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4-10회 : 지리산 삼도봉
성삼재-노고단고개-돼지령-피아골삼거리-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
20220519
1.왕시루봉에 뜬 밝은 달, 천왕봉에 뜬 붉은 해
5월 18일 동서울터미널에서 밤 11시에 출발하는 성삼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래간만에 지리산 서쪽 능선 성삼재-노고단-삼도봉-연하천대피소-형제봉-벽소령대피소 능선을 걷고 싶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힘을 내서 지리산 세석고원까지 가서 한신계곡을 거쳐 백무동으로 하산할 계획을 세웠다. 새벽 3시 버스는 성삼재에 도착하였다. 바람이 몰아쳤다. 산행 준비를 마치니 새벽 3시 10분, 지리산 산행에 나섰다. 종석대 위에 음력 4월 19일의 밝은 새벽달이 떠올라 지리산 능선을 밝혀 주지만 만물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
노고단대피소 앞 마고할매 목조상이 대피소 불빛을 받으며 길손을 맞아준다. 마고할매 만난 지가 꽤 오래되었다. 마고할매가 예전 그대로의 자세와 미소로 길손을 반기지만 지리산 풍파에 나무 또한 살갗에 흠집이 늘었다. 마고할매의 노고단에 오르지 못하여 미안하지만, 지리산 긴 능선을 걸어야 하는 길손의 체력을 감안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마고할매님, 당신의 제단에 오르지 못함을 용서하소서.
노고단고개에서 천왕봉 가는 길로 들어섰다. 예전의 바윗길이 정리되고 길에 야자매트가 깔려서 헤드랜턴을 빛내며 걸어가기에 편하다. 불빛에 빛나는 진분홍 큰앵초꽃이 눈에 들어왔다.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큰앵초꽃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큰앵초아씨를 잘 담았다. 그런데 이 뒤에 큰앵초아가씨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헤드랜턴 불빛을 비치면서 담은 큰앵초아가씨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돼지령에 이르니 왕시루봉 위로 밝은 새벽달이 넉넉한 모습으로 빛을 내려보낸다. 동이 트려면 아직은 먼 듯하다. 돼지령 위쪽에서는 걸어온 길이 잘 조망되지만 어둠 속이라 풍경을 조망할 수 없어서 속도를 냈다. 앞쪽으로 언제 보아도 넉넉한 반야봉이 여명 속에 실루엣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동이 트고 있다. 그렇지만 지리산 임걸령 가는 길에서 반야봉을 조망하는 곳과 그 아래 멋진 길은 여전히 어둠 속에 숨어 있다. 그 멋진 길 오른편에 전망대가 새로이 조성되어 있어 전망대로 나가보았다. 왕시루봉 위의 새벽달은 밝게 빛을 뿜어내지만 지리산을 밝게 빛내지는 못한다. 저 아래 섬진강변의 마을에 불빛이 반짝이는 모습이 들어온다. 잠들지 못하고 지리산을 걷는 청승맞은 길손에게 그 불빛은 안식의 영원한 불빛으로 비친다.
임걸령에 이르니 동이 텄다. 그렇지만 숲길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 임걸령 샘에서 한 바가지 물을 마시고 페트병에 물을 받아서 비탈길을 오른다. 느슨한 비탈길, 또는 노루들이 다니는 길목이라는 뜻의 노루목에 이르렀다. 완전한 밝음은 아니지만 대상을 구별할 수 있고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밝음이다. 노루목 바위 전망대에서 어둠 속에 이곳까지 걸어온 능선을 조망하니 어둠 속을 걸어온 모습이 물살이 흐르듯 스쳐간다. 그리고 삼도봉에서 내리벋는 불무장등 능선이 푸른 빛을 뿜어내며 섬진강 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새벽을 지나 아침이다. 헤드랜턴을 벗었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에 오르지 않고 삼도봉으로 향하였다. 삼도봉 언저리에 이르니 밝은 햇빛이 물들기 시작한다. 해가 떠올랐다. 낫날처럼 생겼다고 하여 낫날봉이라 불린 산봉은 이제 삼도봉으로 유명해졌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세 개의 도(道)가 만나는 삼도봉에 이르니 아침 6시, 동쪽을 살피니 천왕봉 위로 붉은 해가 찬란히 타오르고 있다. 어둠 속에 꼭꼭 숨어 있던 지상의 만물들이 아침의 붉은 빛을 받아 훨훨 날개친다. 아침이면 세상이 개벽하는 모습은 샹그리라의 풍경이다. 지리산 삼도봉에서 천왕봉 위에 솟은 아침 해를 바라보며, 개벽하는 세상의 맑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그리그의 음악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의 기분'이 천왕봉에서 삼도봉으로 울려오는 듯, 길손의 마음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삼도봉에서 화개재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며 가까운 편이다. 화개재로 내려가며, 맞은편 토끼봉 위로 아침 해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지리산에서 맞이하는 아침 햇빛은 새 삶의 빛처럼 눈부시다. 화개재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섬진강 건너편의 호남정맥 산줄기를 가늠하며 지난 시절 저 산줄기를 산행하던 추억에 잠겼다. 화개재에서 뱀사골 내려가는 입구로 가보았다. 함께했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벰사골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지리산 화대종주를 함께했던 친구는 속세의 거친 풍파에 좌절했는지 자취를 감추고 미지의 곳으로 떠나서 소식을 끊어 버렸다. 화개재 뱀사골의 긴 추억이 가슴을 멍멍하게 한다. 화개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 속처럼 따스하다.
2.산행 과정
하늘에 밝은 달이 떠 있다.
해발 1090m, 노고단고개까지 2.6km, 천왕봉까지 28.1km
무넹기로 직접 올라가는 곳. 뎈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임도를 따라가면 종석대 입구와 코재를 거쳐 무넹기에 이른다.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코재는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가야 한다. 노고단고개는 뒤돌아서서 올라간다.
노고단고개까지는 지름길로 가면 0.6km, 임도를 따라가면 2.4km 거리이다.
노고단고개까지 04km, 천왕봉까지 25.9km
'밥 짓고 나누어 먹는 곳'이라는 이름이 정답다.
밝은 달이 빛난다. 노고단에 오르지 않고 천왕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노고단고개 0.5km 지점에서 헤드랜턴 불빛에 진분홍 큰앵초꽃이 빛난다. 이후에 큰앵초꽃을 전혀 만나지 못했다.
해발 1370m 돼지령 이정목. 노고단고개 2.1km 지점으로 피아골삼거리까지 0.7km가 남았다.
왕시루봉 위로 음력 4월 19일의 밝은 달이 새벽의 어둠을 불사른다.
해발 1336m 피아골삼거리.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피아골을 거쳐 직적마을까지 6km 거리, 유명한 연곡사부도를 만날 수 있으며, 가을에는 피아골의 단풍으로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샘물을 마시고 빈 페트병에 물을 담아 출발한다.
노고단고개에서 3.5km 지점, 삼도봉까지 2.0km
반야봉까지 왕복 2km, 반야봉에 오르지 않고 노루목 전망바위에서 조망한 뒤 삼도봉으로 향한다.
오른쪽에 뾰족한 산봉이 종석대, 현재 비탐방로이며, 그 오른쪽 능선 아래가 성삼재인데 보이지 않는다. 왼쪽 뾰족한 산봉이 노고단이다.
왼쪽 삼도봉에서 불무장등으로 내리벋는 능선이다.
맨 뒤 흐릿하게 보이는 산줄기는 섬진강 남쪽으로 내닫는 호남정맥 백운산 줄기이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올랐다가 노루목으로 내려가지 않고 이곳으로 내려오면 거리가 단축된다.
반야봉 왼쪽 능선 아래 움푹 파인 곳이 임걸령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루목은 오른쪽 위 바위지대 일 것이라 가늠한다.
원래 이름은 낫날처럼 생겼다 하여 낫날봉이었는데, 이제는 삼도봉으로 더 유명하다.
붉은 해 오른쪽 아래에 천왕봉이 보인다.
토끼봉 위로 붉은 해가 보인다.
화개재까지 200m가 남았다.
지리산 곳곳에서 풀솜대 맑은 꽃이 활짝피어 한창이었다.
아래에 화개재가 보인다.
예전에는 이 아래에 뱀사골대피소가 있었는데 이제는 대피소가 폐쇄되었다.
화개재에서 뱀사골을 거쳐 반선까지는 엄청나게 먼 9.2km나 되는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