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 이재(李縡) 撰비문
■ 숙인 여흥 민씨 묘지(淑人驪興閔氏墓誌)
숙인의 성은 민씨(閔氏),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고 의정부 영의정에 추중된 휘 광훈(光勳)의 막내딸이다. 대사헌 시중(蓍重), 노봉(老峰) 문충공(文忠公) 정중(鼎重), 둔촌(屯村) 문정공(文貞公) 유중(維重)이 숙인의 세 오빠로 모두 이름난 사람들이다.
숙인(淑人)은 16세에 풍산(豐山) 홍만형(洪萬衡) 숙평(叔平)에게 출가하였으니, 바로 영안위(永安尉) 휘 주원(柱元)과 목릉(穆陵: 선조)의 왕녀 정명공주(貞明公主)의 둘째 아들이다. 홍공은 일찌감치 높은 성적으로 급제하여 관직이 홍문관 교리에 이르렀다.
노봉(老峰)이 매번 ‘숙평(叔平)은 참으로 신선 세계의 사람’이라며 탄복하였으니, 부귀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청고하여 속습에서 벗어났으며 의복과 기용이 가난한 선비의 차림과 똑같았다. 숙인이 능히 그 뜻을 본받아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베로 만든 치마를 입었던옛사람의 뜻을 항상 사모하였다.
홍공은 항상 숙인을 존중하였고 숙인도 한결같이 공경하고 근실하여 조금도 느슨하지 않았다. 홍공은 깡마른 몸에 고질병이 있었는데 특히 기침이 심했다. 숙인은 엄동설한에도 침실 밖에 앉아 병의 차도를 몰래 살피고 밤새도록 눈을 붙이지 않았다. 미망인으로 자처하면서부터는 손수 길쌈하여 제사 비용을 마련하였고 가까운 친지에게도 절대 궁핍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질녀들 가운데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일찍 모친을 여의었기에 숙인이 정성을 다해 양육하였고, 중전의 지위에 오르자 왕후를 받들어 섬기는 도리가 본가에 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인현왕후도 숙인을 낳아주신 어머니처럼 대하여 끊임없이 서찰을 보내고 빈번하게 하사품을 내렸다.
숙묘(肅廟)께서 지은 인현왕후의 행장에 “홍씨에게 출가한 고모에게 양육되었다.”라는 말이 바로 숙인을 가리킨 것이다. 우리 선비(先妣)는 숙인과 실로 숙질(叔姪) 사이의 지기(知己)이다. 늦게 임신하여 출산을 앞두고 숙인에게 의지하여 돌아갔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에 숙인이 백일 때까지 직접 젖먹이는 것을 살폈으며, 추조거습(推燥居濕)의 수고를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
우리 선비는 항상 이때의 일을 말하여 “네가 태어났을 때 나의 고모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양육했겠는가.”라고 하였다. 친당(親黨)에 대한 숙인의 곡진한 은혜와 사랑이 대체로 이러하였다. 숙인은 병술년(丙戌年, 1706, 숙종 32) 12월 2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74세였다. 파주(坡州) 천현(泉峴) 손향(巽向)의 언덕에 안장하였다.
숙인은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장남 중모(重模)는 진사로 군수를 지냈고, 차남 중해(重楷)는 진사로 목사를 지냈다. 군수는 후사가 없어 중해의 차남 윤보(允輔)를 데려다 아들로 삼았다. 중해의 아들 양보(良輔)는 이조 참판에 추증되었고, 윤보는 진사로 지금 밀양 부사(密陽府使)가 되었다. 양보의 아들 창한(昌漢)은 문과에 급제하고 지금 전라도 관찰사로 있고, 장한(章漢)은 문학과 행실이 있다. 윤보의 아들은 기한(紀漢), 진사 유한(維漢), 신한(紳漢)이다.
숙인은 정숙하고 단정하였다. 젊어서는 도리를 다하여 시부모를 섬겼으며 날마다 반드시 일찍 일어나 집안일을 다스려 정연하게 법도가 있었다. 교리공(홍만형(洪萬衡))의 무덤이 좋지 않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이장을 계획하여 몸소 산 아래에 이르러 크고 작은 일을 직접 처리하였으니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여겼다.
숙인은 견식이 출중하였다. 목사공(홍중해(洪重楷))이 아버지를 잃어 배움을 놓친 것을 걱정하여 노봉에게 수학하도록 시켰다. 노봉이 당시 충주(忠州)에 살았는데 애틋한 사랑을 끊고 멀리 보내어 음식과 거처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학업에 힘쓰게 하였다. 노년에는 가문을 염려하여 증손 창한을 내게 수학시켜 자립하게 하였다. 그 뛰어난 식견을 논하자면 비록 글을 읽은 남자라도 미칠 자가 없을 것이다.
나는 선비의 명으로 매월 꼭 한 번씩 숙인을 찾아뵈었는데 숙인은 말하고 웃는 것이 명랑하고 정과 사랑이 넘쳐흘렀다. 지금까지 40년간 인사의 변고를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지금 창한이 무덤에 묘지(墓誌)를 들이고자 내게 글을 부탁하기에 대략 이처럼 서술하고 이어 명(銘)을 붙인다. 명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부인을 뵈니 / 昔拜夫人
기운이 온화하고 용모 공손하였네 / 氣貌溫恭
견실한 그 정신 / 精爽之緊
우리 외조부와 비슷하였네 / 類吾外翁
주남의 성대한 시절에 / 周南盛際
엄숙하고 화락함을 노래하였네/ 有歌肅雝
봉황새가 우니 / 鳳凰鳴矣
저 오동나무에서 울도다/ 于彼梧桐
어찌하여 번화했던심원이 / 何沁園之繁華
꿈속처럼 빨리 지나버렸나 / 若飄忽於夢中
경신년(庚申年, 1680, 숙종 6)에 내가 태어난 것은 / 維庚申吾以降
실로 부인의 보호 덕분이었네 / 寔夫人之帲幪
오직사랑하고 애쓰셨으니/ 惟恩斯而勤斯
돌아보고 길러준은혜와 그 공이 똑같네 / 與顧復而同功
그 옛날 어리고 예뻤던 증손이 / 昔婉孌之曾孫
지금은 호남 관찰사가 되었네 / 今湖臬之觀風
소자에게 명문을 맡기니 / 屬小子以銘幽
그 아름다움을 무궁하게 드러내노라 / 昭厥美于無窮
---------------------------------------------------------------------------------------------------------------------------------------------
[脚註]
[주01] 숙인 …… 묘지:
이 글은 홍만형(洪萬衡)의 부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의 묘지로, 1633년(인조 11)에 태어나 1706년(숙종 32)에 세상을 떠났다.
[주02] 가시나무 …… 입었던:
후한(後漢) 때 은사(隱士)인 양홍(梁鴻)의 아내 맹광(孟光)의 고사이다. 본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남편의 뜻을 따라 화려한
의복을 벗어던지고 가시나무로 만든 비녀를 꽂고 베로 만든 치마를 입고 생활하며 패릉산(覇陵山)에 은둔하였다.《後漢書 卷83 逸
民列傳 梁鴻》
[주03] 추조거습(推燥居濕):
양육하는 수고를 말한다. 《효경원신계(孝經援神契)》에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 정성을 다하여 길러 마른자리는 자식을 앉히고 진
자리는 자신이 앉으며 적은 것은 스스로 사양하고 감미로운 것은 나누어 먹인다.[母之於子也, 鞠養殷勤, 推燥居濕, 絶少分甘.]”라
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04] 주남(周南)의 …… 노래하였네:
반정(反正) 이후 인조(仁祖)의 치세(治世) 때에 정명공주가 혼인한 일을 말한다. 정명공주는 1613년(광해군5) 계축옥사부터 1623
년(인조1)까지 서궁에 유폐되어 있다가 인조 반정 이후에 혼인하였다. 주남은 주(周)나라 주공(周公)의 채읍(采邑)이다.
원문의 숙옹(肅雝)은《시경》〈하피농의(何彼穠矣)〉에 “어쩌면 저리도 무성한가, 아가위꽃이로다. 어찌 엄숙하고 화락하지 않으
리오, 우리 공주님이 타신 수레로다.[何彼穠矣? 唐棣之華. 曷不肅雝? 王姬之車.]”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왕가(王家)의 공주
가 하가(下嫁)하는 것을 노래한 시이다.
[주05] 봉황새가 …… 울도다:
홍만형이 훌륭한 인재라는 뜻이다.《시경》〈권아(卷阿)〉에 “봉황새가 우니, 저 높은 뫼에서 울도다. 오동나무가 자라니, 저 아침
해가 뜨는 동산에서 자라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라고 하였는데, 이는 훌륭한 인재들이 모여 있음을 비
유한 시이다.
[주06] 심원(沁園):
후한(後漢) 때에 명제(明帝)의 딸인 심수공주(沁水公主)의 정원 이름인데, 이후 공주의 정원이나 처소를 일컫는 말로 통용되었다.
[주07] 사랑하고 애쓰셨으니:
원문의 ‘은사(恩斯)’와 ‘근사(勤斯)’는 노심초사하며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사랑을 말한다.《시경》〈치효(鴟鴞)〉에 “사랑하고 애
쓰면서 자식을 키우느라 노심초사하였네.[恩斯勤斯, 鬻子之閔斯.]”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08] 돌아보고 길러준:
원문의 ‘고복(顧復)’은 길러준 부모의 은혜를 말한다.《시경》〈육아(蓼莪)〉에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길러 주시니 나를
어루만지고 나를 길러 주시며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키워 주시며 나를 돌아보고 나를 또 돌아보시며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나를 가
슴에 품으시니 그 은혜를 갚고자 할진댄 저 하늘처럼 끝이 없구나.[父兮生我, 母兮鞠我. 拊我畜我, 長我育我. 顧我復我, 出入腹
我. 欲報之德 昊天罔極.]”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