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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작가의 작업실을 찾을 때면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습니다. 일종의 직업병, 혹은 학습에 의한 조건반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만나려는 작가와 작업실의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계절과 시간대의 변화에 따른 작업실 주변 비경과 작업실 가는 길에 만났던 맛집, 작업실의 생김새와 인테리어, 그곳 사람들, 빈티지 오디오, 수제 난로, 그 작업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커피, 작가와 작업실을 든든히 지키는 복스러운 강아지 등등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낭만적 그리움일 수도 있고 방문하러가는 과정에서의 노곤함과 멀미를 달래는 나름의 위로기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작업실이 멀거나 외질수록, 특히 운전을 하고 나선 길에선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작가와 작가의 작업은 기본입니다만, 일반인들의 주거 환경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지형에 자리한 분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러한 몇몇 경우 중하나가 이재효 작가의 작업실입니다. 이재효 작가의 작업실을 찾을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하루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계절 따라 바뀌는 풍광도 그러하지만, 이른바 도로가 바뀝니다. 그만큼 일찌감치 인공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작업공간을 구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작업실을 의식한 듯, 빠르게 열차가 밀고 들어오고 있고 도로망이 속속 확충, 보완되고 있습니다. 내비의 말을 잘 듣고 따라갑니다만, 종종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선호하는, 그래서 이른바 이름 있는 작가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양평의 중심으로부터 상당 시간을 달려야 도달하는 곳에 이재효 작가의 작업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평이라는 곳입니다. 양평(楊平)이라는 지명은 양근(楊根)과 지평(砥平)이라는 각각의 지역명이 합쳐져서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 이곳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막걸리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재효 작가의 작업실이 있어서인지 더욱 지명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굳이 지번을 따지지 않아도 한 눈에 작업실로 생각되는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을의 다른 집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볼륨과 디자인의 건물 두 동이 그것입니다. 초입이라 별무리 없이 찾을 수 있고 또 도로가 좁기는 하지만, 차를 이용한 접근에도 별무리가 없습니다. 사실 현재의 작업실은 몇 년 전에 새로 지은 것입니다. 처음 자리 잡았을 당시에 조성한 작업공간은 이곳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다른 작가분이 매력적으로 탈바꿈하여 본인의 작업실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작업공간은 두 동의 건물로 나뉩니다. 왼편의 건물은 이재효 작가의 어제와 오늘을 작품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설전시동입니다. 초기작으로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아마 일반인, 작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간일 것입니다. 높은 층고의 1층 전시장에는 그 유명한 대형 나무와 못 작업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세를 가져다 준 바로 그 작업들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이처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분주했던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이재효 작업의 진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의 여행 피로를 말끔하게 날려 보낸 공간이었습니다.
2층 전시장에는 소형 작업들과 이재효의 연금술사적인 감성과 호흡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른바 ‘오브제 드로잉’이 가득했습니다. 자녀분들과 함께 참여한 가족 단위의 관객 반응이 가장 컸던 공간입니다. 특히 아이들은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무르며 꼼꼼히 작품들을 살폈습니다. 모든 공간이 그러했지만, 특히 이곳은 유머와 위트, 해학 등이 어우러진 소품 공간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은 느낌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고 흔한 일상의 오브제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풀어낸 이재효의 천재성에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오른편 건물은 이재효의 작업이 탄생하는 본격적인 ‘산실’로, 작가의 연구공간을 비롯해서 작업이 디벨롭되는 메인 작업 공간, 다양한 드로잉 소품들을 함께 만나실 수 있는 세미나 공간, 외부 손님들을 만나시는 응접 공간, 상설전시장 등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압권은 좀처럼 일반 전시공간에서 만나기 힘든 초창기 나뭇잎 작업과 오늘날 이재효 작가의 세계적 지명도를 가능하게 한 초기 나무, 못 작업 등을 작가의 생생한 에피소드와 함께 만났던 상설전시장으로, 다른 곳과 함께 의미 있는 시공간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이 작업동에서 인상적이었던 곳은 작업을 함께 하는 스태프들을 위한 식당이었습니다. 작가가 직접 작업실의 모두를 설계하면서 우선적으로 신경을 많이 쓴 곳이라고 합니다.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이재효 작가의 작업 동료들을 향한 인간적인 배려와 정감이 진하게 묻어나는 따스한 공간으로 기억됩니다. 작가의 작업이 언제나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생각됩니다. 또한 작가와의 대화가 상당시간 진행되었던 세미나실은 맛난 식사와 함께 소중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산실이었습니다. 질문해주신 분들, 특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학생 참가자 그리고 여러 질문에 성실하게 답을 해주신 이재효 작가와 참가자 모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재효 작가의 나뭇잎 작업이 오랜 시간 부서지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보았고,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자연의 원형은 무엇일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등 단순 투어 개념보다는 교육적인 효과가 컸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참가자 중에는 조각하는 작가분도 있었습니다만, 평소 작업하면서 가져왔던 답답하고 궁금한 부분을 선배 조각가의 현장 멘토링을 통해 풀어내며 많은 동기부여를 받고 지속적인 만남을 약속하는 모습도 이번 프로그램의 성과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참가자들이 예술과 조각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 특히 이재효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날려버리는 보람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작가의 현재 작업과 성취, 명성이 그저 우연히 이루어 진 것이 아님을 모두가 분명하게 알고 인정할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짙은 가을 내음과 함께 이재효 작가의 작업혼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오후였고 다들 먼 걸음이었지만, 이재효 작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었던, 생산적인 시간들로 오래토록 기억될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경험과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글 박천남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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