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글판 2024년 가을편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2024년 광화문글판 가을편 문안은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에서 가져왔습니 다. <자화상>은 시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했던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요. 어둡고 외딴 우물 안에서 밝은 달과 구름, 파아란 바람을 보았던 시인의 모습처럼 일제강점기 암울한 상황 속 자기 성찰을 통해 희망을 담아낸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2024년 광화문글판 가을편 문안은 윤동주 시인처럼 고단한 현실에 처해 있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윤동주(1917~1945) 시인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요. 2024년 광화문글판 가을편 문안인 <자화상> 외에도 <별 헤는 밤>, <서시>, <참회록> 등 수많은 명시들을 남겼습니다. 특유의 서정적인 감수성과 독립을 향한 소망, 그리고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서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담은 자기 성찰의 시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지난 2016년에는 윤동주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가 개봉하는 등 명실공히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광화문글판은 윤동주 시인과 특히 인연이 깊습니다. 그간 윤동주 시인의 문안이 광화문글판에 여러 번 등재되었던 건데요. 2017년 광화문글판 봄편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시 <새로운 길>에서 문안을 따왔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광화문글판 2019년 겨울편에도 운동주 시인의 시가 등재되었는데요. 바로 < 호주머니>입니다. 호주머니에 넣을 것 하나 없는 힘든 현실이지만, 호주머니 속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힘을 내라는 위로의 뜻이 담긴 시죠.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2024 광화문글판 가을편 문안은 <자화상>의 서정적 분위기와 걸맞은 디자인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습니다. 이번 디자인은 대학생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깊은데요. 대상 수상자인 홍산하씨는 어두운 우물에 비친 달과 낙엽을 통해 문안의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형상화했습니다. 우물 속의 낙엽이 물결을 만들어내듯 광화문글판이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의 퍼져 나가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시로 위로를 전하는 윤동주와 그림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대학생 홍산하 씨의 만남으로 탄생한 2024년 광화문글판 가을편. 이번 가을편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교보생명공식블로그에서
2024년 광화문글판 가을편을 만났다. 윤동주의 '자화상(自畵像)'에서 발췌한 구절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가 적혀 있다. 디자인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 동심원 물살이 퍼져가고, 낙엽들과 노란 달이 물살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한 사나이가 외딴 우물, 홀로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 본다. 가을의 자연 현상을 우물 속에 펼쳐지는 풍경으로 묘사했는데 고요와 평화의 모습 같지만 쓸쓸하면서도 무언가 슬픈 감정이 퍼지는 것 같다. 그 감정이 한 사나이, 곧 자신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연약한 사나이 그래서 미운 사나이, 그렇지만 가엾은 사나이, 그래서 그리운 사나이, 어떻게 살아야 하지? 희망인지 슬픔인지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밝은 달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파아란 바람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사나이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우물 속에서 들려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