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선들은 목성과 토성에서 자폭하라
한겨레 | 입력 2014.12.20 11:20 | 수정 2014.12.20. 14:10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이아페투스를 2012년 우주선 카시니호가 찍었다. 강력한 화산활동 없이 고요한 흑백의 대비만
관찰될 뿐이다. 이아페투스의 표면은 거대한 남쪽의 분화구 등 분화구와 주름 같은 산맥으로 덮여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토요판] 별
우리 동네 태양계
▶지구와 함께 태양을 도는 태양계의 행성들은 우리와 친숙합니다.
금성의 온실효과, 셀수록 많아지는 목성의 위성, 외행성의 고리들…
우주과학의 발달로 지식이 확장되면서 지구 이웃들의 새로운 모습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발을 디딜 수 없는 가스 행성인 걸 알았나요?
알고 보면 놀라운 태양계의 상식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
어릴 때부터 아주 친숙한, 하지만 실은 잘은 모르는 곳. 수억 광년 거대한 우주의 스케일에 가려져 시시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우리의 태양계. 하지만 인간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낳고 기른 고향이자 우리가 언젠가 발을 디딜 수 있는 ‘현실적’ 희망이 있는 우주의 유일한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그럼에도 은근히 오류나 착각이 많다. 과거의 지식들이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수정된 것도 있고 아예 새로이 알게 된 것도 있으며, 괜한 인상이나 선입견 때문에 오해되어온 부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부분들을 짚어 가다 보면 이 고향 동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좀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현재 태양계의 행성은 8개다.
중·장년층들이 기억하는 것과 달리 더는 9개가 아니다.
행성이 난데없이 우주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행성의 정의가 바뀌면서 하나가 제외된 결과다.
빠진 행성은 (물론) 유달리 작고도 먼 명왕성이다.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그동안 태양계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인데, 명왕성보다 더 큰 에리스가 2005년에 등장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래서 이 에리스가 태양계의 10번째 행성이 되느냐, 아니면 명왕성이 빠지느냐의 문제가 됐는데 이후 비슷한 천체가 여럿 발견되면서 명왕성의 탈락으로 결론이 나게 된다. 그래서 이제 정든 명왕성은 에리스, 마케마케, 케레스(세레스) 등과 함께 왜(소)행성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나머지 행성들은 여전히 수금지화목토천해(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이렇게 8개다.
금발의 아름다운 금성인? 녹을 텐데? 태양계에서 가장 뜨거운 행성은 어디일까? 당연히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이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하지만 정답은 그보다 한 줄 바깥에서 돌고 있는 금성이다. 그것도 차이가 많이 나서 수성의 평균 표면 온도는 섭씨 167도지만 금성은 464도나 된다.
금성의 이 무지막지한 ‘평균’ 온도는 수성의 ‘최고’ 온도와 거의 같다. 왜 이럴까? 비밀은 온실효과에 있다.
수성에는 대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환경이 달과 비슷하다. 그래서 해가 비치는 낮 쪽은 영상 450도까지도 올라가지만 밤에는 반대로 영하 160도로 곤두박질한다. 일교차가 자그마치 600도가 넘는 무시무시한 세상인 것이다. 반면 금성은 대기압이 지구의 90배나 되고 그중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다.
지구 온난화 이슈로 익숙하듯 이산화탄소는 우리 행성에서도 온실효과의 주범인데, 막상 대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4퍼센트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저 금성에서 어떤 수준의 온실효과가 벌어질지 대략 상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위치라든가 궤도 등의 다른 특성만 놓고 보면 영상 30도 전후의 날씨로 계산되기 때문에, 1960년대 초까지 사람들은 금성이 타히티 같은 열대의 낙원일 것이라고 여겼다.
이른바 유에프오(UFO) 접촉자인 조지 아담스키가 금발의 아름다운 금성인을 만났다고 주장한 배경도 이런 것일 텐데, 실제로는 인체가 버티기는 고사하고 납이나 아연 같은 금속마저 줄줄 녹아내리는 열지옥이다. 금성 미녀의 금발은 순식간에 불타서 하얀 재만 남을 것이다.
또 하나의 흔한 오류는 토성만이 아름다운 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토성의 것이 유달리 크고 잘 보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압권이지만 사실은 목성, 천왕성, 해왕성의 외행성 모두가 고리를 갖고 있다. 다만 토성의 것보다 훨씬 작고 얇아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거대 행성은 모두 고리를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점이 생겨났다.그도 그럴 것이 이 고리라는 것이 실은 위성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어릴 때는 목성에 11개의 위성이 있다고 배웠는데 현재는 확인된 것만 60여개다. 토성도 비슷한 수의 위성을 거느리고 있고, 천왕성과 해왕성도 그보다는 적지만 역시 수십개에 달하는 위성을 끌고 다닌다.
그런 만큼 우주 공간의 얼음덩어리나 돌 부스러기들이 이 큰 행성들 주변에 띠를 만들어 공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태양도 8개의 행성들 외에 소행성대라는 고리 비슷한 것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럼 태양계에서 가장 푸른 행성은 무엇일까? 푸른색 하면 우리 지구, 이 답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답은 8번째,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 이 행성은 지름이 지구의 4배인데 전체가 신비한 푸른색으로 뒤덮여 있다. 물론 이것은 지구처럼 물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색이 아니라 수소와 헬륨이 99%인 대기에 포함된 약간의 메탄 성분이 붉은색을 흡수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만 해왕성은 너무 멀어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푸른색을 밤하늘에서 쉽게 즐길 수는 없다.
물 이야기가 나온 김에 태양계에서 물이 가장 많은 천체도 찾아보자. 물 하면 이거야말로 지구,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놀랍게도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혜성을 비롯해 태양계에는 생각보다 많은 물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대부분 얼어 있는 상태지만 목성의 위성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와 토성의 위성 타이탄, 엔켈라두스(엔셀라두스) 등에는 수십 킬로미터의 두꺼운 얼음 표면 밑에 거대한 물의 바다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금성 평균 표면온도 섭씨 464도
수성도 최고온도는 그와 같지만
일교차가 무려 600도씩이나 나
가장 푸른 별은 지구 아닌 해왕성
물 많은 곳은 목성과 토성 위성들
목성과 토성 등은 모두 가스행성
수소나 헬륨 등이 대부분 차지해
탐사선 착륙 개념 성립하지 않아
주변의 생명체 오염 방지 위해
이 행성을 탐사선 파괴 용도로 써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주위의 온도가 0도 이상이라는 의미. 영하 100도보다 훨씬 낮은 표면 온도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서는 목성의 중력에 의한 조석효과나 압력 등으로 상당한 열이 발생하고 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그중 유로파는 우리의 달보다 조금 작은 크기인데도 액체 상태인 물의 양이 지구 전체의 바다를 합친 것보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거대한 바다라면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유로파에 만약 지적인 존재가 살고 있다면 그들에게는 얼음 아래의 세계가 우주의 전부일 것이고, 언젠가 수십 킬로미터의 얼음층을 뚫고 나오는 날의 충격은 인류가 달에 발을 디딜 때보다도 훨씬 클 것이다.
이제 천왕성으로 가보자. 옅은 회청색을 띠고 있는 이 행성은 지구에서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행성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었다. 그런데 63개의 지구를 내부에 쑤셔 넣을 만큼 큰 행성이고 질량도 14배나 되지만 지구보다 중력이 약하다. 그래서 천왕성 표면에서 사람은 평소보다 몸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질량이 클수록 중력도 커져야 하지 않을까?꼭 그렇지만은 않다.
천왕성은 태양계의 행성 중 토성 다음으로 밀도가 낮다. 무게는 토성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에 그 조합으로 낮은 중력이 생겨나는 거다. 이 점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태양계에서 둘째로 큰 행성인 토성의 중력도 지구보다 아주 조금 강할 뿐이고 해왕성보다도 약하다.
행성의 왕이라고 할 목성의 중력조차도, 비록 지구보다 2.5배 강하지만 부피가 1300배인 점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게 아니다.
이런 묘한 상황은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모두 가스 행성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들 행성은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질이 수소나 헬륨 등의 가스다. 특히 목성과 토성은 내려갈수록 점점 두꺼워지는 가스 성분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지구 같은 표면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천왕성과 해왕성은 다른 물질들을 조금 함유하고 있어서 대기와 표면의 구분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역시 지구나 금성, 화성 같은 암석 행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1979년 보이저 1호에 잡힌 목성의 대기. ‘대적점’(Great Red Spot)이라 불리는 강력한 폭풍이 휘몰아친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가장 기묘한 천체는 이아페투스그래서 이 가스 행성들에는 탐사선이 착륙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인류가 그간 많은 외행성 탐사선을 보내고 토성을 향해 간 카시니는 착륙선 하위헌스호를 위성 타이탄에 내려보내기까지 했지만, 정작 이 행성들 자체에는 착륙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실은 이 행성들은 주변에 있는 탐사선을 파괴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는 2003년에 목성으로 뛰어들어 생을 마쳤고, 카시니도 2017년에는 토성으로 날아들어 자폭할 계획이다. 이렇게 탐사선들을 파괴하는 이유는 목성과 토성의 위성에 있을지 모를 생명체를 오염시킬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혹시라도 유로파의 얼음 위에 추락해 지구에서 타고 간 미생물을 옮기면 곤란한 일이다.
토성의 위성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이지만 태양계에서 가장 기묘한 천체로는 이아페투스를 꼽을 수 있겠다. 지름 1500㎞의 이 자그마한 위성에는 유로파처럼 물이 있지도 않고 이오처럼 강력한 화산 활동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데스스타와 똑같이 생겼을 뿐이다.
한쪽에 크게 남아 있는 원형 분화구와 적도 전체를 감싸고 도는 거대한 ‘주름’이 바로 그런 외양을 만든다. 평균 높이 4500m, 최대 높이는 에베레스트보다도 훨씬 높은 1만3000m로 추정되는 이 거대한 주름 때문에 호두를 닮았다고도 하지만, 아무래도 데스스타 쪽이 더 쿨하다.
이렇게 우리 태양계는 연구할 것과 탐사할 것이 넘쳐나는 역동적인 곳이다. 태양을 시작으로 8개의 행성과 수백개의 위성, 수백만개의 소행성과 혜성, 저 멀리 외곽의 카이퍼 벨트와 오르트 구름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광대한 우주 속에서 그야말로 티끌같이 작은 지역이기도 하다. 우주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역설인데, 그래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욱 호기심이 생기는 게 바로 사람이라는 존재다.
오래전 뉴턴은 자신을 진리의 바닷가 모래밭에서 조약돌을 줍고 있는 소년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바다는 뉴턴의 생각보다도 훨씬 넓고 깊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떠냐. 태양계 탐사를 시작하며 우리는 저 거대한 바다에 이제 발톱 끝이나마 담그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37억년이 걸렸지만, 태양계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50억년 동안 우리를 기다려줄 것이다.
파토 원종우 <태양계 연대기> 저자·팟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