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고양이 울음소리 외 2편
권재효
누가 부르는고나
저리도 간절하게 부르는고나
지상 가득히 네 자손을 번창케 하리니
아아, 하느님의 역사하심이로구나
역사하심이로구나
어둠 속 그림자 하나 재빠르게
담을 넘고 있다
술 먹게 하는 봄밤
──목련 혹은 벚꽃
빌어먹을! 술이나 먹어야겠다
그렇게 서둘러 갈 양이면
화사하게 피어나지나 말 것이지
불꽃처럼 타오르지나 말 것이지
산지천 부둣가
주근깨 다닥다닥난 숏타임 그 여자처럼
이게 뭐냐?
맘속 들어서자 마자
치마 내리고 넌 떠날 채비 하는구나
나풀 나풀
떠나가는 너
다시 일년 뒤를 기약하라니
난 뭐냐? 이 봄밤을 어이하란 말이냐?
노시인老詩人 방문기
암병동 503호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과 그를
배웅하려는 사람들
머리가 몹시 빠진 그는
가을하늘 닮은 눈빛으로
나를 맞는다
“문학을 사랑하다 간
괜찮은 선배였노라 기억해 주게.”
그가 손을 내민다
아직은 따스한
가보고 싶어하던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마지막 시집을 상재한 뒤
여한도 아무 것도 없이
귀천을 준비하는 그
시집 한 권을 조용히 내민다
“마지막 선물이구먼”
서명을 하는 그의 손끝엔
아직 기백이 남아있다
뎅그렁 뎅그렁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
<시인수첩>
생명과 죽음
벚꽃 지는 밤이다. 철이 덜 든 탓인지 괜히 센티멘틀해진다. 소주잔을 기울인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화사함과 열정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 꽃이 져야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식물공부를 한답시고 산과 들을 쏘다녔다. 산에는 화사한 산벚꽃과 산목련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루, 이틀 뒤 그 자리에 다시 가보면 이미 꽃들은 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감상에 젖곤 했는데 누구나 다 그런 것인지 나만의 고질병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짧은 아름다움, 혹은 청춘은 늘 아쉬움과 허무로 귀결되면서 나로 하여금 봄밤에 소주잔을 기울이게 만든다.
꽃들을 관찰하면서 새삼 생명의 신비로움을 깨닫기도 한다. 식물의 꽃은 나름대로 치열한 삶의 과정이요, 방편이다. 복수초는 음지식물인데 겨울철 숲속 눈 속에서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렇게 빨리 꽃을 피우는 것은 나무들이 잎으로 무성하여 햇빛을 가리기 전에 씨앗을 만들려는 생존전략이다. 숲이 나뭇잎으로 무성하려면 5월을 넘겨야 하는데 그 사이 씨앗을 만들어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다. 변산바람꽃이나 노루귀도 숲속에서 자라는 식물로 일찍 피는 꽃들이다.
천남성은 독이 있는 풀로 꽃이 그다지 예쁜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향기가 짙은 것도 아니다. 당연히 벌과 나비들이 찾지 않아 수정을 하지 못 할 것 같은데, 이것은 또 나름대로 방편을 마련해두고 있다. 천남성의 꽃은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속이 미끄럽다. 곤충들이 호기심에 그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가 미끄러워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사이 수정이 된다. 독이 있는 풀답게 수정방법 또한 악랄하다고나 할까. 길가에 많이 나는 질경이는 사람이나 짐승이 밟아도 꿋꿋이 되살아난다. 생명이 질기다고 해서 질경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질경이를 사람이나 짐승이 잘 다니는 길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씨앗에 끈적끈적한 액이 묻어있어 이것이 사람의 신발이나 짐승의 발, 혹은 우마차 바퀴에 묻어 씨를 퍼뜨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족번식의 방법이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에 생명의 위협을 가하면 그 나무는 때가 아닌데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종족을 퍼뜨리려는 본능의 발로다. 그러고 보면 꽃은 식물의 가장 왕성한 생명력의 표현인 동시에 그것은 또 죽음을 대비한 자구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개체가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2세, 3세가 남는다면 결과적으로 생명은 영원한 것이 아니겠는가? 삶과 죽음은 하나의 선상에 놓여있는 것 같다는 생각. 여기서 태어나니 저기서 죽는 것이다.
연전에 선배 시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병동에 가서 야윈 그의 손을 잡으며, 그가 내미는 마지막 시집을 받았다. 슬프지만은 않은 묘한 느낌이었다. 죽음이 있기에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기에 죽음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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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효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제주 교육대학을 졸업했다. 1995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고 시집 『대금산조』가 있다. 현재 제주홍사단 대표로 있으며 활발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