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필요한 때
영화 <1944> 와 <고지전>
박태식 신부 / 영화평론가, 성공회신부
전쟁영화 두 편을 소개하겠다. 일반적으로 전쟁영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사실기록의 느낌을 갖고 전쟁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반전 성향의 영화다. 예를 들어 패배를 모르는 자들의 위대한 영웅담을 주제로 한 <패튼 대전차군단 1970>이나 <그린 베레 1968> 등의 고전은 전자에 속하고 월남전의 무의미함을 그린 <지옥의 묵시록 1979>이나 <플래툰 1986>은 후자에 속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전쟁을 묘사할 때는 마치 실제 전장에 나와 있는 듯 사실감을 주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 영화는 실패하고 만다. 이제 소개하려는 두 영화는 그 점에서 믿을 만한 작품들이다.
영화 「1944」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상전. 4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무려 3천만 명의 사상자를 만들어낸 끔찍한 재앙,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이후 벌어진 상황이다. 당시 병력의 절대수가 부족했던 독일과 소련은 둘 사이에 낀 나라들, 이를테면 핀란드나 에스토니아에서 강제 징집을 해 전투력을 보충했으며 와중에 같은 민족이 적국으로 나뉘어 상대를 죽여야 했던 비극이 벌어졌다. 영화 <1944>(엘모 누가넨 감독, 극영화/전쟁물, 에스토니아/핀란드, 2015년, 96분)는 에스토니아 젊은이들이 겪었던 비극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두 개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먼저 독일군에 징집된 카알 토믹(카스파 벨버그). 그는 에스토니아 인들로 구성된 친위대 군단에 소속되어 소대원들과 수없이 사선을 넘나든다. 그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다. 가족이 소련군에게 끌려갈 때 (정확치는 않지만 아마 사상 문제였던 것 같다) 멀리서 지켜보며 몸을 피했던 것이다. 그 사연을 꼭 가족에게 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전선에서 고향으로 가는 길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그래서 여동생 아이노(마이켄 슈미트)에게 쓴 편지를 늘 가슴에 품고 전장에 나서곤 한다.
다음으로, 붉은 군대 소속인 유리 요르기(크리스챤 윅스퀼라)도 카알처럼 소련군에 징집된 처지다. 아니, 그는 공산주의 사상에 어느 정도 찬동하고 있었으니 에스토니아 인민의 해방 전쟁에 참여했다고 함이 옳겠다. 그러나 동족애와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어이없게도 전쟁에서 같은 피를 나눈 젊은이를 죽여야 했던 것이다. 카알 토믹과 유리 요르기의 두 이야기는 영화 중간쯤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에 와 닿았던 장면이 있다. 아이노가 유리에게 “원래 무고한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법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본디 전쟁이란 피하는 게 아니라 선수를 쳐서 상대를 제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실천적 이성(prudenzia)’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그렇게 밝혔다. 전쟁판에서 “사태를 관망하면서 시간을 벌어두어라”는 격언은 적절치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강제 징집으로 전쟁터에 나서야 하는 말단 병사들에게 ‘실천적 이성’이란 당치도 않은 소리다.
아이노는 두 번의 편지를 받는다. 오빠 카알과 잠시 사랑을 나눈 유리에게서. 카알은 “이제 너도 진실을 알게 되었구나.”라고, 그리고 유리는 “다시 백지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전한다. 무고한 자들의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다. 죄책감이라는 형벌이 히틀러나 스탈린이 아닌 카알과 유리에게 내려진 것이다.
영화의 규모가 큰 편이었다. 참호전을 벌이는 많은 병사들이 나오고 전차부대와 전투기 편대들이 등장해 전쟁의 현장감을 물씬 살려주었고 와중에 총부리를 마주 겨눈 에스토니아 젊은이들끼리 만나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상대편이 내지르는 외침을 듣고 같은 민족인줄 금세 알아채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어떻게 피를 나눈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눌 수 있다는 말인가!
<1944>가 주는 강력한 반전(反戰) 메시지에 힘을 얻어 이 영화는 팜 스프링스 국제영화제, 카이로 국제영화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서 주목을 받았고 제작 국가인 에스토니아에서 한 달 동안 흥행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영화감독인 엘모 누가넨은 에스토니아의 또 다른 반전영화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2013>에서 주연을 맡았다고 하니 영화를 통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인물인 모양이다. 선이 굵고 주제의식도 분명하고 메시지 전달도 좋았다. <1944>는 기억해 둘만한 영화이다.
영화 「고지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전쟁영화들 중에서 오랜만에 만나보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른바, <고지전高地戰>(장 훈 감독, 전쟁물, 한국, 2011년, 133분)의 진상 말이다.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은 3년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한반도 전체를 두고 벌였던 전면전은 1년을 넘지 못했고, 나머지 기간은 38선 주변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채 벌어진 국지전이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GPS 기술이 없던 시절이었으니만치 산 너머 적진의 동향을 살피려면 반드시 고지를 차지해 시야를 확보해야 했다. 따라서 밀고 밀리는 전투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는데, 영화의 배경인 애록 고지는 무려 30여 차례나 주인이 바뀌었었다.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지전>은 기존의 전쟁영화와 뚜렷이 구별된다. 우선 다양한 인물들의 시각을 사용해 전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 점이 눈에 띈다.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는 북한군과 내통하는 자를 색출하라는 임무를 맡았고, 악어 중대의 실질적인 지휘관인 김수혁 중위(고수)는 이미 전쟁의 창자까지 다 보아버린 인물이고, 갓 스물 나이에 중대장이 된 신일영 대위(이제훈)는 아군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악어 중대와 맞선 북한군 지휘관 현정윤(류승룡)은 한 때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으나 이제는 전쟁의 당위성마저 의심하고, 북한군의 빼어난 저격수인 차태경(김옥빈)은 의미도 모르는 채 총을 쏘아대는 고성능(?) 살인자이다.
이들에 더해 화려한 조연들(유승수, 고창석, 조진웅, 정인기, 이다윗)이 다(多)각도에서 전쟁의 냉철한 증인 역할을 해냈고, 그 중에서도 고창석과 유승수의 연기는 빼어났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쟁의 구체적 현장은 살육이 벌어지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여기 글자 그대로 선악이 사라진 무자비한 전쟁터에서 매 순간 목숨을 거는 군인들에겐 오직 휴전만이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휴전을 기다리는 동안 애록 고지는 점점 수많은 시체들이 널브러진 민둥산으로 변해간다. 장훈 감독은 한 곳에 시점(視點)을 맞추고 그 앞에 전투의 여러 장면을 교차시킴으로써 극적인 설명 효과를 불러왔다. 전쟁의 참상을 한순간에 간파하게 만든 훌륭한 연출력이었다.
전투의 세부적 묘사도 뛰어났다. 전선에서 펼쳐지는 온갖 작전들과 임기응변을 적절한 상황과 엮어냄으로써 사실감과 함께 단단한 긴장감을 불러왔고 와중에 뜬금없이 내뱉는 대사들이 몰입에 도움을 주었다. 휴전까지 12시간을 앞둔 전투에서 남북 군인들의 유일한 소망은 고지에 자욱하게 낀 안개가 걷히지 않는 것이었다.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면 비행단이 출격 못할 테고, 비행단이 뜨지 않으면 전투 개시를 알리는 공중 폭격이 시작되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 고지전은 취소된다. 만일 그렇게만 되었다면 그리운 고향에 갈 수 있었을 것을… 하지만 무정한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폭격이 시작되자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3년 전쟁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진다.
2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동남아시아 전선으로 파병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셨던 아버님의 증언에 따르면 ‘대동아(大東?)전쟁’이 터지자 삼년 만에 서둘러 졸업장을 주고 징병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 무덥고 위험한 밀림에서 조선의 젊은이들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0만 명이 훌쩍 넘었다고 한다.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세계정복 야심에 가득 찬 일본군의 일원으로 죽은 것인데 아직 그들의 한이 풀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1944>를 보면서 허망하게 사라져간 조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면 억울한 젊은이들의 한이 조금은 풀어지려나? 마찬가지로 <고지전>에서도 오래전 집안 어른들에게 들었던 6.25 전쟁 당시의 상황과 일치되는 면면이 발견되면서 영화가 흥미를 더해갔다.
몇 해 전부터 남북 관계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그래서 상호왕래는 물론 남북의 모든 접촉이 끊겼고 온 나라가 포화에 휩싸일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위기가 팽배해있다. 그러노라니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으리라. 물론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에게 6.25의 비극은 한 번이면 족하다. 두 영화를 보고나서도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은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매우 비극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군인들은 용기를 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