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청댐의 완공으로 물속에 가라앉았지만 동구 내탑동 주변 금강변엔 한 여름철에 수영장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몰려 들었으며 그 수영장
아래쪽으로 탑이 있는 산이 강변에 있어서 이 산을 탑봉, 탑산이라고 불렀었다. 그 탑봉, 탑산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신라말엽때 전라도 무주 구천동에 한 토호가 살고 있었다. 무주 구천동에는 옛날부터 들이 기름져서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구천동의
장자라하면 권력이 있는 장자로 불리웠다. 그의 집에는 많은 사람이 기거하고 있었으나 그의 원 식구는 세 사람 뿐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하고 기르는
외동딸과 그들 부부 단 세사람이었으나 종들 이삼십 명이 같이 살고 있어서 항시 그의 집주변은 장터 같았다.
딸이 장성하여 열여섯이 되었을 때 그는 완주(전주)로 가서 신랑감을 골랐다. 무주 구천동의 장자 사위감을 고른다는 말이 완주바닥에 퍼져서
많은 총각들이 모였으나 그의 구미에 당기는 사위감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돌아 와서는 다음 해에 청주로 사위감을 고르러 나갔으며 여기에서도 시원치
않으므로 그 다음해에는 아내를 동반하고 충주로 사위감을 고르러 갔다. 그래서 자연히 집에는 딸이 혼자 있게 되었고 종들 틈에서 딸은
모처럼 만에 외출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그럭저럭 열아홉이 된 딸은 익은 복숭아처럼 환해 보였다.
하루는 꽃이 만발한 남쪽 산에 올랐다가 한 초막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초막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총각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초막집에 가까이 왔다가 초막입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칼과 창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돌아섰다가 그집 총각과 마주치게 되었다. 총각은 늠름했다.
그리고 보기에 육중한 그 총각에게 장자의 딸은 한꺼번에 마음을 빼앗겼다.「보기에 귀중한 댁의 처녀같은데 안으로 좀 들어와서 쉬어 가시지요.」총각은
앞을 스쳐 오르면서 말하므로 그녀는 마치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따라 들어갔다. 초막 안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깨끗했다. 그리고 아들이
돌아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초막 안을 환하게 비추는 불을 켜고는 그녀를 보고 빙그레 웃는 그의 어머니의 웃음 띤 얼굴을 보고는 산에서 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여기에도 마음이 끌렸다.
산속 초막에서 극진한 대우까지 받은 딸은 그날 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밤새 그 총각 생각만 하다가
다음날엔 새벽 일찍이 산으로 그 초막을 찾아갔다. 총각은 없었다. 총각의 어머니와 어울려서 거문고도 튕겨 보았으며 책도 펼쳐 보았다. 가까이
갈수록 별천지 같은 초막이었다. 초막 속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들이 들어섰을 때 처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셔서 어머니 말동무 되어 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늦게까지 낭자가 총각네 집에 계신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외다.」하고는 어둠 속으로
나와서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산길을 걸으면서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집 앞에 이르렀을 때,「안녕히…….」하고 총총히 그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처녀는 생각을 했다.
「내 낭군은 저 분이다. 나는 저 사람아닌 사람에게는 시집을 안갈래.」그녀는 그날 저녁도 그 총각 생각으로 이불을 덮고 누워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밤을 새웠다. 그 이튿날 아침에도 그 초막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억지로 참으면서 늦게 충주에서 돌아오는 부모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부모님들은 이제서야 신랑감을 충주에서 발견하였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네 낭군감이 없겠느냐? 네 낭군감은 충주에 있더라. 아,여보! 당신도 마음에 들었지.」하고 동의를 구하며
좋아했다.「혼례는 빨리 서두르기로 했다. 금년 가을에 하기로 했다. 이제 두달 남았구만.」하고 말을 할 때 더욱 초막집 총각 얼굴이
떠올랐다.
집에서 혼례 준비를 서두르는 동안 한 번도 그녀는 총각집 초막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하루는 이러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시집을 가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아버지 앞에 그녀는 나섰다.「아버지 전 시집을 안갈래요. 보낼려면 제가 좋아하는 총각에게 보내주세요.」하고 폭탄적인 말을 했다.
그녀의 부모들은 처음엔 누가 마음에 드느냐고 호통을 치다가 딸이 누구라고 말을 하자 그 초막집을 당장에 습격을 해서 총각을 잡아왔다. 그리고는
그 총각에게 모진 매를 때려서 죽여버렸다. 늦게서야 초막집 총각이 매를 맞고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딸은 그날 밤 부모 몰래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집을 뛰쳐 나왔다. 혼례를 며칠 앞둔 장자네 집에서는 야단법석이 났다. 종들을 풀어서 딸을 찾게 했다. 딸은 구천동너머 남쪽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딸이 산너머 절에 있다는 종의 말을 들은 장자는 딸을 찾아 나섰다. 장자가 집을 나설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일 모레가 혼례의 날이었다. 그가 종을 데리고 산을 넘었을 때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래도 빗속을 달려갔다. 드디어 절이 있는 냇물가에
이르렀을 때 냇물을 건너려고 하는데 절이 있는 동산이 냇물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장자는 놀래면서도「저 동산을 따라가자.」하고는 빗물에
떠내려가는 동산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동산은 둥실둥실 떠내려가고 있었다. 장자와 종들은 그 동산을 따라오다가
종들은 실족을 하여 물 속에 빠져 죽기도 했다. 동산이 드디어 어부동을 돌아서 아래로 흘러내려갈 때 장자도 기진맥진하여 실족을 한 후 물 속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타나지를 않았다.
동산은 둥실둥실 떠내려와서 내탑동 안쪽에 척하고 걸렸다. 동산에 있는 절도 그대로였으며 탑도 그대로였다. 딸은 여기에서 죽을 때까지 먼저
죽은 초막집 총각의 넋을 위로하는 불공과 이어 억지를 부리던 아버지, 어머니의 넋을 위해 불공을 드렸다 한다.
그 후 이 동산은 무주현에서 자기네 땅이 떠내려가서 여기에 도착한 땅이라고 하였으나 여기 사람이 동산을 가져가고 냇물을 비워달라고 해서
무주사람이 그냥 돌아갔다 하는데 그 여승이 죽으면서 절과 탑은 또한 땅속에 묻히기 시작하였다 한다.
<대전광역시 동구문화축제관광-역사속산책> 중에서
첫댓글 옛날 수영장 사진 보니 참 좋았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