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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6:1-4
어제 중앙일보에서 읽었습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은 파워볼 1등 당첨 소식으로 들썩였습니다.
1등 당첨액이 무려 7억5870만 달러, 우리 돈으로 8548억 원이었거든요. 이 행운의 주인공은 매사추세츠 주 치코피의 한 메디컬센터에서 일하는 53세 여성 메이비스 웨인치크입니다. 부러우십니까? 그러나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잭 휘태커.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잘 나가는 건설사 회장이었던 그는 2002년 당시 최고 금액이었던 3550억원짜리 파워볼에 당첨됐지만 4년 뒤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그 4년 사이 휘태커는 이혼 당하고 그의 외손녀와 딸은 마약 남용으로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산 후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그는 지난해 12월 다시 언론에 등장합니다. 부엌에서 시작된 화재로 거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집 한채마저 타버렸다는 뉴스였습니다. 휘태커는 일찍이 언론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손녀가 죽은 것도 돈 때문이었어요. 전처는 ‘차라리 그 복권을 찢어버렸어야 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내 생각도 같아요. 그럴 수만 있다면 찢어버리고 싶네요.”
그러면 복권당첨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일일까요? 꼭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캐나다의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더숍은 2007년 복권 당첨으로 약 36억원을 수령할 수 있게 됐지만 1년 가까이 일부러 찾지 않았습니다. 더숍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듯 월세 집에 살면서 하던 일을 하다가 수령 유효기간을 3주 남기고서야 비로소 당첨금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랬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갑작스럽게 거금이 굴러들어오면 일상이 변할 테니까 그에 대해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죠." 복권당첨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러나 축복받았다고 다가 아닙니다. 그 축복을 지키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더숍은 그 지혜가 있었습니다. 축복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22년만에 애굽에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단 소식을 듣습니다. 더욱이 그 큰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요셉이 온 식구를 애굽으로 초청했습니다. 축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받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받은 축복을 잘 지키며 복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야곱만이 아니라 우리도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원과 부활의 영생과 천국말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 어떻게 지킬까요?
야곱은 애굽으로 곧장 달려가지 않습니다. 야곱은 브엘세바로 갑니다. 왜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마음에는 온통 요셉을 보고싶었지만 길의 방향을 틀고,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어 예배드립니다. 야곱은 아들을 만나러 가기 전 하나님을 만납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살려주시고 지켜주시고 높이 세워주신 은혜를 생각하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이 먼저 예배드리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축복에는 뜻이 있습니다. 야곱은 그 뜻을 알고자 했습니다.
사실 야곱에게 애굽은 꺼려지는 곳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다가 아내를 빼앗기는 굴욕을 겪었고 반면 아버지 이삭은 기근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애굽에 내려가지 않아서 백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이 브엘세바입니다. 야곱은 그런 브엘세바에서 과연 애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여쭙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창세기 46장 2절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야곱의 고민을 풀어주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하세요. 하나님이 함께 다시 올라오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애굽에서 야곱의 집을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응답이 없습니다.기근으로 굶어죽을 처지에서 목숨이 붙어있는 건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상황에서 큰 민족이라니요?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이렇게 사람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야곱은 예배를 통해 더 크고 확실한 축복을 새롭게 받습니다.
실제로 야곱의 집이 애굽으로 갈때는 70명뿐이었지만 애굽을 나올 때는 20세 이상 장정만 60만명이었습니다.
축복을 지키는 첫 번째 지혜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분주한 일상을 멈추고 내게 주신 은혜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왜 예배드립니까? 축복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자꾸 예배드립니다. 와서 그 축복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사용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십니다. 말씀이 바로 그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은혜의 뜻, 축복의 뜻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렇게 축복을 지키면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이게 모두 예배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진정 이보다 더 좋은 순 없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만나고 창세기 46장 3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죽어도 좋다.
이 은혜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구원의 은총을 경험하면 정말 지금 죽어도 좋습니다. 죽어도 천국이요. 죽어도 예수님이 기다리시고 죽어도 다시 살리시니까요. 이 세상에 대하여 아쉬울게 없어요. 그는 감사합니다. 자유합니다. 아량을 베풉니다.
축복받은 자의 특징이 야곱의 집이 애굽에 정착하는 과정속에 잘 나타납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먼저 알려 가족들의 정착을 허락받습니다. 결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총리로서 성공한 동생으로서 자신의 권세를 보여줄 만도 한데 철저하게 바로가 주도하게 하고 자신은 겸손히 뒤로 물러섭니다. 진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총리가족이라고 우쭐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겸손합니다. 욕심부리지 않습니다. 주장하지않습니다.
요셉은 고센을 가족들의 새로운 정착지로 지목합니다. 고센지역은 애굽에서 변방입니다. 변두리도 감사합니다. 요셉은 이곳에서 가족들이 목축을 하게 합니다. 창세기 46장 34절에 보면 애굽에선 목축을 가증하게 여겼다고 나옵니다. 하찮게 본 겁니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가 백정을 하찮게 여긴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찮게 여겨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감사하는 자는 사탄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완전한 안전입니다.
바로는 흔쾌히 허락합니다. 창세기 47장 6절입니다.
“애굽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바로 왕은 자기 가축까지 관리하도록 합니다. 누가 왕의 재산을 함부로 넘보겠습니까? 이제 야곱일가는 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목축은 야곱의 집이 가장 잘 하는 일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때부터 해 오던 일입니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잘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축복을 누리며 야곱의 식구들은 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요셉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요셉은 야곱일가에 축복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인정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야곱의 집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진짜 있음을 배웁니다.
이 축복을 감사할 때 내게 주신 축복을 확신하게 되고 그 확신은 자신감이 됩니다. 제 정체성이 분명해집니다.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 나를 도와주신다는 그 자신감은 곧 실력이 됩니다.
이 지식은 부모세대보다 자녀세대에 엄청난 비전을 일으킵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축복은 당대에만 그치지않고 대를 이어갑니다. 축복이 요셉을 넘어 온 형제들에게로 또 대를 이어 자녀들에게로 모두에게 퍼져나갑니다. 모두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를 시기하면 모두에게 결국 나에게도 손해이고 서로를 축복하면 모두에게 결국 나에게도 축복이 됩니다. 그러니 나보다 잘난 친구나 이웃이나 형제를 시기하지 말고 오히려 축복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니 처음 애굽에 올 땐 70명이었던 식구가 400년 후엔 20세 이상 장정만 60만명에 이르도록 부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야곱의 집에만 멈추지 않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바로왕에게 소개합니다. 바로는 야곱의 나이를 묻습니다. 야곱이 대답합니다. 창세기 47장 9절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은 백삼십년을 살았다고 말하며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부연합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험악했습니다. 형의 축복을 빼앗기 위해 아버지를 속이고, 사랑했던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속임당하고, 딸 디나가 강간당했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어버린체 22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고난을 겪고 보니 험악한 세월에도 알알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맺혀있음을 130년 동안 깨달은 것입니다. 이 은혜의 성찰은 야곱의 내공이 되고, 역량이 되고, 축복이 되어 애굽의 황제 바로 앞에서도 그 품격을 잃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바로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가능한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만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 상대가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축복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온 세상이 축복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야곱의 품격이고 그리스도인의 품위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내리신 축복을 통해 애굽을 전혀 새로운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기근이 해를 더할수록 애굽사람들은 요셉에게 와서 양식을 사갔습니다.
창세기 47장 14절에 보면 애굽과 가나안땅의 모든 돈이 요셉에게로 몰렸다고 전합니다. 나중엔 짐승들과 땅까지 팔아 양식을 샀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바로에게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창세기 47장 19절입니다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백성들의 토지가 모두 국가에게로 귀속이 된 것입니다. 왕이 유일한 지주가 된 것입니다. 바로의 땅은 곧 요셉의 속안이 된 것이니 요셉은 자연스럽게 토지개혁과 경제개혁에까지 나섭니다. 요셉은 “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습니다” 21절 이는 국가가 백성에게 산 땅을 골고루 분배한 것입니다. 전에는 땅부자와 소작농으로 빈부의 격차가 있었다면 이제는 공평한 분배로 빈부의 격차가 사라졌습니다. 또 요셉은 토지의 소유권을 주지 않고 경작권만 분배했습니다. 이 토지는 국가의 공적재산이 되어서 백성들이 소유하지 않고 빌려쓰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게 됨으로 부이부 빈익빈이 사라졌습니다. 그럼으로 차별의 대물림도 사라졌습니다. 돈이 돈을 낳는 부동산투기같은 편법이 통하지 않고 오직 맑은 땀을 흘리는 성실한 노동으로만 경제 활동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백성들에게 국가의 토지를 경작할 수 있게 해주고 20%의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나머지 80%는 백성들이 갖도록 했습니다. (창세기 47장 24절) 애굽은 전혀 새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공명정대한 균등한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차별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백성들이 최선을 다하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을 애굽에 보내셔서 축복하신 바로 그 속 뜻입니다.
단순하게 기근에서 구원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굽이라고 하는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을 근본부터 사람이 살만한 나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이 끊임없이 축복하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도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축복받고 구원받아야 이 축복과 구원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확신하셔도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혼자 구원받은 것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다른 이에게도 이 구원을 흘려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축복을 나눠주십시오. 위로를 나눠주십시오. 희망과 격려를 나눠주셔서 구원이 온세상에 부흥케 하십시오. 이것이 축복에 담긴 목적, 그리스도인의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