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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28 한배달에서 맛보기 강의를 했던 장수환씨(77세)의 강의 자료입니다.
<표지>
우리글 정음을 똑똑히 이해하자 장수환
내가 이해한 훈민정음
- 음성학적 조명 -
正音不止惠我-方, 而可以爲天下聲音大典也, 然而聖人製作之意, 至微且深,
當時儒臣解之未盡, 後世百姓日用不知. - (訓民正音圖解敍) 申辯潛
"정음은 우리나라에만 혜택 되는 것이 않(不)이라 가히 천하의 음성대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왕의 제작한 뜻이 지극히 정밀오묘하고, 깊어서 당시의 유신들이 풀이를 다 하지 못하여 후세에 백성들이 쓰는데 모를 것이 있다.“
訓民正音 圖解에서 장수환 역
<내용>
우리글 사랑 50여 성상
한글맞춤법에 의한 뜻글들은 많습니다.
"맑(淸)", "밝(明)", "音(老)", "젊(少)", "붉(赤)", "짚(支)", "많(多)", "않(不)", "넘(越), 등은 어간이기에 언제나 변함이 없이 그대로이고, 밑에 붙는 어미와 조사 게, 고, 다, 아, 어, 은, 을 등 활용어가 다름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배웠기에, 어간이란 "말의 줄거리"로 뜻글이고, 밥ㆍ죽ㆍ국ㆍ장ㆍ초ㆍ솥ㆍ꽃ㆍ논ㆍ밭ㆍ들ㆍ강ㆍ산ㆍ집 따위는 명사인데, 한 글자로 된 어간과 명사는 체언으로 모두 뜻글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정리해 본 결과는 뜻글이 600개도 넘었는데 음의 장단을 구분하게 한다면 더욱 많은 뜻글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뜻글인 한문자 기억하듯 기억하고 있었기에 많은 어려운 철자도 정확히 쓸 수가 있었으며, 한문보다는 쓰기와 기억하는 것이 훨씬 우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들은 세종성왕께서 지은 정음은 28자라 온갖 소리를 다 적을 수 있었는데 연산폭군이 정음 책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국민들에게 배우지 못하게 어명을 내려 수백 년을 쓰지 않고 버려졌기에 네 글자를 잃어버리고 없어 한글은 외국어발음을 다 적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중국어에만 해도 한글로 못 적을 것이 10여 개나 되지만 그 네 글자가 있어도 다는 적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 네 글자 때문이 않(不)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중국어 선생을 중국인이 맡아야 정확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1948년부터 중국인을 초빙하여 썼는데 발음 지도를 잘 들어보니 한글로는 두 개의 음절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發자를 "파하"로, 권설음 zh, ch, sh, r를 "즈으", "츠으", "스으", "르으" 연이음 표로 묶어서 함께 연이어 읽어서 발음이 정확함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글과 중국어 발음 문제를 50년간이나 연구하느라고 학교를 나온 후에는 집에서 탈출하여 임업국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하여 중국말도 배우고 정확한 발음을 요해하며 3년간 있다가 가친께서 찾아와 ‘천하지 대본은 농사’라는 주장을 하는 바람에 끌려나와 농촌에서는 중국인의 마을에서 수전 기술원으로 있었는데, 여유시간이 많아서 중학교 교장의 곁방살이로 있으면서 중화사전을 갖고 지도를 받으며 자학자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직업변동부터 하려고 사진기술 책을 사 가지고 자습을 했는데, 당시에 한글 기술 책은 없었기에 중국 책을 사서 학습했기에 중국 글을 배우는 데도 유리했고, 4성음을 정확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사 가지고 찍고, 씻는 기술을 60년대 초에 다 배웠으나 농민은 직업변동을 할 수 없는 공산권 정책 때문에 실패하고, 다시 중국의학 서적을 사서 자습하였는데 중국 글도 옛날 문장은 현대-말로 번역한 것을 많이 보았기에 도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70년대 초에는 초급 중의 시험을 쳐서 합격하였으나 만성기관지염으로 기침을 해서 의사노릇을 할 수 없었지만 수입 없는 공짜 침술을 단련할 수는 있었고, 약간의 선물식 수입을 보면서 계속 의서를 학습하였기에 중국 글을 많이 배울 수가 있었고, 그래서 오늘날 [正音解例]도 이해할 수 있고, 중국어 능력도 많은 발전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자는 눈은 색맹이지만 귀는 선천적으로 기능이 있었다는 것은 일제 때 일본어 발음을 잘 이해하고 力"행 발음을 잘 하여 칭찬을 받은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학생들이 그 발음을 잘 할 수 없어서 욕을 먹었지만 발음이 좋다고 일본 선생에게 칭찬을 받았으니까 말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그 발음을 잘 할 수 없어서 동경대지진 때에 그 복세 판에서 불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면서 조선인을 모조리 죽이라는 령이 내려졌을 때에 일본에 가서 오래 된 사람은 일본인 복장을 해서 찾아내기가 어렵게 되자 줄을 세워놓고 번호를 불러서 5번 발음을 듣고 찾아냈다고 합니다.
일본말 5번이 바로 그런 음이기 때문에 번호를 부르게 하여 5번에 걸리면 잡아냈다는 것인데 필자는 그 발음을 잘 해서 칭찬을 받았고, 1944년에 중국에 간 필자는 3년 만에 10여 년씩 살아온 사람들보다 중국어 發자 발음을 한글로 적어서 정확함을 인정받았으며 그 외의 발음도 한글 받침 아래에서 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글로 적어서 정확한 발음이라는 것을 인정받았습니다.
우리글의 이름에 대하여
우리글의 이름은 많습니다. 세종성왕께서 지은 이름은 正音이고, "백성을 가르치고 깨우친다. "는 성왕의 고상한 애민정신을 나타내는 訓民을 붙여서 訓民正音이라 하였는데, 성왕께서 악마의 병환으로 인하여 그의 고상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너무 일찍 돌아가셨기에 연산폭군에 의해 매장되었고, 서민 애호자(주로 여자)들이 몰래 안방에서 배워서 편지나 써 왔기에 "여자 글", "안방 글", “諺文(쌍글)”이라 불렸습니다. 이런 이름은 모두 한문학자들이 멸시하여 이른 이름이며, 한글이란 이름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학자들을 시켜서 정리한 후에 정식으로 국가의 글로 인정하여 ‘대한민국의 글’이라는 말의 약칭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글은 정음과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아 정음과는 다른 글입니다.
正音이란 한문에 정통하신 세종성왕께서 소리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서로 다른 소리의 기본요소를 찾은 때문에 "소리의 기본요소"라는 뜻글로 지어진 이름이고, 정색과 통하는 이름으로 정색 다섯 가지로 온갖 색깔을 조화하듯이 정음 스물여덟 개로는 모든 소리를 이룰 수 있다는 과학적인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어 학습과 한글 연구에 힘을 쓰게 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정음을 "바른 소리"라고 하는데 우리말에는 "바른 소리를 하면 듣기 싫어한다."는 말이 있으니 이해할 수 없어 자전을 찾아보니 “正”자에 대해 학생용 中華字典에는 일곱 가지로 설명한 다섯 번째로 "純粹 不雜"이라고 되어 있고, 現代漢語詞典에는 열여덟 가지로 설명한 일곱 번째로 “色, 味 等 純正 不雜”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는 소리의 순수한 기본요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우리나라 옥편에는 ‘순수한’의 뜻은 밝힌 것이 없습니다.
또 正色은 指靑, 赤, 黃, 黑, 白 等 五種 純正的 顔色이라고 되어 있고,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도 이와 같은 뜻으로 "푸른(靑)색, 붉은(赤)색, 누른(黃)색, 검은(黑)색, 흰(白)색 등 다섯 가지의 순수한 기본색을 이르는 것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正자의 뜻과 正色의 뜻으로 미루어 보아서 정음은 "소리의 순수한 기본요소"라고 보아야 하고, 성왕께서는 한문에 정통하셨기에 ‘정음’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을 필자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정색 다섯 가지로 유명한 화가는 자연의 온갖 색을 나타내듯이 정음 28자로는 온갖 소리를 적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정음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확신하는 것은, 연구란 알려진 사실을 갖고 추리하여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알아내는 것이므로, 뜻글로 추리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학자들은 정색을 추리적으로라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음의 이러한 깊은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訓民正音 보서(寶書)를 얻었습니다
1996년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 한국에 와서 한글에 대한 좋은 자료를 얻어 보려고 헤매던 중에 한글학회를 방문하고 많은 책자를 기증받았는데, 그 가운데 訓民正音이란 한문 글로 쓴 책자를 발견하고 서투른 한문지식으로도 한글과는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였고, 한글 터득으로 적어온 외국어표기가 정음 정신에 맞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유관 부문에 유관인원들과 말해도 믿지 않았고, 제마다 만능 글을 만드느라고 기호문자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더 정음을 밝히는 데 힘을 써오면서 노트북을 사서 글도 쓰면서 정음해례를 갖고 연구했습니다.
정음해례 2쪽에서
또 ㄴ而ㄷ, ㄷ而ㅌ, ㅁ而ㅂ, ㅂ而ㅍ, ㅅ而ㅈ, ㅈ而ㅊ, ㅇ而ㅎ, ㅎ而ㅎ, 其因聲加劃之義皆同,而唯ㅇ爲異, 半舌音ㄹ, 半齒音ㅅ,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無加劃之義焉이라고 했으니
아음은 혀뿌리가 막고 있는 혀의 모양 1급 ㄱ+1+1=입김 3급 ㅋ
'ㅇ'은 별도로 목구멍에서 소리기운이 코로 나가는 방향을 제시함
설음은 혀끝이 위턱에 붙은 혀의 모양 ㄴ+1=ㄷ+1=입김 3급 ㅌ
순음은 상하 두 입술이 붙은 입口 모양 ㅁ+1=ㅂ+1=입김 3급 ㅍ
치음은 아래 이 란 개로 한 이의 1급 ㅅ+l=ㅈ+1=입김 3급 ㅊ
후음은 입,ㄹ 벌린 목구멍의 모양 0급 ㅇ+1=ㅎ+l=1 입김이면 ㅎ이 됩니다.
이와 같은 입김의 급수를 따진 것은 필자가 정한 것이지만 우리글의 입김의 차이로 같은 부위에서 서로 다른 글꼴을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세종성왕께서는 우리말이 가장 위대한 말이라고 알았기 때문에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을 배운 학자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사정을 글로 제대로 써 낼 수 없는 상소문을 많이 봐 오면서 글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말을 다 적을 수 없는 한문보다 온갖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글이 있어야 할 중요성을 절실히 느껴 우리글을 창제하게 된 것“입니다.
정음 첫 머리에 쓴 세종성왕의 짧은 글;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子, 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라고 한 것입니다.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문자(한문)와 서로 잘 통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민(글을 배운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사정을 다 펴낼 수 없는 자가 많아 이 때문에 짐이 가엾게 여기고,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익히기가 쉬워서 일상생활에서 쓰기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정음해례 52쪽에서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以通萬物之情, 以載三寸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盖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語以通其用, 是猶柄鑿之??也, 豈能達而無?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라고 했으니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니 원칙적으로 반드시 자연의 글이 있어야 하기에 옛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을 만들어 만물의 사정을 통하려고 삼재의 이치를 실었으나 후세에 쉽지 않은 것은 사방의 풍토구별이 있어 소리 역시 달라 대개 중국의 말은 소리가 있으나 그 글이 없으니 중국의 글을 빌어다 그런 소리를 통하게 하려고 하니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맞추기와 같은데 어찌 막힘이 없이 능히 통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각기 소용되는 곳에 맞게 맞추어 써야지 억지로 같게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한문에 정통하시어 학자들이 맞지도 않는 곳에 억지로 맞추어 쓰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글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성왕께서는 소리를 분석하여 서로 다른 소리의 기본요소를 찾았고, 정음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한문에 정통했기 때문인데, 집현전학자들도 뜻글로 써 준 정음해례(正音解例)를 다 풀이하지 못했고, 역대에 어느 학자도 정음의 참뜻을 모른 채 일반적으로는 "바른 소리"라고 했고, [국어사전]에는 "한자의 원래의 바른 음"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에 필자는 ‘정음’은 절대 한문을 분석한 것이 않(不)이고, 음을 분석한 것을 알리기 위해서 당시에 유일한 글로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까닭을 말하면 ‘ㆁ’의 소리가 業자의 처음 펴내는 소리라고 했으니 버려진 것이지만 필자는 잘 알 수 있는 것이 중학시절에 우리말 "방아"에서 "아"는 “凉”와 같은 음임을 알고, "ㆀㅏ"로 표기하여 왔듯이 우리글 'ㅇ'받침 아래에 자음 'ㆁ'과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변이음으로 표기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린데 이런 음성학도 모른 채 학자들마저 "세종성왕 이전에도 정음이 있었다."고 하는 이가 있는데 정음해례에서 "字倣古篆"이라고 밝혀 놓은 것은 "글자는 옛 神篆을 모방했다"고 한 것으로 그 전부터 있던 글꼴만 모방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성음인 중심소리 앞에 붙어야 함께 소리가 이루어지고, 유성음 뒤에서는 멎어서는 멎는 소리로 되기 때문에 두 가지의 작용을 하기에 두 가지의 이름을 갖는 글이라 'ㅣ'와'으'의 기초 글에 한 개의 글을 'ㅣ' 앞에 붙여서 "기"라 하고, "으" 밑에 붙인 "윽"은 받침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윽"으로 글 이름이 된 것인데 후세에 사람들이 그 이름을 부르면서도 지어진 뜻을 모르고 있기에 제가끔 딴 소리를 하고 있고, ‘기역’으로 이름조차 함부로 고쳤으니 읽기만 불편할 뿐 않(不)이라 기억하기도 불편합니다.
이것은 우리글의 초성과 종성을 쓰는 법과 읽는 법을 알리는 보기입니다.
그리고 [정음해례]에서 특히 감동적으로 느낀 것은 [正音解例] 2쪽에서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初聲凡十七字, 牙音ㄱ 象舌根閉喉之形, 舌音ㄴ 象舌附上顎之形, 脣音ㅁ 象口形, 齒音ㅅ 象象齒形, 喉音ㅇ 象喉形, ㅋ比ㄱ 聲出稍?, 故加?”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은 "정음 28자는 각기 그(발성기관) 모양을 본 따서 글꼴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모음은 동양철학의 하도에 의한 것이고, 초성만은 완전히 발성기관을 본 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正音解例]는 첫 시작부터 동양철학으로 설명하였고, 牙音은 어금니 소리라고 한 것은 오행에 맞추었지만 글꼴 형성에서는 발성기관을 정확히 한 것을 보면 창제초기부터 반대가 심한 한문학자들이 좋아하는 동양철학으로 이론화하여 설득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업(業)자 소리의 처음 시작하는 부분이라고 한 것은 실제 한자의 음이 않(不)인 것으로 "농업"에서 "업"자의 소리로 'ㅇ'받침소리를 내고 혀의 중부가 연구개에 붙어서 나는 소리인 것을 알 수 있으니 완전히 음성학적 분석이지 ‘한자의 본래의 바른 소리’라는 것은 잘못 된 설명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ㄱ'은 혀의 중부가 꺾이어 연구개에 붙어 있는 혀의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했고, 설음 'ㄴ'은 혀끝이 위턱 이 뿌리에 붙어 있는 혀의 모양이며, 순음 'ㅁ'은 두 입술이 붙어 있는 형상을 글꼴로 할 수 없어 두 입술을 붙이고 함구무언의 입을 나타낸 입구(口)자로 한 것이고, 치음'ㅅ'은 아래 이 하나를 본뜬 것이며, 후음 'ㅇ'은 입을 벌리고 있는 상태의 목구멍을 본뜬 것이고, 'ㅋ'은 'ㄱ'보다 소리 남이 더 거세기 때문에 획을 더한 것이라고 했으니 같은 부위에서는 입김의 세기에 따라 가획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네 글자의 음가를 추적
잃어버린 네 글자의 음가가 [正音解例] 속에는 밝혀져 있을 것이라고 확신, 정음해례에서 찾기로 하고 반복적인 수색으로 그 단서를 잡았으니 다음과 같이 밝혀 봅니다.
1) ㆁ, 정음 2쪽에서 "ㆁ, 如業字初發聲", 즉 "'ㆁ'은 '업(業)'자의 처음에 발하는 소리와 같다"고 한 것이니 필자는 일직이 50년대 초 중학교 재학 중에서 "방아"에서 "아"에는 일본글 力"와 같은 음이 나는 것을 알고, "ㆀㅏ"로 표기해 왔었으니 정음 창제 당시에는 "농ㆍ공ㆍ상업"이 위주이기에 'ㅇ'받침 아래에 "업"자 첫 부분은 ‘
그래서 혀의 중부를 연구개에 붙이고, 'ㅏ'를 무기음으로 천천히 떼면서 발음하면 일본글 力"가 되고, 유기음으로 빨리 떼면서 'ㅏ'를 발음하면 "가"가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힘을 주어 혀를 눌러 붙이고 'ㅏ'를 발음하면 "까"가 되고, 거센 입김으로 'ㅏ'를 발음하면 "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ㆁ'은 'ㄱ'과 같은 부위에서 나는 음으로 'ㄱ'은 입김이 좀 있기에 빨리 떼는 음이지만 'ㆁ'은 무기음으로 천천히 떼는 것이 다른 특점이라고 밝혔는데 [우리말본]을 쓴 최현배는 한문 문가로서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국물"을 느리게 잘못 발음하여 변한 “‘궁물’을 닮아서” 라고 했습니다.
또 정음해례 34쪽에 終聲解에서 "홍(洪)字終聲是ㆁ"라고 했으니 'ㆁ'은 모음 뒤에서는 멎어서는 한글의 받침소리와 같은 음인데 또 36쪽에서는 “五音之緩急, 亦各自爲對, 如牙之ㆁ與ㄱ爲對, 而ㆁ促呼則變爲ㄱ而急, ㄱ사出則變爲ㆁ而緩”이라고 했는데 이는 "5음의 느리고, 빠른 것이 서로 대응이 되는데 보기를 들어 아음의 'ㆁ'과 'ㄱ'은 서로 대응이 되어 'ㆁ'을 재촉하여 내면 'ㄱ'으로 변하여 급하고, 'ㄱ'을 천천히 내면 'ㆁ'으로 변하여 느슨해진다."는 말로서, 이 두 음간에는 느리고 빠른 것이 달라 멎을 때에도 'ㄱ'은 빨리 멎어야 하는데 천천히 멎으면'ㆁ'으로 변한다고 한 것입니다.
2) 正音 4쪽에서 “ㆆ, 喉音 如?字初發聲, "'ㆆ'은 ?( ㆆ ???
그래서 [正音解例] 44쪽에서 初聲之ㆆ與ㅇ相似, 於諺可以通用也 라고 한 것을 역시 諺을우리말이라고 생각한 때문인데 이 諺이란 글자는 한자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俗語라고는 해도 그것을 한국말이라고는 하지 않는 글자로 우리나라 옥편에는 ‘상말 언’이라 한 것으로 文이 않(不)인 文의 반대어입니다.
그런데 한문을 뜻글이라고 숭상하는 한문학자들이 한문글로 쓸 수 없는 말이라고 諺語라고해왔지만 諺자 그 자체가 "우리말"은 않(不)인 것은 사실이므로 우리나라 한문학자들만 그것을 우리말이라고 한 것은 자국어를 멸시해도 너무 한 것이고, 중국말보다도 문화적인 우리말을 쌍말로 인정하는 집현전학자들이 ‘愚民’이란 말을 들을 만도 하다 할 것이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세종성왕께서 한문학자들이 써 올린 상소문을 보고 한 말이 ‘愚民’이라면, 당시 한문이해가 이런 정도인 집현전 학자들을 일컫는 말로서 헛된 말이 않(不)입니다.
중국에서 성인(聖人)으로 섬기는 공자도 우리나라를 東洋禮義之國이라고 한 것은 사실인데 그 어느 나라말보다도 예의 바른 말이 우리말이고, 그 어느 나라말보다 예의 바른 말인데 왜 쌍말이란 멸시를 받아야 합니까? 諺語라고 한 것은 한문을 숭상하는 한문학자이고, 諺을 우리말이라 하는 것은 우리말을 한문으로 적을 수 없다고 문화 말이 않(不)이라고 멸시하는 우리나라 한문학자이지 중국에서는 諺語를 한국말이라는 학자가 없고, 俗語라고 하지 한국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한문으로 적을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말에는 받침소리가 다양하게 있고, 말에도 특수하게 많은 음이 있으나 한문에는 그런 말을 적을 수 있는 음이 없기 때문이지 우리말이 나빠서가 않(不)인데 한문을 배웠다고 글 못 배운 백성을 멸시하는 말이 결국은 나라를 무시하고, 백성을 멸시하며, 한문 글을 배웠다고 교오자만 한 태도로 이른 말이 습관화된 말로 이제는 정신 차려야 할 것입니다.
글자가 모자라서 우리말을 다 못 적는 한문을 탓하지 못하고, 우리말을 "쌍말"이라고 한다면 수상어른도 애비도 분별없이 "네, 내"라 하고, 싸울 때에는 애비도 모른 채 "cao? ?", "cao?祖宗"(네 어미도 성폭행하겠다, 네 조상도 성폭행하겠다)라고 하는 쌍말을 퍼붓는 중국말은 한문으로 쓸 수 있으니 문화 말이 되어야 합니까?
그러나 세종성왕께서 병환으로 더는 지탱할 수 없어서 뜻글로 써준 [正音解例]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 고등 한문학자 집현전학자들이라 정음을 망친 것이 집현전학자이고, 오늘날에는 중국에서도 옛 의학서적을 보면 옛 문장을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 있으며, 오늘날 현대인은 한문을 알아도 이해하기 힘든 곳이 많은데 [정음해례]는 옛 문장이라 한족들도 이해하기 힘든 글이라 한국에서도 한문학자들이 풀이를 잘 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지만 해석하는 자세는 바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중국의서를 갖고 자습하면서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 실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簡略字(幹과 乾을 干으로 통용한)를 배운 젊은 학자들은 제대로 볼 수도 없음은 사실이고, 중국의 학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 필자가 중국인들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것이 있었지만 옥편을 사서 찾아봐도 없는 글이 있었을 뿐만 않(不)이라 어렵게 풀이한 것이지만 번역은 아래 위의 말이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그 실례로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를 "우리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와 서로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사정을 제대로 써 내지 못하는 이가 많다"고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愚民을 "어린 백성" 또는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했다면 "어리석은"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말이 달라서 잘 통하지 않는’ 것과 ‘어리석은 사람’과 무슨 관련이 있으며, ‘글을 배우지 않은 백성’이 ‘말이 달라서 적어내지 못 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중국 글 한문과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글을 배우지 않은 백성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사정을 글로 써 낼 수 없는 자가 많다"고 한 이성구의 번역은 "글이 없는 나라의 백성과 글이 있어도 글을 배우지 못한 백성도 우민이라 할 수는 있지만 우리말과 달라서 중국 글인 문자로는 써 낼 수 없는데 어찌 ‘글을 배우지 않은 백성’이라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1880년대에 학자인 신경준 선생은 [訓民正音 圖解]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글로 “正音不止惠我一方, 而可以爲天下聲音大典也, 聖人制作之意至微且深當時儒臣解而不盡後世百姓日用不知(정음은 우리나라 한 곳에만 은혜로운 것이 않(不)이라 천하(세계)음성대전이 될 수 있다. 성인의 지은 뜻이 지극히 정밀하고, 깊어서 당시의 유신(집현전학자)들이 풀이를 다 하지 못하여 후세에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데 모를 것이 있있다)”라고 밝히어 놓았으니 그의 저서에는 다 밝혀져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음가 설명을 뒤이어 凡字必合而成音(모든 글은 반드시 합해서야 소리를 이룰 수 있다)고 밝혀 놓았으니 정음의 초성은 완전히 무성의 준비동작에 지나지 않는 소리는 없는 발성기관을 본뜬 것으로, 중성(소리의 중심으로 소리를 갖고 있는 유성음이지만 그 어떤 소리를 내라는 지시가 없이는 그 어떤 소리도 낼 수 없는 무성음과 같은 것)과 합해지면서 낼 소리를 지시해주어 소리가 나게 되는데, 이 중성 중 ‘ㅑ’에 대해 최현배는 'ㅑ'를 길게 내면 끝에는 'ㅏ'가 남기에 복모음이라 했고, 국어연구원에서는 이중모음이라고 하여 정음을 수정하는 짓을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ㅑ ㅕ ㅛ ㅠ’는 복모음이나 이중모음이 아니라 우리 글과 러시아글에만 있는 연모음입니다.
中聲을 "가운데소리"라고 했는데 가운데 소리라면 집현전 학자들이 쓴 世셍 宗종 御엉 制젱訓훈 民민 正정 音흠이라고 쓴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정음해례 35쪽 끝에서 且ㅇ聲淡而虛, 不必用於終, 而中聲可得成音也라고 한 것은 "또 'ㅇ'은 소리가 희미하고, 허약해서 멎는 소리로 쓸 필요가 없이 중성으로 소리를 이를 수 있다"고 한 것을 종성은 끝소리로 알기 때문에 끝소리로 붙여놓고, 중성으로 발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멎는 소리가 있는 음절은 없는 음절보다 음이 짧아지기 때문에 평음보다 짧은 음에는 붙여도 좋을 것이나 짧게 할 필요가 없는 음에는 붙여서 않(不)됩니다.
그래서 정음은 음의 장단을 중국처럼 점을 찍어 표기할 필요 없이 긴 음은 모음으로 연장하고 평음보다 짧은 음에는 'ㅇ'으로 멈추는 방법으로 활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학계에서 검토해 볼 문제입니다.
먼저 그런 형상으로 한 발성기관(혀의 중부를 연구개에 붙인 'ㄱ'형으로 입김이 전혀 없이 천천히 떼면서 'ㅏ'를 발음하면 소리기운이 위로 올라가 코로 나가는 “ㆁㅏ ”(일본글 力")가 되고, 입김을 좀 더하여 'ㅏ'를 발음하면 "가"가 되며, 'ㄱ'의 배곱으로 힘을 주어 붙이고, 'ㅏ'를 발음하면 "까"가 되며, 혀를 'ㄱ'모양으로 연구개에 붙이고 거센 입김으로 'ㅏ'를 발음하면 "카"가 됩니다.
그래서 받침 아래에 음절에서는 받침의 여음과 초성으로 합성된 변이음이 수도 없이 많이 생기는데 이것이 온갖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음의 원천으로 그 어떤 소리나 분석만 해내면 그와 같은 성분을 모아 묶을 수 있는 것이라 [정음해례] 55쪽 첫머리에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이라고 밝혀 놓았습니다.
이 말은 "스물여덟 글자로서 돌려 바꾸기가 끝(제한)이 없다"는 것으로 소리에 따라 그 어느 것과도 모아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니 정색 다섯 가지로 자연의 온갖 색깔을 조화해 낼 수 있듯이 그 어떤 소리나 분석만 해내면 못 적을 소리가 없는 훌륭한 글을 만들어 준 것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 것은 집현전학자들이 한문만 써 오면서 우리말도 형편없는 것을 필자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모음까지도 분리한 것은 지구상에서 우리글뿐인데 이와 같이 정밀하게 분리된 글을 이해도 못한 채 버려진 글들은 무능한 집현전학자들 때문이고, 엉터리 [우리말본]의 최현배 한문학자가 러시아 글에만 있는 연 모음도 정음에서는 분리하여 처 부분을 떼어낸 'ㅑ'를 "길게 내면 끝에는 'ㅏ'가 남는다."는 엉터리 이론 때문에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창제자는 믿지 않(不)으며 그의 엉터리 이론만 믿고, 순수한 'ㅑ, ㅕ, ㅛ, ㅠ'를 이중모음이라고 하는 ‘한글 자모 40자’라고 수정하였습니다.
또 우리글의 된소리는 받침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음성학적 변이음을 활용한 것인데, 이것도 최현배는 이해하지 못하여 "입 굴과 코 굴을 굳게 닫고 입 안에 압력을 진하게 쌓고 터치며 발음하는 홑소리라고 했지만 'ㄲ, ㄸ, ㅃ, ㅆ, ㅉ'는 입과 코를 굳게 닫고 입안에 압력을 진하게 해야 하는 음성학적 원리도 모른 채 홑소리라고 한 그는 일본 대학을 나오고도 음절 글인 일본글도 긴 음은 모음과 같은 "아이우애오"로 더해서 연장시켜주는 것도 몰랐는지 분리한 정음의 중성은 유성음이지만 홀로는 소리도 낼 수 없는 'ㅑ'를 끝에 'ㅏ'가 붙도록 길게 냈다니 일본대학을 헛 나온 대문호입니다.
그런데 또 요즘 인터넷 네이버에서는 그를 평생을 한글 연구와 독립활동으로 생애를 바친 애국지사라고 했는데, 그의 약력을 보아도 그는 평생을 일본글 학습과 교육에 몸바쳐온 것이지 그가 언제 독립운동에 참가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허망으로 추켜올려도 분수가 있어야 합니다. 30년대 애국적 학자들이 옥살이를 무릅쓰고 발전시켜 우리의 국어를 최고봉에 끌어올려 놓은 "한글맞춤법"도 것을 망쳐놓은 그의 엉터리 이론인 [우리말본]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런 공치사로 떠드는 이들은 그와 절친한 사이거나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이겠지만, 그를 정음을 공격하고 얻은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학자로 등장시켜놓은 것과 정 반대로 그는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정음 파손자입니다.
그의 엉터리 [우리말본]을 내놓고 평해야 할 것이라 어려운 형편에서도 한 권 사서 갖고 있는데, 날치기로 평생을 한글 연구와 독립운동에 몸 바쳤다고 하는 그의 근본까지도 조사해봐야 할 것이며, 정음을 제대로 살리려면 엉터리 [우리말본]과 [한국어문 규정집]을 매장시키지 않고는 불가능 한 일이라고 공공연하게 호소하고 싶으며, 꼭 그 두 책자를 매장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脣輕音과 半舌輕音
[정음해례] 8쪽에서 "ㅇ連書脣音之下, 則爲脣輕音者, 以輕音脣乍合而喉聲多也"라고 한 것은 "'ㅇ'을 순음(ㅁ, ㅂ, ㅍ) 아래에 연이어 쓰면 원칙상 순경음이 되는데 입술을 잠깐 붙이기에 후음이 많아진다."고 하신 것으로 "몸이"에서 "이"는 "ㅁ이"로 이는 음이 조금 길어질 뿐으로 중국 글 米와 같고, "밥이"에서 "이"는 "ㅂ이"로 "ㅂㅇ”는 러시아 글 B와 같은 음이며, 영어에 V와도 같고, "앞이"에서 "이"는 "ㅍ이"로 변이음 'ㅍㅇ'는 받침이 자음과의 합성으로 변해진 변이음으로 중국에 신 문자 f와 같은 음이고, 러시아 글에 파와 같은 음으로 중국의 신 문자 f와 같은 까닭은 앞에 입을 다문 입술소리 'ㅍ'과 뒤에 입을 벌린 후음 'ㅇ'을 함께 발음하자니 입을 다물 수도 벌릴 수도 없이 반개(半開)상태(입술은 떨어지고, 아래 이가 위에 입술에 닿은 상태)에서 발음하기에 순음은 약해지고, 'ㅍ'의 거센 입김은 'ㅇ'에 붙어 'ㅎ'으로 되게 한 것이라 'ㅍ'은 약해지고, 'ㅍ'의 거센 입김이 'o'을 'ㅎ'으로 되게 하기 때문에 목구명소리가 많다고 한 것입니다.
또 "업혀"에서 "혀"에 나는 음은 "ㅂ혀"로 역시 'ㅍㅇ'와 같음 음이 되는데 이런 음들은 아래 이가 위에 입술에 닿아서 나기 때문에 f를 脣齒音이라 하는 음으로 입술과 이 사이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4쪽에서는 "半舌有經重二音, 然韻書字母唯一, 且國語不分輕重, 皆得成音, 若欲備用, 則依脣輕例, ㅇ連書ㄹ下, 爲半舌輕音, 舌乍附上顎"이라 했는데 "반설음에도 경중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운서에만 있고, 우리 국어에는 경중으로 가리지 않지만 소리는 다 이루어지
고 있으니 만약 마련해 쓰고자 할 때에는 순경음의 보기에 따라 'ㅇ'을 'ㄹ'아래에 연이어 쓰면 반설경음이 되는데 혀를 잠깐 위턱에 붙여서 낸다."라고 한 것이니 "중국 운서에만 유일하게 경중으로 다 있으나 우리말에서는 경중으로 구분하지는 않고 소리는 다 이루고 있다"고 한 것은 받침 아래에서 변이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받침 아래에 'o, ㆆ'이 첫 부분인 음절에서 나는 음은 모두 그 원음의 경음(輕音)으로 되는 것인데 이는 입을 벌린 'ㅇ, ㆆ'과 함께 발음하게 되기에 입김이 빠져서 허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표에서 보다 시피 "치읓이", "키읔이", "티읕이" 따위를 [한국어문 규정집]에서는 "치으시", "키으기", "티으시" 따위로 해 놓았는데 앞에서 받침을 해주고 여음이 아래로 내려와 붙는 글이 되는 것이라 "치읓ㅊ이", "키읔ㅋ이", "티읕ㅌ이", "히읗ㅎ"로 되는 것으로 아래에 것은 변이음입니다.
그래서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데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글이 모자라서가 않(不)인데 우리나라 학자들은 만국어를 다 적을 수 있는 기호문자를 개발한다고 저마다 그기호 문자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어 96년에는 한글음성기호가 나왔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재미교포학자 김석연이 정음기호 52자를 만들어서 영문으로 번역한 책자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고, 세종프로젝트 집현전학자 모임에서도 52자의 정음기호로 중국의 표준어발음은 물론 각 소수민족의 언어까지 기록할 수 있는 글을 개발해서 중국에 정보화를 위해서 대륙에 진출했다고 했으며, 또 경희대에 중문과 교수 배재석은 역시 52자의 정음기호로 중국어발음을 성조까지 나타낼 수 있어 정보처리를 네 배반이나 단축시킬 수 있다고 했으나 오늘날 우리나라 외대에 교수들까지도 중국어 4성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에 4성음 중에서 가장 낮은 1성은 평음에서도 낮은 평음이라 陰 平音이라 하는데 5선도표를 그린 도표에서 가장 높은 5선에서 시작하여 5선으로 끝나는 그림은 통일적으로 같은데 이런 중국어 이해로 중국에 정보화를 위한다고 하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글 받 침 아래에서 온갖 소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모르는 청각으로 어떻게 외국어발음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만국어를 적을 수 있는 문자를 개발한다고 떠드는지? 외국인 근로자들이 영어발음을 잘 못한다고 "한국사람 머리가 나빠 영어발음을 잘 못해요"라고 하는 것도 모른 채 정음의 가치만 떨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국어를 적으려고 애를 쓴다면 [正音解例]를 연구하고 우리글 받침 아래에서 나는 변이음을 연구하면 기호문자 하나도 필요 없이 온갖 소리를 적을 수 있는데 우리글을 헌신짝 버리듯 하면서 기호문자를 만드는 것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만 제공할 뿐이고, 우리글을 망치는 짓입니다.
그것은 위의 표에서와 같이 앞에서 받침소리를 정확히 발음해 두면서 아래에서 나는 음을 귀 기우려서 들으며 단련해도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사실로 "밥이"와 "바비"가 어떻게 다른가? 에 주의를 기우려야 합니다.
그러나 악기로 몇 번 하고 음을 장악할 수 없듯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않(不)이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인내성 있게 주의해서 들으며 경상적인 단련을 거친다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사실로 "밥도 한 술에 배를 불릴 수 없듯이 배가 부를 때까지 먹어야 하는 것과도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청각능력의 여하한 지가 중요하지만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니 자신의 능력을 믿고 우리글의 과학적인 음성학을 믿고 열심히 단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음을 단련하기에 노력합시다.
악보로써 온갖 노래의 곡을 나타낼 수 있기는 하지만 악보지식이 있어야 하고, 단련이 있어야 하듯이 정음지식을 충분히 배워 익히어 익숙해져야 하며, 음의 성분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화가는 정색 다섯 가지만 있으면 자연의 온갖 색을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안질이 좋아야 하고, 미술지식과 색을 조화시키는 지식이 있어야 하듯이 그 어떤 소리든 다 적을 수 있는 지식과 청각 단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청각 능력을 단련하는 데 우월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글의 받침을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식별하는 좋은 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단련할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인 좋은 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않(不)이기 때문에 발음을 정확히 해야 하는 기초에서 잘 비교해야 합니다. 즉 "밥이"와 "바비"를 반복적으로 발음하면서 차이점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단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한 국어원에서 결정한 것처럼 "지읓이"를 "지으시", 치읓이"를 "치으시" 따위로 발음해서는 평생가도 발음해서는 평생 가도 음 단련을 할 수 없으니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글 글꼴 형성의 원칙에 따라 각기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발음되는 그 위치와 같은 위치에서는 각기 다른 입김의 차이에 따라 받침을 발음하는 방법으로 멎을 때에는 그와 같은 압력의 차이로 입안에 기운을 압축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좋고, 좋다, 좋지”는 'ㅎ'의 압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고, 다, 지"가 "코, 타, 치"로 발음 되지만 "높고, 높다, 높지"에서는 'ㅍ'을 제대로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꼬, 따, 찌"로 발음됩니다. 앞에서 표에 따라 입김의 급수를 지키면 아래에 "고, 다, 지"는 "코, 타, 치"로 격음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정확한 발음인 것인데, 반듯이 그 정확성을 장악해야지 국어원에서 제시한 그대로 "지읓이"를 "지으시", "치읓이"를 "치으시" 따위로 발음해서는 절대 음 단련을 할 수 없습니다.
2009년 9월 25일 장 수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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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학자가 무지한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무식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훈민정음을 이야기 하려면 그것이 언제 발견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말본은 1928년에 출간되었고, 훈민정음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었다. 다른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것들을 좋은 세상에서 어줍잖은 지식으로 지나친 주관과 편견으로 비난해서는 안된다. 한힌샘 외솔 등은 우리말을 우리 얼이라고 생가하고 목숨을 걸고 지켰던 분들이다. 우리말본이나 그 당시 쓰여진 문법서들은 한글 초창기에 그대들이 말하는 정음 초창기에도 없던 문법들이다. 우리 겨레가 쉽게 한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든 최초의 말본이 바로 우리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