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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을 오랑캐와 싸흠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 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 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년이 뒤를 이어 흘러 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방울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이용악,오랑캐꽃>
아래 출처:http://nongae.gsnu.ac.kr/~jcyoo/reread/orangkae.html
오랑캐꽃은 1940년 10월 인문평론에 실렸던 작품이다. 이용악은 1914년 함경북도 경성읍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 상지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유학 중이던 1935년 신인문학 3월호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으며 시집으로 분수령(동경, 삼문사, 1937), 낡은 집(동경 삼문사, 1938), 오랑캐꽃(아문각, 1947), 이용악 시집(동지사, 1949), 이용악 시선집(창작과 비평사, 1988) 등이 있다. 해방 후 좌익운동에 가담, 활동하다가 월북했다.
이 시는 이용악의 대표적인 시로 이용악이 이 시를 발표한 후 서정주의 귀촉도에 비유하며 좋아했다는 말이 있다.
이 시에는 제목 다음에 "긴 세월을 오랑캐와 싸흠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라는 제사가 붙어 있다. 흔히 제사는 시의 본문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비유적으로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제사는 시의 내용을 혼돈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 것처럼 보인다. 이 제사와 관련하여 오랑캐꽃의 의미를 찾는 연구들이 전체적인 시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실패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 시에서 오랑캐꽃은 오랑캐가 아닌 우리 민족을 의미한다. 시인이 이 제사를 넣은 이유는 아마 일제의 눈을 의식해서 의미에 혼란을 가져오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3연으로 구성된 이 시에서 첫 번째 부분은 고려 시대 국경을 넘나들며 우리 민족을 괴롭히던 오랑캐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려는 변방을 침입하던 오랑캐들을 북방으로 몰아내고 구성을 쌓는 등 북방정책을 전개한다. 이런 북방정책으로 인해 오랑캐들은 자신들이 살던 터전을 버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쫓겨갈 수밖에 없었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경황없이 쫓겨났는지를 말해준다. "도래샘", "띳집"은 오랑캐들이 사용하던 샘과 띠로 이은 집을 의미한다. 고려장군들이 쳐들어와 오랑캐는 도래샘, 띳집 같은 누대로 살아온 정든 것들을 돌볼 새 없이 가랑잎처럼 굴러갔다고 말하고 있다.
2연은 역사적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랑캐들이 북방으로 쫓겨난 골짜기마다 구름이 모여들고 또 흘러가고 몇백년이 흘러갔고 지금 시인이 살고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오랑캐꽃은 오랑캐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현재 시인과 더불어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마지막 3연은 오랑캐가 아닌 오랑캐꽃에 대한 진술이다. 오랑캐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고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른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즉 오랑캐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랑캐와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꽃은 무엇인가. 앞 부분에서 이 시는 오랑캐가 고려장군에 의해 쫓겨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오랑캐꽃은 단순하게 모양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오랑캐가 아니면서 오랑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존재, 즉 고향과 터전을 버리고 쫓겨날 수박에 없는 존재를 의미해야 한다. 고려 시대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일제시대에 오랑캐도 아니면서 오랑캐처럼 쫓겨나는 처지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민족이다. 마지막 두행에서 시인이 오랑캐꽃에 대해 무한한 연민을 느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20년대 이래 가혹한 경제수탈로 고향을 등지고 만주 등지로 떠나는 유랑민이 급증했다. 30년대에 더욱 극심해진 일제의 수탈과 만주 침략을 위한 이민정책은 유랑민의 수를 더욱 급증하게 만들었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 나라를 빼앗기고 오랑캐 아닌 오랑캐 처지가 되어 강 건너로 쫓겨나야 했던 반어적인 현실을 이용악은 오랑캐꽃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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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가슴 속 절규로 정말 펑펑 '울고 싶어지는 시'이네요.
오래 전 강의 시간에 들은 시입니다. 정말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서럽고 고단하고 막막한 느낌이 그때 들었습니다. 그후로 이 시인을 가슴에 품고 삽니다.
그러게요. 저런 마음이 시인의 마음인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