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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SMR과 핵융합은 국가전략기술인가
―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과 국가의 미래를 거는 것은 다르다
미래기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에 투자하는 일이다. 성공이 확실하다면 연구할 필요도 없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연구하고, 실험하며, 실증하는 것이다. 국가는 당장의 시장만으로는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미래기술에 장기간 국가연구비를 투자할 수 있다. 연구가 성공하면 새로운 산업이 열리고 국가의 선택지도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할 가치가 있는 기술과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기술은 같지 않다.
국가전략기술은 흥미로운 연구주제나 유망한 사업 아이디어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해야 하고, 실제 설비를 통해 안전성과 경제성이 검증되어야 한다. 다른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국가적 가치가 있어야 하며, 실패했을 때 발생할 비용과 위험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의 에너지계획과 산업정책에 반영하려면 필요한 시점에 실제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원자력의 미래를 대표하는 기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소형모듈원자로, 즉 SMR과 핵융합이다. 두 기술은 개발 단계와 작동원리가 전혀 다르다. SMR은 기존 원자로를 작게 만들고 모듈화하여 공장에서 반복 생산하겠다는 기술이다. 반면 핵융합은 가벼운 수소 원자핵을 1억도 이상의 고온 플라즈마에서 결합해 에너지를 얻는 발전방식을 구현하려는 기술이다.
그런데 두 기술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아직 실제 발전산업에서 요구되는 안전성·경제성·신뢰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SMR은 설계를 완성하는 단계에서 실제 건설과 상업운전으로 넘어가는 ‘실증의 벽’ 앞에 있다. 핵융합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물리실험에서, 그 반응을 지속하면서 순전력을 생산하는 가능성조차 입증되지 않은 훨씬 더 높은 ‘공학의 벽’ 앞에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산업계는 이 기술들을 미래 성장동력이나 수출산업으로 미리 규정하고 막대한 재정과 제도를 투입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아직 개발 중인 실증하지 않은 i-SMR을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했다. 실증 결과를 확인한 뒤 전력공급원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력공급을 먼저 예정하고 그 일정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는 순서가 된 것이다. 핵융합 역시 상업발전의 시기와 경제성을 예측하기 어려운데도 국가의 미래 에너지원으로 홍보되고 있다.
미래기술에 대한 도전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과 성공을 전제로 국가의 전력계획과 산업정책을 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 장에서는 SMR과 핵융합이 어떤 기술이며, 실제 발전산업이 되려면 어떤 문턱을 넘어야 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고자 한다.
SMR과 핵융합은 지금 국가의 미래를 걸 만큼 검증된 국가전략기술인가. 아니면 실패 가능성을 열어두고 단계적으로 연구해야 할 미래기술인가.
1절. 작아진 원자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1. ‘작은 원전’과 SMR은 같은 말이 아니다
SMR은 ‘Small Modular Reactor’의 약자로, 일반적으로 ‘소형모듈원자로’라고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형’이라는 말만이 아니다. 원자로의 출력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주요 설비를 모듈화하여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으로 운반하고 조립한다는 구상이 핵심이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보통 전기출력 300MW 이하의 원자로를 SMR로 분류한다. 현재 한국에서 운전 중인 대형원전 한 기의 출력이 대략 1,000∼1,400MW라는 점을 고려하면, SMR 한 모듈의 출력은 대형원전보다 상당히 작다. 다만 같은 부지에 여러 모듈을 설치하면 전체 발전단지의 출력은 대형원전과 비슷하거나 더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출력 170MW인 모듈 네 개를 한 부지에 설치하면 총출력은 약 680MW가 된다. 원자로 하나하나는 작지만, 원자로 네 기와 터빈·발전기, 냉각계통, 방사성폐기물 처리설비, 중앙제어실, 비상대응시설이 모인 대규모 원자력발전단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SMR을 단순히 ‘작은 원전 한 기’라고 생각하면 실제 모습을 놓치기 쉽다. 기술적으로는 작은 원자로 여러 기를 한 부지에서 통합하여 운영하는 다중모듈 발전소기 때문이다.
SMR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서로 다른 기술도 함께 묶여 있다. 기존 대형원전과 같은 경수로를 소형화한 설계가 있는가 하면, 고온가스로·소듐냉각고속로·용융염원자로처럼 냉각재와 연료 형태가 전혀 다른 원자로도 있다. 사용하는 연료도 저농축우라늄부터 고순도 저농축우라늄, 이른바 HALEU 핵연료까지 다양하다.
한국의 i-SMR은 기존 가압경수로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일체형 원자로다. 따라서 모든 SMR을 새로운 연료와 새로운 냉각재를 사용하는 차세대 원자로로 설명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기존 원전을 단순히 축소한 것이라고 보아서도 안 된다. 설계마다 안전계통과 연료주기, 폐기물, 운전 및 정비방식이 다르므로 각각 따로 검증해야 한다.
2. 대형원전의 복잡성을 줄이려는 시도
대형원전은 막대한 양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지만, 그만큼 설비가 크고 복잡하다. 건설 현장에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 많고, 공사 기간도 길다. 건설이 지연되면 이자비용이 불어나고 설계변경과 공급망 차질이 겹치면서 사업비가 급증할 수 있다.
SMR은 이러한 대형원전의 약점을 줄이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첫째, 원자로 출력을 줄이면 노심에 들어가는 핵연료의 양과 사고 후 발생하는 붕괴열도 줄어든다. 자연순환과 중력, 압력차를 이용하는 피동안전계통을 적용하기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전원이나 운전원의 조작에 의존하지 않고 일정 시간 원자로를 냉각할 수 있다면 중대사고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SMR의 중요한 안전 논리다.
둘째, 증기발생기나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원자로용기 안에 배치하는 일체형 설계가 가능하다. 대형 배관을 줄이거나 없애면 큰 배관이 파단되면서 냉각재가 급격하게 상실되는 사고의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 계통을 단순화하면 밸브와 펌프, 배관의 수를 줄여 고장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셋째, 주요 모듈을 공장에서 표준화하여 생산하면 현장 작업을 줄일 수 있다. 자동차나 항공기처럼 동일한 제품을 반복 생산하면서 품질을 높이고 제작기간과 비용을 낮추겠다는 발상이다. 한꺼번에 거액을 투자해 대형원전 한 기를 건설하는 대신, 수요 증가에 맞춰 모듈을 한 기씩 추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제시된다.
넷째, 출력이 작기 때문에 대형 전력망을 갖추지 못한 국가나 고립된 지역, 산업단지 등에 설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력생산뿐 아니라 산업용 증기, 지역난방, 수소생산, 해수담수화 등에 활용할 수 있다는 구상도 제시된다.
이러한 장점들은 기술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설계가 목표로 하는 성능이지, 장기간의 상업운전을 통해 확인된 결과는 아니다. 설계도면에서 계통이 단순해졌다는 사실과 실제 발전소의 안전성·건설비·정비성까지 입증되었다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3. 원자로가 작아져도 발전소 전체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원자로의 출력이 작아지면 발전소에 필요한 모든 설비도 같은 비율로 줄어들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원전에는 원자로 외에도 격납건물과 제어실, 방사선 감시계통, 물리적 방호시설, 비상전원, 폐기물 처리설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필요하다. 사고에 대비한 비상계획과 주민보호체계, 규제기관의 검사와 감독도 갖추어야 한다. 이런 기능은 원자로 출력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절반만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부지에 여러 모듈을 설치하면 개별 원자로의 출력은 작아도 관리해야 할 원자로의 수는 오히려 늘어난다. 모듈마다 핵연료와 제어계통, 냉각기능이 있고 검사와 정비도 필요하다. 한 모듈에서 사고나 고장이 발생했을 때 같은 부지의 다른 모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특히 여러 모듈이 냉각수 취수설비, 전력계통, 제어실, 비상대응설비 등을 공유한다면 하나의 공통된 고장이 여러 원자로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진·침수·화재·태풍과 같은 외부사건도 한 부지에 밀집한 여러 모듈을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 개별 모듈의 사고확률이 낮다는 주장만으로 발전단지 전체의 위험이 자동으로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운전인력을 3명으로 줄여 경제성을 높이겠다는 구상도 마찬가지다. 한 명의 운전원이 여러 모듈을 감시하거나 적은 인력이 다수의 원자로를 운영한다면 평상시에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모듈에서 동시에 이상신호가 발생할 경우 운전원의 업무 부담과 판단의 복잡성은 급격히 커질 수 있다. 대응능력 조차 미지수로 실제 대응 가능한지 입증도 힘들다.
SMR은 원자로의 크기를 줄이는 기술이지만, 원자력발전소가 지닌 안전관리와 규제의 책임까지 함께 축소하는 기술은 아니다.
4. 작아져도 사라지지 않는 핵연료와 폐기물
SMR도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로이므로 핵연료가 필요하다. 운전하면 핵분열생성물과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기기·필터·수지·작업복과 같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도 나온다. 수명이 끝나면 원자로와 건물, 배관을 해체해야 한다.
한 기의 출력이 작으면 한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총량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산한 전력량당 폐기물이다. 소형화로 인해 중성자 누설이 증가하거나 연료 이용률이 낮아지고, 원자로 모듈과 구조물의 수가 많아지면 같은 전기를 생산하면서 더 많은 연료나 구조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는 설계와 연료주기에 따라 달라지므로 ‘작은 원자로는 폐기물도 적다’고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SMR이 여러 국가와 지역에 분산 설치되면 사용후핵연료 관리도 복잡해진다. 모든 부지에서 독립적으로 저장시설을 운영할 것인지, 어느 시점에 중앙시설로 운반할 것인지, 최종처분 비용과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원자력 기반시설이 부족한 국가에 수출할 경우에는 규제인력과 방사선 방호, 비상대응, 핵안보체계까지 함께 구축해야 한다.
일부 차세대 SMR이 사용하는 HALEU는 기존 상용 경수로 연료보다 우라늄 농축도가 높다. 장주기 운전을 가능하게 하고 원자로를 더 작게 설계하는 데 유리할 수 있지만, 연료의 농축·제조·운송과 핵물질 방호에는 더욱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다만 기존 저농축우라늄 연료를 사용하는 한국의 i-SMR을 HALEU 기반 원자로와 동일하게 다루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결국 SMR의 핵연료와 폐기물 문제는 하나의 답으로 정리할 수 없다. 원자로 형식과 출력, 연료 농축도, 연소도, 교체주기, 배치 방식에 따라 개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원자로를 작게 만든다고 핵연료주기의 책임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5. ‘작다’는 사실과 ‘더 낫다’는 판단은 다르다
SMR은 대형원전이 안고 있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제안된 의미 있는 기술적 시도다. 원자로의 출력을 낮추면 붕괴열 제거가 쉬워질 수 있고, 일체형 설계와 피동안전계통을 적용하기에도 유리하다. 공장제작과 표준화를 통해 현장 공사를 줄이고, 전력수요에 맞춰 단계적으로 설비를 추가한다는 구상도 합리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원자로가 작다는 물리적 사실로부터 더 싸고, 더 안전하며, 더 빨리 건설할 수 있다는 결론이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한 모듈에서 사고의 영향이 작아질 수는 있지만, 여러 모듈을 한곳에 설치하면 다중모듈 사고와 공통원인고장을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계통이 단순해질 수는 있지만, 제한된 공간에 설비를 밀집하면 검사와 정비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공장에서 제작할 수는 있지만, 충분한 주문이 확보되지 않으면 생산설비 투자비를 회수할 수 없다. 한 기의 사업비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같은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여러 기를 건설하면 총비용이 달라진다.
국가전략기술을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설계가 약속하는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설비가 입증한 결과다. 안전성은 사고해석서의 수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작과 시공, 시운전, 운전, 검사, 정비를 거치면서 설계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경제성 역시 목표 건설비가 아니라 실제 투입된 총사업비와 공사기간, 이용률, 정비비용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SMR에 대한 첫 번째 결론은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다.
원자로를 작게 만드는 것과 원전이 가진 문제를 작게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SMR의 소형화와 모듈화는 검증해볼 가치가 있는 기술적 제안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더 싸고 안전한 원자로가 되는지는 다음 단계의 문제다. 그 답은 홍보자료나 설계도면이 아니라 최초호기의 건설과 실증, 장기간의 운전 경험에서 나와야 한다.
2절. 작으면 정말 싸고 안전한가
SMR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 대형원전보다 싸고 안전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원자로가 작으면 노심에 들어가는 핵연료와 붕괴열이 줄어들고, 자연순환과 중력을 이용한 피동안전계통을 적용하기도 쉬워진다. 주요 기기를 공장에서 반복 생산하면 건설기간과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아직 입증된 결론이 아니라 SMR이 달성하려는 목표다. 원자로 출력이 작아지면 대형원전이 누리던 규모의 경제를 잃는다. 이를 보완하려면 동일한 설계를 수십 기 이상 반복 생산하여 ‘공장생산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SMR의 경제성은 원자로의 크기가 아니라 충분한 주문량과 표준화, 짧은 건설기간, 높은 이용률이 실제로 실현되느냐에 달려 있다.
안전성도 마찬가지다. 경수형 SMR은 기존 원전의 기술을 소형화하지만, 비경수형 SMR은 물 대신 소듐·헬륨·용융염 등을 냉각재로 사용하거나 히트파이프로 열을 전달한다. 높은 온도와 낮은 압력, 다양한 산업열 이용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 경수로에는 없던 새로운 사고와 재료·핵연료·검사 문제를 가져온다.
한국도 i-SMR뿐 아니라 용융염원자로, 고온가스로, 소듐냉각고속로, 히트파이프 초소형원자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연구할 가치가 있는 기술이지만, 서로 다른 기술적 난제를 아직 해결해야 하는 개발단계의 원자로다.
1. 소형화는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는 선택이다
대형원전은 출력이 커질수록 전기 1kWh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건물·터빈·제어실·운전인력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 왔다. SMR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간다. 원자로 한 기의 출력을 줄이는 대신 공장에서 동일한 모듈을 반복 생산하여 비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공장생산의 경제가 충분한 주문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최초 몇 기만 건설해서는 설계비, 인허가비, 제작공장 투자비와 공급망 구축비를 회수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원자로마다 설계변경과 제작오류, 시공 및 시운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초기 사업비가 높으면 주문이 줄고, 주문이 줄면 단가가 내려가지 않는 악순환이 생긴다.
한 모듈의 사업비가 대형원전보다 작다는 것과 전력량당 발전비용이 낮다는 것도 다른 이야기다. 같은 출력을 얻으려면 여러 모듈이 필요하고, 각 모듈에는 원자로용기·제어장치·안전계통과 검사·정비가 필요하다. 공용설비를 확대하면 비용은 줄일 수 있지만 여러 원자로가 하나의 설비에 의존하는 공통원인고장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더구나 SMR의 초기 시장으로 거론되는 오지·광산·도서지역은 전력수요가 작고 송전망이 취약하다. 이런 지역에 원전을 설치하려면 핵물질 방호, 사용후핵연료 저장, 방사선 관리, 비상대응 인력을 새로 갖춰야 한다. 원자로는 작아도 규제와 안전관리의 고정비용은 작아지지 않는다.
따라서 SMR의 경제성을 판단하려면 목표 건설비가 아니라 최초호기의 실제 총사업비, 공사기간, 이용률, 운전·정비비, 핵연료비, 폐기물과 해체비까지 보아야 한다. 아직 건설하지 않은 원자로의 예상단가를 대량생산 이후의 가격으로 제시하는 것은 단지 경제성을 입증하려는 의도로 한 가정에 불과하다.
2. 경수형 SMR도 새로운 안전문제를 만든다
경수형 SMR은 대형 배관을 줄인 일체형 원자로와 피동안전계통을 통해 대형 냉각재상실사고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노심의 출력밀도가 낮고 냉각수의 자연순환이 원활하다면 사고 후 붕괴열 제거에도 유리하다. 이는 분명히 의미 있는 안전상의 장점이다.
그러나 피동안전계통이 아무런 고장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순환은 작은 압력차와 온도차, 유로의 저항에 영향을 받는다. 밸브가 열리지 않거나 유로가 막히고, 비응축성 기체가 쌓이거나 열교환 성능이 저하되면 설계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피동안전계통은 실규모 조건에서 장시간 성능을 검증해야 한다.
설비를 원자로용기 내부에 밀집시키면 대형 배관은 줄어들지만 검사와 정비는 어려워질 수 있다. 증기발생기나 제어봉구동장치에서 결함이 발견됐을 때 사람이 접근하거나 기기를 교체하기가 쉽지 않다. 소형화를 위해 공간을 줄인 결과가 오히려 피폭 증가, 정비기간 연장, 이용률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평가해야 한다. 특히 1.2차 압력경계가 되는 증기발생기의 검사, 정비 제한은 누설을 예방할 수 없으므로 운전시 방사능 누설 발생 가능성을 허용하는 심각한 안전상의 후퇴를 의미할 수 있다.
여러 모듈을 한 부지에서 적은 인력으로 운전하는 문제도 남는다. 평상시에는 자동화가 운전인력을 줄여주지만, 지진·화재·침수나 전력계통 상실로 여러 모듈에 동시에 이상이 발생하면 운전원이 처리해야 할 경보와 판단은 급증한다. 하나의 제어실과 냉각수원, 전원, 방사성폐기물 처리설비를 공유한다면 한 설비의 고장이 여러 모듈로 확대될 수 있다.
SMR 한 모듈의 사고결과만 계산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부지 전체의 방사성물질 재고량, 다중모듈 사고, 공통원인고장과 외부재해를 종합한 위험을 평가해야 한다.
3. MSR과 고온가스로—고온의 장점에는 재료와 연료의 대가가 따른다
용융염원자로(MSR)는 고온에서 녹은 소금을 냉각재로 사용한다. 일부 설계는 핵연료물질까지 용융염에 녹여 순환시킨다. 높은 압력으로 물을 유지할 필요가 없고, 높은 운전온도로 발전효율과 산업열 이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용융염은 고온에서 구조재료를 부식시키는 근본문제로 상용화가 제한되어 왔으므로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실패의 반복만 발생할 수 있다. 염의 화학조성과 산화·환원 상태, 불순물과 핵분열생성물의 축적에 따라 부식 특성도 계속 달라진다. 배관과 펌프, 열교환기, 밸브가 수십 년 동안 이러한 부식환경에 견딜 수 있는지부터 먼저 입증해야 한다. 국내 연구에서도 500∼700℃의 고부식성 환경에서 장기간 사용할 내식재료와 신뢰성 있는 평가방법 개발이 핵심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원자로 설계는 나중 일이다.
액체핵연료형 MSR은 운전 중 연료의 조성과 방사성물질의 분포가 변한다. 기체 핵분열생성물의 제거, 염의 정화와 연료성분 조정이 필요할 수 있어 원자로 운전과 핵연료주기의 경계가 흐려진다. 모든 MSR이 곧바로 재처리시설인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또는 현장 연료처리를 채택한다면 핵물질 계량·안전조치와 핵비확산 문제가 훨씬 복잡해진다.
사고 시 방사성물질이 용융염과 배기가스 계통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머무르는지도 충분한 실험자료가 필요하다. IAEA도 MSR의 안전기준, 연료염 운송기준, 사고현상, 방사성물질 거동과 공급망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한다. IAEA News, What are Molten Salt Reactors? 2025.03.11
이러한 문제 해결 없이 또는 해결의 가능성을 위한 충분한 기초연구 없이 원자로 설계부터 들어가는 것은 가비지-인 가비지-아웃 형태의 연구를 위한 연구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고온가스로(HTGR)는 헬륨을 냉각재로, 흑연을 감속재와 구조재로 사용하며 보통 TRISO 피복입자연료를 채택한다. 헬륨은 화학적으로 안정하고 비등하지 않으며, TRISO 연료는 여러 겹의 피복층으로 핵분열생성물을 가둔다. 그러나 이러한 안전성은 피복입자가 제조과정과 장기간의 고온·중성자 조사, 사고조건에서도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흑연과 TRISO 연료의 품질을 대량생산 과정에서 균일하게 보증해야 하며, 조사에 따른 흑연의 수축·팽창·균열과 산화도 관리해야 한다. 헬륨은 열전달 성능이 물보다 낮고 작은 틈으로 누설되기 쉬워 대형 순환기와 높은 기밀성이 필요하다. 감압사고 뒤 공기나 물이 원자로에 유입되면 고온 흑연의 산화와 일산화탄소·가연성기체 발생 같은 새로운 사고현상을 검토해야 한다. 이 점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원자로 설계인 다음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HTGR은 붕괴열 제거에 유리하도록 출력밀도를 낮게 설계한다. 이는 안전상 장점인 동시에 같은 출력을 내려면 노심과 건물이 커질 수 있다는 경제적 약점이 된다. 고온의 산업열을 실제 수요처에 공급하려면 원자로와 화학공정을 연결하는 중간열교환기의 건전성과 방사성물질 격리도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
4. 고속로와 히트파이프 MMR—단순해 보여도 검증과제가 줄지 않는다
소듐냉각고속로는 물 대신 액체소듐으로 열을 제거한다. 소듐은 끓는점이 높아 낮은 압력에서도 고온으로 운전할 수 있고 열전도성이 우수하다. 고속중성자를 이용하므로 우라늄 이용률을 높이거나 장수명 핵종을 변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소듐은 공기와 접촉하면 불이 붙고 물과 만나면 격렬하게 반응한다. 증기발생기 전열관에 작은 누설이 생겨도 소듐-물 반응이 확대될 수 있어 누설의 조기 탐지와 격리가 중요하다. 소듐은 불투명하므로 냉각재 속의 기기와 구조물을 육안으로 검사하기 어렵고, 고온·고방사선 환경에서 작동하는 특수검사기술이 필요하다. 배관과 열교환기에서는 열충격, 열피로와 소듐 누설도 관리해야 한다.
고속로의 안전성은 노심의 크기와 연료조성, 냉각재 기포가 반응도에 미치는 영향에 민감하다. 일부 설계에서는 냉각재가 비거나 밀도가 낮아질 때 반응도가 증가할 수 있으므로, 단순히 ‘낮은 압력의 원자로’라는 이유만으로 더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폐쇄형 연료주기와 결합한다면 재처리시설의 비용·폐기물·핵물질 전용 위험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
히트파이프 MMR은 감속재가 없는 고속로이다. 펌프와 대형 냉각배관 대신, 밀폐관 속에서 소듐이나 다른 액체금속 작동유체가 증발하고 응축하면서 열을 전달한다. 구조가 단순하고 전원 없이 열을 옮길 수 있어 오지·군사시설·우주기지의 전력원으로 제안된다. 그러나 전자기기에서 쓰는 히트파이프와 원자로 노심에서 수년간 작동해야 하는 히트파이프는 조건이 전혀 다르다.
핵심 과제는 다수의 히트파이프가 고온과 중성자 조사 속에서 장기간 성능을 유지하는지, 일부가 막히거나 누설될 때 주변 히트파이프로 열이 집중되어 연쇄적으로 온도가 상승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모세관 한계·음속 한계·비등 한계와 작동유체의 동결·재기동 문제도 검증해야 한다.
원자로 블록 내부의 큰 온도차는 열응력·크리프·변형을 일으키고, 이는 다시 핵연료와 히트파이프의 접촉상태 및 반응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개발사업에서도 무작위 히트파이프 고장, 열응력과 크리프, 핵연료 팽윤, 계측기와 전력변환계통을 주요 검증과제로 다루고 있다. DOE-ID-INL-19-035 R2, Meitner - eVinci Micro-Reactor R&D (Westinghouse TRISO), Approved 2024.04.24.
출력이 극히 작은 MMR은 전력변환기의 효율과 원격운전·보안·연료교체·폐기물 회수비용이 발전단가를 크게 좌우한다. 이동이 가능하다는 특성은 장점인 동시에 핵연료 운송과 물리적 방호, 사고 시 책임과 비상대응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우주용 원자로라면 발사 실패와 대기권 재진입 사고까지 별도로 다뤄야 한다.
5. 비경수형은 ‘차세대’이지 ‘검증된 다음 세대’가 아니다
비경수형 SMR은 경수로의 높은 압력과 대형 냉각계통을 피하면서 고온 열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그러나 냉각재를 바꾸면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의 종류가 달라진다.
원자로 유형
기대되는 장점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
경수형 SMR
기존 기술 활용, 일체형·피동안전
다중모듈 사고, 검사·정비성, 피동안전 실증
MSR
저압·고온 운전, 다양한 연료주기
용융염 부식, 연료염 화학, 방사성물질 거동, 핵물질 계량
HTGR
고온 산업열, TRISO 연료
연료 품질보증, 흑연 산화·열화, 헬륨 누설, 낮은 출력밀도
소듐고속로
저압·고온 운전, 고속중성자 이용
소듐 화재·물 반응, 불투명 냉각재 검사, 반응도 특성
히트파이프 MMR
펌프 없는 열수송, 이동·원격 활용
히트파이프 장기신뢰성, 다중고장, 열응력·크리프, 보안·경제성
표 SMR의 미결과제들
경수로는 수십 년간 축적된 운전자료와 사고경험, 설계기준, 재료규격 및 검사기술이 있다. 비경수형 원자로는 일부 과거 운전경험이 있지만, 오늘날 제안되는 소형·모듈형 설계와 핵연료, 재료, 운전방식이 동일하지 않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노형별 인허가 기준과 검증 인프라까지 새로 구축해야 한다.
여러 노형을 동시에 개발하는 것은 기술 선택지를 넓힐 수 있지만, 제한된 연구인력과 시험시설, 규제역량을 분산시키는 문제도 있다. MSR·HTGR·고속로·히트파이프 MMR은 냉각재도, 연료도, 사고현상도 다르므로 하나의 ‘SMR 기술’로 묶어 동시에 상용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각 노형에는 별도의 핵연료 조사시험, 재료시험, 종합효과시험과 실증로 운전이 필요하다.
따라서 비경수형 SMR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원하더라도 단계는 분명해야 한다. 먼저 핵연료·재료·열수송계통의 성능을 시험하고, 비핵 실증설비와 소규모 실험로에서 사고현상을 검증한 뒤, 규제기준과 폐기물·해체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후 실제 실증로를 건설하여 건설 후 일정한 기간 동안 실증 운전을 거친 후 실제 건설비와 운전성능이 확인될 때 비로소 상업화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비경수형 원자로는 경수로의 문제를 없앤 원자로가 아니다. 경수로에서 익숙했던 문제를 새로운 재료·냉각재·핵연료주기의 문제로 바꾼 원자로다.
SMR이 작기 때문에 자동으로 싸고 안전한 것도 아니고, 비경수형이기 때문에 곧바로 차세대 산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안전성과 경제성은 설계의 장점만을 모아 선언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정상운전뿐 아니라 고장과 사고, 검사와 정비, 폐기물과 해체까지 포함한 전체 수명주기를 실제 설비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러한 실증 결과가 나오기 전에 i-SMR 700MW를 국가 전력계획에 먼저 반영했다. 이해만 앞세우는 한국의 원전산업계의 안전 인식도 수준이 매우 우려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사고시 그 거대한 피해를 누가 보상할 것인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피해는 개인이나 법인의 규모를 넘어서기 때문에 결국 국가보상체계로 가지만 5천억원을 기준으로 하는 원자력 손해배상법 기준 외에는 이를 초과하는 뚜렷한 보상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원자력을 이렇게 마구 국가전략으로 채택하여 지원하고 추진하다 사고나면 결국 정권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결국 역사에 오명 남기는 수준으로 끝날 수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해결할 가능성만 남은 상태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건 우려할 사항으로 대책이라고 할 수가 없다. 원자력의 책임성은 국민주권자 시민이 요구해야 할 것이다.
3절 실증도 하지 않은 원자로를 2035년에 가동한다고?
원자로 기술개발에는 실패가 있을 수 있다. 연구개발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새로운 설계가 예상했던 성능을 내지 못할 수도 있고, 시험 과정에서 결함이 발견될 수도 있다. 안전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설계를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시행착오를 찾아내기 위해 바로 ‘실증’이라는 과정이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의 i-SMR 정책은 이상하게도 순서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아직 상업운전 경험은 물론 실증로 운전 경험도 없는 i-SMR을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전력공급원으로 반영했다. 2030년대 중반 약 0.7GW 규모의 SMR 발전량을 전력수급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연구개발 목표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2030년대에 SMR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과 “2035∼2036년경 SMR이 실제 전력계통에 들어와 전기를 공급할 것으로 계산하겠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전자는 기술개발 계획이다. 후자는 국가 전력공급에 대한 약속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해야 한다.
아직 한 번도 실제 원자로를 운전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10년 뒤 국민에게 공급할 전력량부터 계획할 수 있을까?
1. 원전에서 ‘실증’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자동차도 새 모델을 개발하면 충돌시험과 내구시험을 한다. 항공기는 더욱 엄격하다. 설계도면이 완성됐다고 승객을 태우지 않는다. 지상시험과 비행시험을 반복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결함을 찾아낸다.
원자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설비다.
설계계산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제작과 설치, 시운전 과정에서는 도면에서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나타난다. 밸브가 예상한 시간에 작동하는지, 자연순환이 사고조건에서 충분한 냉각능력을 갖는지, 계측기가 고온·고방사선 환경에서도 정확하게 작동하는지, 검사와 정비가 실제로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i-SMR에는 기존 한국형 대형원전과 다른 설계개념이 적용된다. 일체형 원자로, 피동안전계통, 다중모듈 운전, 높은 수준의 자동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개별 시험에서 작동한다는 것과 발전소 전체로 결합됐을 때 예상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원자로 네 모듈을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려면 정상운전뿐 아니라 한 모듈의 사고가 다른 모듈에 미치는 영향, 여러 모듈에서 동시에 이상이 발생하는 상황, 공유설비의 고장과 운전원의 업무부담까지 실제 조건에 가까운 환경에서 검증해야 한다.
실증은 기술개발을 방해하는 절차가 아니다.
실증은 연구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기 위한 절차다.
더구나 원자력에서는 그 실패를 상업발전소에서 경험해서는 안 된다.
2. 그런데 실증보다 상업운전 일정이 먼저 정해졌다
정상적인 기술개발의 순서는 비교적 명확하다.
연구개발 → 설계 → 시험 → 인허가 → 실증로 건설 → 시운전과 운전 → 문제점 보완 → 표준설계 확립 → 상업화
그러나 i-SMR은 이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미래 전력계획에 들어갔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0년대 중반부터 SMR 약 0.7GW가 전력공급에 기여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설계와 인허가뿐 아니라 부지 확보, 주민수용성, 건설, 핵연료 공급, 시운전까지 마쳐야 한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다.
실증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피동안전계통의 성능이 예상보다 부족하거나, 검사·정비가 곤란하거나, 다중모듈 운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견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정상적인 연구개발이라면 설계를 변경하고 다시 시험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2035∼2036년 전력공급 일정이 정해져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설계를 충분히 보완하면 일정이 늦어지고, 일정을 지키려 하면 검증기간을 줄여야 하는 압력이 생긴다.
원자력 안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기술의 검증 결과가 일정을 결정해야 하는데, 일정이 기술의 검증속도를 결정하기 시작한다.
국가 전력계획은 연구개발팀에게 주는 목표일정표가 아니다.
3. 최초호기는 상업제품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실험장이 된다
SMR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미 검증된 경수로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증 부담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핵연료가 우라늄이고 냉각재가 물이라는 사실만으로 전체 발전소가 검증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도 엔진의 원리가 이미 검증됐다고 새 차종의 충돌시험을 생략하지 않는다.
원자로의 안전성은 개별 부품보다 그것들이 결합된 전체 시스템에서 결정된다.
새로운 배치의 원자로 내부구조물, 피동안전계통, 계측제어시스템, 자동운전 논리, 증기발생기, 정비방법, 다중모듈 인간공학은 실제 제작·시공·시운전을 거쳐야 비로소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더욱이 최초호기, 즉 FOAK(First Of A Kind)는 경제성도 검증해야 한다.
공장제작이 실제로 공사기간을 단축하는가? 모듈 운송과 현장조립은 계획대로 이루어지는가? 검사와 정비에는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한가? 이용률은 목표치를 달성하는가? 한 모듈을 정비하면서 나머지 모듈은 정상운전할 수 있는가?
이것들은 도면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따라서 실증단계를 사실상 생략하거나 상업운전과 겹쳐버리면 최초 상업호기가 곧 실증로가 된다.
그렇다면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다.
그 실증의 위험과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연구개발기관인가, 사업자인가, 전기소비자인가, 아니면 원전 주변 주민인가?
4. 기장이라면 실패의 비용은 더욱 무겁다
특히 국내 i-SMR 후보지가 부산 기장과 같이 대도시권과 가까운 지역이라면 문제를 단순히 기술개발 일정으로 볼 수 없다.
기장과 주변 부산·울산권에는 수백만 명의 인구가 생활한다. 기존 원전과 새로운 원자로가 같은 지역에 집중된다면 단일 원자로의 안전성만이 아니라 부지 전체의 위험을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서 “SMR은 작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괜찮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원자로가 작아지면 한 모듈의 방사성물질 재고량과 붕괴열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모듈을 설치하면 사고 가능성과 공통원인고장, 외부재해, 사용후핵연료, 비상대응까지 부지 전체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실증되지 않은 원자로라면 불확실성이 더 크다.
실증의 목적은 바로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을 찾아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구밀집지역에 사실상 최초호기를 건설한다면 단순히 “법적 안전기준을 만족한다”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설명책임이 요구된다.
사고가 발생한 뒤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질문은 기술적인 질문이 아니라 국가의 의사결정 책임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까지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답해야 한다.
5. 연구는 서두를 수 있어도 국민의 전력계획은 실험할 수 없다
i-SMR 연구를 중단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충분히 연구해야 한다. 원자로 내부기기와 피동안전계통을 시험하고, 실제 크기의 종합효과시험을 수행하고, 검사·정비기술과 다중모듈 운전기술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실증로를 건설해 충분한 기간 운전하면서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다만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기술개발 → 안전성 검증 → 실증운전 → 경제성 확인 → 상업화 판단 → 전력계획 반영
이 순서가 상식적이다. 미국은 물론 하물며 공산권인 러시아도 중국도 이런 절차로 진행한다.
2035년이라는 날짜를 먼저 정하고 거기에 맞춰 설계·인허가·건설·시운전을 밀어붙일 이유는 없다.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 기존 발전설비, 전력망과 수요관리 등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전력공급수단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SMR 개발이 몇 년 늦어진다고 국가 전력체계가 무너지는 상황도 아니다. 반대로 충분한 검증 없이 서둘렀다가 최초호기에서 중대한 설계문제가 발견된다면 사업 전체가 훨씬 더 오래 지연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연구개발의 성공을 미리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할 수도 있는 연구를 지원하되, 실패와 지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연구개발과 국가전략산업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실증하기 전에 상업운전 날짜부터 정하는 순간, 연구개발의 실패 가능성은 국가 전력계획의 실패 가능성이 된다.
SMR은 연구할 수 있다. 실증도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좋다면 상업화하고 수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증도 하지 않은 원자로가 2035∼2036년에 약 700MW의 전기를 공급할 것이라고 국가 전력계획에 먼저 써놓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원자력처럼 한번의 실패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는 기술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가전략산업이라면 성공을 먼저 가정할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도 국가가 흔들리지 않도록 계획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i-SMR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 그 자체보다 어쩌면 정책의 순서에 있다.
4절. 핵융합은 미래의 전력산업이 될 수 있는가
핵융합은 인류가 도전할 가치가 있는 과학기술이다.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결합해 에너지를 얻는 데 성공한다면,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고도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핵분열 원자로처럼 연쇄반응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대형 노심용융사고의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핵융합발전소를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단계다. 초고온 플라즈마에서 에너지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터빈을 돌리고 전기를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고속중성자를 견디는 재료를 개발하고, 삼중수소를 스스로 생산하며, 발생한 열을 회수해 발전하고, 고장 난 내부기기를 원격으로 교체해야 한다.
핵융합의 진짜 어려움은 이제부터다.
핵융합반응의 가능성은 입증되고 있지만, 핵융합발전의 가능성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1. ‘에너지를 얻었다’와 ‘전기를 생산했다’는 다르다
핵융합 연구에서는 흔히 Q값을 사용한다. 핵융합반응에서 나온 에너지를 플라즈마나 핵연료 표적에 직접 투입한 에너지로 나눈 값이다.
Q가 1보다 크면 핵융합반응에서 나온 에너지가 플라즈마 또는 표적에 직접 넣은 에너지보다 많다는 뜻이다. 과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성취다. 그러나 발전소 전체가 소비한 전력보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 국립점화시설(NIF)은 레이저를 핵연료 표적에 집중시켜 핵융합 점화를 달성했다. 2025년 4월 실험에서는 표적에 전달된 레이저 에너지 2.08MJ로 8.6MJ의 핵융합에너지를 발생시켜 표적 기준 Q가 4를 넘었다. NIF News, Target Breakthrough Enabled Fusion Record at NIF, 2026.04.15.
놀라운 과학적 성과다. 하지만 레이저를 만들고 증폭하며 냉각하고 시설을 운전하는 데 사용된 전체 전력은 이 계산의 분모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재 NIF는 실험 목적과 조건에 따라 하루 한 번에서 몇 차례 정도 레이저를 발사한다. 그러나 상업용 관성핵융합발전소는 정밀한 핵연료 표적을 초당 여러 차례, 통상 약 10회씩 연속 투입하고 폭발시켜야 한다. 이는 하루 수십만 개에서 약 100만 개의 표적을 정밀하게 생산·공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NIF News, Big Ideas Lab Podcast Explores the Future of Fusion Energy, 2025.03.19.
그림 NIF의 표적실에서 바라 본 표적 챔버와 주변 장치들(출처 : NIF)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는 플라즈마에 50MW의 가열에너지를 투입해 500MW의 핵융합 열출력을 내는 Q=10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ITER는 발전기가 아니며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다. 500MW라는 숫자도 발전소가 외부로 보내는 전기출력이 아니라 플라즈마에서 발생하는 열출력이다. 초전도자석의 냉각, 진공 유지, 플라즈마 가열, 냉각수 순환 등 시설 전체가 소비하는 전력은 별도의 문제다. ITER Goals, Fusion Energy, What will ITER do?
그림 ITER 핵융합장치 조감도, 출처 ; ITER 홈페이지
발전소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플라즈마 Q가 아니라 발전소 전체의 에너지수지를 보아야 한다.
이에 비해 실제 발전소가 충족해야 할 조건은 다음과 같다.
판매전력=총 발전량−발전소 자체소비전력 > 0
그 차이는 매우 크다. 핵융합 연구에서 말하는 ‘순에너지 획득’과 전력시장에서 말하는 ‘순전력 생산’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2. 태양을 만드는 것보다 붙잡아 두는 일이 어렵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핵융합시키려면 1억℃ 안팎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어야 한다. 물질로 된 용기에 직접 담을 수 없으므로 강력한 자기장으로 플라즈마가 벽에 닿지 않도록 가둔다.
한국의 KSTAR도 초전도자석을 이용해 고성능 플라즈마를 장시간 유지하는 연구시설이다. 핵융합 반응 연구가 아니므로 방사능은 없다. 플라즈마 연구로 한국이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핵융합을 위한 플라즈마 연구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KSTAR의 목적은 전력생산이 아니라 핵융합로에 필요한 과학·기술적 기반을 연구하는 것이다.
발전소는 짧은 실험에 성공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루 24시간,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운전하면서 안정적인 출력을 내야 한다. 플라즈마가 갑자기 불안정해지는 붕괴 현상, 즉 디스럽션이 발생하면 열과 전자기력이 짧은 시간에 내벽으로 집중될 수 있다. 작은 불안정성도 발전소에서는 출력정지와 설비손상, 긴 정비기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어려운 곳은 플라즈마 가장자리와 디버터다. 핵융합 과정에서 발생한 헬륨과 불순물, 막대한 열을 외부로 빼내야 하는데, 이 부위에는 극심한 열유속이 집중된다. 재료가 녹거나 침식되면 불순물이 플라즈마로 들어가 핵융합 반응을 방해하고, 다시 플라즈마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
더구나 핵융합에너지의 약 80%는 전하가 없는 14.1MeV 고속중성자가 운반한다. 중성자는 자기장에 붙잡히지 않고 원자로 내벽과 블랭킷에 충돌한다. 이 충격은 재료의 원자배열을 흐트러뜨리고 헬륨과 수소를 생성하여 재료를 방사화시키고 부풀고 취약하게 만든다. 강도가 저하되고 균열이 생기며 전기·열전도 특성도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상용 핵융합로와 같은 중성자 환경에서 재료를 충분한 기간 시험할 시설과 자료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 에너지부도 핵융합발전의 주요 미해결 과제로 플라즈마 대향재료, 구조재, 블랭킷, 중성자 조사시험과 내부기기 수명을 제시하고 있다. DOE FY2025 Congressional Justification, Fusion Energy Sciences
핵융합발전소의 경제성은 플라즈마가 몇 초 더 오래 유지되느냐뿐 아니라, 내벽과 디버터를 얼마나 자주 교체해야 하며 그동안 발전소가 얼마나 오래 정지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채 핵융합 원자로 가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므로 무의미할 것이다.
3. 삼중수소는 바닷물에서 그냥 얻을 수 없다
핵융합연료가 무한하다는 설명도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중수소-삼중수소 핵융합에 필요한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삼중수소는 반감기 약 12.3년의 방사성물질이므로 미리 대량으로 비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핵융합발전소는 중성자를 리튬이 들어 있는 블랭킷에 충돌시켜 운전에 필요한 삼중수소를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 적어도 소비량보다 많은 삼중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블랭킷에서 추출·정제해 다시 연료로 공급해야 한다.
이 과정은 아직 발전소 규모에서 입증되지 않았다. 블랭킷에서는 동시에 다음 기능이 이루어져야 한다.
● 중성자를 이용한 삼중수소 생산
● 핵융합에너지의 열 회수, 736MW
● 중성자 차폐
● 구조물 냉각
● 삼중수소 추출과 누설 방지
● 440 모듈이 설치, 모듈당 무게 최대 4.6톤의 손상된 블랭킷의 원격 교체 필요
각 기능은 서로 충돌할 수 있다. 구조재와 냉각재가 차지하는 공간을 늘리면 삼중수소 증식에 필요한 리튬 공간이 줄어들 수 있다. 삼중수소를 충분히 생산하려면 중성자를 증배하는 물질이 필요할 수도 있고, 배관과 구조물에서 손실되는 양과 붕괴량, 초기 가동재고까지 고려해야 한다.
ITER도 상업로처럼 삼중수소를 자급하는 시설이 아니라 몇 가지 시험용 블랭킷 모듈을 이용해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단계다. ITER 스스로도 현재 세계의 삼중수소 공급량으로는 미래 핵융합발전소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ITER의 홈페이지 소개자료, What is ITER?
삼중수소는 수소의 동위원소라서 물과 결합하거나 금속을 투과해 이동하기 쉽다. 냉각수와 공기, 배관, 열교환계통으로 확산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계량과 회수, 누설감시가 필요하다.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한 한국에서는 발전소 경계뿐 아니라 주변 환경과 식수계통으로 이동하는 삼중수소까지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삼중수소는 물에 쉽게 포집된다.
그림 진공용기 내부에 설치된 TBM, Thermal Blanket Module
핵융합은 우라늄 연쇄반응을 이용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방사선과 방사성물질 관리에서 자유로운 기술은 아니다.
4. 핵융합발전을 가로막는 다섯 개의 벽
핵융합 연구에서 플라즈마의 온도와 유지시간, 에너지 증폭률(Q)은 중요한 성과지표다. 그러나 핵융합반응에 성공하는 것과 발전소를 건설해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 발전소가 되려면 플라즈마뿐 아니라 재료·열제거·연료자급·정비·발전계통을 하나의 시설에서 통합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현재 핵융합발전 앞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벽이 놓여 있다.
첫 번째 벽: 14.1MeV 중성자와 재료 손상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핵융합하면 발생에너지의 약 80%를 14.1MeV의 고속중성자가 운반한다.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는 자기장으로 가둘 수 없기 때문에 원자로의 내벽과 블랭킷(TBM, Thermal Blanket Module), 구조재에 직접 충돌한다.
이 충격은 재료 내부의 원자를 제자리에서 밀어내 원자배열을 흐트러뜨리고, 헬륨과 수소를 생성해 재료를 부풀고 취약하게 만든다. 장기간 노출되면 강도와 연성이 떨어지고 균열이 발생하며, 열전도와 전기적 특성까지 달라질 수 있다. 플라즈마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더라도 이를 둘러싼 구조물이 견디지 못하면 발전소를 계속 운전할 수 없다.
중성자에 노출된 내벽과 블랭킷(TBM)은 방사화되어 방사성폐기물이 된다. 핵분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폐기물은 아니지만, 대형 핵융합로에서 내부기기를 자주 교체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블랭킷(최대 4.6톤)과 디버터(8~9톤)를 진공용기 외부에서 원격으로 교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교체로 인한 성능에 미치는 영향과 핵폐기물의 양은 상당할 수 있다. 삼중수소에 오염된 배관·펌프·필터와 정비장비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저방사화 재료로
그림 진공 챔버 안에 설치된 DIverter 모습(출처; ITER)
장기 위해성을 낮출 가능성은 있지만, 상용 핵융합로와 같은 중성자 환경에서 재료의 수명과 폐기물 발생량은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두 번째 벽: 디버터가 견뎌야 할 극한의 열
디버터는 핵융합로의 배기구에 해당한다. 플라즈마에서 발생한 헬륨과 불순물을 제거하고 막대한 열을 외부로 빼내는 핵심설비다. 문제는 이 좁은 부위에 극심한 열유속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정상상태에서 1천도 조건이며 최대 2천도까지 견디어야 한다.
디버터 표면이 녹거나 침식되면 떨어져 나온 물질이 플라즈마에 섞여 핵융합반응을 방해한다. 플라즈마가 불안정해지면 다시 더 큰 열이 구조물에 집중되는 악순환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디버터는 초고온 플라즈마와 마주하면서도 열을 신속히 제거하고, 반복되는 열충격과 중성자 조사까지 견뎌야 한다.
실험장치에서 수초 또는 수분 동안 플라즈마를 유지하는 것과 발전소가 수개월간 열을 계속 처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디버터의 수명이 짧으면 핵융합반응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발전소는 자주 멈춰야 한다. 결국 디버터의 성능은 안전성뿐 아니라 가동률과 발전단가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이 된다.
세 번째 벽: 삼중수소를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
현재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핵융합반응은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연료로 사용한다.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지만,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감기도 약 12.3년에 불과해 대량으로 생산해 오랫동안 비축하기 어렵다.
따라서 핵융합발전소는 중성자를 리튬이 포함된 블랭킷에 충돌시켜 운전에 필요한 삼중수소를 자체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생산량은 단순히 반응에 소비되는 양을 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추출·정제 과정의 손실, 배관과 구조물에 머무는 양, 방사성붕괴와 다음 발전소의 초기 가동재고까지 고려해야 한다.
블랭킷은 삼중수소 생산뿐 아니라 열회수, 중성자 차폐, 구조물 냉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재와 냉각재의 비중을 높이면 리튬이 들어갈 공간이 줄어드는 등 기능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 이러한 복합기능을 발전소 규모에서 통합적으로 입증한 사례는 아직 없다.
삼중수소는 수소 동위원소이므로 금속을 투과하고 물과 결합해 이동하기 쉽다. 냉각수·공기·배관·열교환계통으로 확산될 수 있어 지속적인 계량과 회수, 누설감시가 필요하다. 핵융합은 연쇄반응을 이용하지 않지만 물에 쉽게 녹는 성질이 있는 방사성 삼중수소의 생산과 특히 발전소 주변 주민에게 위해할 수 있는 누설을 완전히 막을 수가 없으므로 누설관리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두고두고 주민과 갈등 소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네 번째 벽: 원격정비와 낮은 가동률
핵융합반응을 멈추면 연쇄반응도 중단되므로 핵분열 원전과 같은 노심용융 위험은 크게 낮다. 그러나 중성자에 노출된 내부기기는 방사화되기 때문에 운전이 정지된 뒤에도 고방사선구역이 되어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어렵다.
손상된 블랭킷과 디버터를 교체하려면 거대하고 정밀한 부품을 원격장비로 분리하고, 제한된 통로를 통해 인출한 다음 새 부품을 설치해야 한다. 절단·용접·검사·제염까지 원격으로 수행해야 할 수 있다. 작은 오차나 장비고장도 긴 정비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발전소 경제성에서 중요한 것은 순간적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발생시키느냐가 아니라 1년 동안 실제로 얼마나 많은 전력을 판매하느냐이다. 내부기기를 자주 교체해야 하거나 원격정비에 수개월이 걸리면 가동률은 낮아진다. 막대한 건설비가 투입된 발전소가 자주 정지하면 생산전력 한 단위당 비용은 급격히 상승한다. 따라서 재료의 교체주기와 원격정비 시간, 실제 가동률이 입증되기 전에는 핵융합발전의 경제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 벽: 핵융합 열을 값싼 전기로 바꾸는 일
핵융합반응에서 에너지가 발생했다고 해서 곧바로 전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속중성자의 에너지를 블랭킷에서 열로 회수하고, 냉각재로 운반한 뒤 증기터빈이나 다른 발전계통을 통해 전기로 변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열손실이 발생한다.
발전소가 생산한 전력 중 일부는 초전도자석의 극저온 냉각, 진공펌프, 플라즈마 가열, 연료주입, 냉각재 순환, 삼중수소 회수와 정제시설에 다시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플라즈마에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핵융합에너지를 얻었다는 ‘플라즈마 Q’만으로는 발전소의 성립을 증명할 수 없다.
실제 발전소가 충족해야 할 조건은 단순하다.
판매전력 = 총 발전량−발전소 자체소비전력 > 0
그러나 순전력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막대한 건설비와 부품 교체비, 삼중수소 처리비, 원격정비비와 폐기물 관리비를 부담하고도 경쟁 가능한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해야 한다. 핵융합발전의 최종적인 벽은 반응의 성공이 아니라, 그 반응을 반복 가능하고 정비 가능하며 경제적인 전력생산체계로 만드는 데 있다.
핵융합은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기 연구과제다. 하지만 재료와 디버터, 삼중수소 자급, 원격정비와 가동률, 순전력 생산과 경제성이라는 다섯 개의 벽을 하나의 발전소에서 동시에 넘어야 비로소 전력산업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입증한 것은 핵융합반응의 가능성이지, 핵융합발전소의 기술적·경제적 완성은 아니다.
핵융합의 진정한 난제는 태양의 반응을 지상에서 잠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그 반응을 견디고, 반복하고, 정비하면서 값싼 전기로 바꾸는 데 있다.
5. 핵융합은 연구전략이지 아직 전력전략은 아니다
세계 최대 핵융합 프로젝트인 ITER조차 아직 중수소-삼중수소 본격운전을 시작하지 않았다. 2024년 수정된 일정에 따르면 중수소-삼중수소 운전은 2039년경 시작될 예정이다. ITER의 목표는 500MW의 핵융합 열출력을 약 400초 동안 발생시키는 것이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기능까지 실험하는 것은 아니다. ITER News Line, New baseline to prioritize robust start to exploitation, 2024.07.03.
그 이후에도 실제 발전을 시험하는 DEMO와 경제성을 검증하는 상업 원형로가 필요하다. ITER도 DEMO 이후 경쟁력 있는 전력생산에 최적화된 원형로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ITER, Fusion Energy, After ITER
민간 핵융합기업들은 2030년대 전력생산을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초전도자석, 레이저, 인공지능과 민간투자가 개발속도를 높일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기업이 제시하는 목표연도와 발전소의 실증 완료 시점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플라즈마 성능뿐 아니라 재료, 삼중수소
검증단계
현재까지의 수준
발전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
핵융합반응
실험시설에서 달성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반응
플라즈마 Q>1
관성가둠에서 달성, ITER는 Q=10 목표
발전소 전체 순전력 생산
운전시간
초·분 단위의 실험
장기간 연속 또는 고반복 운전
재료
후보재료 연구단계
상용 중성자 환경의 수명 입증
삼중수소
외부공급과 소규모 시험
발전소 내부 완전 자급
열변환
개념설계 중심
터빈을 포함한 통합발전 실증
정비
원격정비기술 개발
짧은 정비기간과 높은 이용률
경제성
목표가격과 추정치
실제 총사업비와 발전단가 검증
그림 ITER 토카막 상세 입체도 (ITER 제공)
표 현재까지 발전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
증식, 열회수, 연속운전, 정비와 경제성을 하나의 발전소에서 통합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한국은 핵융합은 못하고 플라즈마를 가두는 실험만 하는 KSTAR의 운영경험을 바탕으로 ITER 참여를 통해 플라즈마 제어, 초전도자석, 진공용기와 정밀제작 분야의 기술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는 재료·초전도·극저온·로봇·전력전자·우주·의료 등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핵융합을 가까운 미래의 전력공급원으로 계산하거나, 상용화 시점을 미리 정해 국가전략산업으로 선언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2030년이나 2040년의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할 전력계획을 아직 발전실증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핵융합에 의존할 수는 없다.
한국이 모든 핵융합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목표도 신중해야 한다. 핵융합발전소에는 초전도자석, 특수재료, 삼중수소, 리튬 블랭킷, 원격정비, 대형 터빈과 정밀제조 기술이 필요하다.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해 전체 기술을 따라가기보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핵심 부품과 재료·정비기술을 선택하여 집중하는 편이 현실적일 수 있다.
핵융합 연구는 계속해야 한다. 다만 연구의 가치를 과장된 상용화 일정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핵융합은 인류가 포기해서는 안 될 장기 연구과제다. 그러나 아직 국가의 미래 전력공급을 맡길 수 있는 검증된 산업은 아니다.
과학은 가능성을 탐구한다. 산업은 반복해서 생산하고, 안전하게 운영하며,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 국가전략산업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해진 시기에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현재의 핵융합은 첫 번째 단계에서는 놀라운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핵융합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희망을 앞당겨 선언하기보다, 플라즈마에서 전력망까지 남아 있는 긴 거리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5절. 연구할 가치가 곧 국가전략기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SMR과 핵융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 자주 듣게 되는 반론이 있다.
“그렇다면 연구도 하지 말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연구는 해야 한다. 새로운 원자로의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도 연구해야 하고, 핵융합처럼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분야에도 장기적인 기초연구가 필요하다.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구를 중단한다면 과학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연구할 가치가 있는 기술과 국가가 미래를 걸어야 할 전략산업은 같은 것이 아니다.
연구는 실패할 수 있다. 실패에서도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전략산업은 다르다. 막대한 국가예산과 인력, 산업정책과 금융, 때로는 국가의 에너지 공급계획까지 투입한다. 성공 가능성뿐 아니라 실패했을 때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까지 따져야 한다.
바로 이 차이가 SMR과 핵융합을 바라보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1. 과학기술정책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단계가 있다
새로운 기술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에는 적어도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는 연구할 것인가이다.
가능성이 있다면 연구할 수 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과학적으로 중요한 기술이라면 정부가 지원할 이유가 있다. 핵융합이 대표적이다.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더라도 플라즈마, 초전도자석, 극저온, 재료, 원격정비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과학적 가치를 갖는다.
둘째는 산업화할 것인가이다.
여기부터는 질문이 달라진다. 연구실에서 작동한 기술을 반복해서 제작할 수 있는가, 필요한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가, 안전성과 신뢰성이 입증됐는가, 경쟁기술보다 시장성이 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셋째는 국가전략산업으로 삼을 것인가이다.
이 단계에서는 더 엄격해야 한다.
막대한 공공재원을 장기간 투입할 만큼 국가적으로 중요한가? 세계시장에서 경쟁우위가 있는가? 다른 산업으로 대체하기 어려운가? 기술과 공급망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가? 실패했을 때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가?
따라서 다음 세 문장은 전혀 다른 뜻을 가진다.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상업화 가능성이 있다.”
“국가의 미래를 걸 전략산업이다.”
첫 번째가 참이라고 해서 두 번째가 자동으로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가 가능하다고 해서 세 번째까지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원자력 정책에서는 이 세 단계가 너무 쉽게 하나로 연결되어 왔다.
2. SMR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성공의 선언’이 아니라 검증이다
SMR은 이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원자로를 작게 만들고 공장에서 모듈화하여 생산한다는 발상은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 피동안전계통, 일체형 원자로, 자동화, 모듈 제작 기술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작은 원자로라는 사실 자체가 경제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 기의 사고 규모가 작아질 가능성은 있지만 여러 모듈을 한 부지에 설치하면 공통원인고장과 다수기 사고, 공유설비, 사용후핵연료와 비상대응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i-SMR은 아직 실제 발전소를 건설하고 장기간 운전하여 안전성·제작성·검사성·정비성·이용률과 경제성을 확인한 기술이 아니다.
그런데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미 2030년대 중반 약 0.7GW의 SMR 전력을 계산에 넣었다. 여기서 정책의 순서가 뒤집힌다.
설계 → 시험 → 인허가 → 실증 → 운전 → 경제성 확인 → 상업화
라는 기술개발의 정상적인 순서가,
국가계획 반영 → 목표연도 설정 → 개발·인허가 → 건설
의 순서로 바뀔 위험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연구개발의 실패가 허용되기 어려워진다.
이미 국가계획에 넣었기 때문에 일정에 맞추어야 하고,
규제행위는 공급 일정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기 때문에 중간에 멈추기 어려우며,
부지까지 결정하고 나면 기술적 판단에 정치적 부담까지 더해진다.
연구개발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다.
실패할 수 없는 연구개발이 되는 순간이다.
국가가 연구개발을 지원하되, 그 결과에 따라 중단하거나 설계를 변경하고 일정을 늦출 수 있어야 한다. 실증 결과가 좋으면 그때 상업화를 판단하면 된다.
SMR 연구는 계속하되 국가 전력계획은 그 성공을 미리 가정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책임 있는 정책이다.
3. 핵융합은 더 긴 시간축으로 보아야 한다
핵융합은 SMR보다 그 거리가 훨씬 멀다.
인류는 핵융합반응을 만들어내는 데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앞 절에서 보았듯이 핵융합반응과 핵융합발전은 다른 문제다.
플라즈마에서 에너지를 얻었다고 곧바로 발전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 안정운전, 고속중성자를 견디는 재료, 디버터의 열부하, 삼중수소 자급, 열회수와 발전, 원격정비, 방사성폐기물 관리, 높은 이용률과 경제성까지 하나의 발전소에서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핵융합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국가전략은 역설적으로 상용화를 서두르지 않는 것일 수 있다. KSTAR와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기초과학과 핵심기술 역량을 축적하고, 한국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초전도자석·정밀제조·전력전자·원격정비·소재와 같은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설령 핵융합발전의 상용화가 예상보다 수십 년 늦어지더라도 다른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한 전략적 차이다.
하나의 미래 발전기술이 성공해야만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전략보다, 실패해도 다른 산업에 기술과 인력이 남는 전략이 국가에는 더 안전하다.
4. 국가전략기술이라면 ‘실패했을 때’를 먼저 물어야 한다
국가는 기업과 다르다.
기업은 여러 사업 가운데 일부의 실패를 감수하고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특정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수십 년 동안 예산과 인력, 금융과 제도를 집중하면 다른 산업에 투자할 기회도 함께 잃는다.
이것이 기회비용이다.
SMR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 그 돈은 전력망, ESS, 에너지효율, 재생에너지, 다른 첨단산업에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핵융합에 막대한 연구역량을 집중한다면 다른 기초과학과 에너지기술에 배분할 연구인력도 줄어든다.
그러므로 국가전략산업의 판단에서는 “성공하면 얼마나 좋은가?”보다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한다.
“실패하면 무엇이 남는가?”
이 질문으로 보면 국가의 기술전략도 달라질 수 있다.
판단 기준
SMR
핵융합
연구 가치
있음
있음
발전기술 실증
아직 필요
아직 훨씬 많은 단계 필요
경제성 검증
실제 건설·운전 자료 필요
상업발전 실적 없음
안전·환경 과제
다중모듈·사고·폐기물 등
삼중수소·방사화·재료 등
상용화 시점의 확실성
불확실
매우 불확실
국가 전력계획 반영
실증 후 판단이 합리적
현재로서는 곤란
바람직한 국가전략
핵심기술 개발·실증 후 선택
장기연구·파급기술 축적
표 국가전략계획의 검토
이 표에서 중요한 것은 SMR이나 핵융합에 ‘실패’라는 판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아직 판정을 내릴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정보다.
불확실성이 큰 기술을 연구대상으로 두는 것과 국가의 미래산업으로 확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사결정이다.
5. 국가가 선택해야 할 것은 ‘원자로’가 아니라 ‘역량’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원자력 미래기술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필자는 원자력 연구개발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자로 한 종류의 성공에 국가의 명운을 거는 것보다 세계 어느 원자로에서도 필요로 하는 소재·부품·제작·검사·안전·해체·폐기물 관리기술을 확보하는 편이 훨씬 지속가능할 수 있다.
SMR이 성공하면 그 산업에 공급할 수 있고, 다른 나라의 원자로가 시장을 차지하더라도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다. 핵융합이 늦어져도 초전도·재료·로봇·정밀제조기술은 남는다. 원전 신규 건설시장이 축소되더라도 기존 원전의 안전관리와 해체, 방사성폐기물 관리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국가전략은 특정 원자로의 이름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살아남을 기술적 역량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SMR과 핵융합을 둘러싼 논쟁도 훨씬 단순해진다.
연구하자.
시험하자.
실증하자.
실패도 허용하자.
그리고 결과가 나온 뒤 산업화를 판단하자.
다만 검증되기도 전에 “미래 먹거리”, “차세대 수출산업”, “게임체인저”라고 이름 붙이고 국가의 전략계획과 막대한 재정을 먼저 걸지는 말자는 것이다.
SMR도 핵융합도 과학에는 꿈이 필요하지만 국가정책에는 검증이 필요하다.
국가전략산업은 가장 화려한 미래를 약속하는 기술이 아니라, 실패 가능성까지 검증하고도 국가가 선택할 이유가 남는 산업이어야 한다.
SMR도 핵융합도 미래의 중요한 기술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국가의 미래를 걸어도 된다’는 것 사이에는 아주 긴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메우는 것이 연구이고, 실증이며, 경제성 검증이다.
국가전략은 그 과정을 건너뛰는 선언이 아니라 그 모든 검증이 끝난 뒤 내려야 할 결론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