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일 교수 <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
감염률 줄고 종류는 다양화
토양 매개성 감소 열대기생충 증가
진단·치료 어려워 '특수질환군' 변화
과거 한국인에서의 기생충 감염은 장내 기생충, 특히 회충, 편충, 구충 등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최근 30여 년 동안 이들 기생충 감염률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감소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거에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던 인수공통 감염성 기생충, 기회감염 기생충, 조직 침입 기생충, 식품-매개성 기생충 등의 중요성이 매우 높아졌고, 새로운 종이 발견되고 있는 점 등 기생충 질환의 양상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한국인에서 기생충 감염의 최근 30년 간 추이와 향후 전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회충, 편충, 구충 등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의 격감 △말라리아의 재유행 △간흡충증, 장흡충증 등 식품-매개성 기생충 질환의 지속 △요충증, 유구낭미충증 등 접촉-감염성 기생충 질환의 지속 △아니사키스증, 선모충증, 개회충증 등 인수공통 기생충 질환의 증례 증가 △작은와포자충증, 톡소포자충증, 폐포자충증 등 기회감염성 기생충 질환의 부각 △해외여행 증가에 따른 수입성 열대 기생충 질환의 증가 △참굴큰입흡충을 비롯한 새로운 기생충의 출현 △가시아메바, 자유아메바 등 자유생활아메바들이 우연히 인체에 도입되어 치명적인 감염증을 일으키는 우연감염의 증가 등이다.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 격감
회충(Ascaris lumbricoides), 편충(Trichuris trichiura), 구충(hookworms) 등 토양-매개성 연충은 한국인에서 기생충의 대명사 격으로 오랜 동안 널리 알려졌던 종류들이다. 일제치하는 물론, 1960년대 말까지 전 국민 감염률이 70~80%를 상회했으나 1970년부터 1990년 사이에 크게 감소했으며, 1997년에는 3종의 감염률을 합하여 0.1% 정도로 나타난 바 있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2004년에 전 국민 감염률 조사가 예정되어 있으며, 그 결과는 3종을 합하여 대략 0.5%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말라리아의 재유행
문헌상 유행의 기록을 찾을 수 있는 고려 및 조선시대를 거쳐 한국전쟁 후까지 크게 유행했던 토착형 삼일열 말라리아(indigenous vivax malaria)는 1980년 경 거의 박멸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93년 경기도 북부 휴전선 부근에서 환자 1명이 발생한 후 지금까지 폭발적인 재유행을 보이고 있다. 환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여 2003년 말 까지 모두 20000여 명에 이르러, 국민보건상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초기 발생 환자들의 대다수는 현역 군인 또는 전역 군인이었으나 점차 민간인 발생례가 증가하고 있다.
재유행의 최초 원인으로는 북한 지역에서 바람을 타고 넘어 온 감염 모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주요 유행지는 경기도 연천군, 파주시, 포천군, 양주군, 고양시(일산구), 인천광역시(강화군 및 옹진군 포함), 강원도 철원군, 양구군, 고성군 등이며, 해가 갈수록 동쪽 및 남쪽으로 확산되고 있다. 말라리아가 국내에 다시 토착화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식품-매개성 기생충 감염 유행 지속
간흡충(Clonorchis sinensis)은 낙동강을 비롯한 5대 강 유역에 유행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1997년 전 국민 표본검사에서 1.4%로 가장 높게 나타난 종이다. 담수산 어류(잉어, 향어, 붕어, 빙어 등)를 생식할 때 감염된다. 요코가와흡충(Metagonimus yokogawai)은 동해안 및 남해안으로 유입되는 크고 작은 하천 유역에 널리 유행하며, 간흡충 다음으로 유행도가 높아 1997년도 전 국민 조사에서 0.3%의 충란 양성률을 보였다. 감염원은 은어, 황어 등이다. 기타 20여 종의 식품-매개성 장흡충류가 발견되었는데, 중요한 종은 유해이형흡충(Heterophyes nocens), 표주박이형흡충(Pygidiopsis summa), 호르텐스극구흡충(Echinostoma hortense), 서울주걱흡충(Neodiplostomum seoulense), 참굴큰입흡충(Gymnophalloides seoi) 등이다. 유해이형흡충 및 표주박이형흡충은 서해안 및 남해안의 해안지방 및 도서지방에 농후한 유행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숭어, 농어, 문절망둑 등 반염수산 어류가 감염원이다.
접촉-감염성 기생충질환 유행 지속
요충(Enterobius vermicularis)은 한국인의 실제 기생충 감염률에서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대변검사로는 진단되지 않으므로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유아원 및 초등학교(1~2학년)에서 감염률이 높으며, 최근 서울시내 어린이집에서 9.5%의 충란 양성률이 보고 되었다. 유구조충(Taenia solium)의 충란을 섭취하여 감염되는 유구낭미충(cysticercus)의 증례보고는 수천례에 달하며, 최근 ELISA 혈청검사에서 월 평균 10~20%의 양성률을 보이고 있다.
인수공통 기생충질환 증례 증가
고래회충(Anisakis simplex), 향유고래회충(A. physeteris), 물개회충(Pseudoterranova decipiens) 등의 유충, 즉 아니사키스 유충(anisakis larvae)에 의한 인체 감염이 300예 정도 보고 되었다. 생선회나 낙지회 등을 먹을 때 감염된다. 고양이구충(Ancylostoma brasiliense) 또는 개구충(A. caninum)의 감염형 유충이 사람 피부에 터널을 형성하며 심한 가려움증과 발적, 구진을 나타내는 유충피내이행증(cutaneous larva migrans, creeping eruption)의 의심 증례가 10예 보고 되었다. 선모충(Trichinella spiralis)은 최근 오소리의 내장을 날로 먹은 후 급성 복통과 근육통을 호소한 남자 2명에서 확진되었고, 그 후 야생동물은 덜 익혀 먹은 사람에서 속속 증례가 보고 되고 있다.
기회 감염성 기생충질환 부각
작은와포자충(Cryptosporidium parvum)은 전남 농촌 지역에 특히 감염률이 높으며(5~10%), 어떤 마을은 주민의 40%가 난포낭(oocyst) 양성률을 보인다. 감염자 또는 동물에 접촉하거나, 식수에 오염된 난포낭의 경구 섭취로 감염된다. 백혈병, AIDS 등 면역결핍 환자에서는 치명적인 감염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 치료 약제 개발이 시급하다.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에 대한 우리 국민의 항체 양성률은 5% 내외로, 유럽의 70~80% 또는 중국의 20~40%에 비해 낮은 편이다. 면역 결핍 환자의 경우 수막뇌염 등 심각한 기회감염성 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다. 폐포자충(Pneumocystis carinii)은 면역 결핍 환자에서 호흡곤란, 청색증 등을 동반한 심각한 폐렴으로 사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수입성 열대 기생충질환 증가
열대열 말라리아(tropical malaria), 사일열 말라리아(quartan malaria) 및 삼일열 말라리아(tertian malaria) 등은 해외 유입 기생충 질환의 대표적인 예다. 최근 20-30년 동안 해외여행 중 감염되어 유입된 증례가 모두 2533예에 달한다. 포충증(echinococcosis; hydatid disease)은 22예가 보고 되었는데, 단방조충(Echinococcus granulosus)의 유충에 의한 질환으로, 종수주인 개의 분변에 배출된 충란을 사람, 양 등 중간숙주가 섭취하면 간, 폐, 뇌 등 여러 장기에 침입하여 질환을 일으킨다. 기타 피부 및 내장 리슈만편모충증(leishmaniasis), 광동주혈선충증(angiostrongylosis), 주혈흡충증(schistosomiasis), 바베시아증(babesiosis) 등의 유입증례가 보고된 바 있다.
새로운 기생충 출현
참굴큰입흡충(G. seoi)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하여 신종으로 명명한 흡충으로 급성 췌장염 및 담낭염으로 진단되었던 여자 환자 1명에서 처음 검출되었다. 환자는 고향인 전남 신안군 압해면의 한 갯마을 주민 100여명을 조사한바 약 50%가 감염되어 있었고, 감염원은 자연산 참굴로 밝혀졌다. 주요 증상은 복통 및 설사 등이며, 다른 10개 면에도 이 흡충이 유행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서울주걱흡충(N. seoulense)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인체 기생 장흡충이며, 최초 인체 감염은 고열과 복통으로 내원한 남자 환자였는데 입원 5일 전에 뱀 2마리를 잘 익히지 않고 먹은 일이 있다고 하였고, 현지 조사를 통해 꽃뱀에서 유충(피낭유충)이 확인되었다. 그 후 뱀을 날로 먹는 특수부대 장병, 민간인 등으로부터 약 30예의 감염이 발견되었다. 자루이형흡충(Stictodora fuscata), 갈매기이형흡충(Stictodora lari), 한국극구흡충(Acanthooparyphium tyosenense) 등 조류 기생충이 인체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증례보고를 통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우연감염의 증가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소아 중 가시아메바류(Acanthamoeba spp.) 감염에 의한 각막염(keratitis) 증례가 여러 병원에서 보고 되었고, 파울러자유아메바(Naegleria fowleri)에 의한 치명적인 수막뇌염도 알려져 있다.
결 론
이상과 같이 최근 30년 동안 한국인의 기생충 감염은 그 양상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면모로 바뀌게 되었다. 기생충의 국민 감염률은 감소했으나, 종류는 매우 다양해졌으며, 진단 및 치료가 매우 어렵고 전문성을 요하는 특수 질환군의 하나로 변화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