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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산(鳥項山.954M)을 가다.
글 쓴 이 고 학 영
10월26일, 주위는 어둑 어둑한데... 하늘은 잔뜩 찌푸린 날씨다.
전국적으로 비가올것 이라는 일기 예보속에 바람까지 심할것 이라고 하니, 노심초사(勞心焦思)한 마음으로 차에 오르다.
시사(時祀)와 잔치로 말미암아 승차인원이 30명이다. 한달여 만에 다시 뵙는 님들이라!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칠곡휴게소에서 조반(朝飯)을 드시고는 아포(牙浦)에서 다시 중부내륙고속국도로 달린다. 먼 산에는 황엽(黃葉)의 기운(氣運)을 벗어나 나목(裸木)의 모습으로 을씨년스럽게 다가오고...
연변(沿邊)의 은행나무잎은 샛노랗게 물들어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며 포도(鋪道)위를 수(繡)놓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詩人)은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紙幣)라”고 하였던가? 가뜩이나 황량(荒凉)한 가을인데... 휘날려 떨어지는 가랑잎이 허허(虛虛)로운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해 줍니다 그려...!
사유(思惟)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지는데... 차는 어느듯 상주 IC를 벗어나 보은(報恩)으로 가는 25번 국도를 타고 문장대 가든에서 상주시 화북면으로 향하고 있다.
갈령을 지나 화북면 일대로 접어드니 좌측으로는 속리산의 천황봉이 우뚝솟아 눈앞에 다가오고, 멀리 북방향으로는 백두대간상의 청화산, 조항산을 이어달리는 능선들이 공룡의 등뼈처럼 우람하다.
다가오는 먼산의 풍경은 녹색과 황색으로 어울어져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한껏 느끼노니... 몸과 마음이 다함께 시원합니다. 차내는 재담(才談)으로 넘쳐나고 분위기는 화기애애(和氣靄靄)한데...
저만큼 속리산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장각폭포의 안내판이 그림으로 세워져 있다. KBS 대하 역사드라마 “이순신(李舜臣)”에서 서애 유성룡, 이순신, 원균의 어린시절에 그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던 곳으로서... 상징되었던 촬영장소가 아니던가?
아름다운 금란정(金蘭亭)을 그림으로만 대하고 가볼 수 없슴이 아쉽구나! 계곡이 깊어질 수록 차는 더욱 요동이 심하여, 뒷자석에 자리한 금민자 회원님이 멀미를 호소 하신다. 솔밭의 한켠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안스러워 찬물을 한컵 건네드리니... 다소 안정을 찾으시는것 같으다.
간밤에 야근으로 피로가 겹쳐 그러하시다니... 앞자리로 옮겨 앉아 진정(鎭靜)하니 한결 좋으시단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심해서 진행할것을 기사님께 당부드리고 나아가니, 저만큼 우측으로는 도장산(道藏山)이 우람하고 수려(秀麗)하다.
화북중교를 지나 쌍룡계곡(雙龍溪谷)으로 들어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천변(川邊)에는 송림(松林)이 울창하다. 수년전에 산행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 올리면서...
용유리(龍遊里)와 장암리(壯岩里)를 지나 눌재의 출발기점에 이르니, 굵은 쇠사슬을 이중으로 가로질러 놓았다. 백두대간의 산행을 통제라도 하시는 건가? 조심스럽게 일렬로 줄을지어 입산하니 달리 제지하는 감시원은 없다.
100여 미터를 오르니 우측으로 평평한 공터에는 성황당(城隍堂)이 보이고, 그 옆에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성황당(城隍堂) 유래비(由來碑)가 세워져 있다. 디카맨 황재덕님이 여러명의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린다. 정성이 대단하셔 지난 1년동안 촬영한 사진들을 CD로 앨범을 만들어 차내에서도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하시드니... 이 모든 것이 남산의 발전상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30여 분을 오르니 쉼바위가 있어 앉을의자 모양이다. 편안한 자세로 앉으니 주위의 전망들이 한눈에 들어와 쉬어 가기는 더 없이 좋은 바위다. 후미에 여러 회원님들이 앉아 쉬는데... 금민자 회원님이 탱자만한 밀감들을 회원님들에게 나눠 주신다. 보시(布施)의 공덕(功德)을 아시는가?
한입 베어무니 입안의 향기가 감돌고, 달콤 새콤한 맛이 생기(生氣)를 느끼게 합니다. 한고개 한고개 오를 때 마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기념촬영에 분주 하시다. 운무(雲霧)로 흐려져 있어 멀리 조망(眺望)할 수는 없으나, 염려하던 비가 오지 않으니...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30여 분을 더 올라 노송지대(老松地帶)에 이르니, 동쪽 방향으로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의 비(碑)와 그 앞에 제단(祭壇)과 두개의 향로(香爐)가 설치되어 있다. 나라에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제단이다. 참으로 뜻이 있는 제단이며 삼가 머리숙여 예(禮)를 올리다.
두 그루의 노송(老松)이 배경으로 싸여 있으니 주위의 절경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B코스 회원님들은 저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앞다투어 기념촬영을 하신다. 노장 정명돌님, 옥구슬님, 조여사님, 금민자님, 고치가리 서부장님, 홍총무님, 이태만님 등 등 산행의 즐거움이 이만한데 날씨까지 좋으시니... 더 말해 무삼하리요!
다시 20여 분을 더 오르니 A코스로 향하는 선발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어, B코스는 정의석 부회장님에게 부탁드리고 필자는 A코스로 향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혼자다. 호~오~이~ 호~오~이~ 낙엽을 밟으며 30여 분을 단숨에 내달으니... 앞서가던 남산님들의 산울림이 들린다. 남산~ ! 남산~ ! 최대장이 응답해 오신다. 필자까지 합류하니 모두 11명이다.
얼마를 더가다 두분은 다시 B코스로 합류하시고, A코스는 9명만 진행한다. 선두에 박번님은 갈길이 멀다하며 휴식없는 전진으로 나아가고, 2진으로 최대장님, 김여사님, 선배(홍총무선배)님, 오늘 처음오신 두분과 필자 등이 따른다.
얼마를 내달았을까? 몸에는 땀이 다 솟는다. 청화산(靑華山.984M) 정상에 이르니 시계는 12시를 가르킨다. 간단한 기념촬영과 후일에 책에 담을 자료를 찍어두며 주위를 조망(眺望)하니... 천하(天下)가 운무(雲霧)로 짙게 가리워져 멀리는 볼 수 없어 안타깝구나!
이곳 청화산(984M)은 백두대간상의 소백산, 대미산(1110M), 희양산(999M), 대야산(931M)을 거쳐 조항산(954M)을 지나 청화산에 이르니 주위는 첩첩 산중이라!
남쪽방향으로 지척에 문장대(1013M)와 속리산 천황봉(1058M)이 손에 닿을듯이 있으나 운무에 가려 보일듯~ 말듯~ 하고, 동쪽으로는 도장산(828M)이 지척에 있다. 서쪽으로 도명산(650M)이 있고, 북으로 대야산(931M)이 있어 우리 남산님들이 다 답산(踏山)한 산들이다.
청화산은 속리산과 연하여 있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으로, 북쪽방향으로는 남한강으로, 서남방향으로는 금강에 유입되어서 지리적으로는 삼강(낙동강, 한강, 금강)의 분기점이 돼고 있습니다.
경상도의 문경, 상주, 충남의 보은과 영동, 충북의 괴산과 충주시민들의 생명수가 되고 있으며, 이고장 인걸들의 산실이 되고 있습니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는 상주 청리면에서 출생하여 서애 유성룡에게 학문을 닦고, 1582(선조15년)진사에, 1586년 알성과(謁聖科)에 급제하여 경연관으로 선조(宣祖)에게 시강(侍講)하고, 1592년 임진란에 의병장(義兵將)으로 공(功)을 세워 정언(正言),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영남 안찰사로 민생을 잘 보살폈다.
광해군(光海君)때 내암 정인홍과 틈이 있어 하옥되었다가, 이곳 외서면 우산리에서 6년간 독서하여 항간(巷間)에 청화도인(靑華道人)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에는 홍문관 부제학,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 겸 대제학에 이르렀다. 그는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사위 이며, 동춘당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과는 이종사촌간 이다.
저서(著書)로는 우복선생별집(愚伏先生別集), 사문록(思問錄), 상례참고(喪禮參考)를 남겨 기호학파의 사계 김장생과 함께 17세기 조선사회의 사상적 중심에 우뚝 섰으니, 가히 영남의 성현(聖賢)이라 할 수 있지 아니한가?
아~아~ 님의 발자취가 거룩하여, 오늘 미련한 이 후학(後學)은 님의 가르침에 삼가 배례(拜禮) 드리 옵니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하여, 상주시 내서면에 소머리산(449M)이 있고, 문경시 농암면에 우복산(牛腹山381M) 있으며, 동로면에 대미산(大尾山.1115M)이 있어 거대한 소가 누워있는 형국(臥牛形局)으로서 길지중에 길지여서... 우복선생의 출생이 우연이 아님이 증명되고도 충분하지 아니한가?
또한, 문경 가은현에서는 농부 아자개의 아들로 태어나 후삼국을 호령한 견훤(甄萱.867~935)이 있어, 속리산 문장대 바로 옆(상주 화북면 장암리)에 그가 쌓았다는 견훤산성(甄萱山城:경북유형문화재 제53호)이 있다.
후삼국 가운데서 가장 강성했던 세력으로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에게 대승을 거두기도 하여 후백제(後百濟)의 맹주로 군림 하였으나, 만년(晩年)에 큰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빼앗겨 전주 모악산 금산사에 유폐되어 마침내 등창으로 돌아가시니...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그로 하여금 느끼게 합니다.
살아 백년이 어려운데... 만년(萬年)을 살 계획을 세우는것이 우리 인생(人生)인가 봅니다. 그는 갔으나 그의 발자취만 남아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허허(虛虛)로움을 보여 줍니다 그려...!
다시 몸을 추스려 마음을 가다듬으니... 나만 홀로 있어 서둘러 서둘러 떠납니다. 콧노래로 무료(無聊)함을 달래며 걸어 가노라니... 답사(踏査)의 동반자(同伴者)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뜻 모를 미소(微笑)가 입가에 번져 옵니다.
976M 고지를 지나 895M 고지에 이르러 갈림길에서 조항산(954M)과 청화산(984M)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B코스로 가시는 마지막 한분에게 지키게 하고, A코스 9명은 연엽산방향으로 들어섰다.(조항산 가는길로 착각함)
1시간여 를 걸어서 시루봉(876M)에 도착하니 5개의 봉우리가 마치 가마솥 모양으로 생겼으니... 이름하여 시루봉이라! (당시는 시루봉인줄 몰랐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봉우리는 볼 수록 아름다워서 모란(牧丹)봉오리 마냥 아름답고 장엄하기 이를데 없어라!
시계는 이미 13시 10분을 가르키고 있다. 시장끼도 더하여서 시루봉이 바라다 보이는 적당한 위치에서 점심을 드시니, 한가족이 따로 없다.
다함께하지 못한 남산님들을 생각하며...
진안의 맛좋은 고추 얘기도 해 가며...
식후 1시간여 를 더 걸어 나아가는데... 산행길은 순조롭다. 발밑에는 낙엽이 샇여있어 발목이 다 잠기고, 능선으로 가는길은 주위의 조망(眺望)도 비교적 할 수 있어 정겹기 그지 없구나! 능선길은 소나무 보다는 주로 잡목숲이 많고, 갈참나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발밑의 낙엽이 조심스럽다.
우리들의 목적지 조항산은 보이지 않고, 연엽산(蓮葉山)의 능선은 평화롭기 그지 없어라...!
이곳 연엽산(787M)은 청화산에서 북동쪽으로 한지맥이 흘러나와 시루봉을 거쳐 연엽산으로 이어져 농암면(籠岩面) 궁기리(宮基里)에서 그맥을 떨구고 있으니... 이름에 걸맞게 연잎을 펼쳐 놓은듯... 참으로 넓적하고 부드럽게 생겨 있도다.
뒤늦게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등산개념도와 산경표를 놓고 대조해 보니, 많이도 잘못 와 있다는것을 알다. 시계는 15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어 궁기리 마을로 서둘러 하산 하기로 결정하고, 길 없는 길을 찾아 나서니... 구도행각(求道行脚)과 다름이 없어라!
무엇보다 처음 산행에 동참하신 두분들께 미안하고 송구하여 거듭 거듭 양해(諒解)를 구하며, 40여 분을 나려오니 상궁(上宮)마을에 도착하다.
주민(住民)들에게 여쭈어 다시 1km 정도를 걸어 하궁(下宮)마을에 도착하여,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6인승 화물차로 5명은 좌석에 4명은 적재함에 몸을 실으니... 멀어져 가는 연엽산과 시루봉을 바라보노라니...
자괴감(自愧感)과 아쉬움이 오버랩(Over-lap)되어 뇌리(腦裡)를 스치운다. 저물어 가는 하루해와 늦가을의 정취에 문득 40여 년전의 중국 수입영화 “스잔나” 의 주제곡(主題曲)이 떠 올라 옮겨봅니다.
해는 서산(西山)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부네
날 리는 오 동잎 가 을은 깊 었 네
꿈 은 사라지고 바 람에 날 리는 낙 엽
내 생 명 오 동 잎 닮 았 네
모 진 바람 을 어 이 견 디 리
지 는 해 잡을 수 없 으 니...
人 生 은 허 무 한 나 그 네
봄 이 오 면 꽃 피 는 데
영 원 (永 遠) 히 나 는 가 네 !
단기 4339년(서기2006년) 10월 26일
문경 청화산(靑華山.984M), 연엽산(蓮葉山.787M)을 종주하다.
첫댓글 비가 올까?....걱정도 했었는데 회장님의 크신덕으로 날씨까지도 좋아 즐거운 산행을 하였습니다. 하나하나 모든 회원님들 신경쓰시느라 늘 혼자 뒤쳐져 올라가시고....미안 하고 고맙습니다.....늘 꼴찌만 하는걸음이라 혹여 다른 회원님꼐도 폐를 끼치는건 아닌지....송구한 마음이큽니다.....
구슬님! 고맙습니다. 슬님의 격려에 늘 힘이 솟는답니다. 폐라니요,열심히 동참하셔서 우리남산님들 격려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치 내가 문학시인으로 도취되면서 감상해보았습니다.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