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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산회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대가천
이육사 '청포도'의 배경 포항 동해면 도구 일월지 내 고장 7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어느새 1월도 끝물이다. 비가 온 뒤 기온이 급강하하고 날씨가 빠르게 겨울 속으로 편입되고 있다.
육사가 군부대 자리 인근의 포도밭에서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는 걸 보았던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도구 앞바다에서 포도밭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군부대쪽을 바라 보았다. 그때 육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30년대 말 일제 치하의 격랑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칼끝에 외발로 선 지식인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바다 쪽을 보며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잘 알려진 대로 이육사의 시 ‘청포도’의 배경은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 해병부대 안 일월지 주변이다.
이 포도농장은 일제말기 동양 최대의 포도밭이었으며 여기서 생산된 삼륜포도주는 동양의 포도주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해병부대와 비행장, 골프장으로 변했지만 육사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 일대 야트막한 언덕을 온통 포도가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7월이면 이 언덕에서는 드넓게 펼쳐진 영일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도구 앞 바다를 한두 번 찾은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1942년 기계리의 이영우씨 집에서 요양할 때와 그해 7월 경주 남산 자락의 옥룡암에 있는 이식우(전 경주고 교장)를 찾아 두어 달간 머물 때도 더러 포항의 바닷가를 다녀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육사를 말한다 이육사의 본명은 활 또는 원록이다. 1904년 4월4일 낙동강 상류인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에서 이퇴계의 14대 손자이자 아은공 이가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조부 치헌공 중식으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청년이 되어서는 일본에 들어가 일년을 지내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잠시 북경대학 사회학과에 다니기도 했다.
대표작인 청포도가 도구의 포도밭에서 시상을 얻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지고 있다. 돌아가신 심당 김대정선생이 일제치하 남산의 암자에서 은둔하던 육사를 오천 포도원에 안내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1999년 12월에 포항시 대보면 호미곶에 육사시비를 세웠다.
이육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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