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것은 한 순간,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혹은 그런 이유조차 없이 순식간에 빠져 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게 사랑이 아닐까.
스완이 오데뜨를 사랑하는 것처럼.
자신의 이상형과는 한 참 먼,
오히려 외면하고, 경멸하기조차 하는 성향의 여인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와,
자신의 인생관을 허물고,
일상을 허물고,
질투와 초조함에 눈 먼 사람이 되어가는 스완.
머리속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비이성적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는데도,
가슴속에서는 하루에도 열두번씩 폭풍우가 몰아치고,
한 여인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스완.
지적인 사람은 다른 지적인 사람에게 바보로 보이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멋쟁이가 자신의 우아함이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대귀족이 아닌 시골뜨기 앞에서다. 세상이 존재한 이래 사람들이 낭비해온 재치의 비용과 허영심에 의한 거짓말의 사분의 삼은- 이런 것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렸을 뿐이지만- 항상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그래서 공작 부인을 대할 때는 소박하고 소홀하던 스완도 하녀 앞에서는 무시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잘난 체하는 것이었다.
오데뜨를 볼 때도 이런 시선으로 보던 스완이,
오데뜨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그 이름이 화가의 진정한 작품 대신 통속화된 진부하고 잘못된 관념을 환기하게 되면서부터 보티첼리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 의 제포라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기쁨은 더욱 깊어지면서 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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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뜨를 만나는 즐거움이 자신의 미학적인 소양 덕분에 정당화 되는 것을 보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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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예술 분야에서 그의 가장 세련된 취향을 만족시켜 주었으니까. 그리하여 그는 오데뜨가 자신이 욕망하던 여인이 아니라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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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맞춤이나 육체의 소유가 시든 육체에 의해 주어졌을 때는 자연스럽고 하찮게 보이던 것이, 박물관 예술품에 대한 숭배가 이를 축성하러 오자 초자연적이고 감미롭게 보이는 것이었다.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오는 제포라와 닮았다는 이유로 오데뜨에게 빠져버리는 스완.
그는 오데뜨의 뺨을 따라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그녀와 닮았다고 생각되는 피렌체 유파의 거장이 그린 연인들처럼 우수를 띤 엄숙한 얼굴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커다랗고 가느다란 빛나는 눈은 그림 속 여인들의 눈처럼 눈꺼풀 가장자리로 모여, 두 방울 눈물이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성화나 이교도들 장면에서 여인들이 곧잘 그러하듯이,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후부터 스완의 불행한 사랑이야기가 주구장창 이어지는 게 2권.
자신의 행동이 사랑하는 오데뜨의 기분을 어떻게 만들지 전전긍긍하면서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스완을 보면
한편으로는 스완이 너무 불쌍하기도 하고,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오히려 더 불행해지고 더 슬퍼지는 결과라는 걸,
스완을 보면 알게 되는데...
2권에는 2부 스완의 사랑과 3부 고장의 이름이 나오는데, 2부가 스완이 오데뜨에 대한 사랑이라면,
3부 고장의 이름에는 스완과 오데뜨 사이에서 난 딸, 질베르트와 이 책의 화자 마르셀이 상젤리제에서 만나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질베르트를 만나 가슴 설레하는 마르셀.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는 지는 책을 더 읽어봐야 겠지?
3부의 소 제목이 이름인데, 이름에 대한 언어유희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프루스트
불그스름하고 우아한 레이스 안에서 그렇게도 높이 솟아 있고 꼭대기가 마지막 음절의 오래된 황금빛으로 빛나는 바이외,
e모음 위 방점이 오래된 유리창을 검정 나무 같은 마름모꼴로 나누는 비트레,
달걀 껍질의 노란색에서 진주빛 회색에 이르는 희끄무레하고 부드러운 랑발,
기름지고 노르스름한 마지막 이중모음이 버터로 만든 탑을 장식하는 노르망디의 대성당 쿠탕스,
마을의 고요 속에 역마차의 소음과 함께 파리가 뒤따르는 라니용,
하얀 깃털과 노란 부리가 강물이 흐르는 시적인 장소의 길 위에 흩어져 있는 그 우습고도 소박한 케스탕베르와 퐁토르송,
해초 한가운데로 강물을 끌어들이려는 듯 밧줄에 겨우 매인 듯한 베노데트,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천 모자의 옅은 분홍색 날개가 운하의 초록빛깔 물속에서 떨리며 반사되는 퐁타벤,
중세 이래로 시냇물에 보다 단단히 메어 있고 그 사이를 졸졸 노래하며 검게 그은 은의 무딘 점으로 변한 햇살이 유리창 거미줄 너머로 그림을 그리듯 아주 섬세한 잿빛 진주 방울로 아롱지는 캥페를레.
프루스트의 문장이 어딘들 경이롭지 않겠는가 마는
이 책의 맨 마지막 문장에선 변해 가는 것들의 쓸쓸함,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다시 오지 못한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쓸쓸함이
여운을 길게 남기지.
화려 했던 블로뉴 숲이 전쟁으로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현기증 나는 시간의 변화속에 해체되어 가는 기억, 등등...
이제는 황폐해진 숲의 비인간적인 공허를 선포하는 듯했고, 기억에서 오지만 감각으로 지각되지 않아 늘 매력이 결여된 기억속 정경들을 현실에서 찾는 일 자체가 모순이라는 걸 더 잘 이해하게 해 주었다. 내가 알았던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스완 씨 부인이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거리'모습이 달라지기에 충분했었다.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접한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저자마르셀 프루스트출판민음사발매2012.09.05.
첫댓글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