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연옥 영혼들의 어머니
마리아 심마
마리아 심마(1915-2004년)는 오스트리아의 매우 아름다운 작은 마을 손탁에서 태어나 살던 중 매우 특별한 소명을 받았다. 연옥 영혼들에게서 알게 된 사후 세계에 관한 사실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었다.
“나는 학교를 8학년까지만 다녔다. 그러나 불쌍한 연옥 영혼들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
...왜 그들이 나를 찾아오는지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그들 중에는 매우 신실하게 보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하느님의 방법은 헤아릴 수 없다. .. 처음에는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보다 그냥 내 안에 간직하는 편이 나았다.
오해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며, 심지어 사제들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마는 5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불쌍한 연옥 영혼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봉사를 충실히 행하였다.
마리아 심마는 형제자매가 많은 가정에서 성장했다. 너무나 가난하여 형제자매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일을 해야 했고, 남의 집 하녀로 들어가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다. 신앙심이 깊었던 심마는 하느님께 특별한 희생을 바치고 싶었다.
“그래서 학생 때부터 나는 우유를 가지러 먼 길을 걸어가며 기도했다. ‘사랑하는 하느님 당신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제 소명이 적힌 종이가 제가 지나가는 외양간 어딘가에 놓여 있게 해주십시오.’ 늘 이렇게 기도하며 갔지만 종이는 없었다. 점차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면서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당신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길을 제가 찾지 못한다면 그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17세에 학교를 졸업하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수녀원에 갈 거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그 길일 거야.”
하지만 수녀원 입회는 허약한 건강 때문에 세 번이나 거절되었다. 그렇게 8년이 지나고 25세 때 심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마련하신 길을 찾지 못했어.’ 이런 자책감은 내 영혼을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나는 불쌍한 연옥 영혼들에게 마음이 쏠렸고 어머니도 그 점을 높이 평가해주었다. 사실 어머니가 우리에게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었다. ‘너희가 크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불쌍한 연옥영혼들에게 도움을 청해라. 연옥 영혼들은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단다.’”
심마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의 가르침대로, 그 불쌍한 연옥 영혼들의 이름으로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순결과 기도의 삶을 약속했다. 심마는 매우 겸손하게 살면서 손탁의 성당 청소를 담당했으며, 아이들의 첫영성체와 고해성사를 도와주었고,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돌보았다. 1947년부터는 작은 종묘원을 경영하며 혼자 살았다.
연옥 영혼이 처음으로 나타나다.
마리아 심마가 25세이던 1940년의 어느 날 밤, 그녀의 침실에서 낯선 한 남자가 천천히 앞뒤로 걸어 다니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놀라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 사람의 얼굴 가까이까지 뛰어가서는 대뜸 물었다.‘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무엇을 잃어 버렸어요?’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계속 걷기만 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나의 두 번째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아서 나는 그를 붙잡으려고 침대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나 내가 잡은 것은 허공이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앉아 그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지금 나는 깨어있는데 왜 저 사람을 못 잡는 것일까?’ 나는 다시 침대에서 내려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지만 허사였다. 그는 그냥 가버렸다. 그 순간 오싹했다.
내가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는 새벽 4시경이었다. 그가 다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다음 날, 미사 후에 영성지도 신부님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더니 신부님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면, ‘누구세요?’라고 묻지 말고 ‘나에게 무엇을 원합니까?’”라고 물어보라 하셨다.
그 다음날 밤에 그 남자가 다시 왔기에 물었다. ‘나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가요?’ 마침내 그가 대답했다. ‘나를 위해서 미사 세 대만 드려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나는 구원될 겁니다!’ 그 때 나는 알아차렸다. ‘이 사람은 연옥영혼임에 틀림없다.’ 나의 고해 신부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불쌍한 연옥 영혼들을 위한 마리아 심마의 사도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초기 13년 동안은 연옥 영혼들이 개별적으로 심마를 찾아왔으며, 주로 위령 성월인 11월에 집중되었다. 심마는 영성지도 신부님의 허락을 받고는 그 영혼들을 도와주었다. 단 한 영혼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나를 위한 보속의 고통을...
1953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불쌍한 연옥 영혼들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마리아 심마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고통을 바쳐 자신을 도와달라고! 심마는 동의했다. 밤에나 낮이나 연옥영혼들은 이 영적인 후원자에게 나타났는데 제각기 다른 모습이었지만 대개는 작업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어떤 영혼들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또 어떤 이들은 마치 안개 속에 있는 듯 희미하거나 절망적인 말을 하며 겁먹은 모습이기도 했다.
심마가 대신 바친 보속의 도움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들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들 중 몇 명은 자기 지방 말로써, 외국 태생의 영혼들은 이상한 액센트의 엉터리 독일어로 부탁해왔다.
심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통을 받아들였는데, 그 대부분은 미리 예연되었다가 갑자기 중단되어버렸다. 예를 들면, 신앙에 미지근한 어느 영혼을 위해서 심마는 마치 나란히 놓인 두 얼음 덜어리 사이에 누워 있는 듯한, 온몸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차가움 속에서 몇시간을 보내는 듯한 고통도 겪었다.
“단 5분간 지속되는 그러한 고통을 나는 자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심마로서는 5분이 아니라 5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통의 강도가 크고 길었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며 우리가 인내한 고통이 무엇을 성취했는지는 오직 하늘 나라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바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모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그 은총을 원하는 이에게 주실 수 있다. 성모님께서는 그 은총이 가장 필요한 이가 누구인지 가장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계속)
마리아지 208호(3 4월호)
첫댓글 하느님 뜻 안에서 마리아지를 워드작업하여 올려주시어 감사드립니다.
특히 단락을 띄어주시니 보기가 훨씬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복되신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건네어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며 우리가 인내한 고통이 무엇을 성취했는지는 오직 하늘 나라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바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모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
안나 자매님이 계단을 걸을적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연옥영혼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웃들을 떠올린다는 그 말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일상생활의 불편함과 우리의 모든것을 하느님 뜻 안에서 예수님의 보속에 합하여 연옥영혼들을 위해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연옥영혼들을 대신해서 하느님의 뜻으로 하느님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하느님 뜻의 나라가 오소서' 매순간 영원토록 사랑고백드려요.
신앙에 미지근한 어느 영혼을 위해서 심마는 마치 나란히 놓인 두 얼음 덜어리 사이에 누워 있는 듯한, 온몸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차가움 속에서 몇시간을 보내는 듯한 고통도 겪었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며 우리가 인내한 고통이 무엇을 성취했는지는 오직 하늘 나라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바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모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그 은총을 원하는 이에게 주실 수 있다. 성모님께서는 그 은총이 가장 필요한 이가 누구인지 가장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 내가 고통을 겪어 다른 이에게 은총을 얻어 주는 것.. 귀한 교환의 지혜.. 하느님의 뜻으로 감사드립니다. 피앗. 아멘.
하느님의 뜻 안에서 ...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