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돋보기] 싸다고 덥석 물었다간… 부동산 직거래의 '함정
#1. 다음달 이사를 앞둔 직장인 이모씨(47)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고민이다. 매도 호가(팔려고 부르는 가격)를 직전 실거래가보다 1억원 가량 낮췄지만 살려는 사람이 없다. 일시적 2주택자인 이씨는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고 집을 팔아 새로 이사갈 집의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최근 온라인 아파트 직거래 카페에 가입해 매물을 올려놨다. 이씨는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가격을 조금 더 낮춰주더라도 바로 집을 팔 생각"이라고 말했다.
#2. 버튼 몇 번 누르면 집 구경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시대다. 동영상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볼 수 있고, 사진을 확대해 벽면 상태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엔 집을 사거나 이사를 하려면 해당 주택의 집주인(세입자)과 시간을 맞춰서 일일이 찾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버튼만 누르면 된다. 자연스레 직접 부동산을 거래하는 '직거래'도 늘어나고 있다. 공인중개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집 구경을 했으니 계약도 스스로 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직거래 시장이 팽창하고 있다. 공인중개사를 끼지 않고 거래 당사자(매도·매수자)끼리 직접 계약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직거래는 매수 희망자가 온라인에 올라온 매매 및 전·월세 물건의 사진이나 위치도 등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물건을 확인한 뒤 매도자와 직접 만나 계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부동산 직거래 급증… 거래 방식도 크게 바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매매계약은 1786건으로 이 중 직거래가 362건이었다. 전체 계약의 20% 정도, 즉 매매거래 10건 중 1건 이상이 직거래로 이뤄진 것이다. 국토부가 직거래 여부를 공개한 지난해 11월 이후 그 비중이 2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거래 절벽으로 매매량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직거래 비중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직거래 대상 부동산도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예전엔 소형 전·월세 주택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 들어선 아파트와 오피스텔 매매·전세는 물론 소형 빌딩이나 상가, 토지 등의 직거래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직거래 방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전봇대 전단이나 '벼룩시장'·'교차로' 등의 생활정보지에 매물 정보가 주로 실렸다. 2000년대 들어선 매물장터가 온라인으로 옮겨졌고, 이후 인터넷 카페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확산됐다.
현재 회원 수가 13만여명에 달하는 유명 포털사이트 직거래 전문 카페에는 하루 동안 수십건의 매물이 올라오고 있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집을 팔려는 매도인과 조금이라도 더 싼 매물을 찾는 매수인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 직거래 카페에는 아파트 맞교환 희망자를 위한 코너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세제 혜택 등을 보기 위해 특정 시점까지 집을 반드시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가치의 아파트를 찾아 교환거래에 나서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국 아파트 교환거래 건수는 20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90건)보다 8.9% 늘었다.
◇ 매수심리 위축, 직거래 시장으로 몰려
부동산 직거래의 가장 큰 장점은 중개보수(구.중개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거래를 잘만 활용하면 적게는 몇 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중개보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현행 법정 부동산 매매 중개보수는 △2억~9억원 미만 0.4% △9억~12억원 미만 0.5% △12억~15억원 미만 0.6% △15억원 초과 0.7%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중간값)인 11억원을 기준으로 매매할 경우 550만원을 중개보수로 지급해야 한다.
이에 중개보수 부담을 느낀 계약자들이 직거래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고(高)물가에다 금리 인상, 경기 침체 등으로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중개보수를 아끼려는 수요가 부쩍 많아진 게 사실이다.
부동산중개사무소를 통하는 것보다 계약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직거래의 매력이다. 매수인 또는 임차인 입장에선 미리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놓고 집주인을 만나는 데다 거래 당사자간에 직접 연락을 취하기 때문에 가격 협상이나 입주 시기 조절 등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는 거래 플랫폼의 다양화도 한몫한다. 온라인 직거래 카페 등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교류할 수 있게 되면서 직거래가 수월해진 것이다.
최근의 매수심리 위축도 집주인(매도인)을 직거래 시장으로 몰리게 한다. 거래가 워낙 안되다 보니 더 다양한 매수 희망자에게 매물을 알리기 위해 직거래 카페 등으로 발길을 돌리는 집주인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5.7로 전주보다 0.7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2019년 7월 15일 85.6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지난 5월 둘째 주(91.0) 이후 11주 연속 하락세다. 매매수급지수는 한국부동산원이 회원 중개사무소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매수)와 공급(매도) 비중을 지수화한 것이다.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울수록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매물이 쌓이면서 판매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집주인들이 직거래를 선택하는 이유다. 부동산 중개사무소들에 따르면 매물은 갈수록 늘고 있지만 거래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서 가입할 수 있는 공인중개사 공제
◇늘어나는 수상한 직거래… 적발시 가산세까지 물 수도
최근 들어선 가족이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직거래가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직거래는 중개거래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직거래 아파트의 대부분이 최고가 대비 20~40% 가량 낮은 가격에 매매된다는 통계도 있다. 올해 5월 직거래 비중이 급증한 것도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을 앞두고 다주택자의 증여 거래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시가(시세)와 양도가액의 차액이 시가의 5% 또는 3억원 이상 차이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벗어난 거래금액은 양도세나 증여세를 회피를 위해 가격을 낮춘 것으로 보고 시가대로 세금을 부과한다.
특히 편법으로 직거래를 진행했다가 적발되면 오히려 더 과중한 세금을 낼 수도 있다. 편법 증여 사실이 드러날 경우 가산세를 포함한 탈루세액까지 추징당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매매대금 이체영수증 등 실제로 매매가 이뤄졌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해 놓는 게 좋다. 또 과세당국이 매매대금의 출처까지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 기간에 대한 소득자료도 준비해야 한다.
등기 사항 증명 서류
◇사기 피해 속출… 부동산 직거래 주의보
부동산 직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피해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집주인 행세를 하는 사기꾼과 거짓 계약을 맺거나 권리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계약금이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입자가 다시 세를 놓는 '불법 전대' 사례도 있다. 대부분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 차익을 챙긴다. 이 경우 문제가 생겨도 보상을 받기 어렵다. 집주인과 계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는 중개 사고가 생길 경우 보상받을 수 있는 보증보험이나 공제보험에 가입돼 있다. 하지만 직거래에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 직거래를 했다가 허위 매물·이중 계약·서류 위조 등 거래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은 오롯이 거래 당사자(매수자 또는 매도자, 임대인 또는 임차인)가 져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엔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이를 악용해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모든 직거래가 사기라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셀프등기'처럼 부동산 직거래를 합리적인 소비 형태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법이나 제도가 아직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동산 직거래에서 문제가 생기면 공인중개사법을 적용받을 수도 없고 오로지 민사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부동산 거래에 대해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직접 많은 서류와 권리관계 등을 꼼꼼히 챙길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섣불리 직거래에 나서기보다는 믿을 만한 중개사무소를 통하는 것이 오히려 쉽고 유리한 방법일 수 있다.
조철현 기자 / 아시아투데이 부국장, 건설부동산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