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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도에서 생긴일
1990-91년, 충남 낙도병원선 강국진
이제 서해안에도 가을이 왔다. 이제껏 육지에서 느끼던 가을과는 달랐다. 과연 뭐가 다른 걸까? 단풍, 떨어지는 낙옆, 높은 하늘, 식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그런 것이 육지의 가을이라면 바다에선 아침 저녁으로 조금 쌀쌀해진 날씨, 짙어진 바다색, 단풍 처럼 더욱 붉어진 석양의 노을, 차가와진 바닷 바람, 빠지면 차가와서 싫은 것 같은 바닷물 이랄까?
지난 겨울 그 유명한 경북 영천의 메서운 바람속에서 군가 부르고, 화산 유격장에서 피티 체조를 하던 1844번 올빼미, 날이 풀리면서 불광동 국립 보건원에서의 직무 교육 마지막 날 병원선에 당첨되고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뻣다. 그 이유는 너무나 재미있는 시간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특히나 평생 병원에서 일할 나에게는 더욱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부모님께 알렸더니 어머니가 바로 머리를 싸메시고 자리에 누우셨다. 부모님은 병원선이 1급 오지라는 것 때문에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나해서 걱정이셨나 보다.
나름데로 타고 싶었던 병원선에서의 생활도 이제 반 이상이 지나갔다. 앞으로 펼쳐질 1년간의 생활이 너무나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처음 병원선 의사가 되었을 때 아프리카 오지의 슈바이쩌 박사라도 된 듯이 가슴 설레었던 시절, 10명도 채 되지 않는 학생수를 가진 외딴섬 분교 교정에서 마치 자신도 그 학교 학생인양 같이 뛰어 놀던 토종개 땡칠이, 섬에 병원선이 오는 날이면 하나 둘 선착장으로 나오는 섬 주민 사이로 반갑게 맞아주는 왠지 섬사람 같지 않은 보건 진료소 간호사, 그리고 진료를 마친 뒤 짬이 날 때 섬에 상륙하여 의료 팀과 선박 팀이 벌이던 배구 시합도 나에겐 새로운 세상 속의 재미있고 정이 가는 사람 사건들이었다.
병원선의 식구는 선장, 기관장, 갑판장, 갑판원 둘, 기관원 둘, 항해사, 통신사, 주방장 명철이 해서 선원이 10명이고, 일반의사 둘, 치과의사, 간호사 셋, 약사, 임상 병리사, 방사선사 해서 의료팀이 9명, 도합 19명이 병원선에서 근무한다. 요일에 관계없이 6일 부터 15일 까지는 북으로 23일 부터 28일 까지는 남으로 진료를 떠난다. 대부분이 무인도이고 사람이 사는 섬은 충청남도엔 약 30개 정도이고 섬 주민은 약 3000명이다. 내 파수도라는 곳은 늙은 노부부와 개 한 마리가 산다. 그 섬에 갔을 때는 "할아버지 어디 편찮은데 없으세요!" 하고 외치면 "아유 괸찮어 씨방", "할머니는 요!" 하고 또 외치면 "아 할망구야 멀쩡하지!" 하는 날이면 그날 진료는 끝!, 배를 정박해 놓고 홍합을 딴다든지, 3m 물속까지 보이는 바다에서 물장구 치며 시간을 보낸다. 주 정박지는 충남 대천항이고, 북으로 갔을 때는 안산항, 남으로 갔을 때는 군산항에 동으로 갔을 때는 주로 외연도 항에 정박한다. 일기가 고르지 않을 때는 항구에 묶여 있기도 하고 불시에 이름도 모르는 섬에 정박하기도 한다. 진료비는 국가 보조로 전액 무료, 그래서 가끔 촌지로 심심찮게 회를 먹을 기회가 많다.
엇그제는 대천항에서 서쪽으로 곧장 4시간, 꾀 멀리 떨어진 외딴섬 외연도에서 간호사들이 안내하는 '신선경'을 보러 섬의 뒷편 안개 낀 바닷가에 돌을 주으러 갔었다. 한참 거기서 시간을 보낸 뒤, 섬의 선착장에서 병원선 까지 실어줄 보트를 기다릴 때, 어두워진 밤 바다위 희미안 안개 속의 불빛과 함께 하얀색의 병원선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유령선 같아 보였다. 오늘밤 저 병원선에서 밤을 보내야 된다는 사실이 돌연 너무 으시시 하게 느껴졌다. 보트를 타고 병원선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1층 거실의 TV와 쇼파위를 나뒹구는 주간 '선데이 서울'을 뒤적이다 갑판으로 나갔다. 한데 이게 뭐냐? 온통섬이 발칵 뒤집혔다. 두 세 무리의 횟불을 든 마을 사람들이 온섬을 뒤지고 다닌다. 옆에 있던 병원선의 막내 간호사이며, 약국 담당하는 '화강'씨가 "강 선생님 어떤 할머니가 며칠째 실종되어 사람들이 찾고 있데요, 그 할머니는 평소에 정신이 좀 이상했대요! 그러고 마약을 먹었다나...뭐라나...." "그런데 몇칠동안 찾아도 못 찾았으니 아마 죽었을 거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안개 속에 보이는 섬마을 저녁시간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음산했다. 하루가 다르게 문명이 발전되어 가는 서울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또 무슨일이 생길까? 아침인데도 짙은 안개가 낀 바다위를 보면서 엇그제의 음산한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오늘은 두달에 한 번 가는 섬이다. 이름은 '옹도', 여기섬들의 이름은 자연과 동물에서 따온 것이 많다. 가장 서쪽에 있는 등대지기만 사는 섬인 '격열비열도'는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이름 같다. 지금 가는 옹도는 태안반도 북동쪽에 있는 섬으로 서해안의 섬 치고는 주위의 바다가 꾀 깊은 섬이다. 파도도 거칠고 조류도 심한 지역이라 한다. 주민은 없고 등대를 지키기 위한 등대지기가 교대로 섬을 지킨다. 초 가을 날씨에 오늘은 왠지 아침부터 안개가 많이 끼기 시작했다.
병원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조타실로 가 보았다. 전방과 측방의 창문엔 비가올 때도 밖을 볼 수 있는 회전 창문이 있고 측심의, 레이다등 몇 개의 전자 장비가 있는 방이다. 지도를 펼 수 있는 큰 책상도 있다. "어이 강 선생" 하고는 금새 항해사의 얼굴은 굳어 졌다. 왠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길수도 있는 상황인가 보다. 처음 병원선에 부임 했을 때, 이 병원선에 13년째 계신다는 노처녀 간호사 김 여사님의 말을 빌자면 "항해사님은 전문대 까지 나오셨데요!" 하셨다. 안그레도 눈치가 빠르지 못한 나는 그말이 무슨 말인지 한 참 뒤에야 알았다. 병원선 선원중에서 학력이 제일 높다는 말이었다. 전직 남태평양 참치잡이 출신, 중졸의 회집 출신등 이제 나이가 좀들어서 나도 공무원입네 하며 좀 안정된 직업을 얻었다는 데에 만족하면서 하루 하루 배를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허허 이거 큰일 났네 그랴" 항해사님이 걱정스런 얼굴로 네뱉은 독백이었다. "이거 무전을 쳐야 겠구먼". 항해사님은 급히 통신사를 찾았다. 안개로 전방의 시야는 10m 정도도 되지 않았다. 이러다간 해상 충돌도 일어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통신사는 부랴 부랴 옹도에 무전을 쳤다. "여기는 병원선, 여기는 병원선, 옹도 나와라 오버" "옹도 나와라 오버" "치--, 여기는 옹도, 사이랜을 울여야 겠다. 오버" 옹도쪽 등대지기로 부터의 잡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레이다가 있어도 이렇게 짙은 안개 속에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레이다 시설이 없는 고기 잡이 배와 충돌할 수도 있고, 조류가 샌 곳이라서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큰 파도에 휘말릴 수도 있다. 제대로 진로를 잡아서 접근하려면 서로가 사이렌을 울려서 사람의 청각에 의존하여 서서히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삑 삑 삑 삑..., 에 엥...., 조용한 안개 속의 바다가 갑자기 사이렌 소리로 시끄러워 졌다. 배는 서서히 서쪽 옹도로 접근 하였다. 물살을 가르는 뱃머리엔 물거품도 없이 서서히 접근 했다. 이어서 조용해 지고 갑판에선 바빠지기 시작했다.
닻을 내리려고 하나보다. 어떤 곳이든 정박을 하면 닻을 내린다. 그런데 결국 닻을 내리지 않고 중단하였다. 측심의의 결과 수심이 100m 가량되어서 닻을 내릴수 없다고 한다. 배의 전면 갑판위에 쇠사슬은 약 150m이지만 배가 당기는 장력을 이길려면 쇠사슬을 비스듬히 느려 뜨려야 하는데 수심의 약 3배 길이의 쇠사슬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닻을 내리지 못하고 보트만 내려 구급약과 소모품을 꾸려 갑판원 김씨를 보내기로 하였다. 서쪽 앞으로 히미하지만 시커멌게 육지 같아 보이는 돌섬 옹도가 보였다. 김씨를 보낸 뒤 병원선 안은 잠시 한가 했다. 의료진 들은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자기 방에 가서 누워 있기도 했다. 몇몇 선원들은 거실에서 고스톱 판을 벌였다. 난 고스톱판을 잠시 지켜 보다가 재미 없어서 갑판으로 나갔다. 갑자기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이 배안에는 19명의 병원선 직원 말고 또 몇몇 생명체가 더 상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쥐라든지 말이다. 그러다가 한 번 출항하면 길게는 9일간 길이 30m, 폭 6-7m의 제한된 공간에서 모든 생명체가 같이 생활해야 하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앗 저게 뭐야!" 배 근처의 바다를 무심히 보다가 순간 어디서 본적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다위의 어떤 위치 표시를 위해 뛰워둔 부이가 물살을 가르며 어디론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맞어 죠스! 영화 죠스에서 공기통을 맞은 상어 죠스가 달아날 때 빠르게 딸려가던 공기통" 바로 그 장면과 흡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이는 고정 되어 있는 것인데 저렇게 빨리 어디론가 흘러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바다가 저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어디론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칠 때 이용하기도 하셨다던 남서해안의 '울돌묵'의 빠른 조류를 실감했다. 순간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렇다면 닿을 내리지 않은 이 배도 저정도의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멀리서 고기 잡이 배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만 시야에 살짝 잡혔다가 사라졌다. 이거 큰일이다. 지금 병원선이 어느 지점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모른는 것이 아닐까? 추측은 맞았다. 잠시후 거실에서 난리가 났다. 기다리던 김씨가 돌아올 시간이 벌써 지나도 많이 지났던 것이다. 배는 나쁜 시야속에서 어디론가 흐러가고 있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바로 김씨다. 구급약을 등대지기에게 건네주고 병원선으로 돌아오려던 김씨는 배가 결국 찾지못하고 다시 섬으로 되돌아 가려다 섬의 위치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어디선가 보이지도 않는 바다위의 미아가 됬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만만치 않은 파도에 조그만 보트가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을 잃고 해매다가 파도에 전복이 되고 실종되어 영영 못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옹도 나와라, 옹도 나와라 치--" 통신사와 항해사가 조타실로 뛰어 갔다.
모처럼 쌍광이 들어와 광팔려고 기다리던 박씨는 닭 쫏던 개 신세가 되었다. "아 사람 섬으로 보내놓고 무슨 고스톱이여..." 큰 누나 뻘의 김여사님의 질타가 떨어진다. 잠시후 옹도와 다시 교신이 되었다. 레이다등으로 위치를 파악하니 옹도로 부터 꾀 많이 흘러 왔다. 김씨가 병원선으로 다시 돌아 올려다 못찻은 것이 확실했다. "애 앵--" 하고 다시 사이렌을 양쪽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 접근 했던 방식데로 옹도에 서서히 접근 했다. 꾀 많이 떨어져 흘러나온 것을 실감 했다.
한참 그런식으로 배를 천천히 움직였다. 김씨의 모습은 좀 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환갑을 앞둔 나이드신 항해사님의 주름 살 사이로 땀 방울이 흘러 내렸다. 짜증을 내던 김여사님도 숨을 죽이면서 김씨의 모습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다 다 다 다....... 멀리서 조그맞게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저게 과연 김씨의 보트 소리 일까? 그렜으면 좋겠다는 것은 병원선 모두의 바램이었다.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김씨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원선 식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전직 북태평양 참치 잡이 출신인 김씨가 잔뜩 화가난 모습으로 병원선에 승선하였다. "에이 씨발 무신 고스돕이여." "사람 물귀신 뒤아버리면 워쩔려고 그랴." 김씨가 씩씩되며 거실로 들어오자 그냥 고스돕 판을 뒤 엎어 버렸다. 그런 김씨에게 아무도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조용해지면은 광값을 받아내려던 박씨의 야무진 생각은 여지 없이 무너졌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안산항에 정박했다. 이제 바다 안개도 어지간히 걷혔다. 지하 식당에서 병원선 식구들이 저녁 밥을 시작하려할 때즘 "자 김씨 한잔 받게, 한잔 받고 풀어, 미안 허이" 어디서 구했는지 선장이 소주가 가득 담긴 상표도 없는 1.5L PET 병을 들어 대접에다 콸콸 붓는다. "강 선생도 한잔 하실라요?" 술을 잘 못하는 줄 알면서도 가끔 권해서 즐거운 식사 시간을 진땀나게 만든다. 아마도 밤에 제대로 술한잔 마시러 나갈 모양 같다. 나중에 화강씨를 통해서, 구급약을 건네주고 병원선에 귀항하려다 못찾은 김씨는 젭싸제 다시 섬으로 가서 약 1시간을 꼼짝않고 기다렸다 한다. 그래도 그 바닥에선 경험이 있는 노련한 김씨의 솜씨였다.
이제 밤이 깊었다. 이제 제법 쌀쌀해 져서 밤중엔 엔진을 끈다. 밤에 에어콘을 더 이상 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 방은 수심 2m로,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누우면 칡흑 같은 어둠속에 아무런 소리 없은 정막감이 돈다. 이런 무덤속 같은 분위기도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이젠 밤도 깊어가고 이번 항해도 그럭 저럭 끝나 간다. 오늘도 치과의사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