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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하에게 하신 구주의 말씀은 섬광처럼 그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예수님을 찾는 자신의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흔들리는 믿음의 실상이 그의 앞에 드러났다. 심한 비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의심이 아들의 생명을 희생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모든 생각을 통찰하시며 모든 것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 앞에 나아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괴로워하는 탄원으로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부르짖었다. 그의 믿음은 마치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면서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고 외쳤던 때와 같이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었다.
그는 야곱처럼 승리하였다. 구주께서는 당신께 매달려서 심히 필요한 것을 간청하는 영혼을 물리치실 수 없으시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그 신하는 전에 결코 맛보지 못했던 평화와 기쁨을 가지고 구주가 계신 곳을 떠났다. 그는 자기의 아들이 나으리라는 것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강한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구속주가 되심을 믿었다.
바로 그 시각에 가버나움의 집에서 죽어 가는 아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자들은 갑작스럽고 신비스러운 변화를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병자의 얼굴에서 거두어졌다. 열띤 홍조가 사라지고 건강이 회복되는 연한 혈색으로 변하였다. 흐리던 눈은 총명으로 빛나고 허약하여 마른 신체도 기운을 되찾았다. 그 아이에게 병의 흔적은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의 불덩어리 같던 몸은 부드럽고 축축하게 되었으며 그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바로 정오에 그 아이의 열이 사라졌다. 가족은 놀라고 크게 기뻐하였다.
가나는 가버나움으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고관은 예수님과 면담한 후에 저녁이면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가는 길을 바삐 서둘지 않았다. 그는 가버나움에 그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귀로는 얼마나 유쾌하였던가? 그가 예수님을 찾으러 갔을 때에는 그의 마음은 슬픔에 짓눌렸다. 햇빛은 자신에게 무자비한 것처럼 보였고 새의 울음소리는 자신을 비웃는 듯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기분은 얼마나 다른가! 모든 천연계가 새로운 모습을 차린 듯하다. 그는 새로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가 조용한 이른 아침 여행할 때에 모든 천연계가 자신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송하는 듯하다. 그가 아직도 자기 집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 있을 때 종들이 그들의 주인이 느끼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불안을 덜어 주고 싶은 나머지 그를 맞으러 나온다.
그는 그들이 전한 소식을 듣고도 놀라움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알 수 없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아이가 몇 시에 낫기 시작했는지를 묻는다. 그들이 대답한다. “어제 제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아버지가 믿음으로 “네 아들이 살았다”는 보증을 굳게 붙들었던 바로 그 순간에 하늘의 사랑이 죽어 가는 아이를 어루만졌다.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기 위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그는 아들을 죽은 아이가 살아 나온 것처럼 자기 품에 힘껏 안고 이 놀라운 회복에 대하여 몇 번이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 고관은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를 갈망했다. 그는 후에 그분의 교훈을 듣고 그와 그의 모든 가족이 제자가 되었다. 그들의 고통은 온 가족의 회심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적에 대한 소식이 퍼졌다. 그리하여 그토록 많은 그의 능력 있는 이적이 행해진 가버나움에서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봉사를 위한 길이 예비되었다.
가버나움에서 고관을 축복하셨던 그분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복 주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 고통 받던 아버지와 같이 우리는 어떤 세상의 유익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예수님을 구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요구가 수락되는 여부에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건다. 구주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큰 축복을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의 요구에 응답하기를 지체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악함과 우리에게 당신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함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로 당신을 찾게 만드는 이기심을 버리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무력함과 간절한 필요를 고백한 후에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분의 사랑에 맡겨야 한다.
그 고관은 그가 믿기 전에 자신의 기도가 성취되는 것을 보기 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축복이 허락되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도 이 교훈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보거나 느끼기 때문에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올 때에 모든 탄원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간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구한 후에는 그것을 받을 것을 믿어야 하며 우리가 이미 받은 것을 인하여 그분께 감사해야 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때에 그 축복이 주어질 것을 확신하고 우리의 의무를 행하기 위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행하기를 배웠을 때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영광의 풍성”과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넘치도록” 우리를 위해 행하실 것이다(엡 3:16, 1:19, 3:20).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