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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 강의 / 2008.6
묘사란 무엇인가?
○ 묘사 description 란?
-수사학상 언술행위의 하나
-설명, 논증, 묘사, 서사
1. 설명 : 비교, 대조, 실례, 분류, 정의, 분석---주제를 밝히는 형식
-설득- 우리들의 태도, 감정, 정서의 공통적인 바탕에 호소하여 발화자의 의도를 현실화 시키는 형식--감정적 호소
-설명-설득이 아닌 이해가 목표
2. 논증 : 논리적인 호소--주장이나 진리--궁극적으로 자신의 의도대로 현실화
※일상적인 언술은 ‘대체로 설명의 형식’이고 신문 논설은 ‘설득’이며 ‘어떤 명제를 논리적으로 실증하고자 하는’ 언술은 논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3. 묘사란?
사물이나 현상이 지닌 성질, 인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언술형식
4. 서사
사건의 의미있는 시간적 과정을 제시하는 형식
! ∙설명, 설득, 논증은 - 이론적 성향의 언술
∙묘사, 서사는 - 감각적, 암시적 성향의 언술(암시적 묘사)
※시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느낌--직접 제시하는 언술행위
↳ 설명+묘사 → 설명적 묘사
설명+서사 → 서사적 묘사
중요한 것은
◦느낌을 직접 제시하는 시는 필연적으로 지배적 인상dominant impression으로 표현 하는 데 적절한 ‘묘사’ 를 적극 수용하게 되며,
◦스토리를 제시하는 소설은 인물과 행위와 시간적 과정을 ‘구성적’으로 제시하는 서사와 만난다.
이렇게 볼 때
시에 있어서 지배적 인상의 구체적 모습을 이미지라고 하고 소설을 서사적 허구(narrative fic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토리는 narrated event이다.
파이퍼 이론
↳시는 묘사되는 것이라고 했다.
시가 힘을 가지게 되는 근원을
↳‘추상적인 상상이 아닌 구체적으로 그려진 본질에 있다고 한다면 그 구체적으로 그려진 본질은 묘사에 의해서 획득된다.
※ 이 묘사에 대한 인식부족이 초심자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비시적 표현의 근간을 이룬다.
시적 묘사는
시의 장르적 특성상 심상적(image) 특질을 나타낸다.
◦문학의 순수주의 입장에서 보면
문학의 언어는 구체적 언어라는 인식을 낳고 그것은(구체) 묘사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묘사의 중요성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구체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은(사물은) 우리의 오관을 통하여 감지 될 수 있고 언어로써 그것을 묘사, 암시할 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추상성에 비하여 구체성이 가치 있다고 이해되어
대상을 감각적으로 재현 또는 모방하는 것이 문학의 바람직한 기능으로 보기에 이르러 된 것이다.
한 가지만 더
문학적 논의에서 <구체적>이란 낱말은<추상적>이란 낱말에 비하여 ‘문학의 더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어떤 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다는 점.
그러나 문학의 흐름에서 볼 때 ‘구체성이 언제나 추상성 보다’ 가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문학의 철저한 구체성을 진리의 영역과(관념, 추상성으로 대치) 동떨어져 있다고 경멸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성에도 불구하고 추상적 의미(개별성) 때문에 문학이 가치 있다고 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구체성 보다 추상성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중세의 알레고리 문학론에서는 ‘문학의 추상적 의미 세계’를 강조 하였고
◦17.8세기 ‘신고전주의’도 구체성을 축소, 추상적 관념의 문학을 완성하였다.
반면 낭만주의는 구체성을 추구하고 구체성은 ‘감각적 체험’에서만 주어진다고 믿었다. 낭만주의자들은 문학적 심상이 문학의 최고 목표로 보고 심상의 형성에 최대의 주의를 기울인 것은 감각, 그중에서도 대표적 감각인 ‘시각적 체험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 이후
상징주의는 다시 추상성을 지향 그러나 그 추상성은 ‘철학적 의미의 관념성이 아니라’ 구체성의 윤곽을 지워버리고 ‘막연한 암시성’을 지향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미지스트들은 관념적 추상성은 물론 윤곽 없는 암시성을 배제하고 다시 구체적 이미지를 중시하였다.
현대작가들은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구체성, 추상성을 적절히 배분하여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추상적 언어는 - 과학과 철학의 언어이고
구체적 언어는 - 문학적 언어라는 생각은 문학의 순수주의를 지나치게 추구,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시 - 부동이냐?
묘사-구체적인 시-구체적인 형태를 한,
한편의 작품으로서 시는 정지태로서 홀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문화사, 혹은 시인과 독자 사이의 상호 관련된 보이지 않는 선상에서 계속하여 홀로 움직이는 ‘하나의 운동태’ 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날아가는 새나 떠오르는 연처럼 그렇게 가시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슬픔과 기쁨에 의하여 그때그때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움직임을 뜻하며,
-악보가 그냥 펼쳐져 있어도 그 안에 홀로 있는 수많은 높낮이의 음들이 서로 움직이며, 부딪치며 소리를 홀로 내고 있는 것과 비유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言語(말)에 의한 사물의 전달은 모두 묘사에 의한다고 할 수 있다.
예) 기차가 막 달린다→물체의 특수한 행위 묘사
문학에서는 이것이 보다 기술적이고 의도적이다.
가. 근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종류의 묘사→배경묘사
배경→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
과거에는 주인공의 어떤 행동이 벌어지기 위한 마당
최근에는 배경이 인물행위와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따라서 배경묘사는 결국 -
인간행위에 대한 간접적인 암시, 대조, 비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나. 인물묘사
인물의 외모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근대 사실주의 문학에서 비롯-세련화
또한 심리학의 영향으로 ‘심리묘사’가 세련화→현대문학의 특징
다. 행위묘사
이야기 문학의 ‘필요 불가결한 요소’→현대문학에서 더욱 세련, 섬세화
수법과 기법은
가. 가장 중심적인 인상(통일성)을 확정하는 것.
나. 가장 적절한 관점(물리적 또는 심리적)을 선택하는 것.
다. 중심적인 인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창조할 특징적 세부를 선택하는 것.
라. 독자의 감각을 많이 자극하는 것.
마. 이러한 세부-관계를 공간적, 시간적, 수사학적 또는 연상적 순서에 따라 연결시키는 것.
바. 직접적 진술이나 암시에 의해서 ‘중심적 어조를 띄우도록’ 전체 문장을 통일하는 것.
대체적으로
묘사는 일반화에서→특수화로 발전
특히 ‘사회 환경이 개인의 언행을 결정한다’는 19세기 사상의 영향을 받아 배경의 자세한 묘사는 결국 개인에 대한 인과율적 설명이 된다는 생각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문학의 일부에서는 세부적인 사실적 묘사가 ‘인간의 참 모습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인간의 내면에 대한 제시의 방법을 더욱 암시적이고 미세한 상징적 차원에서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결국 그것은 ‘사실적 묘사는 아니나’ ‘또 다른 형태의 묘사적 수법’ 이라고 할 수 있다.
한시에서는
묘사는 경(景)에 해당된다.
시인이 경만을 말하고 있어도 그 가운데는 이미 정이 녹아 들어 있다. 시인은 눈앞에 펼쳐진 여러 대상 가운데 어느 하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초점을 맞춘다면 렌즈에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초점을 선택하는 시인의 선택에 감정이 들어있다.
그러기에 시에서 시인이 선택한 어떤 경물도 포착과 동시에 주관의 색채로 물들게 된다.
시인은 마땅히 다만 景物를 묘사할 뿐이나 정의가 절로 드러나야 한다.
(情意自出 只須述景)
예>
① 푸른 이내 허공 가득 옷을 적시고
초록의 연못에는 백조가 난다.
깊은 숲 밤을 새운 묵은 안개가
낮 바람 불어오자 비를 뿌린다.
이진(산거우제-山居偶題)
산에 가득 떠 있는 푸른 이내(嵐)에 옷이 다 젖었다.
꼭 짜면 파란물이 듣을 것만 같다. 초록의 못 물위로 백조가 난다. 시인은 파랑과 초록물감을 화면전체에다 온통 뿌려놓았다. 안개는 밤새 어디에 숨었다가 이렇게 몰려나온 것일까, 숲속깊은 곳에서 밤을 지샌 묵은 안개는 날이 새고 바람이 불어가자 제 무게를 못견뎌서 빗방울로 떨어진다. 쇄락하다.
② 탱자나무 울타리에 낮은 사립 닫아걸고
참을 내간 아낙네는 돌아올 줄 모르네
멍석에 나락쬐는 추녀 밑은 조용한데
병아리는 짝을 지어 울 틈새로 나온다.
양경우(촌사-村事)
주인 없는 빈집-터진 울타리-병아리 떼 뽕뽕뽕 짝을 지어 나온다-까치발을 하고 주인 없는 담장 안을 들여다보는 시인-천연덕스런 병아리→아름다운 광경의 묘사
묘사의 갈래
설명적 묘사, 암시적 묘사, 주관적 묘사, 객관적 묘사
1)설명적 묘사
예>
① [‥‥‥]네번째. 큰 지리적 사실은 이 군도(群島)가 두 개의 큰 호형(弧形:활모양) 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바깥쪽은 석회석의 호형이고, 안쪽은 화산석이 그것이다. 석회석의 지역은 낮고, 화산석의 지역은 비교적 높거나 매우 높다. 몇몇 섬은 석회석과 화산석의 두가지 모양을 다 갖고 있다. (스미스, 필립, 「北美」)
지리적 특성 열거-일정한 대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설명적 묘사 (expositional description)이다.
② 규모가 작고
지저분한 정거장
게시판에 백묵으로
무엇인가 씌어져 있었으나
알 수가 없었다.
화물차 안에 쓸쓸해 보이는
철망 닭장 속의 두 마리 닭,
작업복을 걸친 사나이 서넛
벽에 기대어 껌을 씹으며
시름없이 앉아 있었다.
이 예는 암시적 묘사 suggestive description의 특성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예>②는 차가 멈춘 정거장에 대한 정보 제공이 목적이라기보다 정거장에 관한 지배적 인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적 인상은 대상의 성질을 암시한다.
이 소설의 한 부분은 한적한 어느 시골 정거장의 풍경을 그린 시로 바뀐다. 이 소설 속의 한 토막도 담백한 풍경시이다. 그것은 예>②가 지닌 암시적 묘사의 성격 때문이다. 즉 규모가 작고 지저분한 정거장, 게시판에 쓰인 백묵 글씨, 화물차 안의 철망 닭장속의 닭 두 마리, 무료하게 껌을 씹으며 일감을 기다리는 작업복 차림의 사내, 이들은 이 초라한 정거장 뒤에 숨겨진 삶을 암시하는 특정한 의미의 정황(情況)인 것이다.
시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암시적 묘사이다.
2) 주관적 묘사, 객관적 묘사
작가의 심리가 투영되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우리는 암시적 묘사도 주관적 묘사와 객관적 묘사로 고찰해 볼 수 있다.
예>
① 전당포에 고물상이 지저분하게 늘어선 골목에는 가로등도 켜지는 얹었다. 조금 높드란 鋪道도 깔리우지 않었다. 죄금 말쑥한 집과 죄금 허름한 집은 모조리 충충하여서 바짝바짝 친밀하게는 늘어서 있다. 구멍뚫린 속내의를 팔러 온 사람, 구멍 뚫린 속내의를 사러 온 사람. 충충한 길목으로는 검은 망토를 두른 주정꾼이 비틀거리고, 인력거 위에선 車와 함께 이미 하반신이 썩어가는 기녀들이 비단 내음새를 풍기어가며 가느른 어깨를 흔들거렸다.
오장환,「古典」
② 毛髮을 날리며 오랜만에
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눈보라도 걷히고
저 멀리 물거품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人間의 女子가
誕生하는 것을 본다.
김춘수 「봄바다」
예>① “전당포에 고물상이 지저분하게 늘어선 골목”의 풍경이다. 이 풍경을 시인은 사실적인 정황들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그러니까 객관적 묘사이다. 위의 작품에서 그 풍경은 켜지지 않은 가로등, 조금 높다란 鋪道, 조금 말쑥하거나 허름한 집, 구멍 뚫린 속내의를 팔러 온 사람, 검은 망토를 두른 주정꾼, 썩어가는 하반신 위에 걸친 비단 냄새를 풍기며 인력거를 타고 가는 기녀로 구성되어 있다.
그만큼 황폐한 삶의 한 현장인 골목 풍경이다. 시인은 선택한 한 국면(이 국면 선택 자체가 바로 세계에 대한 시인의 해석이다)의 객관적 묘사를 통해 현장성 또는 사실성 reality으로 말하고자 하는 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①이 객관적 묘사라면 예>②는 주관적 묘사이다. 표면에 들어나 있지 않지만, 숨은 시적화자(詩的話者)인 ‘나’는 오랜만에 모발을 날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그 바다는 “눈보라가 걷히고”, 그러니까 시야가 트이고 ‘저 멀리’ 하얗게 부서지는 ‘물거품’이 보인다. 여기까지는 시적 화자인 또는 시인의 심리가 투영되어 있지 않은 객관적 정경이다.
그러나, 그 ‘물거품’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人間의 女子가/誕生한는 것”을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인의 심리적 세계에서이다. 뿐만 아니라 “제일 아름다운 人間의 女子”는 시인만이 본 심리적 영상이므로 이른바 개인적 상징이기도 하다.
예>②에서 본 바처럼 모든 작품이 전적으로 객관적이거나 전적으로 주관적인 형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체적으로
예>②와 같이 복합적이라고 해야 옳다. 주관적 묘사든 개관적 묘사든 그 묘사의 정신은 ※감정과 설명을 배재하고 대상의 인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작가가 현장과 사실을 그 바탕으로 하여 표현한다고 할 때는 객관적 묘사가 적극적으로 요구되고, 심리적 또는 감각적 대상 파악이 그 기조를 이룰 때는 주관적 묘사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다.
3) 묘사의 구조
시적 묘사가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 dominant impression을 형상화하는 언술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대상의 특성, 시점에 따라 달라 질 수밖에 없다. 가시적 공간의 서경(敍景), 서사(敍事)와 비가시적 공간에 속하는 심리적 대상인 심상(心象)을 표현하는 묘사가 각각 개관적, 주관적 양상을 나타낸다거나, 시적 인식의 주체, 즉 시작(詩作)을 하는 사람이 대상을 감지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시점의 형태가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묘사가 해석보다 현시(顯示)를 축으로 하는 언술 형식이므로 형상화된 모든 대상의 세계는 언제나 회화성을 공통으로 갖고 있다. 그 회화성을 대상의 특성에 따라 분류해 보면 대체로 서경, 서사, 심상의 구조로 드러난다.
가. 서경적 구조
이 가운데 서경적 구조(敍景的 構造)의 작품은, 서경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암시해주듯, 언어로 그려진 풍경화의 형태이다.
예>
① 푸른 불 시그낼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驛이 있다.
빈 待合室에는
의자할 倚子 하나 없고
이따금
急行列車 어지럽게 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
아득한 線路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驛처럼 내가 있다
한성기 「驛」
역이 있는 곳은 “푸른 불 시그낼이 꿈처럼 어리는/거기”이다 이 표현은 과거에 경험한 바 있기는 하지만, 작가가 새삼 머릿속에서 재생시켜보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驛」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풍경이라는 점을 위의 시구를 통해서 명시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본 것이 아니라 마음에 떠오르고 있는 그 어떤 장면이며, 그러므로 작품 속의 풍경은 사실적이라고 하더라도 관찰에 의한 묘사가 아니라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상을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한 풍경이다.
2) 심상적 구조
심상적 구조(心象的 構造)의 작품 세계는 그 성격상 주관적 묘사의 형태를 가진다. 그 세계가 가식적인 물리적 공간에서 감지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리적이라는 비가시적인 공간인 탓이다.
가) 과수원에서 사과 한 알
뚝 떨어진다.
나) 과수원에서 썩은 시간처럼 사과 한 알
뚝 떨어진다.
다) 영혼의 뜰에서 사과 한 알
뚝 떨어진다.
라) 가을 깊어지면
마음
툭!
떨어진다.
내 몸이
능금이다.
고영조 -능금
가)는 물리적 공간에서 관찰 할 수 있는 사물 현상이다. 물리적 현상의 하나를 축어적 형태 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나)는 축어적 형태의 객관적 묘사에 비유적 수사가 가미된 형태이다. 즉,
썩은 시간처럼
과수원에서 사과 한 알 뚝 떨어진다.
에서처럼, 사과 한 알=썩은 시간이라는 직유 때문에 단순 사물 현상이 작가의 해석(썩은 시간)으로, 다른 의미로 변용되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단지 사물현상에 작가 나름의 인식이 첨가되어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다,라는 전혀 다르다. ‘영혼의 뜰’은 물리적 공간에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세계이며
-라에서는 떨어지는 사과와 가을에 대한 심리적 관계를 동일화함으로써 -가을에 대한 비가시적 세계를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세계는 심리적이든 실체적이든 우리가 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비로소 가시화되고 현실화 된다. - 언어가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A)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로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
마음에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의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는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이라는 심리적 공간에 시각이 고정되어 있다. 그 심리적 공간은 작품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 그 어디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그곳이다.
시인은 그곳에 시각을 고정하고 그곳의 “끝없이 흐르는 강물”과 그 강물의 ‘도도는 은결’을 묘사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실재하는 강물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느끼는 강물 같은 그 무엇이다. 더 자세히 적자면 마음속에서 ‘도도은 은결’로 반짝이며 흐르는 어떤 정서를 실재하는 강물처럼 형상화해 묘사한 것이다.
3)서사적 구조
서사물(敍事物)이란 그 어느 쪽도 다른 한쪽의 필수 전제이거나 당연한 귀결이 아닌 최소한 두 개의 현실 또는 허구의 사건 및 상황들을, 하나의 시간 연속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야기(story)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 속의 서사적 구조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다음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예 (1)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 川邊 十錢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가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종삼 -掌篇
예 (2)
그 해 봄날 뱃길이 끊기고
무성하던 회나무
공장부지로 뽑혀질 때
새 순 피우던 포도밭과 함께
꿈마저 뽑혀지고
마침내 우리도 뽑혀졌다.
지킬 수 없는 부끄러움 앞에서도
못난 그리움은 다 무엇인지
우리는 방앗간 앞마당에 모여
한 줌 보상비로 사 온
이 땅의 마지막 눈물을 마시며
겁탈당한 여자처럼
목마른 안타까움에 몸부림 쳤다.
살아야지 살아가야지
아버지는 한 잔의 절망을 빈 무덤에 흩뿌리며
아부지 아부지 부르짖을 때
지나온 길 홀연 어둡고
부르는 소리는 흐린 안개가 되어
빈 들판의 살 냄새를 적셨다.
파헤쳐져 쉴 곳 없는 그대들이여
속절없이 가난뿐이던 고향이 다 무엇이냐
잠들 수 없는 불 껀 마을의 어두운 골목을 지나
떠나자
가슴 깊이 숯이 된 그리움만 안고.
고영조-貴峴里
예 (3)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 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냄새와 술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테야
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法도 없는 동네냐 法도 없어 法도 그러나
나의 팔은 罪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市場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門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이성복 -어떤 싸움의 記錄
세편 모두 서사적 구조가 작품 속에 들어 있다. 이런한 형태는 사건과 상황으로 얽힌 국면이 있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작가가 사실적 인식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때 나타난다. 그와 같은 경향은 위에 든 두 편에서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掌篇과 -귀현리-어떤 싸움의 記錄을 서사에서 흔히 분석의 틀로 사용하곤 하는 인칭 시점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전자는 3인칭 시점 third person point of view이고, 후자 -2,3은 1인칭 시점 first person point of view이다. 그러나 시적 묘사라는 특정한 수사적 차원에서 볼 때, 보다 중요한 문제는 서사적 국면의 수용 형태이다. 즉 김종삼의 -掌篇은 개괄묘사(槪括描寫)형태이고, -貴峴里, -어떤 싸움의 記錄은 세밀묘사(細密描寫) 형태이다.
-掌篇에서 볼 수 있는 개괄묘사는 시적 공간을 마모된 신화나 설화처럼 사건과 상황을 단순화시켜 행간과 행간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독자로 하여금 상상으로 복원하도록 한다. 상밥집에서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전짜리 두 개를 내미는 거지 소녀의 태연하고, 당당하고, 효성스럽고, 비극적이기도 하고, 희극적이기도 한, 이 모든 정서적 충격은 개괄 묘사의 독특한 행간의 여백 사이의 울림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예 2,3은 세밀 묘사로 가능한 한 국면의 정황을 구체화하여 국면의 뒤에 가려지거나 숨겨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시화 한다. 특히 귀현리의 뿌리뽑힘에 대한 구체적 정황은 매우 강렬한 리얼리티로 우리의 정신과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세 편의 작품은 언술 형식(객관적 묘사), 구조(서사적 구조), 시점(고정시점)면에서 동일하나 묘사의 형태(개괄, 세밀)만 다르다. 그러니까 형태상으로 보자면 묘사의 종류라는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엄청나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 그 의식이 형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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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하,올려주셨군요귀한 강의록^^*수업시간에 함 들었기에 차근차근 읽어며 새기며 내걸로 맹길아서 창작에 대입하면 금상첨화 배움의 수되겠죠 열심으로 익혀 피우게 해볼게요감사합니다 꾸벆^^*
제 개인적으로는 김종삼 시인의 묵화/가 가슴에 닿았나이다, 서울디지털대학에서 묵화/김종삼/를 배웠거던요~ 선생님 묘사/이 글에 김종삼 시인을 소개하는 의미에서 김종삼님의 묵화/와 해설을 답글형식으로 함 올려도 될까요?ㅎㅎ
오케이~~
오른쪽 중지 손가락 끝자락에 옹이 생기도록 필사를 해야 겠지요 너무 쉽게 복사해 뽑아 쉽게 읽어 버리고 머리속엔 여운만이 감돌고 너무 쉽게 공부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이제 강훈련으로 들어가는 시점입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넙죽 입문하겠습니다 또.또.자꾸.자꾸 감사드리고 싶을뿐입니다.
각오 대단해서 결과도 좋을 것!을 믿어요~~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의 인식 그 의식이 형식을,,, " 스펀지 처럼 구구절절 흡수코저 합니다 / ^^
중학교 국어시간에 김동리의 무녀도 에서 묘사를 처음 배워습니다. 글로 쓴 그 집과 마당이 눈에 선했습니다.
중학 국어시간 김동리 무녀도/를 기억하나요? 대단한 기억력소유자~ 지는요 엇그제 배운 묘사도 까묵었는디,ㅎㅎㅎ 그댄 훌륭한 시인 될자격자요~ㅎㅎㅎ
소중한 시의글방입니다. 교수님!! 많은것을 가슴으로.머리로,필기로.담아서갑니다.감사합니다. ^ * ^
수고했어요. 순옥씨! 또 오세요~~
교수님~~~~ 많은 공부을 할수있도록 배려를 부탁합니다. ^ * ^
지금 배려와 베품과 지식나눔을 하시고 계시잖수,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