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양국이 용산 미군기지의 완전 한강 이남 이전에 합의함에 따라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용산기지가 오랜 세월 지속돼 온
외국군 주둔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용산 미군기지 안에는 과거 외국군대가 주둔했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용산 미군의 지휘시설이 있는 메인 포스트(Main Post) 안에 있는
한 붉은 벽돌 건물이 대표적인 흔적.
이 건물은 일본군이 군마(軍馬)를 키우던 건물이었다.
용산기지 내 야산의 이름이 둔지산(屯之山)인 것도 바로
외국군이 주둔한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용산은 한강을 통해 상륙하기 쉽고 남산과도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서울로 진입한 외국군이 군대를 주둔시키는 장소로 활용해 왔다.
고려 말 한반도를 침입한 몽고군이 용산지역을 병참기지로 활용한 것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각각
원효로 4가와 청파동 일대에 진을 쳤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에는 흥선대원군을 자국으로 납치한
청나라 오장경(吳長慶)부대가 주둔했다.
일제의 조선군사령부가 이 터에 자리잡은 이후 둔지산을 왜둔산(倭屯山) 또는
외둔산(外屯山)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그 남쪽에 병영이 있다 해 남영동(南營洞)이라는 땅이름도 생겨났다.
광복 후에는 육군본부(지금의 전쟁기념관)와 국방부,
그리고 유엔군사령부가 이 둔지산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자리잡았다.
1955년 일본 동경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유엔군사령부·주한미군사령부의 본거지가 됐으며,
1978년부터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이곳에 창설되면서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다.
용산기지는 총 78만 평 규모로 북쪽에는 제5문(Gate 5)을 지나
주한미군사령부·제8군사령부·한미연합군사령부가 있는 메인 포스트가,
남쪽으로는 주한미군의 주거시설과 외국인학교·드래곤 힐 호텔 등이 있다.
사우스 포스트(South Post)의 8만 평 규모의 골프장은
용산기지 이전계획에 따라 1991년 한국 측에 반환,
용산가족공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현재 국립박물관이 건설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