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부작의 자명고가 결국 39회로 조기종영을 선택하고 난 후,
어제 32회가 방송되었다. 그리고 오늘 33회를 시작으로 7개의 방송분량이 남겨진 상태이다.
그 재밌다고 소문난 '내조의 여왕'을 절대 본방으로 보지 않으면서 자명고를 선택해서 보아왔다.
그러나 얼마전,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님의 '선덕여왕'이 시작되고
결국 난 선덕여왕을 본방으로, 자명고를 후자로 선택했다. 그렇게 한발짝 물러섰는데...
어제 방송된 32회분을 보고 나는 너무나 우습고도 놀랍고, 또 색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것에 감탄했다.
32회분은... 정말 많은 것이 들어있는 회였다. 조기종영을 당하는 드라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 정도였다.
조기종영답게 2년의 시간이 지나는 것을 휘리릭 보여주는데... 매력적이었다. 더욱더 화끈하게 끌렸다.
성인으로 성장하고 아직까지도 뜨뜨미지근하게 내용없이 흘러가고 있는 선덕여왕에 답답함을 느끼다,
32회분의 빠른 전개와 꽉찬 스토리에 감탄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더욱이, 조기종영이라는 뒤숭숭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다들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여 흐뭇했다.
담당 PD가 조기종영 결정에도 불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했는데, 그 결과물이 멋져보였다.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자명고를 처음 시작할때, 호동에 '정경호'가 매우 끌렸지만, '정려원'과 '박민영'은 만족스럽지 못한 캐스팅이었다.
아무리 그들 뒤에 대단한 중년배우군단이 몰려있다고 해도, 타이트롤인 정려원과 박민영은 부족해보였다.
원톱이 되기 어려운 정경호가 합류하여 셋이 주인공이 되었을 땐, 결코 좋은 구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주인공들이 그 누군가로 바뀌었다면,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정성희 작가의 대본엔 큰 문제점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이 활개할 수 있는 큰 이유가 바로 적절한 캐스팅과 빛나는 연기력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정려원이 참으로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를 보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후로는 만족스러운 연기를 펼치지 못했다. 오히려 실망스런 작품들을 선택하며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이번 자명고에서도 그녀가 그저 가지고 있는 만큼의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을 뿐, 빛나지 못해 여전히 아쉬울 뿐이다.

박민영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어색함이 강했는데, 놀랍게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역할이 잘 맞아서인지, 단아한 얼굴과 또박또박한 말투, 너그러운 표정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아직까지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신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가장 놀라운 것은 정경호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가 아니라,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죽어라 연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 절정에 놀랄 뿐이다.
강인한 역이지만 사실 초반에 너무 연약해(?)보여서 앞으로가 걱정이었는데,
그 연약함이 무기가 되어 죽기 살기로 연기하니까 풍전등화같은 호동의 캐릭터와 잘 맞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듯 하다.
아직도 수염이나 어떠한 장치들이 어색하긴 하지만, 정경호가 얼마나 열심히 연기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연기력도 안정적인 수준.
그 외의 배우들에 대해 간단히 코멘트 해놓는다면...
이들은, 부족한 세명의 주연배우를 훌륭하게 감싸주고 있는 조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주현(왕홀)은 매력이 넘치는 배우는 아니지만 연기하는 향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성현아(송매설수)는 어느덧 연기를 가지고 놀(?) 정도의 숙련자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성근(대무신왕)은 그의 연기 스타일이 내 스타일과는 좀 맞지 않지만 배역의 이미지에 맞는 훌륭한 연기를 보이고 있다.

이영범(을두지)은 이렇게 좋은 역을 계속 했으면. 악역이나 가벼운 역이 안아울리기보단 보는게 싫다. ㅋㅋ

홍요섭(최리)은 겹치기 출연이 잦은 중년배우들 중에서 신선하게도 잘 골라낸 보석과도 같다. 역시,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린다.

이미숙(왕자실)의 미모가 한층 사그러들었다 할 지언정, 그녀의 연기력은 한층 무르익어졌다.

김성령(모하소)은 은근히 변신의 귀재.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의 가볍던 캐릭터와 전혀 겹쳐지지 않아!



조연배우들의 멋진 연기력이, 부족한 주연배우들을 감싸안아 조화로운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이한위(우나루), 고수희(모양혜), 이원중(차차숭), 조미령(미추)도 추가해서.

31회 마지막에서 자명(정려원)은 가짜 사약을 먹고 죽는 척하며 존재를 숨기고 신녀로 살아가려 했으나,
왕자실의 음모에 의해 진짜 사약을 먹고 죽게 된다.
왕자실은 정말, 지금까지 몇번이고 자명을 죽였지만, 번번히 살아나는 자명때문에 미쳐 뒤집어질 지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명은 다시 살아난다. 살아나 진정으로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녀가 된다.
32회를 본 느낌으로 미루어보아, 자명이 사약을 먹고 죽는 이 순간이 바로 자명고의 전환점인듯 하다.
다시 부활하는 자명처럼, 앞으로의 자명고는 축약되어 알차진 내용으로 끝을 향해 뜨겁게 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33회가 끝나고 예고편을 보니, 다음주면 자명고의 첫회에 먼저 선보였던 미래의 시간까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거침없이 질주하여 끝을 향해 달려가는 자명고, 비록 선택받은 자만이 본다는 마의 시청률에 도달할지라도,
그들이 만들겠다는 멋진 '유종의 미'는 막지 못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처음엔, 정경호가 좋아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이주현이 좋다. ^-^;




왕홀과 혼인하겠다는 자명에게 '다른 남자에게 보내느니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호동과,
희생으로 혼인하냐는 자명에게 '나도 사내요!'라며 자명에게 조심히 마음을 전하는 왕홀.
이제, 두 사람이 낙랑에서 본격적으로 자명을 사이에 두고 갈등할 일들이 즐겁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