 보다 사의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鄭思였다. 그는 南宋이 元에 망하자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땅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뿌리가 드러난 露根蘭을 통해 토로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신과 蘭法은 一代宗師로서 후인들의 규범이 되어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원나라 때는 松雪體로 유명한 趙孟 와 雪窓등에 의해 산뜻하고 단아한 모습의 묵란이 유행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조맹부의 부인인 管道昇의 맑고 수려한 난화는 馬守貞, 表表등의 여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 이들을 '閨秀傳神派'라 부르기도 한다.
문인화가 널리 보편화되었던 明代에 와서 묵란은 더욱 크게 성행하였고, 이러한 전통이 靑代에도 계속 이어져 보다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그 중에서도 石 등의 明朝遺民畵家와 陽州八의 鄭燮 등이 특히 뛰어났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묵란은 고려 말기에 전래되어 조선 초기부터 그려지다 秋史 金正喜에 이르러 대성되었고 그 전통이 근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묵란은 그 은은한 먹향기와 수려한 곡선미와 청초한 분위기를 통해 고결한 이념미가 역대의 뛰어난 문인화가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오면서 사군자 그림과 문인화의 발달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군자 그림을 배울 때 이러한 전통과 상징성을 지닌 묵란을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은 난초의 생김새가 한자의 서체와 닮은 점이 가장 많다는 데 있다. 난엽을 그리는 것을 잎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앞을 삐친다고 하는 것도 글씨에서 삐치는 법을 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정희는, "난초를 치는 법은 隸書를 쓰는 법과 가까워서 반드시 文字香과 書卷氣가 있은 뒤에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이론적으로 서체훈련이 회화기술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말한 바 있다. 이 점은 묵란화가 문인묵객들이 즐겨 찾던 주제의 하나로서 시,서,화에 능한 三絶, 특히 서예에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주로 그려졌던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난초의 종류는 상당히 많지만 묵란화에서는 주로 春蘭과 建蘭을 다룬다. 춘란은 草蘭, 獨頭蘭, 幽蘭이라고도 하는데, 잎의 길이가 각각 달라서 길고 짧으며 한 줄기에 한 송이의 꽃이 피는 것으로 청의 鄭板橋와 조선 말기의 김정희, 대원군 李昰應, 金應元 등이 잘 그렸다.
건란은 雄蘭, 駿河蘭, 란이라고도 했으며, 잎이 넓적하고 뻣뻣하며 곧게 올라가는데 한 줄기에 아홉 송이의 꽃이 핀다. 福建 지방이 명산지인 이 난은 청의 吳昌碩과 조선 말기의 閔泳翊이 특히 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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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菊)
국화는 다른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을 참으며 서리 내리는 늦가을에 그 인내와 지조를 꽃피운다. 만물이 시들고 퇴락해 가는 시절에 홀로 피어나는 이러한 국화의 모습은 현세를 외면하며 사는 품위있는 자의 모습이나 傲霜孤節한 군자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옛부터 국화는 晩餉, 傲霜花, 鮮鮮霜中菊, 佳友, 節華, 金華 등으로 불리면서 정절과 은일의 꽃으로 알려져 왔다. 그리고 국화는 본성이 西方을 좋아하기 때문에 동쪽 울밑에 흔히 심는 것으로 되어 있어 東籬佳色이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특히 晋나라의 유명한 전원시인이며 은사였던 陶淵明(365∼427)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더욱 시인묵객들의 상탄의 대상이 되었다.
국화도 다른 사군자와 마찬가지로 北宋代부터 문인화의 성격을 띠고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묵국만을 전문으로 다룬 화가는 매우 드물었으며 靑末期에 와서 吳昌碩 등에 의해 회화성 강한 彩菊이 많이 그려졌다. 우리 나라에서도 묵국화는 그다지 성행하지 못했고 조선 말기 이후로 오히려 花畵로서 보다 많이 다루어졌다.
국화의 종류도 상당히 많지만 그 중 빛깔에서 黃菊을 으뜸으로 친다. 국화는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보다 다른 초화나 괴석과 함께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국화 전체 모습의 운치는 꽃이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으면서 번잡하지 말아야 하며, 잎은 상하, 좌우, 전후의 것이 서로 덮고 가리면서도 난잡하지 말아야 한다.
국화의 꽃과 꽃술은 덜 핀 것과 활짝 핀 것을 갖추어서 가지 끝이 눕든지 일어나 있든지 하여야 한다. 활짝 핀 것은 가지가 무거우므로 누워있는 것이 어울리고 덜 핀 것은 가지가 가벼울 수밖에 없으므로 끝이 올라가는 것이 제격이다. 그러나 올라간 가지는 지나치게 꼿꼿해서도 안되고 누운 것은 너무 많이 드리워서는 좋지 않다.
국화의 잎의 형태는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파진 곳이 네 군데가 있어서 그리기가 어렵다. 이를 나타내는 데는 反葉法, 正葉法, 捲葉法, 折葉法 등의 네 가지 화법이 있다.
그러나 국화는 늦가을에 피는, 서리에도 오연한 꽃이다. 그러므로 섬세하고 화사한 봄철의 꽃과는 특성이 다르다. 그림이 종이 위에 이루어졌을 때 晩節을 굳게 지켜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국화를 대하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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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竹)
대나무는 옛부터 문인사대부들의 가장 많은 애호를 받으면서 사군자의 으뜸으로 꼽혀 온 것이다. 그것은 대나무의 변함없는 청절한 자태와 그 정취를 지조있는 선비의 묵객들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늘 푸르고 곧고 강인한 줄기를 가진 이러한 대나무는 그래서 충신열사와 열녀의 절개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대나무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으나 수묵화의 기법과 밀착되어 문인사대부들의 화목으로 발달시킨 사람은 북송의 蘇東波와 文同이었다. 소동파는 특히 그리고자 하는 대나무의 본성을 작가의 직관력으로 체득하여 나타낼 것을 주장한 '中成竹論' 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문동은 '湖州竹派'를 형성하여 묵죽화의 성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南宋 때에 이르러 묵죽은 더욱 유행하였고 元代에는 문인사대부들의 저항과 실의의 표현방편으로 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 때 벌써 李에 의해 [竹譜] 7권이 만들어져 화법이 체계적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죽의 생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묵죽화가로서 유명하였다.
元代에는 이 밖에도 조맹부, 吳鎭, 瓚 등의 명가들이 나와 가늘면서 굳센 묵죽화풍을 형성했으며, 이러한 전통이 明代의 夏 (1388∼1470)등을 통해 자연미와 이념미가 융합되면서 청대로 계승되었다.
죽을 그리는 데 묵죽을 기본으로 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으나 묵죽 이전에 寫竹과 채색죽의 방법이 이미 있었음을 기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사죽은 사생에 의한 대나무의 묘사방법이고 채색죽은 윤곽을 선묘로 두르고 안에 칠을 하는, 이른바 彩의 방법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수묵법과 결부됨으로써 비로소 동양회화의 중심적 창작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氣韻과 정신의 주관적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墨이란 선으로서 작용할 뿐 아니라 색채를 대신한 면으로서도 작용한다. 文同이나 蘇東波에 의해 처음 시도된 묵죽은 바로 대상물의 외형적 사생을 떠난 傳神의 실천적 방법으로 죽을 그린 것이 되며, 이 때의 묵은 현상세계 너머의 조화력을 암시하는 것으로 묵선이나 목면 모두 그 기운을 담는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묵죽과 동양회화가 지니고 있는 사의정신은 이러한 창작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묵죽도 묵란과 마찬가지로 서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찬은 서법 없는 묵죽은 병든 대나무를 보는 것 같다고 했으며, 明代의 王 은 서법과 죽법은 동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묵란이 짧고 긴 곡선의 반전 등을 통해 풍부한 변화를 보이는 데 비해 묵죽은 직선이 위주이며 그 구도에서도 보다 다양한 것이 특색이다.
묵죽을 그리는 데도 절차와 방법이 있는데, 줄기(幹)와 마디(節), 가지(枝)와 잎(葉)마다 그리는 순서가 있다. 먼저 죽간을 그리고 다음에 가지를, 이어서 방향과 필법을 변화시켜 잎을, 마지막으로 마디를 그리는 것이 청대 이후 확립된 죽화법이다.
이 순서는 시에서의 起承轉結과 같다. 이러한 붓질의 흐름은 사군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중에서도 죽의 경우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묵죽을 그리는 것이 다른 사군자에 비해 어렵게 여겨지는 것은 대나무의 형태 자체는 단순하지만 일기와 계절적 정취에 따른 변화가 다양하고 미묘하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이러한 기후와 자연적 정경에 따라 晴竹, 仰竹, 露竹, 雨竹, 風竹, 雪竹, 月竹 등의 화제로 다루어졌는데 대가들조차 50년을 그린 후에야 비로소 그 경지가 터득되고 마음에 드는 죽화를 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곧 묵죽의 높은 경지와 깊은 맛을 시사하면서 이러한 사군자그림들이 결코 본격적인 회화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기초 내지는 예비단계의 차원이 아니라 동양 회화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의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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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색을 조절하는 법
수묵화에서 붓으로 선을 긋는 방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먹의 농담을 내는 것이다. 선을 긋는 연습이 어느 정도 되면 붓에 먹을 묻혀 선을 긋는 것과는 정 반대로 측필을 사용하여 붓봉에 여러 가지의 먹색이 나오도록 연습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짙은 먹은 앞을 나타내고 흐린 먹은 뒤를 암시한다. 먹은 단순한 검정색이 아니라 물과 섞어 쓰면 화려한 색깔 못지 않게 그 오묘하고 깊은 맛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먹은 재료가 자연식물, 온갖 색을 태워서 만드는 만큼 먹 속에는 모든 색을 함축하고 있다.
먹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색이 다르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먹색은 중간, 흐린 먹이 투명하고 깊은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먹을 다루는 방법에는 점을 찍어 표현하는 점법과 종이나 천에 물들이는 선염법, 주름을 나타내는 준법, 붓으로 문지르는 찰법이 있고 그밖에 발묵법, 파묵법, 적묵법이 있다.
먹색은 여섯 가지 색을 함축하고 있는데, 흑, 백, 건, 습, 농, 담이다. 흑, 백은 그림이 그려진 모든 먹색과 사물의 크기를 그려지지 않은, 즉 여백을 말하며, 건, 습은 먹물이 번진 데와 메마른 느낌을 말하고, 농, 담은 먹색의 짙고 흐림을 말한다.
이 여섯 가지는 수묵화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요령이고 방법이지만 좋은 그림 속에는 반드시 여섯 가지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이 여섯 가지 색은 서양화의 삼원색과는 차원이 다르며 수묵화의 조형원리인 동시에 철학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예로부터 먹을 황금처럼 아껴 쓰라는 말이 전하듯이 수묵화를 그리는 데 지나치게 짙은 먹을 쓰는 것보다는 중간 정도 흐린 먹을 많이 쓰고, 결정적인 곳에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먹색은 담묵에 생명이 있는 만큼 좋은 먹으로 짙게 갈아 맑은 물을 섞어야 깊고 윤기가 나는 먹색을 얻을 수 있다.
수묵화에서 먹의 농담 사용은 서양화의 기법이 흐리게 시작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짙은 먹으로 시작하여 흐리게 끝을 맺는다.
먹은 물과 종이의 흡수력을 이용하는 "일획", 즉 한 번 그은 것은 처음이자 그림의 완성인 만큼 단숨에 그려야 생기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적묵법이나 선염법의 예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붓에 먹을 묻히는 방법이 짙으면서 흐려지기 때문에 앞에 있는 것을 차츰 흐리게 그린다.
좋은 먹색을 만드는 데는 좋은 먹과 좋은 벼루 그리고 사람이 먹을 성급하게 갈지 말고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갈아야 좋은 먹물을 만들 수 있다. 예로부터 게으른 자가 먹을 잘 간다고 했듯이 오래 갈면 갈수록 먹은 윤기가 있고 짙어진다.
먹은 재료가 나무나 기름을 태워서 만든 그을음, 즉 탄소입자와 아교가 합쳐 만드는 만큼 좋은 먹을 구해서 오래 사용하는 것이 좋다.
먹색은 변화가 있어야 되는 만큼 먹을 짙게 갈고 깨끗한 접시라야 좋은 먹색을 만들 수 있다. 먼저 붓봉이 긴 붓을 맑은 물에 씻은 다음 물통의 가장자리에서 앞으로 지그재그 식으로 붓을 돌리면서 고르게 먹색을 만든다. 이때 물의 양을 조절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붓을 수직으로 세워 물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무난하고 일단 먹색이 고르게 됐다 싶으면 접시의 가장자리에 붓을 훑어 다시 물기를 빼고 붓봉이 흩어지고 쓰러진 것을 똑바르게 정돈한다. 일단 다른 종이에 약간 붓을 눌러보아 물기가 적당한가를 확인하고 그림 그리기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재차 다시 먹색을 만들고자 할 때는 다시 붓을 씻어 처음 사용한 접시를 처음과는 정반대로 앞에서 위로 붓을 지그재그로 올려가면서 먹색을 만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먹색은 짙은 것에서 흐리게 하기 때문에 다시 먹색을 만들면 처음 먹색과 같아지기 때문에 이것을 피하기 위해 한번 만든 먹으로 그림을 대체로 완성한다. 이 방법은 초보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방법이나 수묵화의 먹색은 생명과 같음을 상기해 볼 때 가능하면 한 번 찍어 만든 먹색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접시는 가능한 한 크고 흰색으로 된 사기그릇이 먹색의 변화를 잘 나타내어 준다. 연습을 할 때는 여러 번 먹색을 만들어야 하므로 일일이 접시를 씻는 것보다는 젖은 걸레로 접시를 닦아서 쓰는 것이 편리하다.
담묵만을 쓰고자 할 때는 접시에 물을 떨어뜨린 다음 먹을 섞어 골고루 휘저어 사용한다.
선을 연습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 조절한 먹색으로 여러 개의 면을 만들어 먹물이 번지는 효과와 거칠고 메마르고 짙고 흐린 느낌이 나게 붓에 물기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칠해 나간다. 먹색의 변화는 붓의 물과 먹의 양이 결정지어 주지만, 붓의 속도, 즉 필력에 의해 많이 달라진다. 먹색이 흐리든, 짙든 속도를 일정하게 연습해야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붓은 측필로 사용하는 만큼 선을 그을 때와 마찬가지로 붓끝에 힘을 주어 누르듯이 붓을 종이에 댄다.
먹색은 먹의 질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지만 종이에 따라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여러 종이를 사용해 보고 자기 마음에 맞는 종이와 먹을 택해서 그린다. 경우에 따라서 먹에 아교 물을 약간 섞어 쓰기도 하는데, 초보자인 경우에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교를 섞어 쓰면 먹이 잘 번지고 우연의 효과는 있지만 먹색이 가벼워 보인다.
먹은 벼루에 갈아 이틀정도까지는 쓸 수 있으나 이틀이 지나면 아교가 썩어 냄새가 나므로 쓸 만큼만 갈아 쓰고 오래된 먹은 깨끗이 물로 씻어 버린다. 가장 윤기 있는 먹색을 내려면 그때그때 갈아 쓰고 남은 먹은 못 쓰는 종이나 물로 닦아내어 다음 그림 그릴 때 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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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자세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일은 몸과 마음가짐이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재료가 있다 해도 주위가 산만하거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좋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먼저 도구를 깨끗이 씻고 제자리에 정돈하고 맑은 정신으로 먹을 갈기 시작한다.
보통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방은 하루 종일 일정한 양의 빛이 들어오는 북쪽 방이 무난하다.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수묵화 역시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하는 만큼 조용한 분위기의 방이 좋다. 오후나 저녁 시간보다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맑은 정신과 새 기분으로 차분히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다.
도구는 항상 제자리에 두고 언제든지 그릴 수 있게 수시로 깨끗이 닦고 그림을 그리기에 알맞게 배치해 둔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으로 그리는 것을 감안해서 오른쪽에 벼루, 붓, 물통, 접시 순으로 배열하고 종이는 몸의 정 중앙에 편다.
종이는 바람에 날리거나, 구겨짐을 방지하기 위해 문진으로 눌러 준다. 그림을 그리는 자세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책상위에 종이를 펴서 선 자세로 그리는 방법과 의자에 앉아서 그리는 방법, 그리고 방바닥에 앉아서 그리는 방법이다.
1. 서서 그리는 방법
서서 그림을 그릴 때에는 똑바로 선 자세에서 왼발을 오른발보다 조금 앞으로 나가게 하여 몸의 균형을 잡는다.
두 발을 나란히 하는 것이 몸의 균형이 잘 잡히는 것 같지만 쉽게 피로가 오기 때문에 좋지 못하다.
책상과 몸의 거리는 주먹하나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띄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책상위에 짚어 몸의 균형을 잡아준다.
그림은 앉거나 서서 그리는 신체의 조건을 고려해서 알맞은 높이의 책상과 의자를 택하는 것이 좋다.
키가 큰 사람이 낮은 책상에서 그림을 그리면 쉽게 요통이 오고 반대로 너무 높으면 팔이 종이 끝까지 못 미치기 때문이다. 책상의 높이는 75cm를 전후한 것이 좋고 의자는 움푹 가라앉는 것보다는 나무의자처럼 좀 딱딱한 것이 좋다.
2. 앉아서 그리는 방법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릴 때에는 가슴을 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기마 자세로 앉는다. 발은 서서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왼발을 조금 앞으로 내민다. 왼손은 몸의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책상 가장자리에 깍지를 낀다.
오랜 시간 동안 서거나 앉아서 그림을 그리면 허리나 어깨에 통증이 오기 때문에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3. 방바닥에 앉아서 그리는 방법
책상 위에서 그릴 수 없는 큰 그림을 그릴 때 그리는 방법으로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왼손으로 방바닥을 짚어 엎드린 자세로 그리는 방법과 가부좌 자세로 앉은 다음 오른발을 가슴에 품은 자세로 왼팔을 바닥에 짚고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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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쥐는 자세
수묵화를 그릴 때 붓을 쥐는 요령은 서예에서 붓을 잡는 방법과 같으나 세예는 단순한 선을 긋는 것이지만 그림은 좀 복잡한 것이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팔의 자세에서 서예는 팔꿈치를 책상위에 대고 쓰기도 하고 왼손등에 오른팔을 얹어 쓰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에는 팔꿈치를 들고 팔 전체를 움직여야 한다.
붓 쥐는 요령은 서예에서는 붓의 중심이나 조금 밑을 잡지만 그림을 그릴 때에는 붓대의 중심보다 위를 잡는다. 왜냐하면 붓의 중심보다 밑을 잡으면 손등에 종이가 가려져서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붓을 가능하면 중심보다 올려 잡는다.
붓을 잡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붓을 쥐고 가운뎃손가락과, 약지, 새끼손가락으로 붓대를 받치는 '단구법'이 있고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으로 붓대를 잡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받치는 '쌍구법'이 있다. 이 두 방법 모두 글씨나 그림을 그리기에 알맞은 방법으로 큰 그림을 그릴 때는 후자의 방법이 적합하고 작은 그림을 그릴 때는 전자의 방법이 좋다.
붓은 손가락 마디 사이에 쥐는 것보다는 손끝을 붓대에 가지런히 대는 것이 좋고 손바닥은 계란 한 개 정도 들어갈 만큼 공간을 남긴다. 공간이 좁은 것은 너무 손가락에 힘을 많이 준 것으로 손이 부자연스러워 힘찬 선을 그을 수 없다. 손끝으로 붓을 쥐면 그 만큼 손바닥 공간이 넓어지고 힘이 덜 가기 때문에 좋은 선을 그을 수 있어, 이 방법을 많이 쓴다.
붓은 붓봉(털)이 팽이 모양과 같아서 중심이 항상 모여 있어야 좋은 선과 획을 그을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든지 붓을 움직일 수 있는 원리가 된다.
선을 그을 때에는 붓끝(심)이 정중앙으로 지나가게 붓을 수직으로 잡고 붓에 있는 모든 털이 화선지 위에 내리 꽂히듯이 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팽이가 잘 돌아가게 채찍으로 때리면 어느 방향으로든지 갈 수 있는 구심점이 있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이러한 방법을 '중봉'이라 하고 모든 서예의 선과 획을 긋는 원리이다.
선을 긋는 요령은 처음에 한일(一)자로 시작하여 세로, 사선, 동그라미를 그어 직선과 곡선 획을 차음 익혀간다. 처음부터 한 획을 단숨에 긋지 말고 두세 번 정도 머물 듯이 선을 그어간다. 붓은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만큼 먹물을 묻혀 선을 그으면 붓털이 쓰러지기 때문에 쓰러진 붓을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다.
중봉을 만드는 요령은 붓끝의 날카로움을 감추기 위해서 긋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조금 그은 다음 붓을 멈추어 세운 다음 원하는 방향으로 붓을 움직인다. 붓끝의 방향을 바꿀 때 주의할 점은 긋고자 하는 선의 굵기를 결정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붓끝과 손의 힘을 조절해야 한다.
붓이 머물고 선이 끝나는 곳에서는 붓끝에 힘을 주어 붓을 세운 다음 붓을 뗀다. 이러한 동작을 '회봉'이라 하는데 다시 벼루에 먹을 묻히고 붓봉을 세울 필요가 없이 바로 다음 선을 그을 수 있는 요령이다.
맑은 물로 붓을 씻고 붓끝에 짙은 먹을 묻혀 적당히 물기를 뺀 다음 먹물이 말라서 갈필이 나올 때까지 여러 선을 긋는 연습을 반복한다. 이렇게 해야만이 붓에 물의 양과 종이에서 번지는 감각을 익힐 수 있고, 한 번 적신 먹물로 다양한 먹선의 변화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붓의 굵기와 털의 길이에 따라 선의 굵기가 달라진다. 붓은 붓촉의 중심까지만 사용하며 붓촉의 길이를 3등분해서 2/3정도만 사용해야 한다. 가는 선을 그을 때에는 붓촉의 물기를 빼어 붓끝을 바르게 하면 큰 붓이라도 얼마든지 가는 선을 쓸 수 있다.
처음 배울 때에는 가능한 측필을 사용하지 말고 중봉으로 선을 긋고, 완전히 중봉선이 된다고 느꼈을 때 측필을 사용해 보는 것이 좋다. 중봉은 선의 느낌이 둥글고 힘이 있어 보이고 단순하지만 측필은 선이 넓어 보이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측필은 잎을 그리거나 바위, 늙은 나무줄기를 그릴 때 사용한다.
붓은 연필을 잡듯이 잡으면 안되지만 연필로 글씨를 쓰듯이 붓의 사용을 너무 법칙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스러운 마음으로 잡고 그려야 그림 또한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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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의 용구
1.종이
▶종이(화선지)
문방사보(우) 중에서 종이는 서.화 용구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재료이다. 종이의 청정무구한 흰 색깔은 수묵과 함께 동양인의 마음과 미의식을 잘 대변해 준다. 종이의 발명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고, 특히 동양에서는 글씨와 그림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구심점이 되었다.
▶종이의 기원
동양(중국)에서 종이의 발명은 동한시대 때 채륜이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역사상 종이의 발명은 역사를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3600∼4000 여 년 전(채륜이 종이를 만든 시기보다 2000여 년이 더 앞선)에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섬유를 원료로 하여 식물내피를 가공하여 종이를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상고시대 때 거북이의 껍질이나 죽간, 목간, 비단 위에 글씨를 쓰고 기록하였으나 서한시대 (BC 206∼224)에 이르러 마포(식물인 마)의 원료로 식물성 섬유종이를 만들어 사용하다가 동한(BC 25∼221)시대에 와서 채륜의 제지법이 나옴에 따라 종이의 제지방법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당.송 시대에 와서 종이 제조기술이 향상되어 품종과 품질이 다양해지고 명대에 이르러 선덕 연간에 '선지'가 제조되기에 이른다. 그 후 청대에는 종이의 종류가 더욱 다양해지고 좋은 질의 종이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때 유입되었고 그후 6세기경 고구려 승 담징이 먹.붓과 함께 일본으로 전하였다.
▶종이의 제조법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원료나, 혼합하는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먼저 깨끗이 다듬은 닥나무의 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다음 백피를 물에 담궈 두었다가, 메밀대나 콩짚대를 태워 만든 재로 잿물을 내어서 삶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예로부터 종이를 만드는 사람은 삶는 과정을 제일로 여겨, 좋은 날을 택하였는데, 그것은 닥이 너무 삶아지거나 덜 삶아져도 좋은 종이를 얻어낼 수 없으며, 한 번 잘못 삶아진 닥은 다시 삶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은 닥을 맑은 물에 여러번 씻어서 잿물기를 제거한 다음, 남아 있는 티를 일일이 골라낸다.
그 다음, 넓적한 돌판위에 올려 놓고 떡메로 쳐서 섬유를 곱세 분쇄킨다. 이러한 과정을 '고해한다'고 한다. 고해된 것을 지통에 넣고 뜨는 것인데 이때 '황촉규(속칭 닥풀)'이라는 식물 뿌리의 즙을 진윤제로 섞는다. 이 닥풀은 날씨가 더워지면 삭아버리는 성질이 있어서 종이는 여름철보다는 서늘하고 건조한 가을이나 겨울철에 뜨는 것이 좋다.
닥섬유와 닥풀을 섞을 때는 종이의 용도에 맞추어서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적당히 혼합한다. 혼합할 때 골고루 풀어지라고 대막대기로 휘젓는데 이 과정을 '풀대친다'고 한다.
풀대질을 한 다음 대나무 세초발을 발틀에 얹어서 섬유를 고르게 떠낸다. 이것을 '물질한다'고 하는데, 이 물질을 하는 일이야말로 종이를 만드는 사람(지장)의 숙련된 솜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중요한 과정이다. 닥풀의 혼합 정도와 물질하는 솜씨에 따라서 종이의 두께가 결정되는 것은 물론, 종이바닥의 곱고 거친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장 한장 떠낸 종이를 습지라고 한다. 습지는 하룻밤 동안 무거운 돌로 눌러놓아 서서히 물기를 뺀 다음 건조시키는데, 건조방법도 옛날에는 진흙담이나 온돌 방바닥에 습지를 붙여 건조했는데, 요즈음은 대부분 불에 달군 철판 위에서 건조하고 있다.
건조가 끝나면 일단 종이가 완성되는 것이지만, 여기에 다시 도침(다듬이 방망이질)을 하여 곱고 윤기나게 다듬음으로써 재래식 방법에 의한 종이는 비로소 완성된다.
이렇게 다듬이 방망이질을 하여 한 장의 종이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사람의 손을 아흔아홉 번 거치게 되고,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한 번 더 만져서 일백번의 손을 거친다 하여 종이는 일명 '백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종이의 종류와 용도
종이는 선지와 당지로 구분하고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눈다.
㉠선지
*단선은 한 장으로 된 질이 얇은 화선지로 화선지 중에서 가장 용도가 넓게 쓰인다. 이 종이는 먹색과 붓맛이 좋아 중국의 선주, 복주에서 많이 생산되고 주원료는 대나무, 볏짚을 사용하며 종이색이 비교적 부드럽고 물의 확산력이 좋아 고급 화선지로 쓰인다.
*래선은 단선을 두 장 겹쳐서 만든 두꺼운 종이로 선질이 견고하고 질감이 호방하고 시원하나 물 확산력은 완만하다.
*옥판전은 당나라 때 만든 상품의 선지로 윤기가 나고 정교하다. 이 종이는 질이 단단하고 두꺼운데 가격이 높다. 주원료는 볏짚과 담피이다.
*라문선지는 꽃무늬가 있는 종이인데 선질이 단선보다 좋고 햇빛에 비춰 보면 아름다운 무늬 결이 보인다.
*호피선은 호랑이 무늬가 있는 화려한 종이이다.
*냉금선지는 종이면이 금박·은박으로 칠해져 있어 모양이 매우 아름다운 종이이다.
*두부선은 종이질이 비교적 단단하고 수묵의 흡수력이 부족하나 독특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방고선은 엷은 갈색을 염색한 선지이다. 수묵의 흡수력과 확산이 좋고 종이질이 대단히 부드럽다.
㉡당지
*당지는 광의의 뜻으로 중국 화선지를 대표하며 협의의 뜻으로는 대나무를 표백하여 닥나무를 넣어 만든 종이이다. 종이의 색과 질에 따라서 일번당지, 이번당지로 나눈다. 일번당지는 황갈색이고 두꺼우나 종이 면이 거칠다. 이번당지는 연한 황색이고 엷고 매끄러운 느낌이 난다. 당지는 선지처럼 심하게 번지지 않으며 먹이 번지는 효과가 좋고 가격이 경제적이어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우리 나라의 종이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제지 기술이 도입됐는지는 알 수 없고 오직 중국, 일본 문헌 중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고려사]에 종이와 관계되는 짤막한 문장이 군데군데 있고 백제 고이왕 52년 (서기 285년) 에 왕인 박사가 천자문과 논어를 일본에 전해 준 사실로 미루어 보아 당시 조지법과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으리라 생각된다.
석가탑신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다라니경] 이 현존하는 최고의 한지이며 당시의 지조술이 우수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우리 나라의 제지술은 불교와 함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신라의 백무지 및 고려의 아청지 등은 매우 질이 좋은 종이였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장인 정신의 결여와 조정에 종이를 조달하는 민폐 때문에 제지 기술이 발전되지 못하였다.
시전 - 우리 나라에서는 시전을 매매하기 위해 상품화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인지 종류가 많지 않으며 색채나 판화도 정교하고 화려한 것이 거의 없다.
고어전 - 가로, 세로가 모두 19cm이고 1.7cm의 줄간이 8행이며, 네 둘레에는 12mm와 4mm너비의 모자선을 이중으로 두루고 모선 안에는 상하 좌우의 물고기나 꽃무늬를 그려 넣고 있고 색깔은 엷은 밤색으로 소박하면서도 아취가 있는 종이이다.
낙천 - 가로가 13cm이고 세로가 23cm 크기의 백지에 8행의 행간이 있으며 연꽃과 백로, 수초를 그려 넣고 있고 줄과 그림이 주홍색이며 [樂泉]두 글자가 있다.
동려주간 - 크기는 낙천과 비슷한데 행간이 없고 한 장에는 연꽃과 수초를 다른 한 장에는 대나무를 밤색으로 인쇄하였다.
색지 - 우리 나라 시전은 아름다운 색깔이나 풍기는 문향으로 볼 때 중국 시전만 못하지만 지질이 좋고 색깔이 고상함은 중국을 앞선다. 순창의 색지는 한일합방 이후까지도 성행했으며 본고장은 남원이라고 한다. 남원은 예로부터 종이의 명산지라 색지를 생산했을 가능성은 많으나 문헌상이나 물적으로 증빙될 만한 자료가 없다. 색지에는 색지 두루마리, 색간지, 운문지, 홍패지 그밖에 각종 간찰지 등이 있다.
색지 두루마리 - 가로 47cm, 길이가 25cm 크기의 6종류의 색지를 이어 붙여 총 길이가 14m 57cm나 된다. 색깔수는 다홍 6장, 진남색 4장, 가지색 6장, 연옥색 5장, 진노랑 6장, 초록 5장이다.
운문지 - 마블링처럼 여러 가지 모양의 구름이 서로 얽혀 이리저리 움직이는 듯한 구름무늬가 있는 종이이다. 만드는 방법은 종이 크기보다 약간 큰 그릇에 물을 붓고 종이를 담근 후에 좋은 먹을 진하게 갈아 먹물을 여기 저기 몇 방울씩 떨어뜨린다. 그 먹물이 이리 저리 구름처럼 번져나갈 때 물에 잠긴 종이를 살짝 들어올리면 구름처럼 흩어진 먹물이 고스란히 종이에 앉게 되고, 이것을 그대로 말린다. 먹물 외의 다른 책색도 마찬가지이다.
홍패지 - 홍패는 문과의 회시(문.무과 초시에 합격한 자가 서울에서 다시 보는 복시)에 급제한 사람에게 주는 증서(교지)이다. 붉은 바탕 종이에 급제자 이름과 성적, 등급을 적는다. 두꺼운 장지 3장을 합했기 때문에 매우 두껍고, 붉은 바탕에 금박점이 점점이 떨어져 번쩍거리기 때문에 우아하고 화려한 종이이다.
색간지 - 가로 55cm, 길이 28cm의 색지에 1.5cm의 행간 33행이 붉은색으로 그어져 있다. 낙은지(은박가루를 뿌린것)이기 때문에 앞뒷면을 막론하고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아름답다.
▶한지의 특성과 종류
한지의 특성은 질기고, 수명이 오래 간다는 것 외에도 보온성과 통풍성이 아주 우수하다. 한지의 우수성은 양지와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즉, 양지는 지료 PH 4.0 이하의 산성지로서 수명이 고작 50∼100년 정도면 누렇게 황화현상을 일으키며 삭아버리는 데 비해, 한지는 지료 PH 9.0 이상의 알칼리성지로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결이 고와지고 수명이 천년 이상이나 장구한 것이다. 또 한지는 자연현상과 친화하는 성질이 있어서 바람을 잘 통해주고 습기를 빨아들이고 내뿜는 성질이 있는 반면, 양지는 바람이 통하지 않으며 습기는 조금 빨아들이나 건조시는 제 힘을 못 이겨 찢어지고 만다.
한지는 살아 숨쉬는 종이라면 양지는 뻣뻣하게 굳어 있는 종이이며, 한지가 수줍어하면서도 넉넉한 마음씨를 지닌 시골아가씨 같다면 양지는 새침하고 되바라진 도회지 아가씨로 비유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종이는 예로부터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하였는데, 도륭이 쓴 『고반여사』에서 고려지를 소개하기를, "견면으로 만들었으며 빛은 희고 비단 같으며, 단단하고 질기다. 여기에 글씨를 쓰면 먹빛이 아름다운데 이것은 중국에서 나지 않기 때문에 진귀한 물품이다."라고 하였다. 한지는 종류에 따라 그 명칭도 다양한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호정지 - 함경북도에서 재배하는 귀리짚으로 만든 황색의 한지로서 우리나라 고래로부터 생산된 명물인데 일병 북지, 북황지라고도 한다. 백색의 한지를 백지라 하는데 한지를 필사하는 데 편리하도록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한 백지를 말한다. 또 가는 털과 이끼를 섞어서 뜬 종이를 태지라 한다.
곡지 - 곡지(미지·가지지라고도 함)는 사경용의 종이로 저피를 원료로하여 만든 것이고, 갈대를 원료로하여 수록법에 의해 만든 고대 우리나라 한지로 로화지가 있다.
상지 - 상지는 도토리나무로 물들인 닥지인데 주로 니금, 사경의 서사에 이용되었다.
장지 - 장지는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생산되었으며 지질이 두껍고 질기며 지면에 윤이 나서 문서 기록용으로 쓰인다.
태상지 - 태상지는 전라도 산 해태를 섞어서 종이를 뜬 것으로서 문양이 아름다운데 옛날에는 <어음>에 쓴 종이로 지질이 강하다.
그밖에 생록의 한지(뜬 대로의 종이)를 생지라 하고, 우리나라 고대 한지의 일종으로서 봉서에 사용하는 단치가 있다. 또 도침백지라하여 홍두깨에 말아서 다듬이질을하여 광택을 낸 백지로 옛날에는 글씨를 빨리 쓰기 위해서 이러한 방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예지는 책의 겉표지에 사용되는 백지를 말하고 외장지는 지질이 두껍고 질기며 지면에 윤기가 나서 휘장용 종이로 쓰인다.
▶종이의 관리와 보관하는 법
종이를 잘 보관한다는 것은 간단한 것 같으나 어려운 일이다. 습기가 많으면 종이가 습기를 흡수하여 눅눅해지고 곰팡이 등의 해를 받기 쉬우므로 건조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너무 건조한 곳에 두면 지질이 변하고 물을 먹지 않아 글씨나 그림을 그리기에 불편하다. 또 종이는 직사광선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 햇빛이나 불빛에 오래 두면 종이가 쉽게 상하고 색이 누렇게 변해 버린다.
종이는 수분을 쉽게 흡수하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해 두면 벌레나 곰팡이가 생기기 쉬우므로 종이 보관시는 한장 한장을 구김없이 펴서 방충제와 함께 서늘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는 것이 좋고 오래 보관할 때에는 방충제를 넣어 두는 것이 좋다.
종이는 만드는 사람이 다르고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종이의 크기·규격도 따라서 일정하지 않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화지(화선지)의 크기는 가장 큰 것은 길이가 4자(120cm)×6자(180cm), 3자(90cm)×6자(180cm)정도이고, 일반 화선지는 2자 2치(66cm)×4자 1치(123cm)정도이고, 작은 한지는 2자 6치(85cm)×2자(60cm)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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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의 용구
2.붓
동양의 모필(붓)은 서예와 수묵화의 발달과 더불어 줄곧 빛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붓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문헌상으로 볼 때 진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붓의 기원
'사기'에 "몽염이 태자 부소와 함께 진시 황제의 명을 받아 만리장성의 축을 쌓았다. 몽염이 산중의 토끼털로 붓을 만들었다"라는 기록에 의하면 진나라 몽염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붓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진 이전에도 붓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이 증명되는 붓이 출토되어 몽염이 최초로 붓을 만들었다는 설은 많은 이견을 가지고 있다.
중국 신석기 문화 유적에서 발견된 도자기(채도)에서 붓의 흔적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 또 1932년 은허 발굴에서 도자기의 조각에 "祀"라는 글자가 발견되어 붓의 흔적이 확실하여 은나라 때에 이미 붓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오늘날 중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붓은 1954년 호남성 장사시에서 전국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붓대가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붓대의 길이는 18.5cm , 털의 길이는 2.5cm, 직경은 0.4cm,이며 붓털은 질이 좋은 토끼털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호북성 강릉현 황산에서 한나라 무덤에서 나온 붓이 있다. 이 붓에는 붓털에 먹의 흔적까지 역력히 남아 있고 현재의 붓의 구조와 다름이 없다.
붓의 명칭도 각각 달리 불리었다. 초나라에서는 율(律), 오나라에서는 불률(不律), 연나라에서는 불(拂), 진나라에서는 필(筆)이라 했고 우리 나라에서는 붓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진나라 이전의 붓은 대개 자연에서 재료를 취해 만든 원시적인 붓의 형태였고, 오늘날처럼 동물털과 대나무로 만들어진 붓은 진 이후로 만들어졌다. 붓은 송나라에 들어와 모든 학문과 예술의 발달로 문인, 묵객의 필수품으로 등장하였다.
명.청시대에 와서는 붓의 제조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붓이 단순한 서화 용구로서 뿐 아니라 하나의 공예품으로 각광을 받게 되어, 붓대의 장식과 재료에 대나무 이외에 도자기, 상아 등이 사용되고 거기에 화려한 조각, 채색 둥 대채로운 장식을 넣어 조형의 아름다움을 갖추기에 이른다.
▶붓의 제조방법
붓의 구조에 따라 붓을 만드는 재료는 크게 붓대와 붓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붓대는 주로 대나무가 많이 쓰이는데 휘어지지 않고 곧은 것이 좋다. 붓에는 이리털, 토끼털 , 쥐털(쥐의 턱수염), 호랑이털, 노루털, 사슴털, 돼지털, 살쾡이털, 족제비털, 양털 등을 쓰는데 토끼털은 가을철의 것이 좋으며 양털을 제일로 꼽는다. 이밖에 붓에 쓰이는 털은 20여 종이 더 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호필휘묵'이라 하여 절강성 호주의 붓과 휘주의 먹이 문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붓을 만드는 일은 먼저 대나무를 서늘한 곳에서 말려 크기에 알맞게 자르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 털을 세제를 이용하여 불순물이 없도록 씻어 길이대로 가지런히 배열하여 텉의 길이를 고른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긴 털, 지저분한 털은 뽑아 버린다. 나쁜털을 제거해 낸 후 털의 뿌리(모근)를 고정하고 붓털의 뾰족함을 정리해 가면서, 다시 한번 고르지 못한 털을 골라내고 붓의 심지를 세워간다. 그 다음 털을 가는 실을 사용하여 묶는다. 실로 단단히 묶은 다음 붓대에 접착제를 묻혀 고정시킨다. 그런 연후에 물풀을 이용하여 털을 뾰족하게 다듬어 건조시키면 완성이 된다. 마지막으로, 제작자나 붓의 명칭을 붓대에 칼로 조각한다.
좋은 붓은 예로부터 털의 좋고 나쁨보다는 붓을 만드는 장인의 기술에 있다고 한다. 먼저 좋은 붓을 고르는 일(만드는 일)은 붓대가 단단하고 무게가 있고 둥글고 곧은 대나무라야 자유롭게 붓을 움직일 수 있다. 붓촉(털)은 붓끝(털의 끝)이 가지런하며 둥글고 튼튼해야 글씨를 쓰는데(행·초서) 점 하나가 있을곳에 점이 없으면 미녀의 눈 하나가 없는 것과 같고, 하나의 획이 있을 곳을 잃으면 장사의 팔 하나가 없는 것과 같이 붓을 만드는 일은 한 개의 붓털, 붓대의 조각 장식, 글자까지 어느하나 소홀히 해서는 좋은 붓이 될 수 없다.
▶붓의 종류
붓의 종류는 붓의 모양이나 털의 굵기, 길이에 따라 혹은 강도에 따라 명칭과 특징이 각기 다르다.
장봉필(대)-털이 긴 붓으로, 편지를 쓰거나 긴 선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데 종류가 많고 연하면서도 탄력성이 있어 선을 그을 때 긴장감을 잘 나타내 준다. 털이 긴 만큼 사용자의 기량이 요구되며 큰 글씨를 쓰는 데 적합하다.
중봉필 -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붓으로 붓털의 길이가 중간 위치에 있는 붓을 말한다.
단봉필 - 붓털과 붓대가 작은 붓을 가리키며 작은 글씨나 섬세한 부분을 모샤하는 데 주로 쓰인다.
면상필 -주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예리한 붓을 가리킨다. 사람의 눈썹, 머리카락 등의 세부 묘사에 사용되며 얼굴을 묘사하는 붓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양모필 - 양의 털로 만든 붓을 가리키며 털이 희고 연하면서도 오래될수록 탄력성이 좋아 주로 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한다.
토모필 - 토끼털로 만든 붓으로 가을털이 가장 좋고, 특성이 날카롭고 예리하면서도 탄력성이 좋아 예로부터 작은 붓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녹모필 - 중국 한나라에서 당나라 때까지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붓은 유연하고 양모에 비하여 단단하나 털의 수명이 짧다.
마모필 - 말의 꼬리의 털로 만든 붓으로 거칠고 강하다.
돈모필 - 돼지의 털로 만든 붓이다. 유연하지 못하므로 글씨나 그림을 그리기에는 부적합하여, 페인트 붓이나 유화 붓을 만든다.
황모필 - 족제비털로 만든 붓으로 유연하면서도 예리한 맛을 낼 수 있다. 털이 길지 아니하므로 주로 작은 붓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서모필 - 쥐의 털(쥐의 턱 수염)로 만든 붓으로 강하고 힘이 있으며 예리하다.
죽필 - 대나무의 섬유로 만든 붓으로 거칠고 투박한 맛을 내는 데 사용된다.
그 외에 원숭이털, 닭털, 공작털, 고양이털로 붓을 만들기도 하고 볏짚으로 만든 초필, 모필 등 여러 종류의 붓이 있다.
우리나라에 붓이 전래된 시기는 대체로 불교문화와 함께 유입되었다고 생각된다. 통일신라 때 김인문, 김생, 최치원 같은 뛰어난 서예가들이 출현하면서 붓의 사용 영역도 활발해졌으며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 서울 장안, 광주, 대구 등지에서 많은 붓이 제작되었다.
▶좋은 붓을 고르는 법과 보관법
좋은 붓이란 네 가지 덕을 갖춘 것이라야 상품이라 하였다. 네 가지 덕이란 붓 끝이 날카롭고 예리한 것(尖), 털이 고루 펴 있는 것(齊), 붓털의 모양이 둥근 것(圓), 붓의 수명이 긴 것(健)을 가리킨다.
尖은 먹이나 물을 묻혀 놓은 붓의 끝이 날카롭고 흐트러지지 않은 것을 말한다. 붓을 한껏 눌렀다가 급속히 붓을 들어 올리면서 가느다란 털끝 같은 선을 그을 때 그것이 깨끗하게 그어지고 그러면서도 항상 붓털이 팽팽한 붓을 말한다.
齊란 굽은 털이 없이 길이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붓을 눌러서 폈을 때 털이 들쭉날쭉하지 않아야 좋은 붓이다.
圓이라는 것은 붓털이 모여져 있는 모양에 모가 없는 것을 말한다. 붓을 물에 적셨을 때 그 모양이 팽이 모양처럼 둥글고 중심점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팽이의 원리처럼 붓으로 어느 방향으로 선을 그을 수 있게 된 것을 말한다.
健이라 함은 붓털 하나하나가 잘 빗은 머리카락처럼 곧은 것을 말하며 또 붓의 수명이 긴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약품을 지나치게 사용해서 털의 기름기가 너무 많이 빠져 버린 털은 금방 털끝이 닳거나 부러지기 쉽다. 붓은 탄력성과 유연함이 동시에 있어야 하며 오래 쓸수록 정이 들고 붓털이 빠지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새 붓은 대개 붓털이 풀이나 아교로 딱딱하게 뭉쳐져 있다. 이럴 때 함부로 비비거나 뭉개지 말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천천히 문질러 푸는 것이 좋다. 그 다음 푼 부분의 풀을 없애기 위해 물에 담근다.
붓털에는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털마디가 있는데, 이 조직은 q수의 성질을 좌우한다. 즉, 붓털의 유연성, 탄력성을 결정짓는다. 붓은 마치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살이 있는 것이라 손질과 보관에 따라 붓의 질과 수명에 차이가 있다.
붓의 손질과 보관하는 법은 사용 후, 깨끗한 물에 잘 씻어 먹을 완전히 뺀 다음(이 때, 비누나 세제는 사용하지 않는다) 붓털을 가지런히 하여 바람이 잘 통하는 음지에 붓을 거꾸로 걸어 말린다. 쓰지 않는 붓을 상자 속에 넣어 둘 때는 나프탈린 같은 방충제를 넣어서 보관한다.
장마철에는 습기에 주의하여 항상 건조한 곳에 붓을 걸어두어야 하고 젖은 붓을 물에 오래 담가두거나 먹이 묻은 채로 보관하면 붓털이 금새 상하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붓의 털이 통채로 붓대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근래에는 접착 기술이 발달되어 드문 일이지만, 붓을 물에 오래 담가두거나 붓을 거꾸로 세워두면 접착부분이 상하게 된다. 붓털이 빠진 붓은 털과 붓대를 건조한 곳에 하루이틀 말린 다음 접착제로 다시 고정하여 말린 다음 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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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의 용구
3.먹
동양의 먹은 서예의 무대 위에서 고색창연한 묵색을 자랑하면서 그윽한 묵향과 함께 많은 문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먹의 생명은 종이와 관련이 깊고, 먹의 맑고 깊은 세계는 도양인의 마음과 미의식을 가장 잘 나타내 준다. 서예와 수묵화의 세계는 곧 먹의 농담에 함축되어 있는 '玄'의 세계를 말하며 먹의 색깡ㄹ은 화려함이나 밝은 색이 아니라 고요한 가운데 기운을 품고 있는 독특한 색깔이다.
▶먹의 기원
먹의 기원은 얘기가 각기 분분해서 확실한 고증은 없다. 은허의 발굴에서 나온 그릇의 파편에서 몇 글자가 나왔는데 여기에서 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서 먹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은나라에 이미 청동기, 갑골문자가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혈거 생활을 하며 움막에서 제작된 것으로 청동기를 구워 만드려면 나무와 불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나오는 목탄이 필기용으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혹은 석묵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순수한 천연탄으로, 판대기 모양의 결정체이다. 오늘날에는 연필의 심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을 물에 용해시키면 곧 묵즙이 된다. 또 청동기를 제작하는데 수은과 유황이 사용되는데 이때 '朱'가 만들어 진다.
지금과 같은 붉은 먹으로 검은 먹 대신 붉은 글씨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서 많은 사상가가 출현하고 사상을 기록하는 방법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당시는 아직 사상가들은 모두가 칠묵을 사용하여 쓴 옻글씨로서, 칠묵만을 사용하면 글자가 그다지 선명하지 못했으므로 여기에 묵즙을 가하여 선명한 윤택이 나도록 했다. 은나라에서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먹에 관한 고증이 미비한 점이 많으나 현재 우리들이 생각하는 형태의 먹은 한나라 이후에 만들어졌다.
호북성 강릉현 한나라 무덤에서 발굴된 먹이 있는데 그 먹이 가장 오래도니 유물이다. 이 먹은 잘게 부서져 있었는데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좋은 먹이었다. 소나무 그을음을 가지고 먹을 만든것은 한나라 시대에서 시작된다고 볼수 있다. 이때 먹을 굳게 하기 위하여 사용된 모제는 아교로 알려져 있고, 먹은 둥근 형태였다. 이 먹에 물을 붓고 연석(마석이라고 함)으로 문질러 잘게 부스러뜨려 먹물을 만들었다.
송나라 도이도가 쓴 [묵경]에 "예전에는 석묵과 송연(소나무 그을음) 2가지가 있었고, 위·진나라 이후에는 송연먹을 썼다."라고 말하고 있어서 위나라, 진나라 때에 와서 비로소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묵환(땅콩크기만한 먹)을 사용하였다.
11세기에 들어와 소식, 황산곡, 네불 등이 옛먹이나 명묵(좋은 먹)에 관심을 기울여 스스로 먹을 만들어 사용했다.
명대에 들어와 많은 먹이 생산되었는데, 우명한 라소화, 오거진 , 정군방, 방우노 등과 같은 장인이 나와 먹의 황금시대를 일으켰다.
청대에 들어와 황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좋은 먹이 생산되었다. 특히 건륭황제가 묵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건륭어묵]이다.
리나라에서는 고려 초기에 소나무 그을음과 녹교로 송연묵을 만들었다. 서울의 먹골, 묵정동은 옛날에 먹을 만들었던곳이다. 황해도 해주와 평안도의 양덕에서 먹으 많이 제조하였으며, 특히 해주먹은 중국과 일본에 수출되었고, 양덕의 먹은 향기가 좋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먹의 제조법
먹을 만드는 주요 재료는 그을음, 아교, 향료 등이다.
먹을 만드는 주요 성분은 극히 작은 탄소 입자이다. 원형의 탄소 입자는 그 크기가 고를수록 좋은 먹이고 입자가 불규칙하면 좋은 먹이 되지 않는다. 먹을 만들 때는 반드시 아교로 응고시키는데, 아교는 동물의 가죽 또는 연골을 삶은 즙으로 만들기 때문에 냄새가 좋지 못하다. 그래서 먹에 향료를 섞는다.
그을음의 채집방법은 등유를 연소시킬때, 아주 작은 화염을 만드는데 이때 유리를 사용하여 계속되는 화염을 덮으면 앞쪽으로 상승하려는 연기는 유리마개에 부착된다. 이런 것을 채집한 것이 곧 그을음이다.
그을음의 좋고 나쁨은 화염과의 거리로 말미암아 결정되는데, 즉 화염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은 그을음을 얻을 수 있게 되며 반대로 가까울 경우는 질이 좋지 못하다.
그을음은 기름의 품질과 종류에 따라 먹의 질이 달라진다. 채자유, 호마유, 춘유, 대두유에서 채취한 그을음이 좋고, 소나무 기름에서 채취한 송연묵은 먹중에서 가장 선명한 광채를 가지고 있는 고급품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소나무 원료가 부족하고 게다가 그을음을 채집하는 데 손이 너무 많이 가므로 제조하지 않고 그 대신 중유, 경유 등 공업유를 이용하여 먹을 만든다.
아교는 접착제로서 그 성분은 단백질이다. 합성수지라는 접착제를 만들어 내기 이전에는 아교를 사용하여 접착제로 썼다. 아교질은 야수나 물고기의 뼈, 가죽에서 나오는 액체를 건조한 후에 가공한 것이다. [묵경]에 의하면 "아교는 먹의 질을 결정시켜 주는데, 만약 좋은 아교가 없다면 아무리 조은 그을음이라 할지라도 우수한 먹을 만들 수 없다."고 하였다.
먹을 갈 때에 매끄럽거나 혹은 매끄럽지 않은 감각은 아교가 그을음을 억압하는 관계와 서로 조화된 관계에 달려 있다.
이 아교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향료를 섞어 쓰는데, 예로부터 묵향은 고귀한 향취로 사람을 그윽하고 심원한 세계로 이끌어낸다. 고대에는 천연향료를 사용하여 아교 냄새를 제거했고, 향료 중에는 사향노루의 사향을 최고로 여긴다.
그을음과 아교를 섞는 것을 연묵이라 한다. 연묵은 밀실에서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작은 탄소입자인 만큼 쉽게 바람에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또 그을음과 섞여 있는 혼합물을 제거하기 위하여서는 체로 쳐서 걸러낸다. 그런 연후에 약한 화로 위에 송판을 놓아 반죽한다.
요즘은 정연기가 있어 대량 반죽이 가능해졌지만 옛날에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반죽했다. 목판위에 보통 그을음 600∼700g, 아교 120∼140g의 비율로 반죽한다.
반죽하는 시기는 한랭한 늦가을이나 겨울철이 좋다. 묵장(먹으 만드는 사람)이 오랜 경험으로 비비고 문지르고 여러 번 반복하여 먹을 만든 다음 마지막으로 틀에 넣어 건조시키면 완성된다. 먹의 모양은 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먹의 문양, 글씨 등은 틀 속에서 만들어진다. 모형(틀)에 먹을 넣을 때는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가 적당하다. 만약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먹이 물러져 버리고, 또 낮으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모형에서 뜬 먹은 재 속에 넣어두어 완전히 물기를 제거해 낸다.
그 다음 먹을 짚으로 엮어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 건조시킨다. 다 마른 먹이 완전해지기까지는 30∼50년 세월이 지나야 좋은 먹색이 나는 먹을 만들 수 있다. 완전히 마른 먹은 광을 내고 금분잊나 은분 또는 청분, 붉은 색으로 문자나 문양을 도안한다.
▶먹의 종류
먹은 원료에 따라 종류가 다르다.
주묵 - 중국에서 고귀한 사람과 지체 높은 권문을 상징하는 뜻에서 주로 사용된 붉은 빛깔의 먹이다. 주묵은 수은과 유황, 납을 혼합하여 만들었는데 주묵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좋다.
유연묵 - 주로식물성 기름인 채종유 같은 기름을 태워서 얻은 그을음으로 만든 먹으로 순도가 아주 높다. 오래될수록 먹의 고아택이 나며 아교 성분이 많은 편이다.
송연묵 - 이름 그대로 소나무의 송진이 타면서 만들어 내는 그을음으로 만든 먹이다. 이 먹은 먹색이 맑고 깊으며, 아교가 적다. 한나라 이후로 많이 만들어졌고, 중국 안휘성 황산에서 나는 소나무로 만든 것이 최상품이다.
양연묵 - 광물유에서 얻는 그을음으로 원료는 카본블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이 다 화학원료인 카봉블랙을 사용하여 먹을 만들고 있다.
채묵 - 주묵을 포함해서 5종이 있는데, 이것을 5채먹이라 한다. 대부분 그림과 장식용으로 만들어졌다.
석묵 - 자연산의 먹으로 중국 공양산의 묵산이라는 곳에서 많이 생산된다.
▶좋은 먹을 고르는 법과 보관
좋은 먹은 우선 그을음의 입자가 가늘고 고와야 함은 물론 가볍고 탁하지 않으며 맑아야 좋은 먹이다. 되도록 아교질이 적고 단단해야 하고 향기가 좋아야 한다.
좋은 먹을 고르는 데는 먹색과 향기, 두가지 방법이 보통 쓰이는데 손으로 두들겨 보아 소리가 맑아야 하고 갈 때 소리가 나지 않고 윤기가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은 선택법이다.
먹을 오랫동안 쓰지 않을 때에는 쑥속에 넣어두고 장마철에는 종이에 싼 다음 재 속에 넣어두면 질이 변하지 않고 곰팡이가 안 생긴다. 또 직사광선을 받지앟게 하며 갈던 먹은 깨끗이 닦아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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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의 용구
4.벼루
벼루는 문방사보 중에서 가장 수명이 길다. 그러므로 예로분터 좋은 벼루를 소장하고 수집하여 명문을 새겨 그 경위와 사용자의 이름 등을 새겼다.
'硯'자의 자의를 살펴보면 '설문해자'에서 "硯은 硏과 같은 뜻으로 돌의 표면을 반질하게 함, 갈고 닦음이라는 뜻이다."
▶벼루의 기원
중국의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벼루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의 앙소문화에 사용되던 도자기로 만든 벼루가 있다. 진나라 때의 붓의 발명과 한 대의 제지술이 벼루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리라 짐작된다.
초기의 벼루의 형태는 지극히 치졸한 것으로 줄곧 천연묵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속이 절구처럼 깊게 파진 것들이다.
수, 당 시대의 벼루는 도연(도자기로 구운 벼루)과 청석연이 많이 만들어졌고 모양은 둥근 것, 직사각형 모양이 만들어졌다. 당 말기에 강서성, 안휘성에서 흡주석이 채굴되고 단계석 갱이 발견되어 벼루의 명산지가 되었다. 송대에 이르러서는 공예기술의 발달로 벼루에 조각을 가하여 명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감숙성 황하 유역의 도하석과 흡주석, 단계석은 너무나 유명하여 황제의 명이 있어야만 채석했을 정도였다. 명대에는 도연과 자연의 전통을 이은 징니연이 제작되었고, 청대에는 강희 황제의 고향에서 나는 송화석연이 만들어졌고, 특히 건륭 황제가 옛문화(한족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에 힘을 얻어 각종 무늬와 각종 형태의 명연이 만들어졌다.
▶벼루의 종류
벼루는 벼루를 만드는 돌의 산지와 재료, 모양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벼루는 돌 이외에 도자기, 와당, 은, 동, 철, 자기, 옥, 수정, 나무 등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실용성이 없기 때문에 돌로 만든다.
단계연 - 당나라 때 처음 채석되어 벼루의 대명사가 되었다. 산지는 광동성 단주이다. 돌의 색깔은 자줏빛을 띠며 그밖에 청색, 회색, 녹색 등 10종 이상으로 분류된다. 단계석의 외관상 특징은 찬란한 석문양으로 아름다운 무늬가 30여 가지가 된다. 연석을 채굴하는 동굴은 대서동, 정동, 소서동, 동동으로 나누고 있으며 각 동에서 채취하는 돌의 종류가 3∼8종류로 나뉜다. 채취하는 갱이 많아지면서도 들어가는 문은 하나이며 오래된 갱에서 채취한 것을 제일로 친다.
흡주연(일명 용미연) - 중국 안휘성의 최남쪽인 흡주, 지금의 흡현, 무원현 지방 용미산에서 나는 돌로 흡주연 또는 용미연이라 부른다. 연석이 발견된 동기는 당 현종 때(서기 714∼741) 엽씨라는 사냥꾼이 짐승을 쫓다가 이곳에서 성벽을 쌓는 첩석 모양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돌을 보게 되어 그 돌로 벼루를 만들어 써 보니 석질이 보드랍고 단석(단계석)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 후 엽씨의 자손들이 벼루를 만들어 진상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남당 원종 때 이소미라는 연관과 주전이라는 장인이 엽씨의 후손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좋은 벼루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흡주연은 단계연에 비해 일반적으로 석질이 단단하여 물과 먹을 잘 받지 않는 편이지만 석질이 치밀하고 무늬가 특이한 것이 특징이다.
도하록석연 - 감숙성의 남쪽 임도라는 곳의 부근을 흐르는 도하강의 물 속에서 채취한 벼루이다. 한 대부터 사용되어 왔다고 전하며 돌의 색은 황록과 청록의 두 종류가 있고 먹이 쉽게 갈린다.
송화강록석연 - 길림성 서쪽 지방에서 나는 돌로써 돌의 질이 견고하며 석면은 예리하면서도 날카로운데 특히 청나라 황실의 애호를 받았다.
도연 - 도자기를 구워서 만든 벼루로 외관이 아름다우나 연면이 고르지 못하다.
와연 - 기와를 갈아 만든 벼루이다. 또 돌을 깎아 기와 모양처럼 만들기도 한다.
징니연 - 진흙으로 만든 벼루로 돌이 아닌, 인공적으로 가공하여 만든 벼루이다. 당나라 때 많이 만들어졌고 산지는 하남성 노시현이다.
그밖에 모양에 따라 풍자연, 환지연 등으로 나누며 벼루에 조각한 것에 따라 송수만년연, 화중군자연, 일월연 등으로 나눈다.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남도 보령군 남포면에서 나는 남포석이 유명하고, 평안북도 위원에서 나는 벼루돌인 청석은 중국의 흡주석과 비슷하다. 홍석은 단계석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고령에서 나는 고령석은 석질이 깔깔한 편이고, 평창에서 나는 자석은 아름다운 화초석이며, 안동에서 나는 마간석은 질이 떨어지지만 때로는 좋은 돌이 나오기도 한다.
그밖에 고원, 화천, 대동강가의 곽산, 해주, 옹진, 장연, 장산곶, 정선, 단양, 진천, 계룡산, 경주, 언양 등에서 벼루돌이 생산된다.
우리나라 벼루는 1916년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둥근 벼루가 가장 오래된 벼루이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도연 등이 있었고 특히 고려의 청자연은 정교하고 화려함이 비할 데 없이 좋은 벼루였다고 한다.
▶좋은 벼루의 조건과 선택법
좋은 벼루란 먹이 잘 갈리고 붓털이 상하지 않고 물이나 먹이 마르지 않는 벼루가 최상이다.
좋은 벼루는 좋은 돌이다. 벼루를 만드는 데 적합한 돌은 돌의 입자가 미세하고, 꽉 차 있으면서 강해야 하고 무게도 적당하고 안정감이 있게 조각이나 연지가 파진 것이 좋다.
벼루는 실용성 이외에도 감상용으로 쓰이는데, 그 외관이 정교한 조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있다. 이른바 명연이라 부르는 벼루에는 대개 화조, 산수, 소나무 등이 조각되어 있어서 벼루의 품위를 한층 높여준다. 또 문인 묵객들이 애장했던 벼루에는 명기를 새겨놓아 그 벼루를 통해 애장자의 인품과 운치를 엿볼 수 있다. 옛부터 명연은 내력이 뚜렷하고 수장가가 확실하면 그만큼 가치를 높여준다.
좋은 벼루는 우선 석질이 우수하고 그 만든 솜씨가 정교한 데다 품위와 품격을 갖춘 것이라야 한다.
벼루는 사용하고 보관하는 것이 또한 좋은 벼루를 고르는 일과 같다. 옛날 선비들은 사흘 동안 세수는 못해도 벼루는 씻었다고 한다. 자주 씻어야 메마르지 않고 기운이 있다 했고 묵적이 있으면 다음 먹을 가는데 지장을 준다.
벼루는 맑은 물로 여러번 씻어야 하며 묵적이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 또 석질이 상하지 않게 못이나, 철사뭉치로 닦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깨지기 쉬운 물건은 높은 곳에 두면 떨어져 파손될 염려가 많으므로 높은 곳에 두지 말고 가벼운 나무로 상자를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금속류 옆에 두었다가 부딪치면 벼루에 흠이 생기므로 또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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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의 용구
5. 그 외(접시, 문진, 물통, 담요, 물감)
▶접시
접시는 먹색을 만드는 용구인 만큼 크고 무늬가 없는 흰색 사기접시가 좋다. 일반 그릇 가게에서 2~3개 정도 사서 깨끗이 씻어 사용한다.
▶문진(서진)
문진은 종이가 구겨지거나 바람에 날리는 것을 예방하는 용구로 녹이 스는 쇠로 만든 것보다는 나무로 만든 것으로 2개 정도 있으면 족하다.
▶물통
물통은 자주 물을 갈아야 하는 만큼 가벼운 사기그릇으로 된 것을 준비한다. 플라스틱 제품이 대용되고 있으나 다른 용구와 어울리지 못하므로 가능한 한 피한다.
▶담요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담요는 회색의 융이 좋다. 융은 가격이 비싸고 폭이 좁은 점이 흠이라 군담요가 많이 쓰인다.
▶물감
물감은 튜브에 들어 있어 짜서 쓰기도 하지만, 시중에 색깔별로 작은 접시에 담겨 있는 것이 있다. 또 꽃무늬 모양의 색접시를 사용하면 편리하다. 그밖에 먹처럼 갈아서 쓰는 봉채와 조각조각으로 된 편채 등이 있다.
그 외에 인주, 도장, 헝겊, 붓걸이 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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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화제란?
화제는 문인들이 그림의 여백에 시나 좋은 글귀를 쓰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문인이면 누구나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줄 알아 그림을 그린 후에 흥이 나면 그림을 그린 뜻과 못다 표현한 것을 시로 지어 운치를 더했다. 그림을 그리고 꼭 화제를 써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화제를 잘못 써서 그림을 망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예로부터 화제를 써야 한다는 것 때문에 서투른 글솜씨를 아무 구석에나 휘갈겨 명작을 망친 경우가 허다하다. 화제도 엄격히 말하면 그림 속에서 조형으로 존재하는 것이니, 꼭 좋은 시구가 절대적일 수는 없다.
화제는 그림을 보조하는 역할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화제는 작은 글씨로 행서나 초서로 많이 썼고, 근대의 명가들은 전서, 해서로 쓰기도 하였다.
특히 사군자 같은 그림은 여백을 많이 남기기 때문에 화제를 많이 쓴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묵화를 많이 그린 원나라 때 그림에는 화제가 거의 없고 있다 해도 몇 자 정도였다. 그림이 주가 되는 것이고 글씨는 다만 작가의 성명 정도였다.
화제를 꼭 써야 할 때는 그림의 구도나 균형을 생각하여 심사숙고한 후에 그림과 어울리게 써야 하고 나중에 도장을 찍을 공간까지 생각해서 너무 크지 않게 알맞게 몇 자 쓴다.
■화제
▶매화의 화제
<4자>
空山裁玉(공산재옥) - 고요한 산에 핀 매화.
高士美人(고사미인) - 지조있는 선비와 아름다운 여인 같은 매화.
瓊花浴月(경화욕월) - 구슬 같은 매화가 달빛에 어른거린다.
君子之交(군자지교) - 매화는 지조있는 선비와 사귄다.
冷香寒玉(냉향한옥) - 싸늘한 향기에 찬 구슬 같은 매화.
萬玉玲瓏(만옥영롱) - 매화가 일만 구슬처럼 영롱하다.
墨影含芳(묵영함방) - 수묵으로 매화의 꽃이 향기를 머금었네.
萬古淸香(만고청향) - 만고에 변함없는 향기.
芳信先傳(방신선전) - 꽃다운 봄의 소식을 전하는 매화.
素艶芳馨(소염방형) - 흰 꽃송이 꽃다운 향기.
疎影橫斜(소영횡사) - 매화의 성긴 그리자 옆으로 비스듬히 누웠네.
暗香疎影(암향소영) - 매화의 향기와 가지의 그림자.
暗香浮動(암향부동) - 매화 향기가 떠서 움직인다.
暗香籠月(암향농월) - 달빛에 어려 있는 매화.
韻勝格高(운승격고) - 운치있고 격조있는 매화.
一枝春信(일지춘신) - 매화 한 가지가 봄을 알린다.
一庭春色(일정춘색) - 매화가 피니 온 정원이 봄이구나.
臨風一笑(임풍일소) - 봄바람에 핀 매화의 웃는 모습.
早梅春信(조매춘신) - 매화가 봄이 왔음을 알린다.
早傳春信(조전춘신) - 일찍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
蒼龍臥雪(창룡와설) - 눈에 덮인 매화 가지.
鐵骨生春(철골생춘) - 매화의 가지에서 봄이 왔네.
淸香暗送(청향암송) - 맑은 향기를 보내는 매화.
<5자>
溪梅作小春(계매작소춘) - 시냇가의 매화가 작은 봄을 이루었다.
弄花香滿衣(농화향만의) - 매화를 희롱하니 그 향기가 옷에 가득하다.
梅邊別有香(매변별유향) - 매화나무 주변에 별다른 향기가 있네.
餘香千載淸(여향천재청) - 매화의 향기가 천 년까지 맑으리.
淸極不知寒(청극부지한) - 지극히 맑은 매화가 추위도 모르네.
香中別有韻(향중별유운) - 그윽한 향기 속에 특별한 운치가 있네.
<7자>
半窓明月數株梅(반창명월수주매) - 반쯤 열린 창밖의 밝은 달과 두서너 그루의 매화나무.
氷肌玉骨不知寒(빙기옥골부지한) - 얼음과 같은 살갗, 옥 같은 뼈에 추위를 알지 못하네.
玉雪爲骨氷爲魂(옥설위골빙위혼) - 옥 같은 눈을 뼈로 삼고 맑은 얼음으로 혼을 삼네.
一枝梅花和雪香(일지매화화설향) - 한 가지 매화가 눈과 더불어 향기롭네.
晴雪梅花照玉堂(청설매화조옥당) - 개인 눈과 매화꽃이 집안에 비치네.
枝繞春風降雪香(지요춘풍강설향) - 매화나무 가지에 봄바람이 부니 내리는 눈도 향기롭다.
春到梅邊千里心(춘도매변천리심) - 봄이 매화가지에 이르니 마음은 벌써 술렁이네.
<10자이상>
獨有梅花白含香色相奇(독유매화백함향색상기) - 홀로 핀 흰 꽃이 향기를 품으니 빛깔이 더욱 신기하구나.
昨夜前村深雪陽春又見梅花(작야전촌심설양춘우견매화) - 간밤에 앞마을에 눈이 많이 내리더니, 따뜻한 봄에 다시 매화꽃을 보네.
素艶雪凝樹淸香風滿枝(소염설응수청향풍만지) - 흰 꽃은 나무에 엉긴 것 같고 맑은 향기는 바람결에 가지에 가득하다.
素節自矜高士操淡粧元稱美人心(소절자긍고사조담장원칭미인심) - 깨끗한 절개는 선비의 지조를 자랑하고 소박한 단장은 본래 미인의 마음일세.
雪消晴幹寒餘白月上疏枝淡似金(설소청간한여백월상소지담사금) - 눈 녹고 개인 가지에 고드름이 희게 달리고 달은 늙은 가지에 올라 금과같이 맑네.
萬花敢向雪中出一樹獨先天下春(만화감향설중출일수독선천하춘) - 일만 송이 꽃이 감히 눈을 뚫고 나오니,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온 천지에 봄을 앞질렀네.
風引三春香雪弄南枝色(풍인삼춘향설롱남지색) - 바람은 봄의 향기를 이끌어 오고 눈송이 같은 매화 남쪽 가지에 봄을 알리네.
有梅花處惜無酒三嗅淸香當一杯(유매화처석무주삼후청향당일배) - 매화 있는데 술이 없음이 애석하나, 세 번 향기를 맡으매 술 한잔 마신 것 같도다.
■화제
▶난의 화제
<4자>
紺碧垂香(감벽수향) - 벼랑에 짙푸른 난초가 향기를 풍기며 드리워 있다.
格貴品高(격귀품고) - 격조 높은 품위가 귀하기만 하구나.
濃薰淸艶(농훈청염) - 짙은 향기와 깨끗한 자태.
蘭竹雙淸(난죽쌍청) - 난초의 향기와 대나무의 맑은 그늘이 한데 어울렸다.
蘭竹蒼崖(난죽창애) - 푸르른 이끼가 낀 벼랑의 난초와 대나무.
空谷幽貞(공곡유정) - 고요한 골짜기에 난 그윽한 정절.
淡月香風(담월향풍) - 맑은 달빛 아래 향기로운 바람이 인다.
百媚千般(백미천반) - 온갖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芳馥乘風(방복승풍) - 난 향기가 바람을 타고 풍겨온다.
舞風臨流(무풍임류) - 바람에 춤추며 물흐름을 굽어보는 난초.
幽香淸遠(유향청원) - 난의 그윽한 향기가 멀리까지 풍겨온다.
淸香倚石(청향의석) - 맑은 향기의 난이 바위에 의지하여 피었다.
淸香自遠(청향자원) - 난의 향기가 멀리까지 풍긴다.
露溫風開(노온풍개) - 이슬에 윤기내며 바람에 드러난다.
風露淸香(풍로청향) - 바람에 날리고 향기는 이슬을 머금었다.
懸崖幽芳(현애유방) - 벼랑에 난 난초가 풍기는 그윽한 향기.
迎風帶露(영풍대로) - 바람에 나부끼고 이슬을 머금은 난초.
美人香草(미인향초) - 미인의 향기를 품은 난초.
<5자>
素心自芳潔(소심자방결) - 소심란의 향기가 스스로 맑다.
幽蘭帶露香(유란대로향) - 그윽한 난초 이슬을 머금어 향기롭다.
自然之高介(자연지고개) - 높은 절개를 가졌도다.
淸寒蘭氣遠(청한란기원) - 맑고 찬 난의 향기가 멀리 풍긴다.
<7자>
空谷佳人抱幽貞(공곡가인포유정) - 빈 골짜기에 아름다운 사람(난초)이 그윽한 정절을 품고 있다.
空谷幽蘭人共馨(공곡유란인공형) - 빈 골짜기의 그윽한 난초가 사람마저 향기롭게 한다.
蘭在幽林亦自香(난재유림역자향) - 난초는 깊은 숲속에 있어도 스스로 향기를 내뿜는다.
幾葉幽蘭帶露香(기엽유란대로향) - 몇 잎의 그윽한 난초가 이슬을 머금어 향기롭다.
深谷香風泛紫蘭(심곡향풍범자란) - 깊은 골짜기에 부는 바람에 자란의 향기가 감돈다.
葉葉莖莖吐幽思(엽엽경경토유사) - 잎마다 꽃대마다 그윽한 생각을 내뿜는다.
幽谷無人獨自香(유곡무인독자향) - 깊은 골짜기에 사람이 없는데, 난초는 제홀로 향기롭다.
自有幽香似德人(자유유향사덕인) - 난은 스스로 그윽한 향기가 있어 마치 덕 높은 사람과 같다.
<8자>
蘭似君子蕙似大夫(난사군자혜사대부) - 난은 덕 높은 군자와 같고 혜초는 귀한 대부와 같다.
蘭芽吐玉柳眼挑金(난아토옥유안도금) - 난초는 백옥같이 흰 꽃송이를 토해내고, 버들눈은 황금처럼 노랗게 돋아난다.
琴瑟常在芝蘭自馨(금슬상재지란자형) - 거문고와 비파가 늘 같이 있어야 하듯이 지초와 난초는 스스로 향기롭다.
<10자이상>
蘭幽人操錄竹君子德(의란유인조록죽군자덕) - 무성한 난초는 은사의 지조요, 푸른 대숲은 군자의 덕이다.
墨妙蘭不俗蘭香墨更精(묵묘란불속란향묵경정) - 먹의 선이 절묘하여 난이 속되지 않고, 난이 향기로워 먹이 더욱 정교하다.
佳人幽谷裡高士白雲中(가인유곡리고사백운중) - 아름다운 여인은 골짜기에 있고 뜻 높은 선비는 구름 속에 있다.
蘭以比君子所貴者幽深(난이비군자소귀자유심) - 난초를 군자에 비유하거니와, 그윽하고 깊은 곳에 있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賢者天懷虛似竹幽人風致靜如蘭(현자천회허사죽유인풍치정여란) - 현자의 마음은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고 은사의 모습은 고요하기가 난초와 같다.
雨後竝開香細細月中同立影珊珊(우후병개향세세월중동립영산산) - 비갠 뒤에 핀 꽃이라 향기가 은은한데 달빛에 어린 그림자 스산도 하다.
■화제
▶국화의 화제
<4자>
金風玉露(금풍옥로) - 가을 바람에 옥같은 이슬을 머금은 국화.
東籬佳色(동리가색) - 동쪽 울타리에 핀 국화의 아름다운 빛깔.
獨秀孤芳(독수고방) - 홀로 빼어나 홀로 핀 국화.
晩餉寒翠(만향한취) - 국화의 늦은 향기가 차고 푸르도다.
冷淡淸幽(냉담청유) - 차고 맑고 깨끗하고 그윽한 향기.
晩節冷香(만절냉향) - 늦은 절기에 차가운 향기.
三色凌霜(삼색릉상) - 세 가지 색깔의 국화가 서리를 이기고 피어 있다.
素艶芳姿(소염방자) - 흰 국화의 아름다운 모습.
傲霜一枝(오상일지) - 서리를 이겨내고 핀 한 가지 국화.
幽色在野(유색재야) - 그윽한 색깔이 들에 있다.
異品奇香(이품기향) - 특이한 자태와 기이한 향기.
淸風香露(청풍향로) - 맑은 바람에 향기로운 이슬을 머금은 국화.
秋影孤寒(추영고한) - 가을 그늘에 홀로 추위를 이겨낸 국화.
秋耀金花(추요금화) - 가을에 황금같이 빛나는 국화.
香飄風外(향표풍외) - 국화 향기 바람 밖으로 풍기네.
香垂潭影(향수담영) - 국화의 향기가 연못 그늘에 드리웠네.
<5자>
菊松多喜色(국송다희색) - 국화와 대나무에 기쁜 빛이 많도다.
露下發金英(노하발금영) - 이슬 아래 황금과 같은 국화가 피었네.
細雨菊花天(세우국화천) - 가는 비 내리니 국화 필 계절이다.
秋色靜中生(추색정중생) - 가을빛이 고요한 가운데 피어난다.
寒菊帶霜甘(한국대상감) - 찬 국화가 이슬을 머금어 향기롭다.
寒花發黃彩(한화발황채) - 추위에 피는 국화가 황금빛을 발한다.
黃花細雨中(황화세우중) - 노란 국화가 가는 비 속에 피었구나.
<7자>
孤芳晩節見高風(고방만절견고풍) - 늦은 계절에 외로이 핀 국화꽃에서 높은 풍치를 본다.
故園黃菊待君開(고원황국대군개) - 고향집 황국화 그대 돌아오기를 기다렸네.
霜菊新花一半黃(상국신화일반황) - 서리 속에 핀 국화 반쯤 누렇게 피었네.
小園黃菊九秋香(소원황국구추향) - 작은 정원의 노란 국화 9월의 향기로다.
西風重九菊花天(서풍중구국화천) - 가을 바람이 쌀쌀한 9월 9일이 되니 국화가 필 계절이다.
且看黃花晩節香(차간황화만절향) - 노란 국화꽃을 보니 또 늦은 절기의 향기를 맡는구나.
秋風籬落菊花開(추풍리락국화개) - 가을 바람 쌀쌀한 울 밑에 국화꽃이 피었네.
此花開盡更無花(차화개진경무화) - 국화꽃이 다 피고 나면 다시 필 꽃이 없네.
<10자이상>
佳色不爲艶貞心常自持(가색불위염정심상자지) - 아름다운 빛을 고운 체하지 않고, 곧은 마음을 항상 스스로 지니는 국화꽃.
讀書知夜靜 菊見秋深(독서지야정채국견추심) - 책을 읽으매 밤의 고요함을 알겠고, 국화를 뜯으매 가을이 깊은 줄을 알겠다.
晩香風味好正在菊花天(만향풍미호정재국화천) - 늦은 절기에 향기 바람 맞아 좋으니 바야흐로 국화 피는 계절이로다.
素心常耐冷晩節本無瑕(소심상내랭만절본무하) - 본디 마음은 항상 추위를 이겨내고, 늦도록 지키는 절개에는 원래 티가 없다.
淸霜下籬落佳色散花枝(청상하리락가색산화지) - 맑은 서리 울타리 아래 내리고, 아름다운 빛이 꽃가지로 흩어진다.
千花萬卉消零後如見閒人把一枝(천화만훼소령후여견한인파일지) - 천 가지 풀이 다 시든 후에 마치 한가한 사람이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것과 같음을 보내.
月色半留梧影上露華應到菊花團(월색반류오영상노화응도국화단) - 달빛은 반쯤 오동나무 그늘 위에 머물렀으니 맑은 이슬은 아마도 국화 떨기에서 빛나리.
秋霜滿地東籬下晩節黃花看未萎(추상만지동리하만절황화간미위) - 가을 서리 땅에 가득한 동쪽 울타리 밑에 절개를 지키는 노란 국화가 시들지 않고 피었네.
■화제
▶대나무의 화제
<4자>
高竿垂綠(고간수록) - 높은 대나무의 줄기 푸르름을 드리우고 있다.
交幹拂雲(교간불운) - 대나무가 엇갈리어 구름을 쓸고 있다.
綠竹靑靑(녹죽청청) - 푸른 대나무가 푸르고 푸르구나.
濃葉垂煙(농엽수연) - 대나무의 짙은 잎이 안개 속에 드리워 있다.
拂雲帶雨(불운대우) - 구름을 쓸고 비를 머금은 대나무.
淡然幽趣(담연유취) - 담담하고 그윽한 정취를 지닌 대나무.
水竹山居(수죽산거) - 맑은 냇물이 흐르고 대숲이 우거진 산속의 생활
修筠抱節(수균포절) - 겉을 닦고 절개를 지닌 대나무.
瀟 臨風(소쇄임풍) - 맑고 깨끗한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水竹淸閒(수죽청한) -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대숲이 우거진 한가한 생활.
煙枝雨葉(연지우엽) - 안개 속에 드리운 가지와 비에 젖은 잎.
雲根玉立(운근옥립) - 구름까지 닿은 옥과 같이 서있는 대나무.
有君子風(유군자풍) - 군자의 풍도를 지닌 대나무.
月影風聲(월영풍성) - 대나무의 달그림자와 맑은 바람소리.
一窓風竹(일창풍죽) - 창문에 비치는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
柔枝帶雨(유지대우) - 어린 가지에 비를 머금었다.
竹裏淸風(죽리청풍) - 대숲에 부는 맑은 바람.
竹林高士(죽림고사) - 속세를 떠나 대숲에서 한가히 지내는 선비.
秋聲滿耳(추성만이) - 바람이 대숲에 부니 가을소리 귀에 가득하다.
淸風高節(청풍고절) - 맑은 바람과 높은 절개.
淸風不盡(청풍부진) - 맑은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온다.
淸節凌秋(청절릉추) - 대나무의 맑은 절개가 가을서리를 이겨낸다.
虛心友石(허심우석) - 욕심없는 마음으로 바위를 벗삼은 대나무.
虛心直節(허심직절) - 속이 비고 마디가 곧은 대나무.
廻風帶雨(회풍대우) - 바람에 흔들리고 비를 머금은 대나무.
<5∼6자>
萬竹引淸風(만죽인청풍) - 많은 대나무에 맑은 바람이 인다.
竹靑風自薰(죽청풍자훈) - 대나무가 푸르니 바람이 절로 향기롭다.
無竹使人俗(무죽사인속) -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의 마음이 속된다.
歲寒誰似此君(세한수사차군) - 추운 겨울에 누가 대나무처럼 절개를 지키랴.
確守堅貞之節(확수견정지절) - 굳은 절개를 지키는 대나무.
<7자>
江南煙雨竹枝低(강남연우죽지저) - 강남의 안개와 비에 가지가 늘어진 대나무.
綠竹高松無俗塵(녹죽고송무속진) - 푸른 대나무와 늙은 소나무는 속세의 티끌을 묻지 않았구나.
修竹無心亦有情(수죽무심역유정) - 대나무는 속이 비었지만 청을 가지고 있다.
山間古竹引人淸(산간고죽인인청) - 산속의 늙은 대나무 사람의 맑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寒梅修竹共風流(한매수죽공풍류) - 추위 속에 핀 매화와 대나무는 함께 풍류를 지니고 있다.
<8자이상>
明月直入淸風徐來(명월직입청풍서래) - 밝은 달빛은 곧게 들어오고,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온다.
風淸雲靜山高水長(풍청운정산고수장) - 바람음 맑고 고요한데, 산은 높고 물은 길게 흐른다.
貞而不剛柔而不屈(정이불강유이불굴) - 곧되 강하지 않고 부드럽되 비굴하지 않은 대나무.
四壁淸風一輪明月(사벽청풍일륜명월) - 사방에서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엔 둥근 달이 밝게 비춘다.
高節人相重貞心世所知(고절인상중정심세소지) - 대나무의 높은 절개는 사람마다 중히 여기고, 그 마음은 세상이 다 아는 바다.
雨洗娟娟淨風吹細細香(우세연연정풍취세세향) - 비에 씻기니 대나무 깨끗하고, 바람이 부니 가지마다 향기롭다.
林深禽鳥樂塵遠竹松淸(임심금조락진원죽송청) - 숲이 깊으니 새들이 즐거워하고, 속세가 머니 대나무와 소나무가 더욱 맑다.
庭前有月松無影欄外無風竹有聲(정전유월송무영란외무풍죽유성) - 뜰 앞에 달이 밝되 소나무엔 그림자 없고, 난간 밖에 바람이 없으되 대나무에 바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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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이란?
낙관이란 '낙성관식'의 준말로 '관서'라고도 한다. 동양예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조형세계로 작품을 완성하고 화제를 쓰고 아호, 성명, 연원일 등을 쓰고 도장을 찍는 일 모두를 말한다.
낙관은 그린 사람이 누구이고 언제 어느날에 그렸고 왜 그렸느냐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명기이다. 낙관은 화명의 조형, 즉 구도의 일부로 화제의 내용이나 서체는 물론이요 도장의 위치, 크기, 모양 등이 그림과 어울려야 한다. 또 낙관에는 작품을 만든 동기나 작품을 만든 장소, 칭찬하는 글이나 축사를 적기도 하고 남이나 선배의 작품을 모방했을 때에는 반드시 원 그림의 작가 이름이나 호, 서재 등을 쓰는 것이 예의요 상식이다.
■호의 표시법
▶예로부터 문인들은 모두 '별호'를 가지고 있어서 이름 대신 호를 주로 사용하였다. 호는 일반적으로 스승이나 선배가 지어주는 것이 통례이며, 당호나 서재는 자기 스스로 지어 쓰기도 하였다. 호는 이름과 달리 좋은 문장이나 , 자연물, 사는 곳, 산 이름, 사람의 성격 등을 고려해서 짓는다. 또 아호(남의 호를 높여서 부르는 말) 밑에다 山人, 散人, 道人, 主人, 老人, 翁, , 居士, 逸士, 退仕, 布衣 등을 쓰는데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山人 - 속세를 떠나 산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 人 과 山자를 합하면 신선 仙字가 된다). 그런데 원래 정한 '호' 이외에 자(문구)에다 山人 두 자를 합쳐서 호나의 '호'로 쓰 기도 한다.
散人 -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뜻한다.
道人 - 학문과 예술의 한 분야에 정진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主人 - 대개 '당호' 또는 산 이름 밑에 붙여서 쓰는 것으로 그 집, 또는 그 산의 주인격이란 뜻이다.
老人 - 다 늙은이란 뜻으로 '老人'은 호 밑에 쓰고 '노'는 호 밑에 혹은 위에 쓰기도 한다.
翁 - 老人과 같은 뜻으로 늙은이란 뜻이다. '호'나 나이 밑에 쓴다.
居士, 逸士, 退仕 - 속세를 떠나 조용한 초야나 심산, 절에 들어가 도를 닦는 선비를 뜻한다.
布衣 - 속세를 떠나 초야에 살면서 도를 닦는 야인이란 뜻이다.
■당호의 표시법
'당호'는 '석號', '屋號' 라고 하나 당호가 보편적으로 널리 쓰인다. 이 당호는 작가 자신의 호와는 달리 사는 집 또는 작업실 등을 말한다. 당호의 내용은 그 작가의 취미 생활 또는 스승들과의 관계를 내용으로 한다. 堂, 山房, 제, 書屋, 軒, 亭, 盧, 閣, 樓, 사, 室을 붙인다.
■도장찍는 법
▶글씨나 그림은 호나 성명을 쓰고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음으로써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림에 찍는 도장을 인장 또는 도서라 하며 일반적으로 "낙관을 찍는다"고 말한다. 도장은 대체로 전서를 택하여 성명은 음각으로 새기고 호는 양각으로 새기는 것이 보통이다.
도장에 붉은 인주를 묻혀 글씨나 글씨에 찍는 일은 동양의 서·화 예술에서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며 작품의 내용을 증명하고 믿게 하는 동시에 장식적인 면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전각은 스스로 파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좋은 인재를 구입하여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글씨나 그림에 쓰이는 인장의 종류에는 '성명인'과 '호인'이 있고 좋은 문구를 새긴 '수인'과 '유인'이 있으며 '감상인'이 있다.
▶'성명인'은 정사각형으로 하되 이름은 음각으로 새겨서 찍으면 백문이 나오게 하고 '호인'은 양각으로 새겨 찍으면 주문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낙관을 쓸 때는 호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성명을 쓰지만 도장은 성명인(백문)을 먼저 찍고 호인(주문)을 다음에 찍는 것이 하나의 습관상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수인'은 화제를 쓴 오른편 머리 쪽에 찍는 인장으로 그 모양은 장방형 또는 타원형 등이 있다. 여기에 새겨 쓰는 문구는 2자·4자 정도가 적당하고 음각이나 양각 모두 다 쓸 수 있다.
▶'유인'이란 말 그대로 자유로 화면의 적당한 곳을 찾아 찍는 도장을 말한다. 글씨에서는 대개 오른쪽 중간에 찍지만 그림에서는 대개 화제를 쓴 반대쪽 구석에 찍는다. 유인은 주로 양각으로 새겨 성명인. 호인보다는 조금 큰 도장을 찍으며 문구내용은 건강과 축복의 내용을 담는다.
▶인주는 일반적으로 붉은색이나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대체로 그림에 적당한 인주는 붉은색 보다는 약간 주황빛이 나며 투명한 인주가 수묵과 잘 어울린다. 인주를 묻혀 도장을 찍고 나면 도장에 묻은 인주를 깨끗이 닦고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 보관한다. 도장은 돌에 새기는 만큼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깨지기 쉽다.
▶도장을 찍는 요령은 우선 도장에 고르게 인주를 묻힌 다음 화선지를 서너 장 접어 반드시 편 위에 그림을 올려놓고 나무로 된 직각자를 대고 정신을 집중하여 천천히 눌러간다. 만약, 인주가 선명하지 않을 때는(이때 직각자를 반듯이 고정해서 한다) 다시 인주를 묻혀 두 번 찍는다. 금방 찍은 인주는 젖어 있으므로 화선지를 그 위에 얹어 인주가 그림에 묻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축하의 표시법
▶글씨나 그림을 남의 경사를 축하하는 뜻에서 선물하는 것은 동양의 좋은 미풍양속중의 하나이다.
생일, 환갑, 결혼 등에 글씨나 그림을 선물하는 경우 경사에 맞는 글귀나 내용을 담은 그림을 그린다.
● 결혼의 경우에는 축하하는 뜻에서 부귀를 표시하는 모란과 자식을 비는 의미에서 포도, 비파, 석류 등을 그리고 '富貴多福'이라 쓰고 '祝○○仁兄華婚', '祝○○仁弟燕吉之慶'이라 쓴다.
●환갑의 경우에는 동양의 60갑자에 다시 돌아오는 61회째 생일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부귀를 표시하는 모란, 장수를 비는 수선, 소나무, 복숭아, 평안함을 표시하는 대나무와 자손의 다복과 번영을 표시하는 석류, 포도, 비파 등을 그리고 '富貴長壽'.'富貴萬年'이라 쓰고 '祝○○先生六十一壽','○○先生華甲之 '라 쓴다.
●생일의 경우에는 어린이보다 대개 어른에게 많이 선물하는데 칠순이 경우에는 稀壽, 팔순인 경우에는 壽, 구순인 경우에는 壽라 쓴다. '祝○○先生古稀','賀○○先生壽宴'이라 쓴다.
▶나이나 존칭, 부탁을 받았을 때 표시법
15살 志學 30살 而立 40살 不惑 50살 知名 60살 耳順 70살 從心이라 칭한다.
예순을 바라봄을 望六, 일흔을 바라봄을 望七, 여든을 바라봄을 望八, 아흔을 바라봄을 望九, 백 살을 바라봄을 望百이라 한다.
남자의 존칭에는 일반적으로 先生이라 하고 여자의 존칭에는 女史, 女士라 쓴다.
친구나 친지·후배에 대한 존칭으로 仁兄, 大兄, 尊兄, 學兄이라 하고 대 상사, 詞伯은 지식있는 친구를 부르는 말이다. 친근한 후배나 제자를 칭할때는 賢弟, 仁弟라 쓴다.
그림이나 글씨를 부탁받아 써 줄 때에는 囑, 모囑, 囑書, 囑寫라 하고, 잘 감상해 달라는 말로 뭔賞, 뭔監, 淸賞이라 쓴다. 그리다의 표시에는 書, 寫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고 塗,製, 弄筆, 戱作, 墨戱, 潑墨등이 쓰인다.
또 그림을 감상하고 바로 잡아달라는 겸손한 뜻으로 囑正, 뭔正, 法正등을 쓰기도 한다.
■연월일을 쓰는 법
연월일을 쓰는법
글씨나 그림을 그리고, 연기를 표시하는 방법에는 일반적으로 음력의 간지, 즉 십간 십이지
(육십갑자)를 쓰고 , 월을 기록하는 데는 정월, 경칩등 계절을 칭하는 말을 쓰고, 일을 나타내는 데는 삭·망·후일 등을 쓴다. 간지의 칭호는 다 아는 것처럼 다음 표와 같고 60년마다 되풀이 된다.
■육십갑자
甲子(갑자) 乙丑(을축) 丙寅(병인) 丁卯(정묘) 戊辰(무진) 己巳(기사)
庚午(경오) 辛未(신미) 壬申(임신) 癸酉(계유) 甲戌(갑술) 乙亥(을해)
丙子(병자) 丁丑(정축) 戊寅(무인) 己卯(기묘) 庚辰(경진) 辛巳(신사)
壬午(임오) 癸未(계미) 甲申(갑신) 乙酉(을유) 丙戌(병술) 丁亥(정혜)
戊子(무자) 己丑(기축) 庚寅(경인) 辛卯(신묘) 壬辰(임진) 癸巳(계사)
甲午(갑오) 乙未(을미) 丙申(병신) 丁酉(정유) 戊戌(무술) 己亥(기해)
庚子(경자) 辛丑(신축) 壬寅(임인) 癸卯(계묘) 甲辰(갑진) 乙巳(을사)
丙午(병오) 丁未(정미) 戊申(무신) 己酉(기유) 庚戌(경술) 辛亥(신해)
壬子(임자) 癸丑(계축) 甲寅(갑인) 乙卯(을묘) 丙辰(병진) 丁巳(정사)
戊午(무오) 己未(기미) 庚申(경신) 辛酉(신유) 壬戌(임술) 癸亥(계해)
■계절을 나타내는 법
월(계절)을 나타내는 법
1월 正月(정월) 肇春(조춘) 初春(초춘) 孟春(맹춘) 諏月(추월) 新春(신춘) 上春(상춘) 端月(단월) 王月(왕월) 寅月(인월)
2월 仲春(중춘) 如月(여월) 夾鐘(협종) 仲陽(중양) 令月(영월)
3월 季春(계춘) 月(병월) 고선(고선) 暮春(모춘)
4월 肇夏(조하) 餘月(여월) 仲呂(중려) 孟夏(맹하) 初夏(초하)
5월 仲夏(중하) 皐月(고월) 榴月(유월) 蒲月(포월)
6월 季夏(계하) 且月(차월) 林鐘(임종) 晩夏(만하) 秒月(초월) 荷月(하월)
7월 肇秋(조추) 相月(상월) 孟秋(맹추) 上秋(상추) 初秋(초추) 瓜月(과월) 蘭月(난월) 新秋(신추)
8월 仲秋(중추) 壯月(장월) 桂月(계월) 葉月(엽월) 酉月(유월) 南呂(남려) 仲商(중상)
9월 季秋(계추) 玄月(현월) 晩秋(만추) 暮秋(모추) 菊月(국월) 季商(계상) 初秋(초추) 窮秋(궁추)
10월 肇冬(조동) 陽月(양월) 應鐘(응종) 良月(양월) 初冬(초동) 亥月(해월) 孟冬(맹동)
11월 仲冬(중동) 黃鐘(황종) 晩冬(만동) 月(가월) 霜月(상월) 皐月(고월)
12월 季冬(계동) 月(도월) 大呂(대려) 晩冬(만동) 季月(계월) 暮冬(모동) 極月(극월) 窮冬(궁동)
날을 표시하는 법은 一日, 二日 , 三日 등 숫자로 표기하고 절기에 前後몇일이 라쓴다
예를 들면 立春後三日, 雨水後日이라 쓴다.
절기는 음력의 절기명을 사용한다. 날을 쓸 때 필요하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봄 立春(입춘) 雨水(우수) 驚蟄(경칩) 春分(춘분) 淸明(청명) 穀雨(곡우)
여름 立夏(입하) 小滿(소만) 芒種(망종) 夏至(하지) 小暑(소서) 大暑(대서)
가을 立秋(입추) 處暑(처서) 白露(백로) 秋分(추분) 寒露(한로) 霜降(상강)
겨울 立冬(입동) 小雪(소설) 大雪(대설) 冬至(동지) 小寒(소한) 大寒(대한)
절기명을 반드시 써야하는 것을 아니다. 종종 절기에 알맞게 간단히 표기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初春(초춘), 春月(춘월), 夏日(하일), 孟夏(맹하), 秋日(추일), 仲秋(중추), 初冬(초동), 冬月(동월)이라 쓴다. 이밖에 吉日(길일), 初日, 春日, 夏日, 秋日, 冬日이라 일을 표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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