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보는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해당 정보를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사진자료들은 모두 "크메르의 세계"가 추가하였다. |
캄보디아의 이슬람교
캄보디아의 이슬람교도는 대부분 소수민족인 짬족(Cham) 사람들이거나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일부 말레이인(Malay)으로 구성된다. 뽀 다르마(Po Dharma)에 따르면, 1975년 무렵까지 캄보디아에는 15만에서 20만명에 이르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크메르루즈 정권 하에서 극심한 탄압으로 인해 그 수가 격감했고, 1980년대 말까지도 이전의 규모를 회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미국의 "퓨 연구소"(Pew Research Center)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300여만명의 캄보디아 전체 인구 중 1.6% 정도인 236,000명 정도가 무슬림들인 것으로 추산했다.(주1) 짬족 무슬림들의 경우 모두 샤피(Shafi'i) 파 계통의 수니파(Sunnis)이다.(인용각주 필요) 뽀 다르마는 캄보디아 내 짬족 무슬림들을 전통파(traditionalist branch)와 정통파(orthodox branch)로 분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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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주재 미국대사관과 말레이시아 대사관, USAID 및 각종 국제단체와 NGO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한 세미나에 참가한 캄보디아 무슬림 여성들의 모습. (사진출처: USAID) |
1. 배 경
짬족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모스크들(mosques: 이슬람 사원)을 갖고 있다. 1962년 무렵에 전국적으로 약 100개의 모스크가 있었다. 캄보디아의 무슬림들은 19세기 말에 4인의 최고위 성직자 --- 즉 뭅띠(mupti), 뚝 깔리(tuk kalih), 라자 깔릭(raja kalik), 뜨완 빠께(tvan pake) --- 의 권위를 축으로 하나로 뭉친 연합체를 출범시켰다. 짬족 마을들의 경우, 마을마다 1인의 하껨(hakem)과 여러 명의 까띱(katip), 빌랄(bilal), 라비(labi)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하고 있다. 4인의 최고위 성직자들과 하껨은 세금을 감면받으며, 왕실에서 거행되는 주요한 국가적 행사에도 초청받았다.
캄보디아가 독립한 후에는 각각의 이슬람 마을들은 5인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행정 및 여타 이슬람 마을들과의 연락 업무를 담당했다. 각 무슬림 공동체마다 1인의 하껨이 지역 및 모스크를 통솔하고, 1인의 이맘(imam)이 기도를 집전하며, 1인의 빌랄이 매일매일의 기도자들에게 봉사한다.
프놈펜 인근의 쯔로이 쩡와(Chrouy Changvar) 곶(작은 반도)은 짬족들의 영적 중심지로 인식되고 있고, 여러 명의 고위 무슬림 성직자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매년 몇명의 짬족들이 말레이시아의 켈란탄(Kelantan)으로 꾸란(Qur'an: 코란)을 공부하러 떠나며, 일부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Mecca)로 유학이나 순례를 떠나기도 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의 통계자료를 보면, 약 7%의 짬족들이 순례를 마치며,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순례완수를 상징하여 페즈모(fez: 터키모)나 터번을 착용한다. (사진: 페즈모)
전통적인 짬족들은 고대 무슬림 혹은 무슬림 이전의 정통과 의례들을 보존하고 있다. 이들은 알라신(Allah) 최고의 전능한 신으로 믿지만, 비-이슬람적 종교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짬족들은 여타 무슬림들에 비해 베트남 해안가에 살고 있는 짬족들에 더 많은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짬족 최고 성직자는 순백의 의상을 착용하며, 삭발한 후 얼굴도 면도한다. 이들 짬족들은 주술과 마술적 힘을 믿으며, 병을 치유하거나 완화시키고 비명횡사를 피하기 위한 주술적 제의에 엄청난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들은 여러 종류의 초자연적 힘들을 믿는다. 여타 무슬림들에 비해 메카 순례나 하루 5회의 기도에 비교적 덜 집착하는 편이지만, 여러 무슬림 제일과 축제에 참여하고 지키고 있다.
정통파 짬족(orthodox Cham)은 말레이 지역 이슬람 공동체와의 통혼을 통해 보다 정통파의 율법에 순응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실제 정통파들의 경우 말레이 지역 관습을 지키고, 가족제도 역시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말레이어를 말할 수도 있다. 이들은 메카로 순례단을 보내며, 국제이슬람회의에도 참석한다. 이러한 정통파 짬족과 기존의 전통파 짬족 사이의 갈등이 1954년부터 1975년 사이에 확대되었다. 예를 들면 심지어 한 마을 안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 결국 새로운 모스크를 짓고 분리된 교단을 구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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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5일 ""캄보디아 학살 연구를 위한 캄보디아기록보존센터"(DC-Cam)는 캄보디아 각지의 하껨 및 메이 또운(여성 성직자) 250여명을 초청해 "캄보디아 특별법정"(ECCC)에 대한 설명회 및 의견수렴 작업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 당시 조셉 무소멜리(Joseph A. Mussomeli) 캄보디아 주재 미국대사가 설명을 하고 있다. DC-Cam은 1995년 미국무성이 예일대학에 500만 달러를 지원해 만든 "캄보디아 학살연구프로그램"의 부속기관으로 프놈펜에 소재지를 두고 있다. [사진출처: 주캄 미국대사관] |
2. 크메르루즈 정권의 처형
짬족의 자료에 따르면,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132곳의 모스크들이 파괴됐고, 나머지들도 신성모독을 당했다고 한다. 물론 이슬람 예배도 금지됐다.
베트남의 지원으로 수립된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 정부에서 이슬람교는 불교와 동급의 자유를 허용받았다. 캄보디아 전문가 빅케리(Vickery)는 1980년대 중반에 캄보디아에는 약 185,000명 정도의 짬족들이 살았고, 모스크의 수도 1975년 이전과 거의 유사한 수가 있었다고 추정했다. 1988년 초에 프놈펜에는 6곳의 모스크가 있었고 지방에서 "양호한 수"의 모스크들이 있었지만, 무슬림 고위 성직자들의 수는 그다지 증가하지 못했다.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이전에 113명이었던 고위 성직자들 중 오직 20명만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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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7일 유엔이 후원하는 "캄보디아 특별법정"(ECCC) 건물 바깥에서 "뚜올 슬렝 교도소"의 전직 소장 깡 껙 이우(일명: 돗)의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캄보디아의 무슬림들.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대부분 무슬림인 짬족들의 희생이 컸다. (사진: REUTERS/Chor Sokunthea) |
짬족 출신 유명인사
노로돔 마리 라나릿(Norodom Marie Ranariddh) 왕자비:
노로돔 라나릿 왕자의 합법적 첫번째 부인.
푼신펙당 운영위원
훈 센 정부에서 선임장관 역임. |
참고문헌
De Féo, Agnès (2005). "Le royaume bouddhique face au renouveau islamique". Cahiers de l'Orient n°78, Paris.
De Féo, Agnès (2005). "Les Chams Sot, dissidence de l'islam cambodgien". Cahiers de l'Orient n°78, Par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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