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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까지 경남 양산 원동중학교는 폐교 직전의 시골학교였다. 그러나 야구부를 창단하고서 전교생이 늘며 폐교 위기에서 벗어났고, 지난해 전국중학야구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양산의 자랑으로 우뚝 섰다. 사진은 원동중 학생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한 사람이 원하면 꿈에 불과하지만, 모든 이가 원하면 현실이 된다.
지난해 경남 양산시 원동면에 자리 잡은 원동중학교는 기적을 연출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는지 몰랐다.
창단 3년밖에 안 된 원동중 야구부는 ‘전통의 강호’들을 차례로 꺾으며 전국 중학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전교생이 51명에 불과한 시골 중학교의 우승이라, 의미는 남달랐다. 무엇보다 학생수가 부족해 폐교 직전까지 몰렸던 원동중의 우승은 ‘기적’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유통기한이 끝난 것 같던 ‘원동중의 기적’이 새로운 기적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로 경남 양산에 고교 야구부 창단 소식이 들린 것이다.
“아이들이 계속 고향에 남아 야구의 꿈을 키우도록 도와주자” 경남 양산 물금고의 야구부 창단은 향후 학교 운동부 창단을 고려하는 많은 지자체와 학교에게 좋은 메시지로 작용할 것이다. 사진은 물금고 학생들이 교내 체육대회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장면(사진=물금고)
4월 중순. 기자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보낸 이는 양산시야구협회 이현우 사무국장. 그는 문자 메시지에서 ‘2년 넘게 추진한 양산지역 고교야구팀 창단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며 ‘원동중 학생선수들이 이제 고향에 남아 계속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알렸다.
취재를 하다 보면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초·중·고 야구부 창단이 그렇게 어렵냐?”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 대부분은 ‘학교 야구부 창단이 뭐 그리 어렵다고 야단이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학교 야구부 창단은 프로야구팀 창단만큼이나 어렵다. 원동중 야구부 창단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양산시야구협회 관계자들은 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다.
“원동중 창단 때도 그랬지만, 이번 양산지역 고교야구부 창단 때도 정말 많은 지역 내 학교를 찾아다니며 창단을 권유했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는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야구부 창단을 반대한다’며 난색을 보였다. 이유는 자명했다. ‘야구부가 있으면 사고 위험이 크고, 야구부원들 때문에 일반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없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여기다 야구부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는 선입견도 창단 거부의 한 이유로 작용했다. 몇몇 학교장은 ‘우리 같은 지방 고교에 무슨 돈이 있겠느냐’며 ‘운동부 운영비로 쓸 예산이 없다’는 하소연을 되풀이했다.” 양산시야구협회 이현우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이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대한야구협회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적극적으로 학원 야구부 창단을 유도했다. 허구연 KBO 실행위원장이 전국을 돌며 학원 야구부 창단에 앞장섰고, 구체적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교는 “학교 야구부가 생기면 면학 분위기가 흐려지고, 학생선수들의 사고 위험이 크다”는 말로 야구부 창단을 거절하고 있다.
그나마 중학교들은 나은 편이다. 문제는 고교들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현실적 목표 앞에 어떻게든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고교들로선 학부모들의 반대 때문이라도 쉽게 야구부 창단을 결정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와중에 양산지역에 고교야구부가 창단한다는 소식이 들린 건 ‘원동중 우승’만큼이나 기적일 수 있었다. 여기서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어째서 양산 야구인들이 힘을 합쳐 지역 고교야구부 창단을 위해 발 벗고 나섰느냐는 것이다.
양산야구협회 관계자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동중 야구부가 창단하며 큰 성과를 냈다. 지난해 원동중 야구부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했고, 이 우승으로 전학생들이 몰려와 원동중이 폐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들의 투혼에 어른들도 힘을 얻었는지 인구와 소득 감소로 몸살을 앓던 원동면을 살리기 위해 의기투합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농업에만 의존하던 원동면이 새로운 관광 명승지로 떠올랐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문제는 이처럼 지역에 큰 용기를 심어준 원동중 야구부 학생선수들이 졸업반이 되면 전부 외지로 떠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왜냐?
양산지역에 고교야구팀이 없어 계속 야구를 하려면 팀이 있는 부산, 김해, 마산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원동중 3학년 졸업반 학생선수 6명은 고향을 떠나 야구부가 있는 부산지역 고교로 진학했다. 아이들이 부모님,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고, 고향에 남아 야구를 계속 하려면 반드시 양산에 고교야구팀을 창단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똘똘 뭉쳐 창단 작업을 펼쳐온 것이다.”
“원동중 야구부처럼 교육과 운동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 지난해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기적을 연출한 원동중 야구부 학생선수들. 안타깝게도 중3 졸업반 학생선수들은 양산에 고교야구팀이 없어 고향을 떠나 부산지역 고교로 진학해야 했다.
양산시야구협회는 고교야구부 창단을 목표로 지역 고교들을 방문해 창단을 설득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반대해 어렵겠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러던 지난해 연말. 협회 관계자들이 양산 물금고를 찾으며 상황이 반전됐다.
양산시 물금읍에 자리 잡은 물금고는 2006년 개교한 고교다. 지역 내에선 “짧은 학교 역사치고 대학 진학률이 높은 신흥 명문고”로 불리고 있다.
원체 면학 분위기가 좋은 학교인지라, 협회 관계자들은 “과연 물금고가 야구부를 창단하겠느냐”며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물금고는 협회와의 지속적인 만남 속에서 올해 야구부 창단을 확정했다.
협회 박기대 회장은 “물금고 송화용 감 선생님의 교육관이 야구부 창단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며 “교장 선생님이 의욕적으로 나서 일부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의 반대 여론을 설득한 덕분에 물금고 야구부 창단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사실이었다. 송 교장은 협회 관계자들로부터 야구부 창단을 제안받고 장고를 거듭한 끝에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서 곧바로 “교육과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원동중처럼 우리 물금고 야구부도 그렇게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며 학부모·교사들을 설득했다.
송 교장은 “‘자칫 면학 분위기가 흐려질 수 있다’는 이유로 야구부 창단을 반대한 분들도 있었지만, ‘운동부를 잘만 운영하면 면학 분위기가 흐려지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득해 결국 많은 분이 야구부 창단에 동의해주셨다”며 “학부모·교사들에게 ‘과거 김해생명과학고 교감 시절 축구부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야구부도 성공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드렸다”고 말했다.
송 교장은 2012년 ‘무명 축구팀’이던 김해생명과학고가 전국대회 16강에 진출했을 때 이를 진두지휘했던 이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축구부 숙소를 찾아 학생선수들과 운동장을 돌며 함께 땀을 흘렸고, ‘성적보다 인성이 우선’이라는 자신만의 교육관을 바탕으로 직접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담당했다. 덕분에 김해생명과학고는 지역의 명문 축구부로 우뚝 섰고, 학생선수들의 비행과 일탈이 없는 ‘청정 운동부’로 평가받았다.
송 교장은 “난 야구부 학생선수들을 ‘운동 기계’로 키울 마음이 전혀 없다”며 “체육 분야 인재로 육성하는 게 기본적인 목표”라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비전을 밝혔다.
“야구부 창단 제안을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미래 비전이었다.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되면 스포츠 산업이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체육분야 인재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아무래도 체육 경험자들이 우대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야구부 경험이 사회에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다 야구를 통해 학생들의 진로가 확장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송 교장은 “중·고 시절 부모님을 떠나 혼자 생활하는 건 청소년의 인성과 정서발달에 좋지 않다”며 “원동중 학생선수들이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야구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교육자로서의 진정한 사명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송 교장은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물금고 야구부가 새로운 운동부의 롤모델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야구부 학생선수들이 따로 수업을 받는 예·체능반을 운영할 계획이다. 송 교장은 “야구부 학생선수들 가운데 프로야구 선수뿐만 아니라 서울대 진학자도 나올 수 있게끔 교육과 운동을 지혜롭게 병행할 계획”이라며 “선생님들의 열정과 의지가 대단한 만큼 전국에서 최고로 멋진 야구부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물금고 야구부 창단을 도운 백기사들 양산시야구협회는 협회가 사용하는 야구장을 물금고 야구부가 쓰도록 배려할 예정이다. 사진은 협회가 운영 중인 사회인야구장(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물금고가 야구부 창단을 발표하며 이제 경남 고교야구팀은 김해고, 마산 용마고, 마산고 등 기존 3개 팀에서 4개 팀으로 늘게 됐다. 양산시야구협회 이현우 사무국장은 “물금고 창단으로 원동중 학생선수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서도 계속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원동중, 김해 내동중, 창원 신월중, 마산 동중, 거제 외포중 등 경남지역 5개 중학야구팀 학생선수들의 진학 길도 더 넓어지게 됐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물금고가 야구부 창단을 결정했다고 해서 모든 게 일사천리로 해결될 리 없다. 물금고엔 야구부원들이 훈련할 마땅한 장소가 없다. 게다가 야구부 창단엔 돈이 많이 들어 빠듯한 학교 예산으론 감당이 쉽지 않다. 이때 백기사들이 나타났다. 우선 양산시야구협회다.
협회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사회인 야구장을 물금고 야구부에 제공할 예정이다. 협회 박기대 회장은 “야구부원들이 훈련하기엔 물금고 운동장이 좁아 현재 협회가 관리하는 사회인 야구장을 물금고 야구부 훈련장소로 무상 제공할 계획”이라며 “야간훈련을 진행할 수 있도록 조만간 조명시설을 갖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 회장은 “궁극적으로 물금고 야구부 전용 야구장을 만들기 위해 현재 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발 나아가 협회는 물금고 야구부가 전국대회에 참가할 시 참가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야구 전도사' 허구연 KBO 야구실행위원장. 그는 정치권의 잇단 러브콜에도 거절을 반복하며 전국의 초·중·고를 돌며 야구부 창단을 설득하는 '야구 전도사' 역할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50개팀 유지도 힘들던 고교야구는 이제 60개팀을 넘어 70개팀으로 확장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박 회장은 “허 위원님이 양산지역 고교들을 직접 쫓아다니며 야구부 창단을 설득했다”며 “물금고 야구부 창단이 결정되기 이틀 전에도 양산에 들러 협회 관계자와 시 관계자들을 만나 야구부 창단을 독려하고 돌아가셨다”고 귀띔했다.
따지고 보면 원동중 야구부 창단 때도 그랬다. 허 위원은 바쁜 일정에도 양산에 내려가 지역 중학교를 쫓아다니며 야구부 창단을 설득했고, 폐교 직전의 원동중에 야구부 창단을 이끌어낸 뒤엔 양산시와 경남 교육청을 찾아가 지원을 호소했다. 허 위원이 없었다면 ‘원동중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양산 야구인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KBO도 백기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아마추어 야구를 관장해야할 대한야구협회는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상황이다. 현장의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아마추어 야구 발전을 위해 대한야구협회가 한 일이 뭐냐”며 “되레 비리로 얼룩져 야구인들의 명예만 실추시키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틀린 말도 아니다. 최근 대한야구협회는 비리혐의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야구협회는 대대적인 혁신과 반성은 뒤로한 채 각종 수익사업과 기념 사진 촬영에만 몰두하고 있다.
다행히 KBO가 대한야구협회가 해야할 일을 대신하며 아마추어 야구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KBO는 현 구본능 총재가 수장을 맡은 이후 2012년부터 고교 야구부 창단 시 3년간 4억 원(초교 3년간 3천만 원, 중학교 3년간 1억5천만 원)의 지원금을 주고 있다. 덕분에 2005년 48개였던 고교야구팀은 올해 60개팀으로 늘었다.
KBO는 물금고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3년간 지원금을 줄 예정인데, 이는 물금고 야구부의 연착륙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 야구부가 지역사회의 중심이자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시골학교 원동중이 보여줬다. 이제 물금고가 새로운 양산의 자랑이 되기 위해 야구부 창단을 준비 중에 있다. 사진은 매화가 눈처럼 날리는 양산의 낙동강변(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물금고 송화용 교장은 “시와 KBO의 지원금을 더하면 야구부 창단 준비엔 무리가 없을 것 같다”며 “원체 시가 학교 체육에 관심이 많고, 시의회도 지역 체육 발전을 적극 지원하는 터라, 물금고 야구부가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성장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물금고는 9월 창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남도 교육청으로 ‘야구부 교기(校技) 지정’을 받으면 야구부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감독, 코치를 선임하고서 본격적인 학생선수 모집에 나설 예정이다.
'한 사람이 원하면 꿈에 불과하지만, 모든 이가 원하면 현실이 된다.' 그것을 양산 야구인들과 의식 있는 야구인들 그리고 시·교육 관계자들은 원동중에 이어 물금고 야구부 창단을 통해 현실로 증명했다.
물금고가 ‘원동중 기적’의 시즌2가 될지 야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취재를 끝내고 돌아올 무렵 양산시야구협회 관계자는 “양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야구부 창단 의지를 밝히고 있다”며 “만약 이 초교가 야구부를 창단하면 양산에 초·중·고 야구부가 모두 운영돼 아이들이 고향에서 계속 야구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된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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