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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新羅)의 기원(起源)
1-1-1.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도래(渡來)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는 스키타이인(scythian)으로서, 인도스키타이국( Indo-Scythian, saka, 夏國)의 왕자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였고, 인도스키타이 수도 탁실라(Taxila, Pakistan)로부터 한반도 경주로 들어와 신라(silla)를 세웠다.
신라(新羅)의 기원(起源)과 범어(梵語)는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신라(新羅) 서나벌(徐那伐)은 범어(梵語, sanskrit)인 소나푸르(Sonapur = Goldtown)에서 유래하며, 황금도시(黃金都市)라는 뜻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서나벌(徐那伐)과 금성(金城),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서라벌과 금성은 각각 따로 언급되었지만, 실제는 범어(梵語)의 소나푸르(Sonapur)를 발음으로 음차(音借)하여 서나벌(徐那伐)이라 했고, 의역(意譯)하여 금성(金城)이라 한 것이다.
박씨(朴氏), 석씨(昔氏) 신라왕(新羅王)들의 왕명(王名)과 주변 인명(人名), 지명(地名), 관명(官名)도 역시 범어(梵語)로 만들어졌다.
신라 3대 유리왕(儒理王)은 범어(梵語) 율리기타(ullikhita = furrow, torn in Sanskrit)와 관련되는데, 자국(furrow)을 남겼다는 뜻이고, 떡에 이빨 자국을 남겼다는 전설과 일치한다.
以餠噬之 儒理齒理多 / 儒理記
14대 유례왕(儒禮王)도 역시 범어(梵語) 율리기타(ullikhita = furrow, torn in Sanskrit)와 관련되는데, 그에게는 성광입구(星光入口)의 탄생 전설이 있다. 이는 입술에 별모양의 흔적이 있었다는 뜻으로서 선천적으로 입술이 찢어진 것이다. 입술갈림증(harelip, cleft lip)이었다.
星光入口, 因有娠/ 儒禮記
그런데, 3대 유리왕(儒理王)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노례왕(弩禮王)이라고 하였다.
율리기타(ullikhita)에서 앞부분만으로 유리왕이라고 했고, 뒷부분만 떼어서 발음하면 기타(gita = song in Sanskrit)가 되는데, 이는 범어(梵語)에서 노래(song)라는 뜻이다.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모후(母后)인 선도성모(仙桃聖母)는 중국의 황족인 사소부인(娑蘇夫人)이라고 하였다.
神母夲中國帝室之女. 名娑蘇,/ 三國遺事 仙桃聖母
그런데 범어(梵語)에서 사소(sasaurabha = fragrant in Sanskrit)가 향기(香氣)를 의미하니 향기부인(香氣夫人)이라는 뜻이고, 중국이 아니라 인도(india)에서 온 것이었다.
이렇게, 김씨왕 이전 신라왕(新羅王)들의 왕명(王名)에는 범어(梵語)가 줄줄이 들어있다,
범어(梵語)와 사카어(saka語)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신라어(新羅語)는 아래 표(表)와 같다.
●신라의 범어
ad 1c. 신라(新羅國: ancient silla country)의 범어-사하어(sanskrit, saka language)
| 범어(梵語) sanskrit & scythaian | 의미(意味) meaning | 음차(音借) chinese letter by sound | 의역(意譯) chinese letter by meaning | |
| adala | leafless | 아달라왕(阿達羅王) | 무자(無子) | |
| arka(아르까) | sun[태양] | 알천(閼川) | 양산촌(楊山村) | |
| arki | son of sun | 알지閼智 | ||
| Arpya(아르피아) | consignable | 알평(謁平) | 알평(謁平) | secretary(세크리터리/長官) |
| dauleya | tortoise,자라 | 돌산(突山) | 금오산(金鰲山) | 자라산 |
| (ulli)- gIta | song | 노례왕(弩禮王) | ||
| dhuma | mist | 첨해왕(沾解王) | 첨해왕(沾解王) | |
| Gandharva | Kandahar | 함달파왕(含達婆王) | 건달파(乾達婆) | |
| giri | rock | 기립왕(其立王) | 기림왕(基臨王) | |
| gupta | governer | 급량부(及梁部) | ||
| harsana | pleasant | 호진(虎珍) | ||
| heli | sun | 해(赫=sun) | 혁거세(赫居世) | 혁거세(赫居世) |
| iriNa | salt | 일성왕(逸聖王) | 염토옹(鹽土翁) | |
| kartari | knife scissor | 가리촌(加利村) 칼[刀劍] | 한기부(漢岐部) 할(割) 배씨(裵氏) | 가르다 베다 |
| kura-pur | boiled rice | 구량벌(仇良伐) | ||
| kurma | turtle | 구례마(俱禮馬) | 구미산(龜尾山) | |
| kusulaka | ambitious virtue | 거슬한(居瑟邯) 거서간(居西干) | 구슬왕, bead-王 덕왕(德王) | 왕호(王號) name for king |
| mitra | friend | 미추왕(味鄒王) | ||
| Nishakant | Lord of Moon | 이사금(尼師今) | ||
| patika | leader | 박(朴) | 왕성(王姓) | |
| paaris | 발휘왕(發暉王) | 벌휴왕(伐休王) | ||
| paurNimA | full moon | 보름(borum) | ||
| Pur-guna | full virtue | 불구내(弗矩內) | 완덕인(完德人) | |
| Shachi | queen of Indra | 사초부인(史肖夫人) | ||
| saci | speech minister | 석리음(昔利音) 이사지왕(爾斯智王) | 태재(太宰), 대보(大輔) | 이사지명(수인왕) 伊佐知命(垂仁王) |
| sAnta santati | joy, child, offspring | 점탁부(漸涿部) | 손씨(孫氏) | |
| saras | moon | 사로국(斯盧國) | 월지국(月支國) | |
| sArtha | wealty ,troop | 사타부(沙梁部) | ||
| sasaurabha | fragrant 香氣 | 사소부인(娑蘇夫人) | 선도성모(仙桃聖母) | |
| sayoni | uterine -brother | 사요왕(辭要王) | 동모형(同母兄) | |
| śilā | rock, stone | silla, 신라(新羅) | 국호(國號) | |
| siMha | lion | 지마왕(祗摩王) | ||
| sonapur | gold town | 서나벌(徐那伐) | 금성(金城) | 수도(首都) |
| sura | alcohol | 습비부(習比部) | 설씨(薛氏) | |
| svarna-pur | gold-city | 서나벌(徐那伐) | 금성(金城) | |
| swarna - dauleya | gold-turtle | 소벌도리(蘇伐都利) | 금오봉(金鰲峰) 정씨(鄭氏) | king’s knight commander |
| Takṣa śilā =taxilla | cut stone | 단석산(斷石山) | 단석산(斷石山) 담암사(曇巖寺 | |
| tapan | summer | 다파나국(多婆那國) | 완하국(玩夏國) | |
| tapan | summer | 도반명(稻飯命) | 조분왕(助賁王) | |
| Taresh | god of moon | 탈해왕(脫解王) | ||
| (Tocharian) | 토화라(吐火羅) | 토해왕(吐解王) | 월지인(月支人) | |
| 다래(脫解) | 월자(月子) | 가체(加髢) | ||
| ullikhita | furrow | 유리왕(儒理王) 유례왕(儒禮王) | 치흔(齒痕) 성광입구(星光入口) | =개화천황[開化王] 大日日王(=裂,皹) |
| vazin | ruler | 파잠(波潛) | 파진찬(波珍飡) | |
| Vasava | god of Indra | 파사왕(婆娑王) |
범어(梵語)를 신라땅에 가져온 주체는
첫째 인도 인더스강(indus river) 북부(北部)의 간다라(gandhara)에서 신라에 들어와 왕이 되었던
스키타이족(Indo-Scythian) 왕자 박혁거세(朴赫居世)와, 둘째 뒤이어 간다라(gandhara)에서 들
어온 쿠샨제국(kushan empire)의 월지족(月支族) 탈해왕(脫解王)이었다.
1-1-2. 박혁거세(朴赫居世)와 단석산(斷石山) 동암보살(東巖菩薩)
단석산(斷石山: taxila) 동암(東巖) 석가불(釋迦佛). 그리스 스타일(greek style)의 승려복
(僧侶服), 승려모(僧侶帽)를 착용한 수행자(修行者) 모습의 석가불(釋迦佛)인데, 당시 신라
시조(新羅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조상(彫像)한 것이다. 손에는 전설(傳說)의 금척(金尺),
혹은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다.
단석산 공양자상....스키타이 모자를 쓴 두 공양자(供養者)가 박혁거세상(朴赫居世像)을 찾아
가 공양을 하는 것이다.
신라 토우(新羅 土偶) 독수리머리 스키타이 모자
▲독수리머리 스키타이 투구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는 스키타이인(scythian)으로서
인도 스키타이국(Indo-Scythian kindom)의 왕자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였고,
인도 스키타이 수도 탁실라(Taxila, Pakistan)로부터 한반도 경주(慶州)로 들어와 신라(silla)를 세웠다.
이때,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탁실라(Taxila, Pakistan)로부터 가져온 것이 경주 단석산(斷石山, taxila of korea) 암벽(巖壁)에 새긴 6m 높이의 동암(東巖) 석가불(釋迦佛)이다.
그간 동암 관음보살로 불러왔지만 석가불이다. 그간 주불(主佛)로 알려졌던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월지족(月支族) 쿠샨제국(kushan empire)의 양식이고, 이는 월지인(月支人) 탈해왕(脫解王)이 만든 것이다.
단석산(斷石山)의 공양자상(供養子像)은 스키타이 모자(帽子)를 썼고, 이는 신라의 스키타이 토우(土偶)에도 나타난다.
스키타이(scythian) 복장(服裝)의 공양자(供養子)가 경배(敬拜)하는 대상은 바로 동암(東巖)의 석가불(釋迦佛)로서, 스키타이 왕자 박혁거세상(朴赫居世像)이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거서간(居西干), 거슬한(居瑟邯)이라는 왕호(王號)를 가졌는데, 그 뜻은 바로 구슬왕(bead-king)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박혁거세가 바로 간다라 미륵불처럼 구슬로 머리를 묶고, 구슬 목걸이를 하고, 신라에 와서 그렇게 구슬왕이라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에 의하면 신라녀는 머리 위에 채색 구슬로 장식을 하였다.
婦人發繞頭,以彩及珠為飾,發甚長美 / 舊唐書
婦...率美髮以繚首, 以珠綵飾之/ 新唐書
자란(紫卵)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이름(諱)은 혁(赫)이다.
혁(赫)은 헬(heli = Sun in Sanskrit)의 차자(借字)로서 태양(太陽)이다.
혁(赫)은 화(火=fire)가 4개인 한자(漢字)로서 우리말 해(hae, 太陽)와 뜻과 발음이 매우 가깝다.
여기서 우리말 해(hae= 太陽)의 어원(語源)이 헬(heli = sun)인 것도 알 수 있다.
당대(當代)에 존재한 쿠샨왕(kushan king) 헤라오스(Heraios =helios, 赫拉欧斯 재위: 1-30 CE)도 한자(漢字)로는 혁(赫)자를 사용하여 헤라(赫拉)로 차자(借字)되어서 헤라오스(赫拉欧斯)라고 기록했다.
따라서 혁거세(赫居世)는 해구슬이다. 붉은구슬(紫卵)을 가져왔을 수도 있다.
혁거세(赫居世)를 알지거서간(閼智居西干)이라고도 했다.
혁(赫)과 알지(閼智)가 서로 대응(對應)하는데, 범어(梵語)에서 알지(arki = son of the sun in Sanskrit)는 태양의 아들(太陽子)이다.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본명(本名)은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였다.
쿠술라카(kusulaka)가 먼저 구슬한(居瑟邯)으로 차자(借字)되고, 거서간(居西干)으로 쓰였다.
쿠술라카(kusulaka)를 kusul(구슬) + ka(王, 干)으로 나타낸 것이다.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의 이름에서 파티카(patika)는 지도자(leader)를 뜻하고,
쿠술라카(kusulaka)는 정력적(精力的 Kuzulaka = energetic)이라는 뜻이라고 스키타이어를 연구한 Harmatta, János가 "Languages and scripts in Graeco-Bactria and the Saka Kingdoms“ (1999)에서 밝혔다.
그러나 쿠술라카(kusulaka)의 뜻이 덕(德, virtue)이라는 해석도 오래전에 있었다.
그런데, 마침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불구내(弗矩內, 不矩內)라고도 했다.
或作弗矩内王/ 三國遺事
불구내(弗矩內,pur-gunai)는 범어(梵語)로서 완덕(完德)의 의미인 것이다.
불구내(purgunai)의 푸르(pur-)은 완전(完全=full)한 의미가 있다.
푸란(Pur-an = Complete), 보름달 (Pur-nendu = full moon)에서 알 수 있다.
구나(Guna = Bestowed with Qualities, Vurtue in Sanskrit)는 덕(德)이다.
즉 불구내(弗-矩內, pur-guna)는 완전(完全)한 덕(德)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 6부촌장들은 회의하기를 덕이 있는 사람(有德人)을 찾아 왕으로 모시자고 했다.
六部祖各率子弟 俱會於閼川岸上 議曰 我輩上無君主臨理蒸民 民皆放逸自從所欲 盍覔有德人 爲之君主 / 三國遺事
그래서 6부촌장들이 찾아모신 것이 박혁거세 불구내(弗矩內), 즉 완덕인(完德人)인 것이다.
1-1-3. 박혁거세(朴赫居世)와 Patika Kusulaka
박씨(朴氏)에서 발견되는 남성유전자 중에 Q-M242가 있다.
이는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하여 전세계에 퍼졌다. 북미와 남미의 인디언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아시아에서는 특히 투르크멘(turkmen=돌궐족)에서 많이 나타난다.
아프가니스탄의 투르크멘인에서는 34%~40%를 차지한다.
● 남성유전자 중에 Q-M242 의 분포
스키타이족(Scythians)은 원래 중앙아시아에 살았다.
스키타이 부족은 신장(新疆: Shinjang, china)에서 흑해(black sea)에 이르는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유목민 부족이다.
말을 숭상하는 유목민으로 전투에서 전차를 사용했고, 쿠르간(kurgan)이라는 지배층 무덤에
는 그들의 제물이 된 말이나 전차를 함께 묻어왔다.
▲스키타이안이 살던 곳. 중앙아시아. 기원전 2세기
▲기원전 3세기. 이리 강가의 스키타이안
한편 탈해왕(脫解王)의 혈통인 월지인(Tocharians, 月支人)들이 본래 타림분지에 살았는데,
bc.175년에 흉노(匈奴) 모돈선우(冒頓單于)가 타림분지 월지인들을 정복하여서,
월지인들은 쫓겨나와 기련산맥(祁連山脈)을 넘어 서쪽 이리강(Ili River) 유역으로 갔고,
원래 그곳에 살던 스키타이족(Scythians)들을 쫓아내서 남쪽으로 내몰았다.
이때 남쪽으로 내려온 스키타이인들은 사카인(saka)이라고 불리고 그들의 나라는 사카스탄(sakastan)이라고 불린다.
bc.155년에는 월지인들이 다시 한번 사카인(Sakas)들을 남쪽으로 밀어내서, 남쪽으로 더 내려간 사카인(Sakas)들은 박트리아(bactria)와 아프가니스탄(Afganistan)을 차지한다.
bc.138년에 사카인들은 이란 땅의 파르티아(Parthian Empire)의 황제 둘을 연속으로 죽이며 파르티아로도 진출하며 시갈(sigal)에 수도를 둔 사카스탄(Sakastan)을 세운다. 그러나 bc.100년에 파르티아 미트리다데스2세(Mithridates II) 황제에 의해 파르티아에서 일부 후퇴하게 된다.
하지만 사카스탄 마우에스(Maues)왕은 인더스강(indus river) 하구 구자라트(gujarat) 지역을 시작으로 인더스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파키스탄 탁실라(taxila)와 북서인도(northwest India) 마두라(mathura)에 들어간다.
bc.80년에 수도를 탁실라(taxila, pakistan)에 두고, 부수도를 시갈(sigal, 아프가니스탄)과 마두라(mathura, 전 마우리아 왕조 수도)에 세웠다. 이때부터 인도스키타이안(Indo-Scythians) 왕조라고 부른다.
▲기원전 1세기. 월지인에 쫓겨 파르티아를 거쳐 인도 서부와 서북부를 차지한
인도 스키타이안 왕조
▲인도스키타이안 왕국/ 수도 탁실라. 부수도 마두라, 시갈
탁실라에는 bc.500년에 간다라 왕국(Gandhāra)이 있었다.
그후 석가모니와 보살들의 성지였다. 보살이 자기 목을 잘라 배고픈 사자에게 보시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후 탁실라에는 알렉산더 제왕의 지배로 인해 그리스 예술이 들어왔고, 이곳을 스키타이안과 월지인들이 지배하면서 불교를 숭상하여 불교적 간다라 예술이 꽃피우게 되었다.
아래의 왕들이 인도스키타이안 왕국을 지배했다. 샤트랍은 지방왕이다.
마우에스(Maues) bc.90–bc.60. 탁실라를 수도로 함.
아제스 1세, Azes bc.60–bc.20 탁실라를 수도로 함.
아질리세스,Azilises bc.57–bc.35 간다라의 샤트랍
리아카 쿠술라카(Liaka Kusulaka), 추크사(Chukhsa)의 샤트랍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 bc.25-ad.6 추정) 탁실라의 샤트랍
비제이미트라(Vijayamitra) bc.12 –ad.20 인도스키타이안 왕. 탁실라를 빼앗겨 북으로 이주.
스키타이왕 아제스1세 동전; 동전의 주조는 그리스 영향을 받은 인도 왕들의 전통이다.
아제스1세 때에 수도 탁실라와 가까운 추크사의 지방왕이던 리아카 쿠술라카에게는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 bc.25-ad.6)라는 아들이 있었다.
파티카 구술라카가 바로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로 밝혀지는 인물이다.
아제스1세가 박혁거세의 할아버지(祖父)로 추정된다.
탁실라에서 발견된 파티카 명문 동판(patika cooper plate or taxila cooper plate)이 있다.
▲파티카 명문 동판
동판(patika copper plate) 기록은 다음과 같다.
“추크사의 샤트랍인 리아카 구슬라카의 아들인 파티카는, 탁실라의 읍에서, 북으로 (탁실라에) 알려지고 동쪽 지방으로 사자(마두라 사자 수도)까지 알려졌다.
Kshatrapa of Chukhsa–Liaka Kusulaka by name – his son Patika - in the town of Takshasila, to the north, the eastern region, Kshema by name”
“파티카는 탁실라에서 로히니미트라를 시켜서 (전에 없던) 석가모니상과 사원을 만들었다.
In this place Patika establishes a (formerly not) established relic of the Lord Shakyamuni and a sangharama(=temple) (through Rohinimitra who is the overseer of work of this sangharama)”
“모든 부처와 그의 어머니, 아버지를 경배하고, 수명 연장과 샤트랍 권력의 강화를 위해
아들과 부인, 형제, 친척, 부족인과 함께.... 위대한 기부의 신 파티카...
For the worship of all Buddhas, worshipping his mother and father, for the increase of the life and power of the Kshatrapa, together with his son and wife, worshipping all his brothers and his blood-relations and kinsmen.
At the jauva-order of the great gift-lord Patika
To Patika the Kshatrapa Liaka”
파티카 쿠술라카는 마두라 사자 수도(mathura lion capital)의 명문에도 기록되어 있다.
“샤트랍 미이카는 그레이트샤트랍 쿠슐라카 파티카에게 명예를 바친다.
The satrap Miyika honours the great satrap Kusulaka Patika”
▲당시 부수도 마두라 사자성의 조형물 쌍사자상
외국 전문가들의 해석에서,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의 이름에서 파티카(patika = traveller, wander in Sanskrit)는 여행자(traveller)를 뜻한다고 알려졌다. 참배자, 순례자 의미 일수도 있다.
한편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의 이름에서 파티카(patika)는 지도자(leader)를 뜻하고,
쿠술라카(kusulaka)는 정력적(精力的 Kuzulaka = energetic)이라는 뜻이라고 스키타이어를 연구한 Harmatta, János가 "Languages and scripts in Graeco-Bactria and the Saka Kingdoms“ (1999)에서 밝힌 적도 있다.
ad 1세기. 탁실라는 쿠샨제국이 차지하고 스키타이안은 인도 구자라트에 있다. 박혁거세는 신라로 !!!
인도-스키타이안은 ad. 20년경에 탁실라를 인도-파르티안(Indo-Parthians)에게 빼앗기고, 서부의 구자라트(gujarat) 지역에서만 번성했다. 그후 ad. 30년경에는 월지인들이 세운 쿠샨제국(Kushan Empire)이 탁실라를 차지하여 간다라 예술을 꽃피웠다.
파티카 쿠술라카는 대승불교를 실천하기 위해 멀리 동방의 신라로 떠나왔을 수도 있다.
파티카 쿠술라카가 기록된 탁실라 동판의 기록들은 ad. 6년에 끝났다.
파티카 쿠술라카가 ad. 6년 이전에 탁실라를 떠난 것이 된다.
bc. 57년 갑자년에 신라를 건국했다는 삼국사기 시조 박혁거세 기록은 연대 상향 조작이다.
실제, 박혁거세(朴赫居世) 즉위 연대(卽位年代) ad 6년으로 같은 책 삼국사기 탈해왕기(脫解王記)에 보인다.
脫解本 多婆那國所生也, 其國在 倭國東北一千里. 初, 其國王娶女國王女爲妻, 有娠七年乃生大卵. 王曰: 人而生卵, 不祥也. 宜棄之. 其女不忍, 以帛裹卵幷寶物, 置於櫝中, 浮於海, 任其所往. 初至金官國海邊, 金官人怪之不取. 又至辰韓阿珍浦口, 是始祖赫居世在位三十九年也. / 脫解王記
탈해왕(脫解王)이 금관가야(金官伽倻)에 도착한 것은 ad 44년이다.
그해가 박혁거세 39년이면, 박혁거세 즉위년은 ad 6년이 된다. 탁실라 동판기의 기록이 끝날 즈음에 신라에 나타난 것이다.
탈해왕기(脫解王記)로 보면 박혁거세기(朴赫居世記)는 63년을 상향 조작했다.
박혁거세(朴赫居世)가 ad 6년에 신라(新羅)를 건국(建國)했고, ad 44년인 재위 39년에 서부인도(西部印度)의 쿠샨(kushan)으로부터 월지인(月支人) 탈해(脫解)가 왔다.
박혁거세(朴赫居世)가 ad 66년경에 죽었는데, 탈해왕(脫解王)을 정벌(征伐)하다가 전사(戰死)한 것으로 보인다. 사체(死體)가 분시(分尸)되었기 때문이다.
七日後遺體散落于地, 后亦云亡. 國人欲合而葬之有大虵逐禁, 各葬五體爲五陵亦名虵陵, /三國遺事
뒤이어서 남해왕(南海王)이 즉위했고, 탈해왕(脫解王)은 ad 71년에 남해왕의 사위가 되고, 73년에 탈해왕(脫解王)이 들어와서 군권(軍權)을 가진 대보(大輔)가 되었다.
大輔, 委以軍國政事/ 南解七年.
스키타이 왕자, 파티카(쿠술라카) 쿠술라카(kusulaka)는 불교(佛敎)를 숭상했고, 간다라 예술의 본고장인 탁실라(taxila)에 사원(寺院)을 만들었고, 부처상(buddha像)을 만들었다.
다만, 쿠술라카(kusulaka)가 만든 사원(寺院)은 지진(地震)으로 파괴되어서, 뒤에 월지인들의 쿠샨제국이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수도였던 탁실라(taxila)의 어원은 탁사실라(Takṣaśilā)인데, 이는 갈라진 돌(Cut Stone)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단석산(斷石山)이다. 파티카(쿠술라카) 쿠술라카(kusulaka)는 신라에 와서 신라시조(新羅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가 되어서 마애불상(磨崖佛像)을 만들고 단석산(斷石山)이라 불렀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죽어서도 담암사(曇巖寺) 위에 묻혔다.
六十一年春三月, <居西干>升遐. 葬<蛇陵>, 在<曇巖寺>北/ 三國遺事
담암사(曇巖寺)는 단암사(斷巖寺) 즉, 탁실라(taxila= cut stone)의 또다른 표현이다.
탁실라에서 온 박혁거세를 위한 절이 된다.
담암사는 박혁거세가 평소 생활하던 거처였을 수도 있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한반도로 와서, 할아버지의 수도였던 탁실라와 비슷한 이름의 실라(sila, 始林)라는 국호를 썼고, 탁실라와 같은 이름의 단석산(斷石山)을 경주 서쪽에 만들어 단석산 바위에 마애불상(磨崖佛像)을 새겼다.
단석산(斷石山)은 토함산(吐含山), 금강산(金剛山), 함월산(含月山), 선도산(仙桃山)과 함께 신라인들이 신성시한 오악(五嶽) 중에서 중악(中岳)으로 불리던 산이다.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모후(母后)인 선도성모(仙桃聖母)는 중국의 황족인 사소부인(娑蘇夫人)이라고 하였다.
神母夲中國帝室之女. 名娑蘇,/ 三國遺事 仙桃聖母
그런데 범어(梵語)에서 사소(sasaurabha = fragrant in Sanskrit)가 향기(香氣)를 의미하니 향기부인(香氣夫人)이라는 뜻이고, 중국이 아니라 인도(india)에서 온 것이었다. 고향을 향하여 서악(西岳) 선도산(仙桃山)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출처] 스키타이 왕자 박혁거세ㅣ작성자 patik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