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의 블링크 Blink를 읽고
아주 짧은 순간에 본 것은 어떤 상태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과 판단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아주 긴장된 상태에서 짧은 시간에 본 것을 토대로 판단하는 것은 오판의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편안한 상태에서는 그런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목회자로서 나는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가 또는 성령 안에서 행하는가에 따라 상황을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나는 설교 중에 예배당을 나가는 한 사람이 주보를 사모에게 주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분은 내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예배를 마치고 사모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사모는 나에게 말하기를, 그분은 주보가 아니라 헌금봉투를 주고 간 것이라고. 나는 잘못 판단한 것이다.
지난 주일에도 나는 설교를 하는 동안에 성도들이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강단에 올라갔다. 그리고 설교를 하는 내내 그 마음이 나를 눌렀고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설교를 마쳤다. 오후 예배 때는 그 설교문을 다시 읽고 나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성도들을 독려하고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에 나는 한 권사님을 통하여 주일에 들은 메시지를 통하여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목사님이 주일 오후에 보여준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다시 보이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 역시 나의 오판이다.
이런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현재 강박관념에 무척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하고 그 결과를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을 의뢰하는 생각이 아닌 대표적인 경우다. 나는 지금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셈이다.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주님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믿고 나의 최선을 다하는 훈련을 받는 중이라고 생각된다. 그럴 때 비로소 나도 성도들도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서로를 정죄하는 오판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으며 그 주권 아래서 모든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더 건강한 태도와 방식으로 목회에 임하게 할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께서는 아예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마 7장). 그 비판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판하는 사람도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이해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기에 훈련이 필요하다. 운동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결국 아주 짧은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경륜이 쌓여지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분별력이 더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전문분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 온전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문제는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실수로부터 유발된 경우가 많다. 미국의 흑인 폭동을 야기한 경관들의 용의자 체포에서 보여준 무자비한 행동은 그들이 훈련되지 못한 신참 근무자들이었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한다. 지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때 방송에서는 최초 발포명령자가 누구였는지를 아직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정보를 주입 받은 특전사 군인들이 시위대 앞에서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어떤 짧은 상황에 대한 돌발적인 오판에서 비롯된 일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보아야 할 때에 잘못된 신호를 읽고 잘못된 판단을 하면 삶에 파괴적인 결과가 다가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보고 있는지 잘 읽고 있는지 늘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염려와 공포나 두려움이 엄습하면 우리는 순간적인 지폐증환자가 되어 사람의 마음을 읽는데 실패하고 오해를 하게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설교를 듣기도 한다. 이 말은 나의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리라. 믿음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운명을 결정한다.
또한 믿음은 우리의 얼굴에 그려지는 표정과 인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님의 돌보심을 믿고 그 사랑 가운데서 확신과 평안을 누리면서 사랑하며 도우며 섬기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과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의 얼굴은 당연히 달라지지 않겠는가?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고 했다. 여기서 육신의 생각이란 자기가 인생의 주인과 책임자가 되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가운데 부담과 고통 또는 교만과 허세로 판단하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성령의 생각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그 뜻을 따라 사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더 건강한 판단을 하면서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결국 그의 운명과 표정과 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