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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강형원씨의 우리나라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사진작업을 하고있습니다.
[Eye interview] Documenting Korean history, culture for future generations
(아이 인터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후세를 위해 기록
Award-winning photojournalist Kang Hyung-won mines his expertise to render visual history of Korea 퓰리처상을 수상을 한 사진기자 강형원은 그의 전문기술로 시각적 한국역사자료를 발굴하다
By Kim Hoo-ran 김후란
Published : Aug 13, 2021 - 10:10 Updated : Aug 13, 2021 - 18:18
Korea Herald
His penname “Gamro,” given to him by a Buddhist monk, means “spreading a valuable message to the people.” Korean-American photojournalist Kang Hyung-won is trying to live up to that name.
그의 필명 “감로”는 스님이 지어주었는데 “값진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는 뜻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강형원씨는 이 필명에 걸맞게 살려고 한다.
Kang is a man on a mission.
강씨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The winner of two Pulitzer Prizes – one in 1993 for coverage of the 1992 LA riots with the Los Angeles Times and the other in 1999 for coverage of the Bill Clinton impeachment and the Clinton-Lewinsky scandal for the Associated Press -- aims to highlight the culture and history of Korea through his expertise, photojournalism.
두번의 풀리쳐상 수상자 – 1993년 LA 타임즈에 1992년 LA폭동을 보도한 것과 1999년 AP에 클린튼-루인스키 스캔들과 클린튼의 탄핵을 보도한 것으로 수상 – 는 그의 전문분야이 사진 저널리즘을 통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주목하려고 한다.
Kang embarked on an entirely new project, “Visual History of Korea,” following his early retirement in 2019. After a “life in the front seat of history,” he is now studying and documenting the past.
강씨는 2019년 은퇴 후 새로운 프로젝트인 “비주얼 한국역사”라는 정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역사의 현장에서의 삶”후에 그는 과거를 학습하고 기록하고 있다.
“I wanted to leave a legacy for my children,” Kang said in a Zoom interview with The Korea Herald from Gyeongsan, North Gyeongsang Province on July 28. He would document Korean history and culture in pictures for his children – 18, 24 and 26 years old – and future generations., he decided.
7월28일 경상북도 경산에서 코리아헤럴드와 함께 줌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8세, 24세, 26세인 세자녀와 미래세대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할 것이다, 그는 결정했다.
“The more I learned about Korea history, I realized that there has been a lot of destruction and distortion of Korean history by its neighbors,” Kang said. So, Kang set about work to “leave irrefutable content in pictures that cannot be disputed.”
“한국역사를 공부할수록 한국역사는 이웃들에 의해 파괴되고 왜곡되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논란의 여지가 없고 반박할 수 없는 사진을 남기기”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Once he had set his goal, Kang plowed ahead. Not even the COVID-19 pandemic that greatly restricted international travel would stop him. Since his arrival in Korea on June 15, 2020, Kang has covered 25,000 kilometers, working 24/7. His columns involve rigorous fact-checking and expert interviews, on top of the photographs. By the time of our interview, the self-funded project had yielded 54 weekly columns for a Korean-language newspaper published in the US.
그는 목표를 세우자 바로 시작했다. 코비드 19로 해외여행이 그를 가로막지 못했다. 2020년 6월15일 한국에 온 이래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25,000 km 를 돌아다녔다. 사진 외에도 의욕적인 사실확인과 전문가 인터뷰를 포함한 컬럼을 기고했다. 우리가 인터뷰할 때 자비에 의한 프로젝트는 미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한국어신문에 54주분 컬럼을 만들어 냈다.
“Photojournalism requires logistical effort. Being there is the most challenging aspect,” said Kang. It also requires a lot of patience and preparation. Being prepared often means multiple visits to the site and waiting. “Showing up and deciding how to make the image unforgettable,” Kang said of his process.
“사진저널리즘은 물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도전이 필요하다.”강씨는 말했다. 그것은 또한 많은 인내와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하는 것은 같은 장소에 여러 번 방문하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찰하고 어떻게 하면 이미지를 잊지 않게 할 수 있을지 결정한다.”고 그의 프로세스를 말한다.
Sometimes, his patience and preparation reap huge rewards. The magnificent shot of gorani, or water deer, in a full leap, all four legs midair, over a Daegaya tumulus in Goryeong, North Gyeongsang Province is one such example. The photo bears an uncanny resemblance to a mural painting of a hunting scene from a Goguryeo tumulus. “I was waiting for a nice sunset image. As the sun was setting, the gorani appeared,” Kang said.
Sometimes, his patience and preparation reap huge rewards. The magnificent shot of gorani, or water deer, in a full leap, all four legs midair, over a Daegaya tumulus in Goryeong, North Gyeongsang Province is one such example. The photo bears an uncanny resemblance to a mural painting of a hunting scene from a Goguryeo tumulus. “I was waiting for a nice sunset image. As the sun was setting, the gorani appeared,” Kang said.
가끔 그의 인내와 준비는 큰 보상을 준다. 경상북도 고령에 있는 대가야 고분에서 찍은 네다리가 공중에 떠있고 최대한 도약하고 있는 고라니 사진이 그 예이다. 그 사진은 고구려고분의 사냥벽화와 묘하게 닮았다. “나는 멋있는 일몰의 이미지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고라니가 나타났다.”강씨는 말했다.
Kang counts photographing “jobo,” a newspaper thought to have been printed in 1577 during the Joseon era, as the highlight of his project so far. It could very well precede by 83 years the Leipziger Zeitung, known as the world’s first printed newspaper, published in Germany 1660.
강씨는 그의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로 조선시대인 1577년 발행된 것으로 생각되는 신문 “조보”를 찍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최초의 인쇄신문으로 알려진1660년 독일에서 발행된 라이프찌히 짜이퉁보다 83년이 앞선 것이다.
“Thirty people were exiled for printing the paper,” said Kang. The newspaper was printed using a mix of metal and wooden movable types. Official jobo were written by hand and issued by the court and when the king discovered that printed copies had been circulated, he ordered severe punishment for the some 30 people involved in the printing, according to an entry in the Joseon Wangjo Sillok dated 28th day of the 11th month in the year 1577 in the lunar calendar.
“30명이 신문발행으로 추방되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신문발행에는 금소과 목재로 만든 이동가능한 활자로 발행되었다. 공식 조보는 궁정에서 발행되었고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음력 1577년 11월 28일 왕이 인쇄된 신문이 배포된 것을 발견하고 인쇄에 간여한 30여명에게 엄한 처벌을 명령했다.
The jobo, recycled as a bookbinding material, was discovered by Ven. Jibong of Yonghwasa Temple in North Gyeongsang Province in 2017.
2017년 경상북도에 있는 용화사의 지봉스님이 책을 묶는 장치로 재생된 조보를 발견했다.
“It was just an amazing experience to photograph and tell the story of the first press and press oppression,” said Kang. “최초의 언론과 언론탄압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사진찍는 것은 놀랄만한 경험이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One of the biggest challenges of the project is gaining access to artifacts, according to Kang. He was unsuccessful in gaining access to Hunminjeongeum Haerye, a book on the promulgation of Hangeul.
강씨에 의하면 가장 큰 도전중의 하나는 유물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는 한글공포에 관한 책인 훈민정음 해례본에 접근할 수 없었다.
As a photojournalist, he is used to dealing with such difficulties and knows that, sometimes, personal connections can go a long way. “Most of my time is spent building contacts, introducing myself,” Kang said.
사진작가로서 그는 인맥을 갖는 것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이 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를 소개하고 인맥을 쌓는데 보낸다.”고 강씨는 말했다.
In his work, Kang strictly adheres to the NPPA (National Press Photographers Association) standards. “No set up, no manipulation,” Kang said.
강씨는 그의 작업에 NPPA(미국사진기자협회)의 원칙인 “구성이나 조작금지”를 철저히 지킨다.
Kang plans to be in Korea at least through the end of the year. From then on, he plans to expand to scope of his coverage to the res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beyond. Once he is satisfied with discovering South and North Korea, he said, he plans to cover neighboring countries as well as the Korean diaspora, documenting the spread of the Korean people and its culture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강씨는 적어도 연말까지는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그후 나머지 한반도와 다른 지역으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그는 남북한을 답사한 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기록하고 이웃국가와 재외한국인을 다룰 예정이다.
He also hopes to have the first volume of the book based on the “Visual History of Korea” project published in a coffee-table book form this fall. “The book will be trilingual – English, Korean and photojournalism,” Kang said, adding, “Storytelling pictures are a visual language all by themselves.”
그는 올 가을 커피테이블 북형태로 “비주얼 한국역사”의 첫번째 편을 발행할 예정이다. “그 책은 3개언어-국어,영어,사진-로 출판된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은 그 자체가 보는 언어이다.
After decades of chasing after the top 10 news of the day, Kang said, “I am doing things that are of interest to me, that give me great joy.”
수십년을 탑10 뉴스를 찾아 일한 후 강씨는 “나는 나에게 큰 기쁨을 주는 내가 흥미로운 일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Every moment is a once-in-a-life moment,” said Kang of photography. “Chances favor those who are prepared,” said Kang. “You have to learn to anticipate and have the camera ready.”
“모든 순간은 인생에 한번 뿐이다.” 사진가 강씨는 말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을 좋아한다.”고 강씨는 말했다. “카메라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He could just as well have been talking about life.
그는 인생에 대해서도 얘기한 것일 수 있다.
2021. 8. 15.
김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