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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의 인파와 푸짐한 점심으로 기억될 (대간 34)
1. 일자: 2015. 1. 10 (토)
2. 장소: 화방재~두문동재
3. 행로 및 시간
[화방재(10:05, 936m, 수리봉 1.4km) -> (된비알) -> 수리봉(10:33, 1214m, 만항재 2.1km) -> 청옥봉(10:52) -> 무덤(11:06)-> 군부대(11:15) -> 만항재(11:20-35,1330m, 함백산 2.9km) -> 태백선수촌 갈림(12:10) -> (된비알) -> 함백산(12:50, 1573m, 중함백 1.1km) -> 주목군락(13:05) -> (점심, 13:15~55) -> 중함백(14:10, 1505m) -> (샘물쉼터) -> 은대봉(15:06, 1442m) -> (조망 터) -> 싸리재/두문동재(15:30, 1268m) / 두문동(15:55) / 11.6km+접속 1.4km]
< 대간 34구간 산행을 준비하며 >
한 달 만에 대간 길에 나선다. 구간 지도를 들여다 본다. 화방재에서 만항재를 거쳐 함백산과 두문동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해발 1400m~1500m를 넘나드는 봉우리가 줄을 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금이다. 이 정도면 지리나 덕유, 설악 등 산군에 견주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 높이다. 그런데도 험준하지 않다. 강원도 산의 실체다.
이번 구간의 으뜸지는 함백산이다.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에서 뻗어 온 백두대간이 남행하다가 싸리재를 넘자마자 산맥을 불끈 일으킨 곳이 바로 함백이다. 흔히들 겨울 함백은 여인의 부드러운 굴곡 같은 마루금을 따라 새하얀 외줄기 길이 하늘로 오르듯 이어져 있다 한다. 여러 자료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함백은 더 높은 높이임에도 태백의 그늘에 가려 2인자에 머물러 있지만 불평하지 않는 속 깊은 산이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가야 할 길을 가늠해 본다. 화방재~만항재 3.5km 100분, 만항재~중함백 4km 2시간, 중함백~싸리재 4.1km 2시간, 총 11.6km 식사 포함 6시간의 적당한 산행이 될 듯하다. 점심은 라면을 끊여 먹기로 했다. 난, 따로 음식을 준비하지는 않지만 바람막이 겸 보온용 비닐을 가지고 한다. 경험상 높은 곳에서 시작한다고 편한 산행은 없다. 고도 표 상으로 6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겨울 고산 산행을 만만히 보아 서는 안 된다.
< 희망사항 >
예전 월송님이 보내준 ‘등산과 인생’이란 글에 이런 표현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리부터 산행을 대비한다. 산에 오를 체력, 가는 곳에 대한 정보, 산행에 필요한 물자, 산행의 조력자, 함께할 동반자를 미리 준비한다. 지혜 없는 자는 무모하게 산을 오른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오른다. 산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무모한 출발 때문이다. 하루 이틀의 산행에도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한 평생을 사는 인생길에 계획과 준비가 필요 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으리라.’한겨울 산행에 나서며 새겨야 할 명언이다. 4년전 이맘때 화방재~정암사 구간을 걸었는데 편안한 길에서 설경이나 구경하자고 큰 준비 없이 안이하게 떠난 길에,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과 강풍을 만나 생명의 위험을 느꼈던 경험이 있으니 오늘 산행은 더욱 준비에 신경이 쓰인다.
태백과 함백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새해 첫 대간 산행으로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함백산 정상에 오르면 동으로 태백시내가 서쪽으로는 정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한다. 날씨가 맑아 확 트인 조망을 보며 새해의 소망을 빌어 보고 싶다.
옛 등산 잡지 함백산 편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눈 길을 끈다. 햇살이 찬란하게 부서지는 은빛 자작나무숲, 멋지다. 그 숲에서 겨울 설산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 ^.^
(여기까지는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34구간 고도 표 >
< 화방재 가는 길 >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고 잤더니 몸 상태는 그런대로 괜찮다.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엷은 안개가 낀 새벽 도로는 한산하다. 날이 생각보다 차지 않다. 안개가 걷히고 맑아지면 산행하기 최적의 날씨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예정보다 일찍 교대에 도착하여 라면을 사려 갔다가 청한님과 까막바위님을 만나 함께 버스에 오른다. 한 달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하고 유박사님이 준비한 김밥을 먹고는 이내 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깨어 보니 제천이다. 행장을 준비하고 들머리에 선다. 시간은 이제 막 10시를 지난다.
< 화방재에서 만항재 >
널따란 주유소 공터, 눈에 익은 화방재 들머리를 통해 산에 올라 붙는다. 288말고도 이 길을 오르는 이들이 있다. 오늘은 여러 산악회에서 함백산에 오를 것이다. 어제 밥 뉴스에 강원도 일대의 겨울 가뭄이 극심하다더니 산 길에 눈이 많지 않다. 수리봉까지는 고도 250미터 정도를 치고 올라야 하는 된비알이다. 하늘 밑 공지선에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수리봉이다. 한참을 가야 한다. 밀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행진님과 만나 제주도 졸업여행 작전을 짠다. 바람님과도 상의를 드린다. 얼추 행사의 얼개가 맞춰져 간다. 바람잡이의 역할은 끝나 가고 행진님이 세부준비가 필요한 시기다. 여러 분들이 지원해 주시니 재미난 졸업여행이 될 것이다. ㅎㅎ
수리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한 고비 넘겼다.
길이 완만해 진다. 우측으로 함백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방송국 송신탑이 더 선명하지만 그 좌측 뒤로 분명 정상 돌탑의 흔적이 느껴진다. 산에서는 눈에 보이면 금방이다. 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비탈에 선 나목들이 만들어내는 겨울 정취에 익숙해져 간다. 키 큰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숲을 지난다. 하늘을 가릴 듯 솟아 있는 우람한 모습이 특이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고도를 높일수록 눈이 많아진다. 눈 덮인 무덤에 바람이 특이한 굴곡의 문양을 만들어 놓았다. 밝은 빛과 그림자까지 더해져 훌륭한 포터죤을 만들어 준다. 아이넷님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오늘은 행진님이 커다란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둘은 걸음을 멈춘다.
< 겨울 나무 숲 / 화방재로 향하는 288 >
고산에 어울리지 않은 펜스와 건물이 보인다. 공군 부대다. 길은 도로로 바뀐다. 시원한 개방감이 참 좋다. 까막바위님, 옥혜님, 희망이님을 모델 삼아 사진을 찍는다.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뒤편으로 행진님과 아이넷이 온다. 푸른 하늘 밑으로 흰 눈, 그 사이를 걷는 288들의 모습을 담는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사진이 만들어진다. 근사하다. ㅎㅎ
< 만항재를 오르는 288들의 모습 >
해발 1330미터 만항재에 도착했다, 휴게소 주차장은 산악회 버스로 분주하다. 오뎅과 계란으로 요기를 한다. 당초 여기서 1차 집결하기로 했는데, 대장님과 총무님 일행만이 보이고 다른 이들은 바로 함백산으로 갔나 본다. 뜨끈한 오뎅 국물로 속을 채우고 도로를 따라 함백산으로 향한다.
< 화방재에서 중함백 >
만항재까지는 빠른 행보였으나, 휴게소를 들리느라 시간 여유가 없어진다. 도로가 끝나고 산 길이 시작되는 공터, 그야말로 다양한 사투리의 인파들로 인산인해다. 어찌하다 보니 아이넷님과 둘이 걷게 된다. 인파에 떠밀리듯 나아간다. 12시 무렵 함백산 정상부가 선명하게 조망되는 작은 언덕에 오른다. 바로 밑 공터에는 비닐하우스를 치고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특이한 광경이다.
< 함백산으로 향하는 길에 >
태백선수촌 갈림에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고 그 곳부터 함백산 정상으로 향하는 긴 된비알이 시작되었다. 비탈의 기울기가 몹시 가파르다. 오르고 내리는 인파로 긴 정체가 생긴다. 바야흐로 함백산 산행은 대목 시즌에 돌입했나 보다. 내려다 보는 풍경에 태백선수촌 운동장과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고지 훈련용으로 만들어 놓은 국가대표 훈련장,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할지는 의문스럽다. 하여간 1400미터 고지에 이런 시설이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잠시 숨통이 트이는 가 싶더니 길은 다시 정체다. 멀리 태백산의 산줄기가 보인다. 정상 능선이 너무도 밋밋하여 오히려 시선을 끈다. 그 너머로 우람한 강원도의 산줄기가 아아(峨峨)하게 흐르고 있다. 오늘은 겨울 산의 원경이 그만이다.
< 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 >
지체와 정체를 반복한 끝에 12시 50분 무렵 정상에 도착했다. 돌 탑이 있는 정상부는 인파로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넷님은 한 자리를 찾아 선다. 급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여러 사람들 틈에서 겨우 제대로 된 사진 몇 장을 얻는다. 행진님 사진은 망쳐 버렸다. ㅋㅋ
정상 사진은 포기하고 대신 주변 모습을 담는다. 훨씬 여유롭고 풍경이 멋지다. 수돌님과 아카님이 합류한다. 유박사님의 모습도 보인다.
< 함백산 정상에서 본 주변 풍경 >
어수선한 정상을 피해 길을 내려선다. 바람이 몹시 거세다. 평소보다 좋은 날씨이건만 그 유명한 함백산 바람은 잦아들지 않는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에는 가야 할 은대봉 넘어 매봉산 인근의 풍력발전소 모습도 선명하다. 함백은 정상보다 정상 밑에서 바라보는 먼 풍경이 더 근사하다.
< 주목이 있는 풍경 >
주목 군락 사이로 부드러운 굴곡 같은 마루금을 따라 새하얀 외줄기 길이 이어진다. 눈 덮인 주목을 기대했는데 풍성한 푸른빛의 잎들을 본다. 인파 사이로 288 선두의 흔적을 찾는데 감감이다. 무전 소리가 들린다. 선두는 식사를 하고 있단다. 부지런히 가자. 선두에 유박사님들 앞세우고 걷는다. 행진님 일행은 포터 포인트만 보면 멈추어 선다. 한참을 더 가, 중함백 밑 공터에서 일행과 합류했다. 선두는 식사를 마쳤고 중간 그룹이 라면을 끓이고 있다. 후미도 공터에 자리를 잡는다. 세 대의 버너가 화력을 자랑한다. 아카님의 것이 가장 빨리 끓는다. 떡라면, 우동이 끓어 오른다. 소주 한 잔에 속이 화끈거린다. 보글보글 끓어 오르는 음식은 보는 것 만으로도 풍요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역시 다른 계절에는 느끼지 못하는 겨울 산행의 묘미다. 수돌님의 여수 갓김치의 향과 바람님이 주신 김치가 입 맛을 돋게 한다. 대장님은 우리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연신 흐뭇한 미소를 보내신다.
여러 음식이 한 냄비로 더해지고 햇반까지 넣은 ‘꿀꿀이 죽’이 오늘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 음식이 되었다. 모처럼 산에서 포식을 했다. 이 무거운 배로 중함백으로 오를 부담은 잠시 뒷전에 두고 일단 순간을 즐기기로 한다. ㅎㅎ
평소보다 꽤 길게 식사를 했나 보다. 선두는 먼저 자리를 뜨고 뒷마무리를 함께 하고 길을 나선다. ‘과한 음식이 부른 탐욕’을 산은 바로 응징에 들어간다. 긴 오르막에 허벅지와 종아리가 묵직하다. 그래도 나른한 포만감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발을 힘차게 놀려 중함백에 오른다. 시간은 2시를 넘어선다.
< 중함백에서 두문동 >
중함백 정상에서 은대봉 방향으로 하산 하는 길에 주목 고사목이 시선을 끈다. 그 놓인 위치가 주변을 압도한다. 훌륭한 포터 죤이 있으니 그냥 갈 수 없지 않은가? 돌아 가며 흔적을 남긴다. 진행 방향 멀리 골짜기를 따라 마을의 모습도 보이고 가야 할 대간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중함백에서의 풍경 >
후미로 걷는 다는 건, 뒤 따라 오는 이가 없다는 점에서 불안과 여유를 공존시킨다. 오늘은 여유가 묻어난다. 시간이 그리 늦은 게 아니어서 그런지 수돌님도 재촉하지 않는다. 두런두런 이야기 하며 편한 대간 길을 걷는다. 행진님도 아카님이 말 동무가 되어 주었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은대봉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제 막 3시가 지났다. 너른 공터 치고는 정상석이 아담하다. 일행을 모아 놓고 사진을 찍는다. 넷이 포즈를 취하다, 돼지띠 3명은 따로 찍는다. 나이가 같다는 건 여러 이질감을 완화시켜 주는 마법이 있음을 그들에게서 확인한다.
< 은대봉에서 >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다. 은대봉 하산 길 초입, 기막힌 조망터가 나타난다. 뒤 편을 제외한 주변이 모두 확 트여 있다. 거의 360도급의 개방감이 환상적이다. 다음 번에 가야 할 금대봉, 굽이치는 두문동 도로, 매봉의 풍력 발전기, 이름 모를 교각 등 많은 것들이 어우러져 근사한 풍경을 연출한다. 그 밑으로 288 돼지띠 3인이 걷고 있다. 멋 지 다!!
3시 30분 두문동재에 도착했다. 그러나 날머리는 그곳에서 20분 이상을 더 내려 가야 있었다. 성급하게 아이젠을 벗었다가 다시 차고 한참을 비탈을 치고 내려 갔다. 땅거미가 지고 있다. 어둠의 냄새가 스멀스멀 난다. 도로 가에 28 버스가 보인다. 간이 버스 정거장에 작은 식당이 차려졌다. 한설지님이 준비한 두루치기가 허기진 이들의 배를 채워 주었다. 누군가의 베풂이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ㅎㅎ
< 함백산 하산 길 / 두문동재에서 >
< 에필로그 >
오늘 대간 길에는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 길 랭킹 1, 2위, 만항재와 두문동재를 걸었다. 여러 번 느끼는 것이지만 강원도의 산은 높고 험하다는 편견 중, 뒤에 것은 사실이 아님을 또다시 확인했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대간 길은 4번 남는다. 끝이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불러온다. 그래도, 졸업여행이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을 가져본다.
귀경 버스 안 졸리는 눈으로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오늘 함백산 구간은 뒷날 어떤 이미지로 남을까? 아마도‘함백산의 인파와 푸짐한 점심으로 기억될’이라는 문구가 스쳐 지나간다. ^.^
< 34구간 궤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