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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와달에스키스 원문보기 글쓴이: 소와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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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해부학에 대해서 / 이종범(만화가)
1. 우리는 원리를 싫어한다. 영어를 가르치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영문법을 싫어한다는 것. 나는 “난 문법이 제일 재미있어.”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문법은 만인의 지탄을 받기 위해 태어난 영역같다. 문법만큼 한반도의 악감정을 한 몸으로 받은 존재는 없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도, 군부독재 때의 독재자도, 지금 현대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의 영어문법보다 미움 받지는 못했다. 그 이유가 뭘까.
“문법은 어려워” +“난 왜 문법을 하고 있는 거지?”
자아. 조금만 집중해 보자. 문법이 ‘왜 어려운지’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대답은 동일하다.
문법은 ‘원리’이기 때문이다. 말을 만들어서 내뱉고, 쓰고, 타인이 하는 말을 해독하는 ‘원리’말이다. 우리는 원리라는 말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그 말을 싫어한다. 어디 한번 볼까? 컴퓨터가 작동하는 원리와 냉장고가 차가워지는 원리, 커피포트가 물을 끓이는 원리와 디지털 체중계의 패널에 나의 체중이 숫자로 나타나는 바로 그 원리. [중간 과정]이나 [매커니즘]이라고도 불리는 그 원리. 혹시 위에 이야기한 ‘원리들' 중에서 하나라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보통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세상의 ‘겉모습’과 마주한다.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거니와 이해하기도 상당히 어렵다. ‘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AS’를 찾는 것이다. 컴퓨터를 잘하는 친구를 둔 사람은 알 수 있다. ‘어이, 내 컴퓨터가 좀 이상해.’ 라고 친구에게 ‘겉모습’을 말하면 그 친구는 엄청나게 복잡한 경로를 추적하여 짠. 하고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는 ‘컴퓨터가 돌아가는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 그 몸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정확히 위와 같아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만큼 지루하고 공부하기 싫다. (게다가 미술 해부학은 영문법보다 복잡하고 어려우면 어렵지 더 쉽지는 않다고 느낀다.)
2. 그럼에도 그림의 세계는 너무나 관대하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모든 사람들이 해부학을 공부하고 인체 뎃생을 죽어라고 하루 종일 단련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문법에 어긋나도 의사 소통이 된다면 언어로서의 역할중 매우 중요한 부분을 수행하고 있는 거니까.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이듯 '잘 하고 싶은' 욕구가 '즐거움'을 넘어설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애정과 열정의 종말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정확한 공부와 끝없는 단련보다 현명한 포기가 더 행복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그리고 그림의 세계는 너무나 넓어서 사실 이론과 해부학의 영역을 잘 모르는 사람도 훌륭한 그림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그릴 여지가 많다. 너무나 많다. 아무튼. 나는 자신을 달래기도 하고 채찍질도 해가면서 아무튼. 해부학을 공부하고 인체 뎃생을 한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그 원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리고 악기연습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를 깨달았다.기본 연습과 원리 학습도 재미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적절한 동기에서 시작했을 때에 주로 가능한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 덕에 상당히 즐거웠던 지난 한 달여간의 경험을 조금 정리 해 볼까나.
3. 뼈 중학생 때, 처음으로 샀던 미술 해부학 책에서 가장 충격 받았던 첫 챕터. "뼈를 그려봐야 합니다. 뼈를 그려보지 않고는 인체를 그릴 수 있다고 말 할 수 없는 겁니다." 뚜웅! 저 수많은 뼈들을. 그려봐야만 한다니. 물론 난 과감히 무시했다. 전체적인 느낌만 대충 본 후에 근육만 봤다. (물론 그 때에는 심층 근육도 안 봤지..) 이번 폐관 수련 중에 뼈를 처음으로 모두 그려보았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방 안에 200권의 책이 있다고 가정하자. 정리하려면 힘들지 않을까? 정리만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필요할 때에 다시 꺼내는 도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장을 사용한다. 도서관을 떠올려 보자. 각 책장에는 주제별로 분류표가 붙어있다. 그 분류표-인덱스-를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내용이 매우 많은 분야의 경우 인덱스를 머릿속에 정확히 박아 넣는 데에만 한달을 쏟기도 한다. 나의 경우 책의 차례를 외워 버리곤 하는데, 그렇게 시작하면 후에 읽었던 내용을 마치 책장에 집어 넣듯 정리할 수 있고, 다시 기억해 낼 때에도 인덱스 상에서 대충 정보의 위치를 파악한 후 떠올리기 때문에 쉽고 빠르며 정확하다.
인체 해부도 마찬가지이다.인덱스-책의 차례 페이지-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비례이다. 그래서 비례를 손에 붙이는 데에만 일주일을 사용했다. 비례 공부는 자세한 사항은 크게 관계 없기 때문에 근육을 공부하기 전에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느낀 팁은, 큼직큼직하게 뼈를 공부하면서 비례를 아예 익혀 버리는 게 매우 좋다는 것이다.두개골과 척추를 중심으로, 사지의 뼈들의 위치관계, 흉곽의 크기나 관절들의 위치를 마치 동네 구멍가게 가는 길을 외우 듯이 익숙하게 만들어 놔야 한다.팔꿈치는 어디쯤에서 끝나고 견갑골의 너비는 어느정도, 어깨의 너비와 골반의 너비를 관계짓는 비율이 어느 정도.
이 '전체적 비례'관계를 동네 지도처럼 익숙할 정도로 외워 놓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렇게만 한다면 이후의 해부학 공부가 매우매우 쉬워 질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점!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단계에서 배운 지식들을 잘 써먹을 수가 있다. 이 단계를 배울 때 흔히, 마치 글의 머리말 읽듯 대충 넘어간다거나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면 초조해 하면서 바로 뼈와 근육으로 넘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엄밀히 말해서 이 단계만 한달을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하루 이틀? 몇시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두개골, 척추, 흉곽, 골반, 팔-다리뼈, 이렇게 5가지 부품을 갖고 비례를 익혀 놓아야 한다. 잊지 말자. 두개골, 척추, 흉곽, 골반, 팔-다리뼈. 5가지이다.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다섯가지를 떠올려보자. 이 다섯 가지가 비례공부를 위한 기초 뼈덩어리들이다.
그리고 나서 각 뼈들의 세부 사항을 그려본다. 문제는 해부학 책에서 보여주는 자세하고 리얼한 뼈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엄청난 시간의 낭비라는 것이다. 리얼한 뼈를 그대로 모사하는 건 미술 해부학을 배우는 데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직접 원고 상에서 뼈를 그릴 때에나 참고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백과 사전에서 어떤 항목을 읽고 기억한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그 글을 토씨하나 안 빠지고 기억하나? 아니다. 내용을 추출한 후에 자기만의 언어로 기억한다. 백과사전에서 '유비쿼터스'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유비쿼터스=어디든지(everywhere)’라는 뜻의 라틴어 ‘유비크(ubique)’에서 나온 신조어. 사용자가 장소와 시간, 네트워크나 컴퓨터의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것을 그대로 외울까? (그런 사람들도 간혹 있다만) 우리는 '대충'외운다. 하지만 중요한 내용이 어떤 것인지 추출해서 그것만 외운다.
'유비쿼터스=아무데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
물론 '어원이 필요한 정보'인 상황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다른 것이 된다. 이 '중요한 정보'에 해당하는 부분은 맥락에 따라 다르니까. 그리고 미술 해부학에서 우리가 뼈를 공부하는 이유는 뼈를 그대로 모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보여지는 인체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뼈는 그 원리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다. 뼈의 자세한 외형이 아니라 뼈의 크기와 전체적인 모양. 그리고 피부 위에서도 보여지는 특별한 부분들의 모양과 특히 근육들이 붙기 위해 마련된 자리를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거의 대부분의 뼈를 '도식화'한 것을 보고 공부했다. 손목이나 발목의 경우 수많은 뼛조각들은 덩어리로 보고 덩어리의 모양만을 익히는 등의 것이 그것이다. 흉곽도 한 덩이로 익힌다. 다만, (앞에서 봤을 때 총 10개의 갈비뼈가 보이고 등 쪽에 두개가 떠있는데, 그때에) 대흉근 소흉근이 붙어 있는 5번째 갈비뼈가 어느정도 높이에 있는지 (가슴팍 끝날 때 즈음, 즉 흉곽 전체 높이의 절반 정도이다) 정도만 외워 두면 된다. 이런 것이 덩어리로 외우되 중요한 정보를 추출해서 외우는 방식이다.
그렇게 머리부터 시작해서, 척추. 흉곽. 골반. 이 세가지를 익힌다. 이 세가지는 (엄밀히 말하면 척추, 흉곽, 골반만 이야기해도 되겠지만 머리는 비율의 기준으로 그냥 포함 시켜서) 멍석을 까는 것과 같다. 이 세 종류의 뼈를 자세히 모르면서 사지로 넘어가는 건.... 안될 것은 없지만 딱히 순서를 정해 보자면 역시 이 세 가지를 먼저 하는 것이 안정감이 있다.
4. 근육 근육이 미술 해부의 꽃이라고 다들 말하는 데에. 정말 그 말은 맞다. 꽃을 위해서 수많은 부위가 존재해야 하지만. (뿌리, 잎, 줄기 등등) 꽃-근육은 공부하는 자체로도 재미가 있다. (열매는 포즈인걸까.) 인간의 몸을 지금 방식대로 움직이도록 발달된 근육들은 너무나도 신비로워서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여기에서도 뼈와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모든 근육을 (처음부터) 외우는 것은 필수 사항이 아니다. 그렇다고 심층 근육을 빼고 공부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근육은 생각보다 굉장히 얇은 것들이 많아서, 뼈와 심층 근육의 모양을 그대로 반영하는 부위가 많다. 따라서 나의 경우는 외부에서 보여지는 주요 근육을 최 우선으로 하되, 심층 근육은 겉 모습에 영향을 주는 한에서만 외웠다. 다만 알아둬야 할 것은, 외우진 말되 한번 참고는 해둬야 한다. 왜냐하면 후에 포즈집을 보며 인체 드로잉을 할 때에, 동작에 따라서 심층 근육의 존재가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 때에 해부학의 심층 근육 부분을 펼쳐 찾아보면서, '도대체 이 부위는 아래쪽에 뭐가 있길래 이런 모양이 나오지?' 하며 알아 보는 것이 더 낫다. 한번에 모든 근육을 다 알아봤자. 까먹기도 쉽고 너무 복잡하다. 대표적으로 목의 근육은 흉쇄유돌근과 승모근 이 두가지 외에 다른 심층 근육을 다 외우고 넘어갈 필요가 없다. 근육질의 마초를 그릴 때, 승모근과 흉쇄유돌근 사이의 심층 근육 윤곽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에 겸사겸사 찾아보면서 외우면 된다.
이쯤에서 눈치 챘겠지만, 상당히 대강대강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조금은 그렇다. 왜그럴까? 신성한 미술 해부학-_-을 공부하면서 왜 대충하는거야 도대체. 여기서 근육공부의 대 원칙이 나온다. 근육공부는 '자세하게 한번'이 아니라 '대충 여러번'이 훨씬 중요하다. 한번 근육들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은 공식을 배우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공식이 활용되어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 봐야지만 비로소 그 원리는 내 것이 된다. 영단어를 외울 때, 한 단어당 100번 써가면서 외우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사실 초고수가 되기는 힘들다. 우리는 암기의 목적을 종종 혼동한다. 암기는 머릿속에 '입력'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 머리로부터 '출력'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출력을 의식적으로 수련해야 한다. 영단어라면 그 단어가 쓰인 문장을 자주 보거나, 스스로 그 단어를 사용하면서 머릿속에서 그 단어의 의미를 끄집어 내보는 행동을 자주 해보는 것이고 그림의 경우 수많은 포즈집들을 보고 공식을 다시한번 (즉 근육의 구조를) 떠올려 보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야망에 불타올라 '뼈와 살을 발라 버리겠어' 라는 자세로 근육 공부에 임하면 한방에 자세하게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고 덤벼드는 결과가 나오는데 이건 큰 실수다. 수많은 근육들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붙어 있는지 자체는 열심히 외우면 암기는 가능하다. 하지만 움직임에 따른 모양 변화의 변수는 너무나 다양해서 한방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누드 포즈 자료집의 유용함이 나온다. 누드 포즈 자료집은 이를테면 연습문제집이나 같다. 눈에 보이는 모양 그대로를 모사하지 말고, 이미 한번 학습했던 근육들의 위치와 모양을 짚어 가면서 한 포즈 한 포즈 그리다 보면 어느새 근육들을 '암기'가 아니라 '이해' 하게 되는 것이다. 시작할 때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여러번 반복해서 그리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근육 해부를 공부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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