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문장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많은 것을 압축하여 잘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음성 기호로 나타난 사고의 표현을 뜻합니다. 여기서 ‘기호’는 어떠한 뜻을 나타내거나 사물을 지시하기 위해 사람들 간의 소통을 목적으로 쓰여집니다. 우리는 이 기호들의 조합을 통해 말을 하게 되는데 어떤 기호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품성과 인격이 어떠한지를 짐작케 합니다. 이왕이면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사람의 향기가 느껴질 수 있다면 사람들 간에 존중과 배려가 깃들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말의 품격을 만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저자 이기주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쓴다. 고민이 깃든 말과 글에 탐닉한다.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꽃을 올려놓는다. 지은 책으로는《언어의 온도》등이 있다.
책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서문 말은 나름의 귀소 본능을 지닌다
1강 이청득심(以聽得心)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2강 과언무환(寡言無患)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
3강 언위심성(言爲心聲) 말은 마음의 소리다
4강 대언담담(大言炎炎) 큰 말은 힘이 있다
주차별 책 읽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1주차 서문, 1강 이청득심
2주차 2강 과언무환
3주차 3강 언위심성, 4강 대언담담 일부
4주차 4강 대언담담 나머지
그럼 이제 1주차 책 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서문 말은 나름의 귀소 본능을 지닌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사람마다 인품이 있듯 말에도 언품言品이 있음을 깨닫는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
1강 이청득심(以聽得心)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존중─잘 말하기 위해선 잘 들어야 한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잘 들어야만 한다.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상대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열쇠를 손에 거머쥘 수 있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경청─상대는 당신의 입이 아니라 귀를 원한다
귓속을 파고드는 음성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포착해 본질을 읽어내야 한다. 상대방이 가슴에서 퍼 올린 말을 귀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공감─당신의 아픔은 곧 내 아픔
공감은 연민이나 측은지심보다 ‘인仁 ’과 가깝다.
공자는 ‘인’을 인간이 지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간주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인’을 실천하면서 비로소 인간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협상─극단 사이에서 절충점 찾기
극단 사이에서 절충의 지점을 찾는 일은, 중국 노나라 때 학자 자사子思가 주창한 중용中庸과 맥이 닿아있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과 다툼질 앞에서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 사실을 업신여기지 않을 때 오해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겸상─함께 온기를 나누는 자리
우리 사회의 온갖 이해와 욕망이 뒤얽힌 문제를 풀려면 당사자들이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밥 먹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식사 자리가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 생각 나눔 〉
이번 주는 ‘말은 귀소 본능을 지닌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청득심,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는 주제로 존중, 경청, 공감, 협상, 겸상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귀소 본능이라 함은 歸 (돌아갈 귀), 巢 (새집 소), 本 (근본 본), 能 (능할 능)으로 개가 아무리 먼 곳에 가더라도 집을 찾아서 올 수 있듯이 동물이 자기가 살던 집이나 둥지로 되돌아오는 성질이나 능력을 말합니다. 저자는 이를 빗대어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돌고 돌아 그말을 한 사람에게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을 잘 해야 합니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고 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제대로 설명해도 60% 정도만 전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60% 정도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대화를 할 때 사람들은 40% 미만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상대방이 말하는 근원적인 욕구를 이해하고 감정을 이해하여 본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공감능력은 다른 사람의 심리나 감정 상태를 잘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감적 경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또다른 예가 있습니다. 오바마가 2006년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연설하던 중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배고픈 아이들의 눈으로, 해고된 철강노동자의 눈으로, 당신 기숙사 방을 청소하는 이민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리는 공감을 장려하지 않는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눈이 둘, 귀가 둘, 입과 코가 하나씩 있습니다. 이와 연결 지어 의미 부여를 하자면 하나의 눈과 귀는 나의 관점에서 또 하나의 눈과 귀는 관계된 그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듣고 조화로운 사고 과정을 거친 후 사람의 향기를 더해 하나의 입으로 말하라는 뜻으로 해석해 봅니다. 공감적 경청은 이를 기반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