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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반좌담회 어서
시조깅고전답서 (번뇌즉보리어서) 四條金吾殿答書
강성한 대신력으로
새로운 도전을!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유배지인 사도에서 가마쿠라 문하의 중심자인 시조깅고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어서를 집필하신 때는 1272년 5월로 전해지지만, 이듬해인 1273년 5월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대성인이 다쓰노구치법난, 사도유죄라는 가장 큰 난을 당하실 때 대성인 문하도 투옥과 추방, 소령 몰수 등 갖가지 박해를 받았고 대다수가 퇴전했습니다.
이러한 대난의 와중에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투쟁한 사람이 시조깅고입니다.
대성인이 난에 맞서 싸우는 제자들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법의 어본불다운 대경애를 밝힌 〈개목초〉를 깅고를 통해 문하 일동에게 보내신 때는 1272년 2월이었습니다.
깅고 등 문하들은 대성인의 위대한 확신을 접하며 분기했고, 악세에 승리하고 미래를 여는 대성인 일문의 재기와 부흥을 위해 서로 격려하면서 묘법을 홍통하려고 도전했을 것입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 앞부분에서 항상 스승을 섬기며 지킨 깅고의 충절에 감사하면서 법화경 행자로서 대난을 만나서 오히려 기쁘고, 생사(生死)의 고뇌로 인한 결박을 끊고 성불(成佛)이라는 커다란 경애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설하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불과 일곱 문자이지만 천태(天台)나 전교(傳敎)가 설한 법문보다 핵심에 한층 깊이 파고든 법문이고, 남묘호렌게쿄가 바로 모든 부처를 성불시킨 궁극의 법이며, 일체중생을 성불로 이끄는 제불(諸佛)의 지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하고자 법화경의 경문대로 대난에 맞서며 묘법을 홍통하신 니치렌대성인. 그리고 스승과 함께 난을 만나고 ‘법화경 행자’답게 묘법유통에 온힘을 다한 시조깅고.
대성인은 깅고가 보여준 불이(不二)의 투쟁을 칭찬하면서 해이함 없이 철저하게 신심을 관철하고 ‘강성한 대신력’을 일으켜 온 나라가 ‘법화종의 시조깅고•시조깅고’라고 칭송하는 존재가 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본문] 1117쪽 18행~1118쪽 2행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시라. 부시를 치는 데 중단해버리면 불을 얻지 못하느니라. 강성한 대신력을 내어서 법화종의 시조깅고•시조깅고라고 가마쿠라 중의 상하만민 내지 일본국의 일체중생의 입으로 칭송받으시라.
[어구해설]
【부시를 치다】 도구를 사용해 마찰력으로 불이 일어나게 하는 일.
【신력】 불법을 믿는 마음의 힘.
[통 해]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십시오. 부시를 쳐 불을 일으키다가 도중에 중단하면 불을 얻지 못합니다. 강성한 대신력을 내어 법화종의 시조깅고, 시조깅고라고 가마쿠라의 상하만민을 비롯해 일본국의 모든 사람에게 칭송받으십시오.
[포인트 강의]
제자가 ‘주체자’답게 일어서라
니치렌대성인불법을 실천하는 우리의 ‘승리’는 무엇인가. 이 어서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신심’을 평생 관철하는 일, 그리고 지역과 사회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신뢰’의 실증을 보이는 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불을 일으키는 작업을 도중에 중단하면 불은 얻지 못합니다. 대성인은 법난을 당하는 와중에도 홍교에 도전하는 시조깅고에게 한층 더 깊이 쐐기를 박아 넣듯이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십시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순풍이 불 때처럼 순조로운 상황에서도 묘법을 홍통하는 일은 험난한 위업(偉業)입니다. 하물며 역풍이 불 때처럼 역경을 당하는 속에서 하는 도전은 정말로 존귀한 일입니다. 어려울 때, 중요할 때에 ‘지금이 바로!’ ‘더욱더!’라고 커다란 신력을 일으켜 ‘광선유포의 병사’라는 긍지를 가슴에 품고 희망과 용기를 확대하는 투쟁을 철저히 지속하다 보면 성불이라는 행복을 만끽하는 경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법화종의 시조깅고’라고, 자신이 사는 가마쿠라에서 칭송받고 나아가서 일본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 칭찬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로 말하자면 ‘창가학회의 누구누구 씨’라고, 지역과 사회에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사랑받고 신뢰를 얻으며 성장하고 활약하는 우리 모습이 묘법의 위대함과 학회의 훌륭함을 증명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회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학회가 있다’는 주체자다운 자각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청춘시절부터 투쟁한 역사를 이렇게 회고하셨습니다. “학회의 일은 모두 내 과제라고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광선유포를 진척시킬까 고민하고 생각하며 기원했다. 또 하나하나의 모든 일을 도다 선생님 상황에 서서 대처했다. 그것이 광선유포에 사는, 용기 있는 왕자(王者)가 걸어야 할 길이다.”
스승의 투쟁을 이어받아 제자 한사람 한사람이 일어선다, 지금 바로 그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시다!
- 법련 2011년 6호
※ 참고자료
■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1272년(문영9년) 5월, 니치렌대성인이 유죄 중에 사도에서 가마쿠라에 있는 시조깅고에게 주신 편지. '번뇌즉보리어서'라고도 한다. 법화경의 행자로서, 대난에 부닥친 것을 도리어 기쁨으로 하고, 법화경의 행자로서 꿋꿋이 살아가는 것만이 성불로 가는 길이라고 격려하시고 있다. 대성인의 법문은 불법의 깨달음의 구극의 본체를 설한것이며, 남묘호렌게쿄에는 일체제불의 지혜가 구비되어 있으므로 가장 심오한 법문이고, 제법실상 * 십여시의 진여(眞如)를 현현한 법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다음에는 경지(境智)의 이법, 생사즉열반, 번뇌즉보리의 법문을 설하고, 또한 지금 대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법화경을 비방한 죄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시조깅고는 말법에서 법화경행자가 되어, 여래의 사자(使者)로서, 끝까지 강성한 신심을 관철해 갈것을 격려하시고 있다. - 어서사전 915쪽-
■ 시조깅고(四條金五)
1230년(관희2년)경~1300년(정안2년), 니치렌대성인 재세당시의 신도. 시죠나카쓰카사사부로사에몬노죠요리모토를 말함. 사에몬노죠란 관명(官名)으로부터, 그 당명(唐名)에의해 깅고(金五)라고 통칭됐다. 호죠 씨의 지족 * 에마 가(家)에 종사했던 무사. 처는 니치켄뇨, 쓰키마로님 * 교오님은 그의 자식이다. 무술에 능하고, 의술에도 통달하였었다. 1256년(건장8년) 27세 때. 이케가미 형제 * 구도요리타카 등과 전후하여 대성인에게 귀의했다고 한다. 이후 대성인의 외호에 힘썼고, 1271년(문영8년)의 다쓰노구치법난시에는, 필사의 각오로 뒤를 따랐다. 1272년(문영9년) 인본존개현의 어서인 개목초 2권을 비롯하여 다수의 격려의 어서를 받았다. 그러나 고쿠라쿠사 료칸의 신봉자였던 에마미쓰토키를 절복한 후, 영지의 일부를 몰수당했으며, 1277년(건치3년) 구와가야쓰의 류조보의 법좌에 있어서, 삼미보가 류조보를 논파한 사건으로 동료에게 참언당하여, 주군 * 에마지카토키 (미쓰토키의 아들)이 노여움을 사서, 소령을 몰수당했다. 이 당시 대성인은 깅고를 대신하여 요리모토 진장을 쓰시었다. 이 가운데 깅고부자의 에마가에 대한 충성과 류조보 등의 비도(非道) * 방법(謗法) 등, 주군의 방법을 간하고, 정법에 귀의케 하는 것이 가신으로서의 도리라는 것 등을 말씀하시고 있다. 1278년(건치4년) 경에는 에마 씨의 노여움도 풀려, 소령도 배가되었고, 주인으로부터 더욱 깊은 신임을 받게 되었다. 1282년(홍안5년)에 대성인 입멸의 때도 마지막까지 간병에 임하였고, 장송(葬送)에도 동참하였다. 후에 출가하여 고슈(야마나시현) 우쓰부나에서 은거하였다고 한다. - 어서사전 914쪽-
■ 시조깅고전답서 어서 전문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文永九年 五十一歲御作
니치렌(日蓮)의 제난(諸難)에 대해 방문(訪問)해 주셨는데 지금이 처음 아닌 후의(厚意)는 고맙소이다.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서 이러한 대난(大難)을 만나는 것은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소. 아무리 생(生)을 받고 죽음을 만나도, 이만한 과보(果報)의 생사(生死)는 없으며, 또한 삼악(三惡)·사취(四趣)일터인데, 지금은 생사절단(生死切斷)하여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는 몸이 되었으니 기쁩니다.
천태(天台) 전교(傳敎) 등(等)은 적문(迹門)의 이(理)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을 넓히시는데도 역시 원질(怨嫉)의 난(難)을 만나시었다. 일본(日本)에서는 전교(傳敎)로부터 기신(義眞)·엔쵸(圓澄)·지카쿠(慈覺) 등(等)이 상전(相傳)하여 넓히시었다. 제십팔대(第十八代)의 좌주(座主)가 지에대사(慈慧大師)이고 제자(弟子)가 많이 있었는데, 그 중(中)에 단나(檀那)·에신(慧心)·소가(僧賀)·젠유(禪瑜) 등(等)이라고 하여 사인(四人)이 있었으며, 법문(法門) 또한 둘로 나뉘어졌다. 단나승정(檀那僧正)은 교(敎)를 전(傳)하고, 에신승도(慧心僧都)는 관(觀)을 배웠더라. 그런데 교(敎)와 관(觀)은 일월(日月)과 같아서 교(敎)는 얕고 관(觀)은 깊었다. 그러므로 단나(檀那)의 법문(法門)은 넓으면서도 얕고, 에신(慧心)의 법문(法門)은·좁으면서도 깊으니라.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법문(法門)은·좁은 것 같지만 매우 깊으니라. 그 까닭은 저 천태(天台)·전교(傳敎) 등(等)이 홍통(弘通)한 법(法)보다는 한층 더 깊이 들어갔기 때문이로다. 본문(本門) 수량품(壽量品)의 삼대사(三大事)란 이것이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만을 수행(修行)하면 좁은 것 같지만 그러나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사범(師範)·시방살타(十方薩?)의 도사(導師)·일체중생(一切衆生) 개성불도(皆成佛道)의 지남(指南)이시므로 깊으니라. 경(經)에 가로되「제불지혜(諸佛智慧)·심심무량(甚深無量)」운운(云云). 이 경문(經文)에 제불(諸佛)이라 함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일체(一切)의 제불(諸佛)·진언종(眞言宗)의 대일여래(大日如來) 그리고 정토종(淨土宗)의 아미타(阿彌陀)·내지(乃至) 제종(諸宗)과 제경(諸經)의 불(佛)·보살(菩薩)·과거(過去)·미래(未來)·현재(現在)의 총제불(總諸佛)·현재(現在)의 석가여래(釋迦如來) 등(等)을 제불(諸佛)이라고 들어 설(說)하고 다음에 지혜(智慧)라고 하였는데, 이 지혜(智慧)라 함은 무엇인가 하면 제법실상(諸法實相)·십여과성(十如果成)의 법체(法體)이니라. 그 법체(法體)라 함은 또 무엇인가 하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바로 이것이니라. 석(釋)에 가로되「실상(實相)의 심리(深理)·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말하였느니라, 그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함도 석가다보(釋迦多寶)의 이불(二佛)이라고 상전(相傳)했느니라. 제법(諸法)을 다보(多寶)로 하고, 실상(實相)을 석가(釋迦)로 하였으며, 이는 또한 경지(境智)의 이법(二法)이니, 다보(多寶)는 경(境)이고 석가(釋迦)는 지(智)니라. 경지이이(境智而二)이면서 또한 경지불이(境智不二)의 내증(內證)이니라. 이것들은 굉장히 중요한 법문(法門)이며,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함도 이것이니라. 바로 남녀교회(男女交會)의 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바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하느니라. 생사(生死)의 당체(當體)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깨닫는 것 외(外)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은 없느니라. 보현경(普賢經)에 가로되「번뇌(煩惱)를 끊지 아니 하고 오욕(五欲)을 떠나지 아니 하고, 제근(諸根)을 청정(淸淨)하게 함을 득(得)하여 제죄(諸罪)를 멸제(滅除)한다」지관(止觀)에 가로되「무명진로(無明塵勞)는 즉(卽) 이는 보리(菩提), 생사(生死)는 즉열반(卽涅槃)이니라」수량품(壽量品)에 가로되「항상 스스로 이 염(念)을 하노라, 어찌해야만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무상도(無上道)에 들어가, 속(速)히 불신(佛身)을 성취(成就)함을 득(得)하게 하리」라고. 방편품(方便品)에 가로되「세간(世間)의 상(相)이 상주(常住)니라」등(等)은 이 의(意)이니라. 이와 같이 법체(法體)라고 함도 결코 다름이 아니라,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말하느니라. 이러한 매우 존귀(尊貴)한 법화경(法華經)을 과거(過去)에 무릎 밑에 두고·혹은 얕보아 빈축(頻蹙)하고, 혹은 신봉(信奉)하지 않았으며, 혹은 법화경(法華經)의 법문(法門)을 배워서 일인(一人)이라도 교화(敎化)하여 법명(法命)을 계승(繼承)하는 사람을, 악심(惡心)을 품고 이래 저래 트집잡아·우롱(愚弄)하며 비웃고, 혹은 후생(後生)을 위한 수행(修行)이기는 해도 우선 금생(今生)에는 이루기 어려우니·당분간 제쳐두라는 따위로, 무량(無量)하게 몹시 싫어하며 비방(誹謗)하였으므로, 금생(今生)에 니치렌(日蓮)은 종종(種種)의 대난(大難)을 당하느니라.
제경(諸經)의 정상(頂上)인 경(經)을 낮추었기 때문에, 현세(現世)에 또 남에게 낮추어 보여지고 채용(採用)되지 않느니라. 비유품(譬喩品)에「남에게 친근(親近)하게 하여도 그 사람은 마음에 받아들여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설(說)했느니라. 그런데 귀하(貴下)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되어, 마침내 대난(大難)도 당하고 니치렌(日蓮)을 돕기까지 한 일은, 법사품(法師品)의 문(文)에「견화사중(遣化四衆)·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라고 설(說)하셨는데 이 중(中)의 우바새(優婆塞)란 귀하(貴下)의 일이 아니라면 누구를 가리키리요. 이미 법(法)을 듣고 신수(信受)하여 거역(拒逆)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만약 그렇다면 니치렌(日蓮)이 법화경(法華經)의 법사(法師)임은 의심할 바 없지 않은가. 즉 여래(如來)와도 흡사하고 행여래사(行如來事)도 행(行)함이 되리라.
다보탑(多寶塔) 중(中)에서 이불(二佛)이 병좌(竝坐)했을 때·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물려 주신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를 니치렌(日蓮)이 대강 넓혀서 말하느니라. 이는 즉 상행보살(上行菩薩)의 사자(使者)일까, 귀하(貴下)도 또한 니치렌(日蓮)을 따르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서 제인(諸人)에게 이야기하고 계시니 이 어찌 유통(流通)이 아니겠느뇨. 법화경(法華經)의 신심(信心)을 관철(貫徹)하시라·부시를 치는데·중단해 버리면 불을 얻지 못하느니라.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내어서 법화종(法華宗)의 시조깅고(四條金吾)·시조깅고(四條金吾)라고 가마쿠라(鎌倉) 중(中)의 상하만인(上下萬人) 내지(乃至)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입으로 칭송(稱頌)받으시라. 나쁜 이름조차도 떨치는데 하물며 좋은 이름에 있어서랴, 어찌 하물며 법화경(法華經)으로 인(因)한 이름에 있어서랴. 부인(夫人)에게도 이것을 잘 이야기하여, 일월(日月)·양안(兩眼)·양(兩)쪽 날개같이 갖추시라. 일월(日月)이 있으면 명도(冥途)가 있을소냐. 양안(兩眼)이 있으면 삼불(三佛)의 안모(顔貌)를 배견(拜見)함은 의심이 없다. 양쪽 날개가 있으면 적광(寂光)의 보찰(寶刹)로 날아가는 것은·수유찰나(須臾刹那)이리라. 자세(仔細)히는 다시 또 말씀드리겠소, 공황근언(恐惶謹言).
五月 二日 日蓮花押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 이케다 SGI 회장 지도
◈ 광선유포를 위해 노고하고 끝까지 기원해 간다면 부처의 지혜와 대생명력이 솟아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어떤 막힘도 타파하여 대승리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정진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남보다 몇배의 고생을 거듭하고 고민하고 생각해서 끝까지 싸워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긴 여행으로 피로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여행은 동양광포의 여명을 알리는 중요한 아시아에 대한 지도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멤버가 있으면 생명을 깎는 심정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격려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미래가 열립니다. 또 각지를 시찰하면서도 그 나라의 광포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멍 하니 있으면 이 여행은 끝나고 맙니다. 순간순간이 승부입니다.
대성인께서는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시라. 부시를 치는데 중단해 버리면 불을 얻지 못하느니라" (어서 1117쪽)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불을 일으키려고 해도 손을 놓아 버리면 불이 붙지 않듯이 마지막에 방심하여 타성에 흐르면 패배하고 맙니다. - 신 인간혁명 3권 (제4장 평화의 빛)
◈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시라. 부시를 치는데 중단해 버리면 불을 얻지 못하느니라" (어서1117쪽)
무명과 투쟁하지 않으면 법성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싸우지 않으면 법성과 일체인 흔들리지 않는 생명을 구축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해이한 마음'에는 마가 침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싸우면 삼장사마가 나옵니다. 이 삼장사마에 싸워 이김으로써 성불의 경애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창제행을 통해 근본적인 생명을 연마하면 마음은 무한히 깊어지고, 생명은 무한히 강해지며, 경애는 무한히 넓어집니다. - 일생성불초 강의
◈ 가마쿠라시대, 시조 깅고가 종사한 에마 가문은 대성인을 박해하는 호조가문과 연결된 집안이었다. 이에 더하여 주군 에마 씨는 참성증상만인 고쿠라쿠사 료칸의 신자로 대부분의 가신도 주군을 따랐다.
오직 깅고 한사람, 엄연하게 정의의 깃발을 든 것이다. 무예에 능하고 의술에 달통하여 주군의 신뢰도 두터웠다. 그런 이유로 깅고는 동료의 질투의 표적이 되었다. 비열한 참언으로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깅고의 가슴에는 연조(蓮祖)의 가르침이 울리고 있었다.
"강성한 대신력을 내어서 법화종의 시조 깅고 * 시조 깅고라고 가마쿠라 중의 상하만인 내지 일본국의 일체중생의 입으로 칭송받으시라." (어서 1118쪽)
사제의 서원에 끝까지 살아가는 인생은 두려울 것이 없다.
도다 선생님도 자주 말씀하셨다. "우리는 절대 승리의 신심을 하고 있다. 그 자각에서 일이든 무엇인든 반드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대성인은 깅고에게 승리의 요체를 하나하나 심어주셨다. 그것은 보통의 인간학이다. '사자왕의 마음을 끄집어내라' '용감하여라' '현명하여라' '쉽게 화를 내지 마라' '인내 강하게' '방심하지 마라' '대성실로 이겨라' 등.
어느 때, 깅고가 관직을 사직하고 입도(入道)하려는 의향을 꺼내자 연조는 '현실 사명의 무대에서 벗어나지 마라'고 훈계하셨다. 그리고 "남자는 입도가 되어 대악을 만드니니라" (어서 1148쪽)라고 삭발(출가)한 자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그 세계를 통렬히 탄가(彈呵)하셨다.
깅고는 대성인 가르침대로 끝까지 투쟁하여 '불법은 승부'라는 증거를 만들었다. 깅고를 참언한 무리는 모두 준엄한 불벌(佛罰)을 받아 쓰러졌다.
깅고의 억울한 죄는 풀려 주군의 신뢰를 회복하여 이전보다 많은 3배의 영지를 받았다. - (수필) 인간세기의 빛<4>
◈ 그 원동력은 대성인과 마음을 합한 '사제불이'의 기원과 용기 있고 성실한 행동에 있었습니다.
어서에는 "강성한 대신력(大信力)을 내어서 법화종의 시조깅고 ․ 시조깅고라고 가마쿠라 중의 상하만민 내지 일본국의 일체중생의 입으로 칭송 받으시라"(어서 1118쪽)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 지도는 영원한 지표입니다. 학회원은 이 성훈을 마음속에 물들여 이를 악물고 투쟁했습니다. 그래서 강합니다.
확고한 철학에 뿌리내린 청년의 연대가 더욱더 빛을 발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의 인간혁명의 빛이 지역을 비추고 직장을 비추고 사회를 비춥니다. '창가연대' '인간 선성(善性)의 결합'이 나라의 숙명을 바꾸고 인류의 미래를 바꿉니다. 세계인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약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어서와 청년 <9>
◈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세요."(어서 1117쪽, 통해)
이길 때까지 싸운다! 관철해서 마지막에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일념으로 끝까지 싸워야 비로소 무상의 영관이 빛납니다.
나는 대실업가였던 마쓰시타 고노스케 선생님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마쓰시타 선생님이 거듭 강조하신 철학 중 하나는 '곤란이 발전하는 근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곤란에 직면할 경우, 거기서 도망치지 말고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러일으켜서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혜와 힘도 발휘되어 자타 함께 더욱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마쓰시타 선생님은 어떤 사업이든 단체든 '10년'을 주기로 곤란한 벽에 부딪치는데, 그럴 때 온 힘을 다해 거듭 정면으로 맞서면 발전하는 길이 열린다고 달관하셨습니다.(마쓰시타 씨는 이케다 SGI 회장이 제3대 회장을 사임한 이듬해 1980년에 회견을 끝낸 후 바로 "학회는 이 법난을 극복하면 열배로 발전한다. 일찍이 없던 어려운 국면은 일찍이 없던 발전의 기초가 된다. 지금은 온 힘을 다해 선생님을 지키고 학회의 기초를 반석 같이 구축할 때다."라고 주위에 말했다.) - 방면장 협의회 (2009.9.30)
■ 시조깅고와 관련한 신 인간혁명 제22권 제4장 명보(9 - 14회) 자료
시조나카쓰카사사부로자에몬노조요리모토 즉 시조깅고는 청년시절 니치렌 대성인에게 귀의했다고 알려진다. 시조깅고의 위대함은 단순히 의술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평생 동안 스승인 대성인을 지키고, 사제의 길을 관철했으며, 끝까지 광선유포라는 대원(大願)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 있다.
1271년 9월 12일, 대성인이 참수되실 뻔한 다쓰노구치 법난에서도 불석신명(不惜身命)이라는 행동을 관철했다.
시조깅고는 한밤중에 대성인이 사방으로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처형자으로 연행되셨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달려가 말고삐에 매달려 따라 갔다. 시조깅고는 대성인이 만일 참수되시기라도 하면 뒤따라 함께 순교할 각오였다. 그런 삶의 태도에서는 시조깅고가 가마쿠라시대 무사였다는 시대적 배경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유사시'에 제자로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이다.
자기 몸에 위험해질까 두려워서 방관하는가. 아니면 죽음마저 각오하며 스승과 함께 싸우려고 하는가. 어느 쪽을 택하느냐로 진정한 사제냐 아니냐의 분기점이 있다.
만일 시조깅고에게 망설임이 있어 즉시 행동하지 못했다면 형장에 끌려가시는 대성인을 수행할 수 없었다. "늦게 오면 그 뜻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겁쟁이인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히지 않는 용기 있는 실천이 사제의 길을 연다.
대성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조깅고의 깊은 마음과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스승은 눈물을 흘리는 제자를 질타하며 격려했다.
"지각 없는 분이로군. 이처럼 기쁜 일이니 웃으시오."(어서 914쪽)
대성인의 가슴속은 목숨마저 위태로운 대난을 만나서 법화경을 자신의 몸으로 읽을 수 있다는 커다란 환희로 가득 넘쳤다.
스승이 지닌 크고 당당한 생명을 우러러보며 시조깅고의 생명도 각성했다. 그렇게 해서 시조깅고는 다쓰노구치의 참수형장에 '빛나는 물체'가 나타나 대성인을 처형하는 데 실패하고, 대성인이 어본불로서 본지(本地)를 나타내며 발적현본(發迹顯本)하시는 곳에 참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조깅고의 삶에 일관된 태도는 용기와 성실이었다.
1272년 '2월 소동'이 일어났다.
싯켄(執權) 직에 있던 호조도키무네사 명을 내려 교토에 있던 이복 형 호조 도키스케를 모반을 꾀했다는 죄명으로 토벌했다. 또 그에 앞서 나고에 도키아키라, 나고에 노리도키 형제도 호조 도키스케에게 가담했다는 명목으로 가마쿠라에서 토벌됐다.
시조깅고가 섬기던 주군 에마(나고에) 미쓰도키는 나고에 도키아키라와 나고에 노리도키의 형이었다.
시조깅고는 '2월 소동'때 에마 씨의 본래 영지가 있는 이주에 있었는데, 주군의 신변을 염려해 서둘러 가마쿠라로 달려갔다. 이때도 시조깅고는 만일 주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도 죽을 각오로 급히 달려간 것이다.
다행히 에마 씨는 큰일을 당하지 않고 무사했으며 사태는 수습되기 시작했다.
시조깅고가 보인 이런 필사적인 행동은. 일단 유사시에는 주군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려는 시조깅고의 충성스러움과 용감하고도 성실한 인품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영국 스코틀랜드 시인 고버트 번스는 성실한 인간이 곧 "인간 왕자(王者)"라고 읊었다.
시조깅고는 스승인 니치렌 대성인도, 주군도 끝까지 성실히 섬겼다.
불성실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배반할 뿐 아니라 자기 마음에도 어두운 회한의 그림자를 남긴다.
누구에게도, 무슨 일에도, 나는 끝까지 성실하게 행동했다고 상쾌하게 가슴을 활짝 펼 수 있는 나날의 생활태도 위에 인생의 승리가 있다.
니치렌 대성인은 '2월 소동'이 일어난 1272년 2월, 유배지인 사도에서 인본존(人本尊)을 개현(開顯)한 <개목초(開目抄)> 를 저술하셨다.
시조깅고는 늘 대성인의 안부를 몹시 염려했다. 그리고 사도에 계시는 대성인에게 여러 가지 공양물을 보냈다. 대성인은 시조깅고가 보낸 심부름꾼에게 <개목초> 를 맡기셨다.
어본불의 위대하고도 열렬한 확신과 결심이 담긴 <개목초>를 받아 든 시조깅고는 분명 감격으로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면서 배독했을 것이다.
<개목초>를 받은 시조깅고는 가마쿠라에서 멀리 산과 바다를 건너 사도에 계신 대성인을 찾아갔다.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환희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주군을 섬기는 처지에 유배된 대성인을 찾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난(大難)이라는 열풍은 기만에 찬 신앙자의 가면을 벗긴다. 누가 진실한 신앙자이고, 참된 제자인지 명백히 밝힌다.
니치렌 대성인은 진정한 제자 시조깅고가 찾아와서 얼마나 기쁘셨을까. 대성인은 나중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격려하셨다.
"강성한 대신력을 내어 법화종(法華宗)의 시조깅고 시조깅고라고 가마쿠라 중의 상하만민 내지 일본국의 일체중생의 입으로 칭송받으시라."(어서 1118쪽)
즉 무사나 의사로서 책무를 완수할 뿐 아니라 법화종 다시 말해 니치렌 대성인 문하로서 시조깅고가 모든 일본 사람들에게 찬탄받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자기라는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의미는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제하려고 출현한 지용보살이라는 점에 있다. 법화경은 이 사상를 가르친다.
무사라는 점도, 의술에 뛰어난 점도, 자신이 본원적인 사명을 완수하는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무사나 의사로서 명성을 얻는 일도 중요하리라. 그러나 제 아무리 칭찬을 받을지라도 지용보살로서 완수해야 할 광선유포라는 사명을 잊어버리면 결국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인생이다.
중요한 점은 광선유포를 위한 삶을 관철하고, 또 무사나 의사로서 인격도 훌륭하고 기량도 뛰어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법화종의 시조깅고……"라고 말씀하셨다.
늘 어디에 있어도 자신만만하게 대성인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가. 현대로 말하면 창가학회원으로서 가슴을 활짝 펴고 사명을 위해 꿋꿋이 살며, 각자가 걷는 길에서 찬탄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승부를 가름한다.
니치렌 대성인은 "법화종(法華宗)의 시조깅고……"(어서 1118쪽)라고 말씀하시기 전 단락에서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시라. 부시를 치는데 중단해 버리면 불을 얻지 못하느니라."(어서 1117쪽) 하고 지속하는 신심을 강조하셨다.
불을 일으키려면 끊임없이 나무와 나무를 비벼야 한다.
도중에 긴장을 늦추고 손을 놓으면 그때까지 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불을 일으킬 때까지 점점 더 기세있게 작업을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지속이라 해도 일을 성취하는 최종 단계가 중요하다.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두 마지막에 판가름이 난다."
또 독일 작가 토마슨 만을 이렇게 경종을 울렸다.
"마지막에 승리가 확정될 때까지 방심을 금물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문호 빅토로 위고는 이렇게 썼다.
"전투에서 마지막 승리는 늘 쥐어 짜내듯 해야 쟁취할 수 있다."
마치 대성인은 장래 시조깅고에게 박해가 일어나리라고 예견이라도 하신 것처럼 신심을 관철하라고 강조하셨다.
대성인이 사도에서 돌아와 이미 미노부에 들어가 계셨던 1274년 9월, 시조깅고가 주군 에마 씨를 절복했다.
에마 씨는 염불을 믿고 고쿠라쿠사 료칸을 신봉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총의에서 나온 시조깅고의 절복은 주군의 노여움을 샀고, 동료까지도 박해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276년에는 주군이 시조깅고의 소령을 멀리 에치고 지방으로 교체하겠다는 내명(內命)을 내렸다.
현대로 말하면 죄천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드디어 시조깅고의 인생에 중대 고비라 할 수 있는 커다란 시련이 덮치기 시작했다.
고투라는 산봉우리를 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산봉우리가 높고 험하면 고생도 심하다. 그러나 그 봉우리를 등반하면 양양한 미래가 펼쳐진다.
광선유포라는 길은 투쟁이 잇따르는 길이다. 삼장사마(三障四魔)에 맞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길이다. 방심하고 긴장을 풀면, 그 순간에 허점을 찔려 실패하고 만다. 모든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자신의 일생성불을 위해 걸음을 멈추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소령교체라는 내명이 내린 시조깅고를 더욱 긍지로 몰아넣는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거짓으로 시조깅고를 헐뜯는 이야기를 꾸며 주군 에마 씨에게 고해 바친 것이다.
내용인즉슨 시조깅고가 작당을 해서 가마쿠라구와가야쓰에서 열린 류조보의 법좌에 함부로 쳐들어가 난동을 부렸다는 것이었다. 류조보는 천태종의 승려로 히에인산에 있었는데 인육(人肉)을 먹은 일이 발각되어 가마쿠라로 도망쳤으며 고쿠라쿠사 료칸의 비호를 받던 악승이었다.
시조깅고가 법좌에 함부로 쳐들어가 어지럽혔다는 말은 료칸 일파가 날조한 유언비어였다. 사실은 니치렌 대성인 문하인 산미보가 류조보와 문답을 벌여 논파한 법좌에 시조깅고도 참석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에마 씨는 이 거짓 보고를 곧이듣고, 시조깅고에게 "법화경의 신앙을 버리겠다는 기청문(서약서)을 쓰라. 그렇지 않으면 소령을 몰수하겠다."고 독촉했다.
소령을 몰수당하면 무사로서 생계를 꾸릴 수 없다. 온 집안이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국이었다. 그러나 시조깅고는 굴하지 않았다. 거목처럼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설령 소령을 몰수당하더라도 신심을 관철하겠으며 기청문 따위는 쓰지 않겠노라는 결심을 편지에 담아 미노부에 계신 대성인에게 보냈다.
가마쿠라에서 대성인 문하의 중심인 시조깅고가 퇴전하면 다른 모든 문하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분명 료칸도 그 점을 노렸을 터이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의 신심을 칭찬하며 즉시 답장을 쓰셨다.
"일생은 꿈 속과 같으며 명일(明日)을 기할 수 없도다. 어떠한 걸인이 된다 해도 법화경에 흠을 내드리지 말지어다."(어서 1163쪽) 그리고 결코 아첨하지 말고, 이 일도 제천의 계책이라고 확신하며, 강성하게 신심을 관철하도록 격려하셨다.
니치렌 대성인은 주군 에마 씨가 '법화경을 버리겠다는 기청문을 쓰라.'고 독촉했다는 보고에 시조깅고를 격려하는 편지와 함께 주군에게 제출할 진장(답변서)까지 대신 써서 보내셨다. 이것이 '요리모토진장'이다.
시조깅고는 궁지에 몰린 제자를 위해 진장까기 써서 보내신 스승의 마음에 틀림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터이다. 그리고 보은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어섰다.
시조깅고가 그런 결심을 편지로 보내자 대성인은 즉시 답장을 보내셨다. 답장 서두에는 '불법은 승부'라고 쓰셨다. 정법(正法)을 수지한 사람은 마지막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불법의 정의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긴다'는 뜻을 법의 정사(正邪)를 결정짓는다는 뜻이다. 정과 사는 문증(文證), 이증(理證), 현증(現證)으로 명백해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모습과 삶의 방식으로 승리를 증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즉 인격을 연마해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일, 무너지지 않는 행복한 경애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시조깅고는 이윽고 악성 유행병에 걸린 에마 씨의 치료를 맡았다. 성심성의로 온 힘을 다해 치료했다. 주군은 병세에 점차 차도를 보였고 노여움도 풀렸다.
시조깅고는 주군이 출근할 때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또 이전의 세배나 되는 소령을 받았다. 시조깅고의 인생에 승리의 태양이 찬연히 떠오른 것이다.
한편 대성인은 1277년 말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셨다. 시조깅고는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했다.
'스승을 위해서라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가서 치료해드리자. 대성인의 건강은 내가 끝까지 지켜드리겠다!'
시조깅고는 분명 그렇게 결심했을 터이다.
1278년 6월에 시조깅고가 쓴 약으로 건강을 회복하신 대성인은 이해 윤달 10월에 편지를 써서 "이번에 생명이 구조됨은 오로지 석가불이 귀하의 몸에 들어가 바뀌시어 구조하심일까."(어서 1185쪽)하고 찬탄하셨다.

첫댓글 도움되는 자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경애!!
천만분의 일이라도 선양하겠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