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장 19절 말씀 읽어드리겠습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 되었더라'
우선 식구님들께 저의 요즘 상황을 문안차 알려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살던 조카 손자는 선교원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아빠 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입학하기 전 환경이 바뀐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제가 일주일간 따라갔습니다.
주님께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어느 밤에 좋은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 동네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축구장이 있었습니다.
불빛은 희미했지만 우리에겐 테니스 공이 있어서 휴대폰 전등르 비추며 맘껏 뛰놀았습니다.
서로의 긴장감이 줄어 들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로 해 주시는 것 같아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2월 성회에 참여하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한 밤중까지 잠을 쫓아내던 생각이 납니다.
아이의ㅣ 마음 속에 행복전선은 몸된 교회와 선교원에서의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간들이 아이에게 영향력 있는 추억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이가 가고 난 뒤 제 삶의 사다리가 한 단계 끝났을 때 주님의 합격 신호가 있을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주님께서 답을 주신 것 가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노인복지센터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출근하는데, 며칠 후
"오늘도 주님의 발등상으로 하룻길 가게 해 주시"라는 기도 내용이 되새겨졌습니다.
제 기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픈 기도이을 께닫고 주님의 합격 사인을 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식구님들이 손자와 저를 위해 마음 써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주님이 주신 다른 은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이신 주님을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입니다.
사무엘상 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사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고 왕을 세우기 직전에 사무엘이 사사와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사무엘은 늙고 그 아들들이 사사로써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실정에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이 태어나기 오래 전에 왕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룻기서의 보아스는 사사시대를 사는 사람이었고 보아스의 증손자로 다윗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 후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 왕응ㄹ 세우시게 됩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예수님이 왕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소개해 줍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태어나셨지만 요한복음 18장과 1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재판을 요구합니다.
밀라도가 재판할 때에 예수님께 "왕이냐?"고 묻습니다.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 주님의 나라는 세상과 같지 않고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는 왕"이라고 말씀하시자
빌라도는 "예수의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를 놓아 주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고소하며 외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놓으려고 힘씁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왕'이라 하는 예수님을 놓아주면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 총독인 빌라도가 '가이사를 반역'하면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빌라도의 모습에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처음엔 왕되심과 빌라도의 모습은 충돌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은 빌라도라는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추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이 깨우쳐 주시길 요청할 때에 제가 포기 할 것들을 보게하셨습니다.
천국 길에 불필요한 것들을 십자가 안에서 버리고 왕되신 주님의 다스림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살아가라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줍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십자가 위에 붙이는 것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놓을 권세도,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위로부터 오듯이 '왕'의 패'를 붙이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로써 주님이 '왕'으로 죽으셨음은 만천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주님이 왕으로 죽으셨음은 저의 궁금했던 것에 해답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죽으셨을 때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했었습니다.
'왕'으로 오신 주님은 '왕'으로 죽으시고 살아나신 후 하늘보좌에 왕응로 계셔서 어느 한 순간도 빈틈없이 '왕'으로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왕'의 패'는 주님이 언제나 나의 왕으로 계셨음을 말씀 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세상에 사는 방식을 달라지게 하였씁니다.
세상과 사람들 앞에 설 때에 왕되신 주님의 다ㄹ리심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나의 영혼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자유함을 얻은 것에 이어 더 큰 자유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ㅣ왕되심이 나를 더욱 든든하게 하고 무익한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주님의 발등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니 제가 포도나무 가지로 삵 있는 것 같습니다.
왕되시니 주님이 뻐있게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주님 모시고 정함 있게 그저 하룻길만 가고자 합니다.
은혜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