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차림
열세 살이 되었을 무렵에 저는 신문 배달을 하였고, 이웃집에 잔디를 깎아주는 일도 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부모님은 이제부터 제 옷은 제가 알아서 사서 입어야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은행에 예금 계좌를 개설하고 앞으로는 성탄과 생일에 어떤 선물을 부탁할 것인지에 대해 미리 계획을 짜 두었습니다. 장난감 선물은 더 이상 바라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스웨터나 셔츠를 선물로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제 돈 전부를 옷 사는 데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교복은 물론이고 모든 옷을 제 돈으로 구입하였습니다. 면바지와 청바지 넥타이와 셔츠 양말과 속옷도 모두 제가 스스로 마련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오늘날에는 좀 지나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아이들에게 그런 책임감을 주는 일이 자립심으로 키워 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장려되었습니다.
그때에는 남자든 여자든 상황에 모든 사람이 상황에 적절하게 복장을 갖춰 입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야구 경기를 보러 갈 때에도 성당에 갈 때도 알맞게 차려입어야 했습니다. 특히 성당에 갈 때에는 정장을 갖추어 입고 가야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56년간 신문사의 식자공으로 일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열네 살 때부터 그 일을 배우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마다 성당에 가실 때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셨으며 중절모를 쓰셨습니다. 이웃에 사는 모든 아버지도 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학교 교장이었던 켄의 아버지도, 우체부였던 프랜의 아버지도, 은행가였던 조의 아버지도, 자동차 판매원이었던 에드의 아버지도 모두 그렇게 하였습니다. 어머니들도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모자점에서 파는 것과 같은 멋스러운 모자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일 아침이면 성 야고보 성당을 향해 가거나 성당에서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규정들은 우스꽝스럽거나 야만적인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1960년데 들어서면서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어떤 규정들은 우스꽝스럽거나 야만적인 것들도 있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저는 여행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홍콩의 페닌슐라 호텔 매니저를 인터뷰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 우아한 호텔의 로비에는 하이티 시간에는 정장 차림을 해야 한다는 지시사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청바지와 평상복 셔츠를 입은 손님이 나타난 것입니다. 당연히 호텔 직원은 그 손님에게 자리를 떠나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손님은 페르시아만에서 온 왕족이었는데 자리를 떠나 달라는 직원의 요청을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직장이나 성당에서 간편한 복장을 하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회적 규범이 변화할 때는 늘 그런 것처럼 너무 극단적으로 나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도 결혼식 장례식 성탄과 부활절에 성당에 갈 때만 정장을 입는 정도입니다만, 몇몇 사람들이 성당에 갈 때 입는 복장을 보고 있자면 분심이 생깁니다. 성당이라는 장소에 대한 예의와 존경심이 부족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회적인 규범들은 여전히 중요하며 우리의 가치에 대해 말해줍니다. 이런 성찰들을 나이 든 사람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해 버려야 할까요? ....
플랭크 커닝햄, 김영선 옮김,“나이듦의 품격” 244p-254P/ 제목은 내가 임의로 붙여 보았다.
이 부분의 글을 읽으며 성당 전례 미사에 참석하는 분들과 나의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신분상 수도복이 평상복이고 평상복이 수도복이지만, 하*동복 두서너 벌 중 낡은 것과 새 것이 있다. 시간과 날도 같고 주님도 매번 같은 분이나, 주일에는 좀 더 깨끗한 새 옷을 입고 간다. 국제수도회 소속으로 ‘선데이 드레스’(Sunday Dress) ‘처치 슈트’(Church Suit) 교육을 받은 영향과 나름 주일의 의미를 더 염두에 둔 행동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한다. 하물며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고 성체를 모시는 것은 형용 불가스런 일이다. 미사는 만남이다. 사람을 만나고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다. 전례에 참석하면서 옷이 비싸고 좋을 필요는 없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이 눈에 더 좋아 보이는 것도 시대에 떨어질뿐 아니라 무의미하고 가치없는 생각일까? 모두가 ‘그렇다’라고 해도 나는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