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9째>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마6:13b> ~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선과 악은 존재의 본질과 근원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선은 빛과 의로 표현되는 하나님이시며, 악은 어두움과 불의로 표현되는 사탄 마귀이다. 선에서는 좋은 열매가 맺혀지고, 악에서는 나쁜 열매가 맺혀진다. 얼핏 보면 선과 악이 대립되는 관계처럼 보이나, 악은 선이신 하나님께 대적할 수가 없다. 어두움이 빛에 대항하거나 거역하는 것을 보았는가?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두움이라 할지라도 빛이 켜지는 순간 어둠은 쫓겨난다. 흑암은 빛이 없는 곳에서만 왕노릇 한다.
사단 마귀도 하나님의 종이다. 애굽의 바로 왕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도 하나님의 종이 아니던가?.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양성해 가시기 위해 막대기와 채찍을 만들어서 사용하신다. 위대한 목적을 위해 필요에 따라 어두움(마귀)도 창조하며 환란(사건)도 창조 하신다고 한다.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혹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악과 흑암을 창조하셨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시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 자신을 빼어 닮은 아들들을 생산하시고자 우주를 경영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천사장의 배반과 타락도 이러한 일환에서 하나님의 허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때 완전한 하나님의 인이었던 루시퍼의 자유의지가 배반이라는 노선으로 회로 변경된 것은, 앞서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기 때문이다. 은혜가 떠나면 모든 피조물의 운명은 내부 폭발로 자멸한다. 은혜는 생명 싸게인 것이다.
사탄 마귀를 간접 창조하셨든지, 직접 창조하셨든지 결과적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탄도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요 이용물이지 하나님과 대립되는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 신학이 타락하여 인본주의 사상으로 만연한 것도, 사탄을 신으로 보는 데서 기인된다. 하나님이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마귀가 사람에게 온갖 문제를 일으켰으니 어서 하나님이 오셔서 도와달라고 애걸복걸이다. 문제 앞에서 안달하는 모습을 좋은 신앙이라고 부추기는 격이다. 이것은 사탄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불신의 소산이다.
믿는 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두 가지 측면 때문이다. 첫째는 욕심에 이끌려 마귀를 초청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야말로 더 높은 신앙의 연단을 위해 펼치시는 하나님의 테스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이르기를 시험 받을 때에 자신을 점검하여 욕심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면,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당부한다(벧전4:12~13).
이와 같이 신관(神觀)에 대한 정확한 진리지식이 구비된다면 선과 악, 빛과 어둠이 분명히 구분되어 나누어지지만, 진리가 아직 혼돈 가운데 있다면 무엇이 빛인지 무엇이 어둠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밤과 낮을 분별 못하는 것은, 한마디로 젖먹이가 똥인지 음식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디 젖먹이 뿐인가? 치매 환자가 배설물을 방벽에다 바르듯이 영적인 치매에 걸린 자들은 언제나 망령(죽은 영)된 행실을 일삼으면서, 그 수치를 알지 못한다.
빛과 어둠, 선과 악의 구분은 깨달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천연적인 본성으로 율법 말씀을 대하면 반드시 종교의 시녀로 전락하는 것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열심을 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특심으로 열심을 내었는가? 그러나 이것을 죽은 행실이라 한다. 언제나 율법 선생들이 죄와 사망의 법을 가르치고 실행하는 것은 그들이 자칭 빛의 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지금이 복음시대요 은혜시대이지만, 실제 영적으로는 후견인과 청지기들이 득세하는 여전한 율법시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복음과 율법이 섞여있는 혼잡한 바벨론의 시대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영의 상태를 계시록 6장에는 청황색말로 표현했다. 하늘색(청)과 땅(황)의 색을 가진 전도자(말=육체)의 시대라는 의미이다. 기독교의 목사들은 성경을 들고 복음인 진리도 가르치면서, 동일한 성경으로 세상의 복도 구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은혜를 말하면서 율법으로 비빔밥을 만든다. 그래서 이들이 복술가요 술객들인 것이다.
개중에는 아예 노골적인 사이비도 많다. 감기만 들어도 귀신 때문이라고 ‘축사 주문’에 게거품을 흘리는 목사들이 큰 패거리를 이루고 있다. 곧 없어지겠거니 했지만 오히려 장사가 꽤 잘되는지 방방곳곳에 지점을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신종 사이비는 웃음을 파는 목사, 썩은 이빨을 금니로 바꿔주는 목사, 뒤로 넘어지게 하는 목사,... 별의 별 잡종들이 판친다. 그런데 기존의 대형교회 목사들마저 이런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능력을 부러워한다니 그야말로 그 밥에 그 나물들이다.
무슨 말인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운 교회,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된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권모술수와 각종 사이비가 동원되어 세운 교회들이라는 말이다. 줄여서 말하면 마귀의 집들이다. 각종 더러운 영과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감옥이다(계18:2). 하나님의 전이 아니라 마귀의 처소인 벧아웬이다. 그 보좌에는 음녀인 이세벨이 온갖 왕후의 치장을 하고 앉아있다.
하와를 미혹한 뱀은 누구인가? 백마를 탄 왕자의 모습으로 다가와 미끄럽고 달콤한 말로 유혹하여 영혼을 사냥하는 후견인과 청지기들이다. 뱀이 머리에 뿔 달고 왔겠나? 빛의 사자로 가장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가르치며 선악과인 죄와 사망의 법을 주입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탐스럽고 먹음직한 의문이야말로 죽이는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모두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는가? 이 몽학선생들은 말씀의 열쇠를 쥐고 자기도 천국에 못 들어가고 남들도 못 들어가게 막는다. 두루 도는 화염검이요 악의 그릅(천사)들이다.
주님과 제자들이 알곡을 뿌리면 뒤 쫓아 다니면서 알곡 중에 가라지를 덧뿌리거나 악한 자가 와서 뿌려진 씨앗을 빼앗아간다고 했다(마13). 복음의 제사장들이 진리를 전하여 빛으로 인도해 놓으면 율법주의자들이 다시 와서 각종 모세의 율법을 준수해야 구원 받는다고 사람의 교훈을 추가한다는 말이다. 성경에서는 이런 자들을 악한자라 한다. 악한 자는 원수요 마귀의 아들들이다.
<마13:19/25>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13:38~39>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율법 교사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요 넘어지게 하는 자들이다. 세상 끝에는 모두 풀무 불에 던져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다시 율법으로 돌이키는 자들을 일컬어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자들로 이미 예표 되었다. 여호수아(예수그리스도)에 의해 무너져 내린 견고한 여리고 성(종교의 본산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다면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가 죽고, 문을 세울 때에 차자가 죽을 것이다(수6:26).
신학교를 세워 사람의 교훈으로 신학 교리를 제조하여 비진리를 퍼뜨리는 것을 여리고 성의 기초를 쌓는다고 했고, 거기서 배출되는 목사, 신부들을 위임하는 것을 문을 세운다고 한 것이다. 장자는 사람의 영이요 차자는 혼이다. 율법 종교로의 전락은 영혼이 다 망하는 화를 당하여, 결국 불못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율법주의는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교훈으로 변질시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현상들이 기복주의, 은사주의, 종교의식주의이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찾으나 마음으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꽃혀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세상 복을 추구하고 목회자들은 소위 목회성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착각들을 한다. 복을 팔아서 많은 신자를 모으고 큰 건물을 세우는 것은 자기 성취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목회는 비지니스일 뿐이다. 이렇게 교회 안에 세상의 정신사조가 들어왔으니 악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님이 주기도문 말미에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말은 제자들이 아직 진리로 완전히 무장한 상태가 아니라서, 언제든지 마귀의 사주를 받고 다시 율법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목표지점 바로 앞에서 방심하여 넘어진다면 그동안 달려온 신앙여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서 있는 자들을 삼키기 위해 배회하고 있다. 잠시라도 쉬며 무장을 푼다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는다.
주님의 이 말씀을 바울 사도는 여러 곳에서 더욱 상세히 풀어서 교훈하고 있다.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6~17>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살전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율법종교 행위 흉내내지 말라)
<살후3:2~3>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영적 전쟁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다. 가장 두려워해야할 적은 교만에서 오는 방심이다.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를 이끈 전사중의 전사였던 다윗 왕이 찰라의 방심으로 밧세바 사건의 쓴맛을 톡톡히 치룬 실례는,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타산지석의 산 교훈이다. 영적 거장 사도 바울도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 미치지 않도록 언제나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살았다(고전9:27).
히브리서 기자도 6장에서 이를 엄중히 경고한다. 한번 비춤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한다(히6:4~6). 그러므로 몸의 구속을 이루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아들다운 장성한 자로 건축되고 첫째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속으로 탄식(애타하며)하며 악한 자가 건드리지 못하도록 진리의 전신갑주로 완전 무장해야 할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해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하라는 당부는, 한 시도 영적인 사주경계를 게을리 말라는 사령관의 지침이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