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다시찾은 고향
동수가 내용증명을 보낸 지 닷새가 지나자 고향 친척집에서 전화가 왔다. 도대체 배은망덕하게도 이런 식의 협박편지를 보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동수는 엄연히 법적으로 자신의 아버지 토지를 자신이 찾아가 돌려달라고 해도 안 돌려주어서 생긴 일이 아니냐고 말을 했다.
처음에는 펄펄 뛰던 친척노인도 토지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았는지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토지는 돌려 줄 테니 그간의 사용료 부분에 대한 것은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수는 일부러 가족들과 여러 사람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므로 며칠 후에 결정을 해서 내려 갈 것이니 논과 밭에 설치된 시설이나 물건들을 치워 달라고 하였다. 친척 노인은 그러마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동수는 이젠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먼저 번 동행을 했던 분에게 전화를 하여 내용을 이야기하고 다음 일요일에 수고스럽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같이 내려가서 확실하게 정리를 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하였다.
곁에서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연희는 동수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였다. 동수는 연희를 일으켜 마루로 나왔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것이 아니니 기력을 회복하면 되는 것이다.
“빨리 회복해서 나랑 고향의 우리 땅을 보러가자.”
“으 응 그럴게. 너무 신경 쓰지 마!“
“이젠 그 땅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해 봐야겠어.”
“어떡하면 좋은 데?“
“내 생각엔 논은 어차피 팔아야 하니 그 돈으로 밭에다 건물을 지어 식당이나 다른 장사를 하는 게 좋겠어.”
“돈이 그 만큼 되는 거야?“
“응! 충분 해. 다 합치면 1억 원은 될 걸.”
“그렇게 많아. 우리가 그 곳으로 갈 거야?“
“생각을 좀 해보고. 어차피 여기서는 할 일이 없잖아.”
“자기가 알아서 해.“
“응 고마워.”
동수는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거처 뿐 만 아니라 처가 식구들의 문제도 같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고향으로 가기로 한 날이다. 동수는 아침부터 가슴이 설렌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먼저 번 같이 다녀온 분을 만났다.
“저 때문에 자꾸 수고를 하시네요?”
“내가 집에 있어도 특별이 할 일이 있어야지. 이렇게 아는 사람 일에 나서는 것도 보람이 있는 일인데 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번 전화할 때 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예! 제가 사용료 면제 부분은 오늘 가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아마도 마음 좀 조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 건 잘했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고향면소재지에 도착했다. 동수는 택시를 잡아타고 고향마을을 가자고 하였다. 택시기사는 동수네 마을이 제철소의 중심지대로서 땅을 한창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택시에서 내려 친척집으로 들어갔다. 친척 부부는 동수 일행이 다소 못 마땅해 하는 눈치였지만 자리를 권하며 앉으라고 하였다. 동수가 먼저 인사말을 꺼냈다.
“잘 계셨어요?”
“으 음...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냐?”
“예! 저도 사실 저희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여기에서 있었던 건 다 아시는 일이고, 제가 어린 나이에 아무도 없는 객지에 가서 남의 집일을 하면서 설움도 많이 받았고, 돌아가신 부모님 원망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도 혼자 있는 게 외로워서 결혼을 하고 보니 아이도 생기고 하였는데 제가 기댈 데도 없고 가진 것이 없다보니 지금도 애 엄마가 아파 누워있고 저도 몸을 다쳐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경로로 아버지가 남긴 땅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좋아했는데 막상 땅을 찾아보니 이런 문제가 생겨 조금 서운했습니다.”
“그래 네가 고생은 많이 했을 거다. 그런데 그 땅들이 예전 네 아버지 살아서 우리 집에 일을 할 때 일도 잘하고 해서 우리가 내어 준 것인데 네 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우리가 땅을 안 주었을 거다. 우리는 우리 집 일을 더 잘 챙겨주라고 해서 준 땅인데 그게 안 되니 우리도 서운한 건 사실 아니냐?”
“글쎄요. 저 입장에선 어릴 적에 아버지가 여기서 열심히 일을 하시는 것을 본적도 있는데 뒤에 챙겨보니 등기부등본이 아버지 앞으로 되어있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 땅이라고 하니 당연히 제가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친척은 십여 년간 토지를 자기 것인 양 사용하다가 내어 놓으려니 매우 아까운 생각이 들었는지 자꾸만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면서도 법적인 이야기만 나오면 슬그머니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곤 하였다. 두 사람간의 이야기는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마지못해 동행한 사람이 나섰다.
“어르신 이 문제는 자꾸 어르신 주장을 하시면 불리합니다.”
“그래요. 제가 편지를 보낸 것도 이런 애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었어요.“
“네가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입장은 그랬다. 그 말 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우리 사이에 고소니 소송이니 그렇게 까지 가야겠니?”
“저는 처음에 옆에 이분께 무든 걸 위임하고 싶었는데 전번 어르신 전화를 받고 보니 그럼 지나간 것은 이야기 하지 말고 땅은 원상태로 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처음 이 사람이 저에게 이 건에 대한 처리를 의뢰하였을 때 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깨끗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르신 전화를 받았는지 저한테 토지사용 부분은 이야기 안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러면 그 부분은 생략하고 논과 밭에 있는 지장 물을 치워주는 조건으로 각서를 받으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논과 밭에 있는 것들은 다 치워서 깨끗한 데 그 각서라는 걸 꼭 써야 하는 거요?”
“예! 쓰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혹시나 어르신이 또 무슨 다른 말씀이라도 하시면 그때 가서는 토지 사용료 문제는 동수 씨 편에서 이야기도 못 꺼내니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람일은 누가 압니까. 여기 각서를 제가 써 왔는데 보시고 두 분이 도장을 찍으시면 됩니다.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드린 말씀 그대로입니다.”
“어허 내가 땅을 내주기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고 이런걸...“
“어르신 서로 간 입장이야 다른 거 아닙니까? 그동안 사용료 이야기를 하자면 동수 이 사람도 억울한 거 아닙니까?”
“그 건 내가 고맙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냥 간단히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줄 것 준다 하고.”
“알았소. 내가 뭐라 할 말이 없지...어디다 찍으면 되는 거요.“
“여기 맨 밑에 성함 맨 마지막자 다음에다 찍으면 됩니다.”
“자 그럼 이젠 끝난 거요. 이제 그 땅 동수 네가 알아서 해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동수 씨! 갑시다.“
“예! 어르신 안녕히 계세요.”
“그래라 이렇게 된 거 서로가 잊어버려라.“
“예! 그럴 게요.”
동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날아 갈듯이 기분이 좋았다. 친척집에서 나와 밭과 논을 둘러보았다. 두 군데가 다 양지바르고 반듯해서 활용하기도 좋아보였다.
“동수 씨! 땅이 쓸모가 있겠어.“
“그렇겠지요. 어째든 선생님이 나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뭐 한 게 있나?“
“아닙니다. 저 혼자서는 마주보고 말하기도 싶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당사자가 제일 신경 쓰이는 법이지. 시간도 많고 하니 내려 온 김에 땅에 대한 상속문제도 알아보고 가지 그래.”
“참! 그러네요. 어디로 가야해요?“
“응 그 건 읍내 세무서가 있는가 모르겠다. 가기 전에 면사무소에서 제적등본이나 떼어가지고 가야 할 것 같네.”
“그래요. 선생님 제가 그렇게 해도 안 바쁘시겠습니까?“
“내야 괜찮아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인데.‘
‘고맙습니다.“
동수는 택시를 불러 타고 면사무소로 가서 호적등본과 제적등본 그리고 토지대장 등 관련서류에 관한 증명서를 발급 받았다. 그리고 다시 읍내로 가서 세무서로 향했다. 세무서에서는 제적등본과 관련서류들을 보더니 남은 가족이 없으므로 단독 상속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동수의 주민등록등본과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와서 상속신고를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토지가 농지로 되어있어 세금이 많지는 않을 테지만 상속세와 취득세가 조금씩은 나 올 것이란다. 그러면서 빨리 서둘러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단부지가 조성되면 공시지가가 올라가 많은 세금을 내어야 할 것이란다.
동수는 부산으로 돌아와 다음날 서류를 보완해서 세무서에다 상속신고를 하였다. 세무서 직원은 집에 가서 기다리면 세금을 납부하라는 통지가 가고 그리고 세금을 납부하고 나서 상속등기를 따로 하라는 것이었다. 동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고향마을로 갔다. 먼저 번에는 다른 사람과 같이 와서 둘러보지 못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산소를 둘러보았다. 길가에 있어 풀은 많이 자리지 않았으나 축대가 허물어지고 군데군데 패여서 모양이 말이 아니었다. 언젠가 시간을 잡아서 보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산소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제철소 임시사무소 옆을 지나는데 동네사람 하나가 동수더러 와보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다가가 보니 그 곳의 관계자가 동수에게 건너편의 논의 소유자가 맞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논을 매입하려고 하였는데 실제로 경작자와 등기부상 소유자가 달라서 소유자를 찾느라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동수는 돌아가신 아버지 명의로 등기가 되어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상속신고를 하고 왔다고 이야기를 하니 동수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해서 알려주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논을 팔더라도 일단은 등기가 동수의 앞으로 넘어와야 한다. 그래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차피 논은 제철공단에 매입될 수밖에 없고 동수로서는 주변의 매매가격을 보고 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전번에 평당 10만원을 한다고들 하였으니 아마도 그 정도 수준이면 논이 605평, 그리고 밭이 520평이니까 그 중 300평 정도를 팔면 9천만 원 정도가 되므로 200평정도 남은 곳에다 건물을 세우는데 건축비는 평단 2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건물을 짓고 나도 5천만 원은 여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논은 주변의 농지가 매입되고 있으므로 당장이라 등기만 되면 매매가 가능하고 밭은 당장 매매도 가능하지만, 제철공단이 들어서고 나서 팔아도 되는 것이다.
동수는 우선 세금도 내고 가정살림에도 쓰기위하여 돈을 조금 빌리기로 하였다. 누구한테 돈을 빌려야 하나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실 친한 친구라도 돈을 빌리기에는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음 날 은영에게 전화를 하였다. 일단 시내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시골일은 잘 되었어?“
“응! 이젠 등기절차만 남았어.“
“이젠 동수 씨 고생 끝났네. 전번에 1억 원은 된다고 했지 아마.”
“뭘 고생이야. 애 엄마한테 체면이 조금 서지.“
“그럼 어쩔 거야?”
“뭘 말이야?“
“그곳으로 갈 거야?”
“아직은 몰라.“
“가 버리면 나는 어떡해?”
“나도 멀지도 않고 여러 가지 생각 중이야. 그래서 말인데...“
“그래. 뭔데?”
“돈 좀 빌릴 데가 있을까?“
“얼마면 되는데?”
“몇 십만 정도.“
“나한테 있어 아무 때나 줄게.”
“괜찮겠어?“
“그럼 갑부한테 돈 떼일까봐. 우리 집 겉은 거 열채는 사겠는데.”
“체! 누구보고 갑부래?“
“갑부지 그럼.”
동수는 그날 당장 은영으로부터 50만원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선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처제가 학교에서 돌라오자 동수는 가족들을 데리고 바닷가 횟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마음 놓고 가족들 앞에서 위세를 떨쳐보는 것이었다.
“장모님! 뭘 드시고 싶으세요?“
“내가 뭘 아나. 그냥 싼 걸로 시키게.”
“처제! 무엇 먹고 싶어?“
“형부! 지갑 주웠어요?”
“응! 그 것도 많은 걸로. 자기도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지?“
“자기 돈이 어디서 생겼어?”
“이젠 돈 걱정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가 어떻게?”
“장모님! 사실은 고향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남겨둔 땅이 있었는데 근래에 되찾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고향에 자주 다녔어요. 이젠 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엄마! 팔면 1억 원은 된대.“
“1억 원씩이나?”
‘예! 그러니 걱정 마시고 맛있는 음식 마음대로 드세요.“
“형부 정말 잘됐다. 그동안 고생했는데.”
“처제! 그동안 미안했어. 가장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자네가 못 한 게 뭐 있나.”
“아무튼 모두 고맙습니다. 어이! 성원이 너도 많이 먹어라.“
“알았어요. 아빠!”
감성돔과 우럭을 시켰다. 회가 들어오기 전에 주는 해물들도 매우 맛이 있었다. 성원이도 회를 곧잘 먹어댄다. 동수는 회를 집어 연희의 입에 넣어 주었다. 연희는 요즘 들어 조금씩 몸이 나아져가고 있다. 사실 동수는 연희가 자신과 은영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면서 아무런 기색도 없이 넘어 가는 것이 항상 미안했다.
“자기도 많이 먹어라.“
“그래 알았다.”
“김 서방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글쎄요. 논은 팔아야 하니 그 걸 팔아서 밭에다 상가건물이나 지을까 하고요.”
“상가 건물을?“
“예! 제철소가 엄청나게 크니까 직원들만 해도 몇 천 명 되거든요.’
“그래서 직접 하려고?“
“생각중이에요. 장모님도 좋은 생각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나야 뭐 아나. 김 서방 하는 대로 하지 뭐.”
“고맙습니다.“
동수는 이제 비로소 자신이 두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날이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고향의 세무서에서 편지가 왔다. 상속세를 납부하고 등기절차를 밟으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받은 이튿날 고향에 있는 세무서로 가서 세금고지서를 받아 농협에다 납부를 하고 관련서류를 갖추어 법무사사무실을 찾아갔다. 법무사사무실에서는 서류상 하자는 없으니 걱정할 것 없고 취득세와 등록세를 계산하여 주면서 같이 납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동수는 모처럼 돈을 내는 것에도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3〜4일쯤 있다가 등기필증을 찾으러 오라는 법무사사무실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동수는 부산행 버스에 올랐다. 이젠 등기필증이 나오면 등기등본을 발급받아 제철공단과 토지매매에 관한 절차를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또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제철공단이 토지를 매입하여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서둘러 주변지역에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야 할 것인데 누가 먼저 무슨 업종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대비해서 업종을 선정하고 건물을 지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동수의 마음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포함한 처가 식구들이 이곳으로 옮겨 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먼저 하여야 했다.
주변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공단에 많은 근로자가 상주할 것이므로 식당과 목욕탕, 여관, 옷가게, 슈퍼마켓, 기타 여러 가지 업종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먹는장사가 제일 나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연희는 한 가지 장사를 크게 하여 장사가 잘 안되면 안 좋으므로 여러 가지 업종을 할 수 있도록 건물을 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며칠이 지나 동수는 등기필증을 찾기 위하여 법무사사무실로 갔다. 드디어 등기필증을 손에 쥐었다. 소유권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터와 논, 그리고 밭에 대한 등기필증을 각각 교부 받았다. 처다만 보아도 당장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동수는 곧바로 제철공단 사무소로 달려갔다. 공단에 들어갈 논에 대한 소유자가 자신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공단 관계자는 이미 주변의 토지들은 모두 매매계약이 끝났으므로 비슷한 조건에서 이루어진 매매가격에서 계약을 체결하자고 하면서 인근 지역의 논들에 대한 매입정보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동수는 하루정도 여유를 주면 가족들과 의논을 해서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을로 와서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 본 결과 조금 전에 보았던 가격과 비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제철공단의 주변에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공단건물이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부터 주변엔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었다.
동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은영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어째든 자신이 사귀어 온 여인이다. 어려울 적 서로를 격려해 준 사이인 여인은 계속해서 길가의 포장마차에서 일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여인을 포장마차로 끌어 낸 것도 자신이 아닌 가. 아무튼 그녀가 길거리 장사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고향으로 같이 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녀의 남편도 문제였지만 연희에게는 그녀의 모습을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동수는 제철공단 사무소로 갔다. 동수 외에도 몇 사람이 토지매매 관계로 사무실에 와 있었다. 사무실 관계자는 개별토지에 대한 가격은 회사에서 기존 토지들에 대한 위치나 활용도 등을 충분히 검토하여 구역별로 동일한 가격으로 매입을 하기 때문에 개별 흥정은 곤란하다고 하면서 가격협상이 안 되는 부분은 별도로 처리할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수용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 곳 토지는 입지여건상 여타 지역에 비하여 매매가가 월등하게 높게 책정되었음을 강조하였다. 동수는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토지의 매매가격은 평당 9만 6천원으로 계산하여 합계 5천 8백만 원을 수표로 주었다. 동수의 수표를 받아 든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이런 거금을 어떻게 만져 볼 수 있단 말인가? 동수는 수표를 받자마자 읍에 있는 농협으로 향했다.
농협 여직원은 동수와 같이 토지거래를 많이 보아온 터라 별로 내색하는 표정도 없이 예금처리 하여 주었다. 동수는 예금통장에 찍힌 숫자와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농협을 나왔다.
이젠 정말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동라 온 동수는 예금통장을 연희에게 보여주고는 집안 깊숙한 곳에 예금통장을 감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인장도 따로 보관하였다.
다음 날 동수는 은영에게 전화를 하여 서면으로 나와 달라고 하였다. 은영은 초겨울 감기가 걸린 것인지 쉰 목소리를 하면서 다방으로 나왔다.
“요즘도 바빠 자기는?”
“응! 이젠 거의 끝났어. 어제도 고향을 다녀왔어.“
“그래? 다행이네. 어쩔 거야?”
“이젠 집만 지으면 되는데...“
“그런데 왜?”
“자기 어떻게 할래?“
“내가 뭘? 왜?”
“자기 같이 가기는 그렇고 어디 변두리에 점포나 알아보지.“
“무슨 소린데?”
“응! 자기가 포장마차에서 있는 게 싫어서 그래.“
“포장마차가 어때서? 쓸데없는 생각하고 있네...혹시 나하고 끝내자는 이야기 하자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것.“
“그럼 왜 그래? 갑자기.”
“자기하고 헤어지자는 건 절대 아니고...내가 알아서 할게.“
“뭔 말인데?”
“아니! 됐어.“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다.”
“나가서 밥이나 먹자.“
동수는 그녀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신이 해결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수는 연희에게 고향의 밭 200평 정도를 우선 활용하여 삼층 건물을 지어 일층엔 식당을 하고, 이층엔 커피숍 그리고 삼층엔 가정집을 지어서 3층에서 처가 식구들과 같이 살자고 제안하였다. 연희는 장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겠지만 동수가 알아서 진행하라고 한다.
동수는 공향으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일을 진행했다. 마음먹은 대로 건물을 직기 위하여 사상에서 포장마차를 할 때 알게 된 건설업을 하는 사람과 만나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고향을 같이 다녀왔다. 건설업자는 동수의 밭이 위치도 좋을 뿐만 아니라 남향이어서 여러 가지로 여건이 매우 좋다면서 자신과 정식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시골에서 건축을 하는 것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건물모양도 더 낳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수는 건축계약을 체결했다.
건물을 짓는 데는 3개월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수는 부산의 언저리에 가게가 딸린 조그만 집을 구하기 위해 복덕방을 찾아 다녔다. 다행이 가격도 싸고 조그만 점포가 딸린 집을 자신의 명의로 계약했다. 여기에다 은영의 가계를 차려주기 위해서였다.
이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동수는 이틀이 멀다하고 고향을 찾았다. 부모님의 산소도 고치고, 어릴 적 살던 집은 뜯어내고 밭을 일구었다. 나중에 채소라도 가꾸고 싶었다.
그동안 동수는 동네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고 있었다. 어릴 때 고향을 나갔지만 그래도 대부분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동수처럼 젊은 사람은 몇몇이 안 되었지만 앞으로 공단이 조성되고 나면 젊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외지에서 장사를 하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로 이주를 해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인적 조직도 필요한 것이다.
계절은 2월로 접어들어 초봄을 향하여 다가서고 있다. 이젠 공단조성을 위한 공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어 하루 종일 넓은 들판엔 중장비소리와 많은 건축자재들이 실려 들어오고 있다. 동수의 건물도 이젠 골격이 완성되고 내장재 공사에 들어가 있다.
연희와 성원이 그리고 장모님과 처제도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터전을 둘러보고는 흐뭇하게 여긴다. 동수는 이젠 이 개월이 지나면 이곳으로 이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은영은 동수가 자신을 위하여 마련한 가계에 이사를 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동수의 설득으로 마지못해 허락을 하면서 동수의 다짐을 받는다.
“자기 나보고 이걸 조건으로 안 만난다면 안 들어 올 거다.”
“알았다. 내가 자주 여기 오려고 우리 고향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자리 잡았다. 이젠 알겠나?”
“그러면 다행이고. 내가 돈 땜에 그런 거 절대 아니다.“
“알고 있다. 내가 어려운 시기에 자기한 테 얼마나 도움을 받았다고.”
“내가 무슨 도움까지...“
“아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내가 얼마나 어려웠었는데.”
“아무튼 나도 자기가 고맙고. 앞으로도 자기 없으면 안 된다.“
“알았다. 우리 서로의 가정을 지키면서 절대 변하지 말자.”
“고마워. 나도 열심히 장사 잘해서 이 은혜 갚을게.“
“안 갚아도 돼! 잘 살기만 하면...”
“고마워.“
“고맙긴. 아이 구! 예쁘다.”
동수는 그녀를 안았다. 정말 마음이 따뜻한 여인이다.
삼월이 되어 공사가 끝났다. 새로 지은 집을 둘러 본 가족들은 매우 만족했다. 일층의 식당과 이층의 커피숍은 말할 것 없거니와 삼층 주택은 널따란 공간으로 각자의 방이 생기고 전망도 좋았다.
제철공단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일부 건물이 완공되어 기계들의 시운전이 시작되었고, 공단의 근로자들도 숙식장소를 찾아 마을로 찾아들어 마을은 번창해졌다.
사월 초순이 되었다. 동수는 드디어 이사 날을 잡았다. 이사 날은 일요일로 하여 고향마을에서 돼지를 잡고 먹을 것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부산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청했다. 동수는 은영에게도 이날에는 와서 축하를 해달라고 하였다.
"동수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리고 여러분들 먼데까지 와 주시고.”
“집이 너무 좋다. 축하해 동수 씨!“
“동수 씨! 나야.”
“응! 왔어 은영누나!“
모두들 동수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동수는 정말 꿈만 같았다. 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떠났던 고향마을에 다시 돌아와 이젠 보란 듯이 살아 갈 수 있게 된 것이 순전히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덕분이지만 그 영광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동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동수 너희 부모님들 정말 고생도 많이 하고 착하게 산 사람들이다. 어쩌다 이런 세상도 못 보고.”
“그래! 참 우리랑 친하게 지냈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색도 안하고.“
“결국 자식 대에 와서 복을 받는가 보네.”
“동수 너나 잘 살아라. 네 부모님들이 하늘에서 보고 계실게다.“
크고 화려한 집 그리고 동수를 축하해주는 사람들. 그러나 동수의 마음 한 구석에선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찾은 고향.
동수는 결코 금의환향은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부평초)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