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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현장 사례모음
Ⅰ. 개인 현장사례
1. 어느 여자 환자의 구원
필자가 예수 믿고 가장 행복한 부분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사실을
쉬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전도 현장에서 그 예수와
아버지의 소원을 따라 성령이 교통하신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행복하고 자유하게 했다.
전도캠프 둘째 날, 둘 씩 둘씩 3개조가 한 팀을 이루어 병원전도를
갔을 때다. 침상 8개가 있는 큰 병실에 환자와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다.
그야말로 황금어장이요, 절호의 기회였다. 전도를 시작했는데 한쪽
구석진 침상에 누워있던 40대 중반의 뚱뚱한 여자가 일어나 않더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베개며 손에 닿는 물건들을 마구 집어던졌다.
듣기도 싫다는 것이다. 전도는 시작하자마자 중단되었고, 나는 그 환자가
못내 불쾌했다. 속으로 “그래, 싫으면 자기나 망할 것이지” 했다.
그날 그 병원 간호실장이 예수를 영접했다. 그래서 심중에 생각했다.
“아! 이 일로 우리가 그 방에서 그렇게 쫓겨났는가!” 했다.
그리고 내일은 그 방에는 아예 가지 않으리라고 마음에 다짐까지 했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어쩌랴!
셋째 날, 병원전도를 마치고 지나는 길에 그 병실 앞을 지나치는데
그 여자가 여전히 발악하는 게 보였다. 짐짓 “저 여자에게 전도하셨느냐”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 침상으로 다가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뒤돌아서 문을 나서는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믿고 싶은데 안 되는 걸 낸들 어쩌라고! 그런 절규가 아닐까?”
그 순간 가슴이 찡~했다. 나는 끌리듯이 다가가서 다짜고짜 말했다.
“사랑하는 딸아! 손을 다오,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을 자기 자녀 삼기를
원하신다.” 그 날 그녀는 손을 주었고, 예수를 영접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는다.” 했다..
이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그런데 그 짧은 고백을 사람이 임의로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돈도 필요 없고 시간도 걸리지
않고, 노력도 필요치 않다. 뜻을 잘 몰라도 된다. 그런데 하나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완전보장 속에서 살게 된다. 이 얼마나 명료하고,
이 얼마나 은혜로운 방법인가!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미운사람은 밉고, 싫은 사람은 싫다.
그러나 내 마음은 거의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있을 거라는 생각만 들어도 그때부터는
이미 연약한 내가 아니다. 그리고 아무 말이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어느 시점까지는 사람을 의식했고, 고집스럽게 틀에 묶인
전도를 했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는 자유하다. 분명히 내 안에
나 아닌 내가 있다. 성령의 교통하심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다.
2. 빙부님의 예수영접
아내는 빙부님의 구원을 놓고 35년을 기다렸다. 울며불며 애원도 했다.
우리가 가면 예배도 드려주신다. 식사 때에 기도도 함께 하신다. 하나님도
인정하신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도 아신단다. 그래도 예수영접
만은 안하셨다. 그만큼 “예수가 그리스도” 이 말이 Sun-power다. 그
빙부님이 소천, 10개월 전에 췌장암으로 고생하셨다. 그 대쪽 같던 위풍도
사라졌다. 앙상한 뼈와 가죽, 실로 흉한 몰골이셨다. 순간 나는 참
고소했다. 아니, 쌤통이다 했다. 어디 한 번 더 아집을 부려보시지?
과연, “오는 방망이, 가는 홍두께!” 이게 인간이다.
예수를 영접하던 그 날은 폭설이 쏱아져 쌓여가는 토요일 오후 5시 쯤
이었다. 목회자로서 군산에서 상경해야 했으니 벌써 늦은 시간이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전도한지 35년, 어차피 거부할건데,
에라 기도나 해드리고 가자는 생각에 다짜고짜 기도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수영접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다짜고짜 따라서 기도
하시라고 했다. 가장 간단한 기도를 한 소절씩 끊어서 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 “예수님은 그리스도”, “나의 주” -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 “나의 하 …" 에서 멈추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내가 몹시 안타까웠나보다. 1분쯤 후
‘아버지, 그냥 따라서만 하세요,’ 그때 내가 제지했다.
‘기다리세요,’ 그게 전도자의 자존심이다. 또 침묵이 흘렀다.
어깨를 들먹이면서, 퍽퍽 흐느껴 우셨다. 이윽고 따라서 하기 시작했다.
“나의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 “나의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불과 10초면 끝나는 그 기도를 하는데 3분여가
걸렸다. 그리고 상황 끝이었다. 사람이 변했다.
흉한 몰골도 그 대쪽 같던 모습도 온대간대 없었다.
나는 불신앙 정도가 아니고, 어차피 안 할 건데, 그리고 참 쌤통이다.
했는데. 나의 그것과 전혀 무관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때가 되면 반드시 찾으시고 부르신다. 당신의 아들로!
빙부님은 3남 2녀를 두셨다. 빙모님을 비롯하여 1남 2녀는 이미 신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신자에다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었던 두 처남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지 오래다. 물론, 빙부님 본인도 일생을 술로 사시다가
풍을 맞으시고 한쪽 팔다리를 잘 쓰지 못하셨다. 그러나 향교의 어르신
답게 대쪽 같은 강인함과 중후함의 가면을 쓰고 일생을 살면서 볼 것,
못 볼 것 다 보시고 사셨으니 어찌 회한이 깊지 않겠는가!
이제 그 가문의 마지막 아성이자 기둥이신 빙부님이 무너진 것이다.
이제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니, 예수를 영접한 직후, 병실 사람들이
창경원 원숭이처럼 지켜보는 그 자리에서 그 앙상한 손으로 빙모님의
손을 덥석 잡으셨다. “여보! 미안해, 그동안 내가 너무 잘못 했어”
그 순간 빙모님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두 뺨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하기 사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구박의
눈총을 받으시며 살아오셨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부님을 가장으로
섬기며, 그분의 오늘을 그토록 고대하며 살아오셨다. 왜냐하면 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계시니까, 이제 그 길고 긴 기다림 끝에 그 빙부님의
참회의 눈물을 보신 것이다. 그 하나로 그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상처의 아픔이 그렇게도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을!
그로부터 빙부님의 눈동자는 물론이고 투병하는 자세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언어가 다 달라졌다. 마치 순한 양 같았다. 빙모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워 하셨다.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눈물을 적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여보게 사위, 일찍 믿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럴 것이다. 너와 내 안에 있는 영이 다른데 부부인들 어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랴. 나는 빙모님을 위하여 맞장구를 쳤지만 아니다.
그런 일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 후에 그 이유를 풀어 드렸다.
그 모두가 다 하나님의 타임 스케줄! 이것이 기독교다.
바야흐로 췌장암 말기의 아픔과 그 고달픈 인생의 마침표를 찍고 인간
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누릴 기한
이 다가왔다. 사람들과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여러 번 권하셨으나 빙부
님은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나 지금 천국에 가고 싶으니까 그런 쓸데없
는 짓 하지 말라!” 였다. 그것이 궁금하다. 천국에서 만나면 묻고 싶을 만
큼! 왜냐하면 중직자 중에도 더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예수영접 후 그 파란만장한 87년 생애 중 10개월을
서로 사랑하다가 소천 하셨다. 이것이 기독교다.
3. 큰 처남의 구원
과연 그랬다 49세 된 큰 처남이 장가도 못 간 채,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가 간에 복수가 차서 죽게 되었다. 병원에 한 달 여 입원해
있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퇴원한 후 10일이 지나도록 식물인간 상태였다.
평소 빙모님은 나에게 슬픈 소식은 단 한 번도 전하신 적이 없으셨다.
항상 남을 배려하셨던 빙모님의 품위가 항상 그러하셨다. 어느 날 그
빙모님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침 9시, 그날은 내가 아내와
함께 치유 세미나를 위해 가고 있을 때였다. 운전 중이라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내게 넘겨주었다. “여보게 사위, 자네 큰
처남 다 죽어간다네” 평소 그렇게 복음을 전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던
처남, 아무리 애원해도 술독에 빠져서 살던 처남, 이 일 저 일로 화가
났다. 왜 하필이면 이때에, 그러면서 나는 여전히 세미나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도한 세월이 27년입니다. 그냥
죽으면 말이 안 되잖아요?” 그 때에 즉각 성경으로 답이 왔다. 순간 큰
확신과 더불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이 나의 마음에 차고
넘쳤다.
그때 갑자기 나의 뒤 꼭지가 따가워졌다.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의
누나인 아내는 눈시울을 적시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향하여 눈총을 쏘고 있었다. “흥,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아마 자기 형제
들이라면 벌써 핸들을 돌렸을 걸”, “또 처남이 예수 믿고 잘 살았더라면
그랬을 걸, 밉다! 미워”, 이런 느낌이 드는 순간 더 화가 났다. 적어도
아내는 내 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내 마음이
“나도 밉다! 미워, 이러는 내가 나도 싫다! 하지만 낸들 어쩌라고?”
그 순간 아내가 참으로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
“당신만 사람이냐? 나도 사람이다. 당신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당신
하고 있는 꼬라지 보니까 마치, “에잇 바늘로 콕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인간 같으니라고”, 그런가? 과연 그런 거야? “아! 이 사람아! 당신과
우리가 처남 구원을 놓고 기도하며 전도한 세월이 27년이야, 복음은
물론이고, 애걸복걸도 해 보고, 별 일 다 해봤잖아? 그런데 지금까지
구원이 어디 사람의 뜻으로 되는 거 봤어? 낸들 어쩌라고, 그리고 내가
목사야, 이 세미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된 거야”
아내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얼핏 이해가 되는 말이기 때문이리라.
어디 내 설교를 한두 해 들었나, 아내는 창밖을 보며 긴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내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운전 중이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가슴이 저렸다. 말로만이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여보, 괜찮아!” “… ?” “괜찮냐니까!” 그래도 말이 없다. 그러나
마치 괜찮지 않다는 듯했다. “도대체 뭐가 괜찮은데?” 하는 듯했다.
순간 화가 났다. 그때 더욱 강하게 내 뱉은 말이,
“아! 이 사람아! 처남이 예수 안 믿고 죽는다면 성경이 틀려,”
“… …?” “어허! 그러면 성경이 틀리다니까!”
그제야 아내가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나는 연속해서 총을 쏘았다.
“만일 처남에게 나로 말미암은 구원이 예비 됐다면 세미나를 마치는
그때까지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실 거야,” “그래도 당신 마음에
급하다 싶으면 지금 전화 해, 이웃교회 목사님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내 아내 표정이 그래도 당신이... 그때에 내 말이, “아무러면 시골교회
목사라고 구원의 비밀도 모르겠어? 그리고 구원은 사람의 뜻이나
능력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도 당신이 잘 알잖아?!”
아내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이내 전화를 걸었다. “엄마 김 서방은
지금은 내려갈 수 없어, 구원은 어떤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는
거야” “엄마 우리는 모레 내려갈게, 우리 갑재는 그냥 죽지 않아, 엄마
그래도 급하다고 생각 되면 지금 상평교회 목사님 찾아가서 예배 좀
드려달라고 부탁해” 그리고 상황 끝이었다. 우리는 평안히 세미나를
다녀왔다. 그날 밤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게 사위, 자네 처남 조금 전
임종했다네,” 그런데 매우 밝은 표정이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아침 9시 조금 넘어서 아내의 전화를 받은 빙모님이 바로 집 뒤에
있는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청하셨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내 오시지 않았다.
왜 그러셨는지는 묻지 않았다.
왜냐면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이유를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제가 구원을 받을 수 있죠?”
그날 낮에 전주에 있는 둘째 처남이 불현듯 찾아왔다.
그날 아침 갑자기
형님 목욕을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짬을 낸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 목사님을 기다렸으나 …, 퇴근시간 전에 전주로 돌아갔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 목사님이 몇 분 중직자와 함께 오셨다.
꼭 8시간 만이다. 예배를 드리려고 찬송을 불렀다.
찬송이 끝나갈 무렵에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던 큰 처남이 눈을 떴다.
“제가 알아요, 상평교회 목사님이시죠?”
“어떻게 하면 제가 구원을 받을 수 있죠?”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구원을 껌 값 주고 산 것인 양,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만사형통하고 범사가 잘 되는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인 양,
그러나 구원이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며,
그것이 모든 것이며,
기독교만의 자랑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처남은 예수를 영접하자마자 다시 눈을 감았다. 49년의 고달픈
나그네 길 마침표를 그렇게 찍은 것이다.
처남은 그렇게 예배 중에 소천 하였다.
과연 그랬다. 우리 부부는 27년간 씨를 뿌렸다.
그러나 그 열매는 그 시골교회가 거두었다.
그리고 그 일로 믿는 사람들이 일어났으니,
꼭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다.
순간, 사람들은 두 번째 놀랐다. 첫 번째 놀람은 물론 구원이었다.
“아니, 세상에, 아! 사람이 이렇게도 구원을 받을 수도 있구나!”였고,
두 번째 놀람은 죽은 그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처럼, 그 맑고 평온한
모습 때문이었다고 했다. 한 번 생각해보시라. 평생을 술로 찌든 얼굴
- 간에 복수가 차서 죽은 얼굴, 술 형으로 이리저리 틀어진
까무잡잡한 얼굴, 곰보처럼 울퉁불퉁한 얼굴, 얼굴 -
그게 평소 마을사람들이 보아온 처남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아니 어쩌면
저렇게 평온하고 맑을 수가!” 그게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이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흠 없는 신부로 단장되어 간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예수영접한 자의 본질, 그게 더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만일 예수를 영
접하고 죽었는데 그 얼굴에 변화가 없다면 그게 별거 아니란 말도 될 것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영접한 자의 본질은 그러한 외적 변화가 아니
라 내적 변화, 즉 내 안의 영이 바뀐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거기에 합당한 신분과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숨이 지지 않
았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혹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죽음을
눈 앞에 둔 가족이 있다면 예수 이름을 한번 불러 보라고 권해보시라.
예수님은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고, 말만 해도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가! 이것이 기독교다.
4. 신수지와 그 코치의 예수영접
필자가 2008년 올림픽을 몇 달 남겨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전도훈
련원 종강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에 중간 기착지인 모스크바행 보딩패스
를 받을 때, 좌석을 어디로 드릴까요? 하는 물음에 “아무데나” 달라고 했
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가 아무데나 앉아도 내 옆에는 거의 구원받을 자
들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좌석은 가운데 줄 통로 쪽이었고,
내 왼편에는 아주 멋진 러시아 여자가 그 딸처럼? 보이는 소녀와 러시아
말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나는 생각하기를 “아! 이번에는 전도계획이
없으신가 보구나!” 어젯밤 잠을 설쳤는데, 아마 푹 쉬라 하시는구나,
어쩌면 이것도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는 “에잇 잠이나 실컷
자두자” 하고는 잠도 자고 성경도 보고, 그렇게 하다가 또 잠이 들었다.
모스코바 공항 도착 30분 전이라는 기내방송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때 “혹시 옆에 있는 이분에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에라 모르겠다. 세금 내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부끄러울 것도 없다 하고는 한국말로 전도를 시작했다. 그녀가 알아듣든지
말든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다만 나는 예수를 자랑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딸처럼 보이던 소녀가 “아저씨 한국사람 이세요?”
하는 게 아닌가! 그 날 그녀가 통역을 했고, 그 둘이 예수를 영접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다.
내가 그 소녀에게 물었다.
“넌 누구니? 그리고 지금 어디 가는 길이니?”
그 소녀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아저씨 혹시 저 모르세요?” 나는 순간 멈칫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를 모르겠냐고 물으니
좀 당황했다. 순간 미안한 마음에 “글쎄, 나는 목사란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미안할 때가 많단다. 미안하구나!”
그때야 그 소녀가 자기와 자신의 행선지와 목적,
그리고 자기와 함께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소개를 했다.
“저 신 수지 예요, 이 분은 러시아 사람이고 제 코치예요,
저는 리듬체조선수인데, 지금은 전지훈련차 가는 길이예요” 하였다.
그 소녀가 바로 신수지였는데,
코치와 함께 2008년 올림픽 전지훈련차 가는 길이었다.
물론 그때 나는 그녀를 전혀 알지 못했다. 둘 다 너무 예뻤다.
나는 그녀가 딸인 줄 알았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시간이 없었다. 비행기는 곧 모스코바 공항에 도착했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한국에 와서야 그 소녀가
리듬체조 분야 국가 대표선수인 것과 자력으로 올림픽 참가 자격을 따낸
한국인 최초의 인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목사요 전도자인 나도 때때로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주변 환경과, 내
실력을 보고 꼬리를 내릴 때가 하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착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그 착각이 하나님의 구원과 치유프로그램의
일환이라는 사실이다. 나로 말미암아 이루실 자신의 계획을 위하여 나를
전도자로, 치유사역자로 가꾸시는 타임스케줄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다.
5. 수지의 영어학원 천주교인 원장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진 학원이었다. 원장실
에는 30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 아름답고 늘씬한 여자 하나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가 끝난 후에도 나를 거들 떠 보지도 않고 무엇인가를
분주히 찾고 있었다. 흔히 있는 일들이다. 어쩌면 내가 그냥 가기를 바라고
딴청을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돌아서서 나오려다가
“아니 그러면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짐짓 한 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는 원장실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판 붙어보자”는 심정으로 고요하게 서 있었다.
그녀가 이내 문을 열고 나왔다. 아마도 그냥은 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기 사 나 같은 예수쟁이 전도자 한두 번 맞이했겠는가!
그녀는 시치미 뚝 떼고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지요?” 나는 속으
로 다 알면서 하는 심정이었기에 거두절미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수 믿으십니까?” 그녀도 눈을 딱~ 내리깔고? “난 천주교인입니다.”
나도 비웃는 마음으로 “그러면 행복하십니까?” 그녀는 오히려 아주
우아하고 품위 있게 “네, 저는 아~주 행복합니다.” 나도 그때 정색을
하고는 안면에 손가락 총을 정확하게 쏘면서 뱉은 말이 “그러면 그것은
가면이다!” 했다. 그녀는 마치 정통으로 총을 맞은 듯이, 잠시 멍 하더니
이내 “안으로 들어오세요.” 했다.
나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마도 나를 신령한 도사목사 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첫 대화 중 느낌이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그 날
전도메시지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날 그녀는 예수님을 영접했다.
계속 교제하던 어느 날 ‘내 이야기를 신부님에게 했더니 그러면 나도
그 목사님을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면서 신부님을 나에게 소개했다.
그로부터 서너 번 전화 했으나 신부님을 아직 까지도 만나지는 못했다.
그때마다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는 다른 학원에도, 학교에도 강사로 뛰는 그 계통 엘리트다.
자기 학원에는 부원장을 두고 자신은 자리를 거의 비우는 것 같았다.
거의 매주 주일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 간혹 가서 만나면 간단하게
체크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찾아내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방법은 실로 측량할 수가 없다. 거의 매번 달랐으니까!
만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불신자라면 당신도 한번 해 보라! “예수님은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는다.” 고 말이다. 단 10초도
안 걸리는데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완전보장 속에서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죽으면 막 바로 천국이다. 실로 만화 같은 이야기
이지만 사실이고 진실이다. 이것이 기독교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시간
이후로는 예수쟁이 전도자들을 욕하지는 말라! 세계 65억 인구 중에
예수쟁이는 꼴랑 4억에 불과하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그 만큼
전도자들은 적들로 둘려 싸여 있고, 전도할 때마다 무수히 총을 맞고
있다. 그 말이다. 만일 마음을 찍어내는 영상사진이 있다면 전도자들의
심장은 벌집보다 더 많은 구멍들이 뚤려 있을 것이다. 당신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자기 밥 먹고 돌아다니며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상처뿐인
사람들, 그래 말이오. 필자도 처음에는 그 상처가 얼마나 쓰리고 아팠는지
모른다오. 이제는 그 벌집보다 더 많은 흔적들이 오히려 참~ 영광의
증거지만 말이오!~~ 그 심정이 성경에 참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
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
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6~19). 그러나 보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이것이 기독교다.
그래 말이오, 필자는 이제 더 이상 그냥 총알받이가 아니다. 적어도
벌집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 말이오, 이 글을 읽는 귀하가
만일 목사님이시라면 복음의 비밀을 잘 모르는 성도들을 총알받이로
억지로 내 보내지는 마시라! 교회 밖은 실로 이리 때들로 득실거리니까
말이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마 10:16~17)”. 그래도 짐짓 내보내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소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명히 전도자일 테니까! 말이오.
6. 강남의 천주교인 약사
어느 날 나에게 이명이 왔다. 그 일로 고등학교 동창이 원장으로 있는
서울의 한 이비인후과를 다니게 되었다. 왜냐하면 믿을만한 의사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가며 그 병원 1층에 있는 약국에 가게
되었다. 갈 때는 전도지를 주었고 올 때는 약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우아하고 심플하게 전도지를 주었다. 일단은 친구 의사의 명성에
먹칠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던 다섯 번째쯤 어느 날, 약사가 나에게 아주 우아하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예수 믿으니까요 이 전도지는
다른 사람에게나 주세요.” 반가웠다. “혹 어느 교회 다니시는지요?”
그 약사는 아주 우아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전 천주교 대모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즉각 다섯 번째 전도지를 건넸다.
그녀가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또 말했다. “전 괜찮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나 주세요, 이 전도지도 다 돈이잖아요.” 그때 내 속 말이
“뭐? 괜찮다고? 착각하지 마, 당신 괜찮지 않아!” 그러나 겉으로는 나도
우아하게 웃으면서 “약사님이 그 누구보다도 더 중요하니까요!” 하면서
전도지를 다시 건넸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손 사례까지 치면서 거부했다.
그때는 나도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준 전도지 안 읽어보셨군요?”
그녀가 즉시 말했다. “다 읽어보았는데요?” 나도 즉각 말했다.
“그러면 뜻도 모르고 읽으셨^군요!” 그녀는 천주교 대모답게 아직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리가요! 저 대학원 나왔어요.” 이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다! 뜻도 모르고 읽었다. 만일 당신이 뜻을 알았더라면
지금 쯤 나에게 감사했으리라!”
그러면서 안면에 손가락 총을 정확하게 쏘며 말하기를, “당신에게서 그
천주교 사상이 박~ 살이 나야 당신이 산다.” 했다. 그녀는 대한민국
엘리트들이 모이는 천주교 대모답게 아직도 그 품위를 잃지 않았다.
여전히 웃으며 하는 말, “타종교를 함부로 박살내시면 안되죠!” 였다.
나는 오히려 더 정색을 하고는 “아니다! 박~ 살이 나야 당신이 산다.”
그러면서 “만일 상담 필요하시면 올라오세요,” 하고는 그 다섯 번째
전도지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에 나를 보자마자 책상 밑에 숨어있던 다른 천주교인 약사가
총알처럼 튀어나와 “저기요, 잠깐만요!” 하고는 나를 불러 세웠다. “목사님
저도 상담해도 되나요?” 나는 어? 아무도 없었는데 누구지? 하고는 뒤돌
아보니 다른 약사였다. 그때까지 그녀가 천주교인 것을 나는 모르고 있
었다. 그러나 나를 아는 그녀는 내가 밥맛이었던 것이다. ‘아~유 저 예수
쟁이 나를 보면 또 전도지 줄 건데 숨어야지 하면서’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게 착각이다. 숨을 곳은 없다. 나도 그렇다. 그런 것은 몰라도 된다.
내가 어~ 떻게? 가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즉각 말했다. “네 됩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2시까지 올라오세요.” 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올라갔다. 예약 시간이 훌쩍 지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우 갈급했나보다. 바로 뒤이어 1시50분에 올라왔다. 잠깐이
아니고 아주 퇴근을 한 것이다. “왜 이렇게 일찍이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목사님이 바쁘신 날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날이 토요일
오후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한마디가 그 날 전도메시지의 시작점이
었다. “아닙니다. 저를 찾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제 일이니까요.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도가 5시 30분까지
진행되었다. 그녀는 예수를 영접했고, 저녁까지 사겠다고 해서 장소를
커피 전문점에서 횟집으로 옮겼다. 메시지를 더 듣고 싶었던 것이다.
대화는 밤 9시가 넘도록 진행되었다. 식당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식당 문을 나섰다. 전도자의 삶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그녀의 삶이 즉각 바뀌었다. 시청 직원인 남편이 우려할 만큼!
그녀는 그 약국에 사표를 냈다. 과연 그렇다! 보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하셨다. 이것이 기독교다!
그날 나는 한 게 별로 없다. 습관을 따라 꼴랑 전도지 한 장 주려다가
오히려 강하게 거부당했다. 그러나 그게 시방 나하고 무슨 상관이겠는가!
말이다. 기록된바 같이 하나님 그가 두루 행하여, 되고, 되리라! 하시더니
그대로 되니라. 이것이 기독교다. 그러므로 나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그냥 흘러가면 되었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바위를 만나면
그냥 그대로 타고 넘으면 되었고, 막히면, 막히면 되었다. 생각해보라!
나의 총을 정면으로 맞은 사람은 버티고 서 있고, 오히려 총을 아예 맞지
않으려고 숨어 있는 그녀가 맞았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그녀와의 말씀운동이 3개월여 지속되었다. 얼굴 표정도 바뀌
고, 삶도 바뀌었다. 다른 약국으로 옮겨 가서도 그곳으로 나를 초대했다.
서울의 모 교회 집사약사가 경영하는 약국이었다. 그 집사님은 시간이 없
다고 말씀운동에 참여도 안 하면서 오히려 나를 “이상한 목사”라고 했단
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무슨 목사가 할 일이 없어서 용인 수지에서
여기까지 오겠느냐? 참 이상하지 않으냐? 나는 그런 목사님은 처음
본다.” 고 했단다. 물론 그럴 것이다. 나도 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그러나 어쩌랴! 오라는 곳 없어도 갈 곳이 많은 것이 전도자인 것을!
하물며 복음에 목말라 갈급해 하는 사람들이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도제목이 지구촌에 30만 치유사명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니 말이다. - 물론 이 기도제목을 주보에 있는 것을
보신 아버님이 필자를 정신병자 취급했었다. 주보에서 당장 그 기도제목
빼라고, 네 나이 53인데, 30만 성도도 아니고 30만 제자라니, 네가 지금
제 정신이냐고, 누가 너를 정상적인 목사로 보겠느냐고.... 하셨다.
필자는 그로부터 기도를 시작했고, 3개월 만에 내린 결론이, 내가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 말이오,
셋방 사는 사람이 돈 때문에 전세방 빼듯이 기도제목을 빼야 하겠는가?!
만일 하나님의 계획이 그러면 어쩔 것인가? 그래서 그 기도제목을 빼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는데 그로부터 15년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그
기도제목이 사실화 되는 것을 보고 있다.
아무튼 그 집사님에게 매주 보내준 우리교회 주일메시지가 있어서 보
여 주었더니, 어! 이 메시지 너무 좋다고 하면서 그 메시지를 자기에기도
달라고 하였으니 이처럼 교인들 가운데도 복음에 갈급한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이다. 나는 그동안 그 약사에게 단 한 푼의 돈이나 헌금을
요구하거나 받은 적이 없다. 우리 교회에 나와야 한다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가까운 교회 다니면서 치유사역자로서의 삶을
멋지게 살아보라고 한 것밖에는 없다. 오히려 식사부담조차 주지
않으려고 내 밥, 내가 먹고 다녔다. 내가 한 일은 그녀로 하여금 첫째는
행복하게 살도록, 두 번째는 지구촌에 30만 치유사역자, 그중 1명으로서
예수를 자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기쁨을 아시겠는가?!
7. 강남의 이비인후과 천주교인 원장
필자에게 찾아 온 이명, 시도 때도 없이 귀뚜라미와 매미가 울어댄다.
믿을만하고, 실력 있는 의사 찾아서 강남까지 갔다. 불치병이라 알게
되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달팽이관을 만들어 끼울 수가 없단다. 오히려
매미하고 친구하면 편해질 거란다. 그러면 조재해주는 약은 뭐냐 했더니
잠이 안 올 때 먹으란다. 나는 목사 자존심을 걸고 그 약을 먹지 않았다.
물론 잘 자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나를 그리 보내신 이유가 무엇일까?
답이 났다. 예수 생명 말이다. 그의 종교가 천주교였다. 유명하다보니까
대기자가 많았다. 기회를 보려고 두세 번 더 갔다. 네 번째는 아예
토요일 오후 2시에 갔다. 내 뒤의 대기자 세 명을 앞세우고, 마지막
진료를 받은 후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있느냐고, 30분 후에 만남이
있어서 지금 나가야 한단다. 간호사도 나를 재촉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거기 선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예수영접 하고나니 1시간 30분이
흘렀다. 그는 오후 스케줄을 취소하고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자기 집에
골방에서 두문불출 하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속수무책
오리무중이었는데 희망이 생긴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나를 어떤 신령한
사람으로 착각했나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치유사역은 바로 그 착각을
일단 벗겨내는 일이다. 내 첫마디가 “만일 하나님이 만남을 주신다면
그렇다.” 했더니 “무슨 뜻이지?” 내 말이 “나는 무능하니까!” “… ?”
“그러나 하나님의 치유계획이 있다면 만남을 주실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만남을 주신다면 틀림없이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 ?” “나는
본래 치유사역자니까!”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밤 11시까지 이어졌다.
아직도 만남을 주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그는 틀림없이 치유 될 것이고, 치유사명자로 서게 될 것이다. 원장과의
교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본서가 출판되면 꼭 주고 싶은 사람 중 하나다.
8. 여러 종교에 심취한 철학자
2013년 6월 10일 노회캠프가 시작되는 날이다. 필자는 그날 아침 동역자들과 함께 아침운동을 하다가 발가락뼈 골절상을 입었다. 얼음찜질을 했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아프기 시작했다. 캠프는 엄두도 못 내고 신경외과에 다녀왔다. 여름이 시작되었는데 기브스를 해야 한단다. 나는 의사에게 간청하여 반 기브스를 하고 나오는데 “목사님 90%가 악화되어 다시 찾아온다는 거 명심하시고, 외출하실 때는 필히 목발을 짚어야 합니다.”
나는 착각하기를, “아! 이번 캠프는 하나님이 쉬라고 하시는구나!”
이 소식을 들은 총무 목사님이 광고하기를 “사단이 엄청 방해하는 것
같은데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알려졌다. 해외에 계시던 위OO
목사님이 소식을 듣고 “사단이 방해… 목사님 승리하셔야죠.” 처음에는
참 난감했으나 잠시 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았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일단 가고 보자.”
캠프 진행하는 목사님 왈, “캠프달인이 안 오시면 어쩌나 했는데
오셨군요. 발이 아프시니 목사님은 여기서 캠프하시지요,”
그 때에 우리 옆을 지나가던 실무담당 목사님이 듣고, “아닌데요,
신 목사님께서 김 목사님이 만났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먼저
초청하셨는데요.” 했다.
나는 캠프현장으로 이동하면서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의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 일류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분으로, 여러 종교와
사상의 대가라는 것이다. 1년 전부터 전도캠프를 할 때마다 여러 전도자
들이 만났는데, 전도자들이 한마디 하면 다섯 마디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낸들 어쩌라고?” 그러나 무언가 기대도 되었다.
나는 반바지 T셔츠차림에 목발을 집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는 다른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본체만체 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마음에 기도하기를, “그렇다면
하나님 무슨 말부터 할까요?” 그날따라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때
대화를 마친 손님이 막 문을 나서려 했다. 나는 황급히 “잠깐 만요,
여기 김밥 많이 있는데 좀 들고 가시지요 했다.”
어차피 전도 할 것인데 한 사람이라도 더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필자는 그때까지도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되돌아서 앉자마자 자기는 근처 모교회 안수집사라면서
자기 교회 담임목사 험담을 마구 쏟아놓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어쩌면 그 목사님이 꽤 괜찮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교회 성도들
은 물론, 특히 중직자들의 잘못된 신앙의 색깔을 바꾸려고 침묵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도메시지 보다는 기독교 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부친이 고향목회 51년 하시는 동안 보아 온 중직자들의 작태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순간 마치 심장을 향하여 총을 쏘는 기분으로
메시지 하나하나를 비수처럼 그의 심장에 꽂아 넣기 시작했다. 주고받는
동안에 사명감이 생겼다. 오늘은 아마도 이분에 대한 치유계획이 있나보다
라고 착각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복음을 원색적으로 쏟아 놓으려고
하는 순간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아! 이분이 아니었구나!” 그러면 “누구?” 하고는 내친김에 본래
전도대상자였던 그 철학자를 향하여 돌아앉자마자 막 바로 복음을 제시
하기 시작했다. 이왕 내친김에 그의 생각과 사상을 박살낸다는 요량으로
폭포수처럼 쏟아 부었다. 불과 15분쯤 되어서 그가 예수를 영접했다.
그러는 동안 단 한 마디도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예수영접 후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품었던 모든 의문점에 답이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았던 사서삼경 한 구절을
날렵한 한문 필기체로 갈겨썼다. 나는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런 때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꼬리를 내리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가
내게 들이민 것은 다섯 글자씩 다섯줄이 쓰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다시
그 앞으로 들이밀면서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한번 읊어보세요.”
나는 그가 읊어대는 소리를 듣고, 그 뜻을 알자마자 단 칼에 잘라냈다.
“그래서 지금껏 미치고 환장했지 않았나요?” 그는 즉각 맞다 고 했다.
참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그날 밤 10시쯤 신 목사님과 함께 만나볼
사람이 있다면서 그날로부터 전도캠프에 동행했다고 들었다.
나는 지금도 때때로 착각, 때때로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착각
하지 않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로 정교하게 인도하신다. 이것이
기독교다.
9. 성경을 설화라 생각하던 지질학자
2011년 해외캠프를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집사님 댁에 머물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일본의 쓰나미사건 이후 한국 정부에 지질도를 분석 보고하는
지질학자였다. 아내를 위하여 교회는 다니고는 있으나 성경을 믿지 않는
종교인이었다. 그의 바쁜 일정상 저녁 8시로 미팅 약속을 잡고 7시58분에 서재로 갔다. 그는 이미 대화 내용까지 예측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막 바로 나에게 물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만남을 요청한 이유가
뭐죠? 혹 교회이야기라면 사양합니다.” 했다. 나도 즉각 세 가지가 상상
되었다. 하나는 아마도 부인 집사님의 신앙 색갈이 너무 열심이 특심이기
때문에 질렸으리라. 하나는 이미 그에게 많은 전도자들이 예수이야기를
찔끔찔끔 한 것 같았고, 하나는 그가 성경을 설화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일단은 세 번째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두 번째 예수가 이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도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무식하면 용감
하다고,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맞받아쳤다. 아니 목사한테 교회얘기 하지
말라면 “왜죠?” 그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렸다. 그때 필자가
불쑥 던진 말, “박사님! 혹시 지구 년대를 어떻게 보시나요?” 자기
분야이기 때문일까? 즉각 답이 왔다. “학자들 마다 각각 다르지만 대략
50만년~50억년”이라고 했다. 나는 즉각 “하나님 모르는 학문은 그 자체가
사기이거나 적어도 가설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성경적으로 보면 6천년~1만년 사이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성경을 근거로!”
그 순간 그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지는 가 했더니, 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말했다. “그러면 그것은 증명할 수 있나요? 다른 학문을 그렇게
함부로 매도하거나 적어도 과소평가해서는 안되죠.” 나도 즉각 “아닙니다.
사기 맞습니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그의 자존심을 확 긁어놓았다. 그도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마치 따발총을 다다다다 쏘아대듯이
무식하게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그랜드캐넌의 높이 15m 길이 500km 에 달하는 사층리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며, 그 주변의 페인트칠한 사막과, 그곳 에 널려 있는 고강도
세라믹 처리된 아름드리나무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랜드캐넌 밑에
흐르는 콜로라도 강은 캐넌의 웅장함에 비하면 실개천에 불과한데 그것을
나일강의 삼각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샌디에이고 100m 언덕 위에 입
다문 조개화석과, 깨진 조개화석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 해변의
2~3m에 불과한 모래동굴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불과 3시간 만에
날아간 헬렌산⅓과, 그때 형성된 호수와 순식간에 날아간 나무가 그 호수에
서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며, 그때 순식간에 형성된 8m계곡과,
그 지층에 서 있는 나무화석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 요즘 그리고
계시는 지질도도 100% 확신할 수 있는가?” 이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지질학자 “ … ” 이것이 지구촌의 실상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성경의 노아홍수가 보다 더 설득력 있지 않은가요? 박사님도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믿어지는 순간, 더 지혜로워질 것이고, 참~행복
시작입니다. 이는 자존심이나 얄팍한 지식논쟁이 아닙니다. 박사님의 삶과
행복, 전혀 새로운 삶을 위해서입니다. 밤 12시경, 그는 마침내 예수를
영접했다.
이것은 내가 그 보다 더 지혜롭다든가 지식이 더 풍부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때가 되면 정녕 찾으신다. 하나님은
이미 그 박사님이 대답할 수 없는 주제를 준비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매
순간 나에게 성경과 현존하는 지구촌의 실상으로 그를 이길 수밖에 증거
들을 돌 머리 나에게 하나하나 떠올리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들 중
어느 하나라도 지질학자들이 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박사님의 그 생각과 사상이 바뀌지 않는 한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할건데, 하나님이 그냥 두고 보시겠는가?! 그리고
이 일에 나 같이 무식한 목사의 입을 통해서 마치 심장을 향하여 총을
쏘듯이 쏘아대는 그 돌 직구가 아마도 더 적절했던 게 아니었을까?
필자는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라고 그냥 믿는다. 오히려 막무가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딱 뱉어놓고 내 배 째라는 식이니까! 아주 무식해
보이긴 하지만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무엇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니까. 나는 오고 없어도 내가 쏟아 부은
그 말씀이 두고두고 역사할 것이 믿어지니까 말이다.
10. 대사관 직원들 전원 예수영접
2011년 해외 캠프를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교단 총무단이 한 팀으로
움직였다. 대사관 방문계획이 오후 5시로 잡혀 있었는데 1시간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현지 교통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인지라 그래도 늦게
까지 기다리다가 막 퇴근하려는 찰나에 문에서 마주쳤다. 대사로부터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아이쿠, 반갑습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이렇게…
마땅히 식사나 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 하는데…” 우리도 팀장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한 마디씩 하는데 내용인즉, “여러분들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서 수고하시는데 이렇게라도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기도 하고 또…” 이렇게 시작된 인사가 20분을
넘어섰다. 그 날이 추석 이틀 전이었는데 그런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다리도 아프고 마음이 거시기 해서 일단 입구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가
한쪽에 앉아 있었다.
순간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여기 왜 있는
거죠?” “제 수준은 아직도 명절이면 고향 부모와 가족이 만나서 뽕짝거
리는 것이 더 좋은데, 하물며 내 돈 300만원씩이나 들여서 시방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그리도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가면을 쓰고 형식적인 인사로 시간만 흘러가고,” 지금 “저희들은 무너지
지 않는 시스템을 세우려고 이곳에 와 있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되죠?”
이렇게 골똘하게 주고받고 있는데, 팀장님 음성이 들렸다. “다 한마디씩
했는데 김목사님만 한 말씀도 안 하셨네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시죠!”
그 때 나도 모르게 아니 불쑥 튀어나온 말이 “당신들 언제까지 그렇게
가면 쓰고 살아갈 건데? 그러다가 끝내려고요? 그런 인사로 지금 30분이
지났어요, 아니 뭐 마땅히 인사라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모래가 추석인
데 우린 그 추석도 반납하고 지금 이곳에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
하러 온 사람들이오.” 그리고 “뭐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해야 마땅하다고요?
그러면 대접하면 되지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다보면 금방 들통 나요,
그리고 미쳐요.” 그리고 “대사관이 뭐 하는 곳입니까?” 도대체 “여기 찾아
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오?” 뭐, “수고하신다고 밥 사주러 옵니까?
아니면 양복 한 벌이라도 해주려고 옵니까?” 어찌어찌 하다가 “도움을 청
하러 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뭐, “한국대사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깜빡
죽어서 알아 모시겠습니다. 하고 들어주나요?”
치사 빵빵하게 “밀고 당기며 각자의 국익을 위하여 동상이몽 아닙니까?”
대사님이 불신자라면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해요. 신자라고 들어서 하는
말인데, “예수 권세 가지고 일하세요. 예수 이름에 권세 있다고 믿으시고,
기도하며 해보세요,” 가면 쓰지 말고, “처음에는 모르겠으나 갈수록 빛이
나게 돼요” 때로는 “상식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돼요.”
사람들이 예수 이름 별 거 아니라고 착각하지만 그게 바로 착각이요,
“예수 이름에 권세 있고, 지금 그 권세를 간단하게 소유할 수 있어요.”
하고, 그들이 다 예수 영접하고 마치니 순식간에 40여분이 흘러갔지요,
그 밤에 나는 숙소에 들어와서 칭찬과 성토를 겸해서 당했다. “어쩌면
그리도 말을 잘 하냐고, 다 좋은데 왜 손가락으로 총을 쏘면서 말 하냐고,
이 한 가지는 꼭 고쳐야 한다고” 하물며 “다 서 있는데 목사님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목사님들을 향하여 말할 때는 손가락 하나로, 대사관
직원들을 향하여 말할 때는 손가락 두 개로 총을 쏘면서 말을 하더라고”
필자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그런 고약한 버르장머리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거든요. 그래서 이를 어쩌나?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마침 팀장님이 이렇게 말해주었답니다. “우리가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낯이 뜨거웠고, 평소 김 목사님 메시지가
넘 강하고 때때로 상식이 출장 간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그렇구나!”
하나님 어찌하오리까? 그랬는데, “왜 그런지 잘 보라!” 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유심히 바라보니, 중요한 대목에서 무엇인가 강조하고 싶은 말을
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총을 빵빵 쏘면서 말을 하더란다. 그런데 그때마다
메시지가 심장에 꽂히는 것이 보였다.” 는 것이다.
그러면 차제에 우리 모두의 유익을 위해서 한번 풀어봅시다. 뭐, 말을
잘 한다고요? 그런 게 어디 있나요? 그게 어디 말을 잘 해서 되나요?
차제에 김 목사는 넘 강하다고요? 그런 게 어디 있나요? 아! 저 목사는
성경적치유사역자라 들었는데 과연 성경적이구나!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피차에 유익하지 않겠어요? 자칭 필자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분들과, 나를
아는 분들이 총회 안에도 여러 분 계신데, 그분들은 하나같이 저를 보고
성경적이라고 말하거든요. 예수님은 더 강했더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그렇게 7번씩이나 “화 있을진저!”
하였으며, 세례 요한은 같은 무리들에게 이르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 하였더이다.
특히 전도현장에서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주시리라는 것과, 성령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안 믿어지면 어쩔 라고요? 오히려 마치 하나님이
말하는 것같이 해야 되지 않나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
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하였으니, 이것이 기독교 아니던가요?
이틀 후 추석날 교민체육대회가 있었다. 우리 팀도 그곳에 갔다. 마침
그곳에 이틀 전 예수를 영접한 영사님이 계셨다. 팀장이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이 영접시켰으니까 목사님이 한번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나는
조금 망설였다. 들어서 병이라는 말이 있다. 하필이면 그때 “다리를 꼬고
앉아서 총을 쏘았다.”는 그 말이 떠올라서였다. 그러나 그게 나를 더욱
담대하게 하고,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스케줄이었다.
영사님 앞으로 다가섰을 때, 영사님이 나를 알아보고, 바로 옆자리를
권했다. 한 시간 정도 만남을 주셨는데, 그는 나에게 자기는 천주교인
이라고 밝히고, 가정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지금까지도 메일로 교제하고
있다. 필자도 처음에는 매우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또 그게 더 편하고
좋지 않을까요? 덜 얻어맞고, 덜 거부당하거나 약하게 거부당하고, 여러
모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때때로 상식을 출장 보낸 비상식 인처럼
살아갈 때가 종종 있다. 물론 대개는 전도 현장에서만 말이다.
11. 교민회장 부부와의 만남
외국에서 처음 맞이한 추석 그날 밤 교민회장의 초대를 받았다. 난생
처음 맛보는 가든 파티였다. 정원에는 대나무가 둥그렇게 세워지고, 그
위에는 촛불들이 밝혀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무너지지
않는 전도시스템 구축이다. 대사관 사건 이후 쑥스럽게도 메시지는 내 몫
이 되었다. 그 밤에도 그랬다. 회장님 부부는 이미 오래된 기독교인이다.
나보다도 연세가 많으시고, 그 시대에 연세대학교와 이화여대를 나온 엘
리트다. 사모님은 4개국 언어에도 능통하다고 했다. 경제력도 인품도 훌
륭해 보였다. 이런 분이 우리의 사역에 협력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그래서 우리의 목적을 정확하게 밝히고 거기에 관한 메시지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메시지를 바꾸었다. 왜냐하면 복음에 우선하는
그것은 전도자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지만 복음이 뒷받침 되지못한
시스템은 지속은 고사하고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고, 또 전도나 삶의 현장에서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날 1시간 20분정도 진행된 메시지의 거의를 복음의 능력과 당위성,
그리고 그 역사에 중점을 두었고, 말미에 특수 목적을 갔다 붙인 정도였
다. 왜냐하면 나는 어려서부터 병든 닭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성도들
을 보아왔고, 그리스도 알게 된 후로는 90% 이상의 신자들이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역은 나중
문제인 것과 먼저 두 분의 행복을 위해 나의 지난날 삶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생생하고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그것이
저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사실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저들은 우리들의
사역과 계획에 공감하고 적극 협력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들의 동반자로서 또 협력자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듣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 외에도 OO교회에서 11년간 제자훈련을 받은 대사관 행정관도 새벽
조깅 길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마련하신 특별한 만남이었다. 조
깅도 그만두고 1시간 이상 복음과 삶을 나누는 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외에 이때까지 복음을 거부했다던 불교인 전직 교사부부도 예수를 영접
했다. 물론 그들도 복음의 협력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듣고 있다.
이처럼 전도자의 발걸음이 머무는 그곳이 바로 캠프 현장인 것을, 아무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 자랑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이 나는 참
좋다. 그냥 좋다.
12. 새로 산 차 첫날에 교통사고
타고 있던 카니발 차령이 11년을 넘어서면서 고장이 잦았다. 지난해에
는 수리비로만도 250만원이 들었다. 베라크루즈로 바꾼 첫날 세미나를
가는데 비가 내렸다. 고속도로 정체가 심했다. 양재역 부근에 이르렀을 때
좀 풀리는가 싶어 페달을 막 밟았는데 앞차가 갑자기 급정차 했다. 급브
레이크 그러나 그대로 밀리면서 쾅, 차를 바꾸면서 조심을 했는데, 아직
적응이 덜 됐고, 낡은 카니발과 순발력에서도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났다. 그래 말이오. 상식을 잃어버리고 핸들 위에
엎드려서 아이처럼 투정을 했다. “하나님 무사고 운전을 부탁했건만
도대체 왜죠?” 그렇게 뒤집어씌우고 있노라니, 똑똑 이보세요!
그제야 밖으로 나가서 죄송합니다. 했는데 호통소리가 들렸다. “당신
졸았어? 이 차, 산지 3개월 밖에 안 됐어요.” 보니 SM5였고 새차 같았다.
더 미안해하고 있는데 “그리고 차를 받았으면 일단 나와 보셔야죠. 무슨
뱃장이예요. 우리가 잘못했나요?” 그 순간 아내가 차 조심 하라고 하면서
혹 가고 싶지 않으면 오늘은 쉬세요. 했는데 그 말을 들을 껄 그랬나?
나는 더 미치겠는데 수모까지 당하고 있구나! 그래서 “저는 이 차, 어제
샀는데 오늘 처음 운전했거든요. 나도 … ” 화가 나요, 하고 받아치려고
하는데 “얘야, 이 사고 왜 났겠냐?” 그 순간에 “그러면 혹시 전도계획?”
그때 내 말이 “혹시 예수 믿으세요?” 엉뚱? “우린 천주교요.” 이 마당에
그건 왜 물어요? 하는 투였다. 나는 이 나이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래
말이오. 제가 목사거든요.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요.” 그제야 저들이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나는 내가 100% 잘못했으니 일단 차를 빼자고
했다. 그런 후 차를 빼고 전도시작 10분 만에 두 명이 예수영접, 그때에
보험회사 직원이 오고, 저들은 바쁘다면서 급히 자리를 떴다.
그 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보험회사 직원, 정비공장 직원, 공장장,
직원처럼 보이던 사장, 렌터카 사무소 여직원 등 도합 6명이 예수영접,
특히 그 직원처럼 보이던 사장님은 내가 공장장 한데 전도하는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예비역 장성인 자기 친구에게 전화했다.
“너 교회 나가고 싶다더니 어디 다니는 교회 있냐?” “…”,
“여기 좋은 목사님이 한분 계셔서 소개하려고” “…”, 그럼 어쩔 수 없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 공장장이 예수영접을 마치고 그 직원같이
보이던 노인에게 “사장님이 저보다 더 좋으신가 봐요.” 했다. 나는
그 사장님마저 예수 영접을 마치자 교통사고의 막이 내렸다.
13. 분당의 식당 천주교인 사장
필자는 발가락뼈 골절을 당한 후 전도캠프현장 보름 만에 발을 삐끗하여
재 골절 되었다. 수술비 100만원 추가에 3일간 입원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문불출하다가 7월 24일, 마지막 날 캠프를 가려는데 장마비는 내리고
22호 글도 아직 이고, 이처럼 핑계거리가 많은 게 인간이다. 자연스럽게
신문사 기고문 22호 글을 쓰다가 중단하고, 불현듯이 일어나서 70분을
지각하여 캠프현장에 도착했다. 마침 한 천주교인 식당 사장님을 좀
만나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날 그 식당에 손님들이 하도 많았다. 도무지 말을 붙일 수 없을 만큼,
나는 손님들이 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며 식사를 천천히 했다. 아니 벌써
포럼시간이 가까웠으나 여전히 그랬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착각, 일어나
목발을 짚고 나오려는데 문득, 기다린 시간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에라 말이나 해보자” 하고는 돌아서서 “사장님 꼭 할 말이 있는데,
잠간 저기로 가시지요.” 사장님, “여기서 하세요.” 즉각 “3분이면 됩니다.”
순간 나도 참 또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도 좀 귀찮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선채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 사장님 그 바쁜 중, 왔다 갔다 하면서도 복음에 귀를 기울였다. 한
15분쯤 지났는데 사장님 스스로가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단 3분도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이 90분을 넘어섰다. 그날 그는 예수를 영접했고,
다음에 또 들려주세요(단체예약 손님 때문에) 하였으니 참~재미있잖아요?
그날 그가 내게 들려준 말의 요지는 이렇다.
나는 탁 소장 밑에서 십수년을 이단감별사노릇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러나 거기에도 여전히 인간 냄새가 났고 악취가 났다. 나는 아내를 따라
천주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1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마음이 늘 편치 않다
고 했다. 간혹 천주교인들은 기독교로 많이 가는데 기독교인들이 천주교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면서 자기만 홀로 거기 있더란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를 가고 싶었는데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더란다. 그러면서 인간을
평가하는 말투가 “인간은 다 그놈이 그놈이야!” 하는 거였다.
너나내나 사람은 착각 속에서 살아갈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착각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의 구원 계획을 그 시간표를 따라 정확하게
이루어 가신다. 필자는 그날 무슨 말을 먼저 했는지 지금은 모른다. 그날
아무 말이나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냥 뱉어내면 되었으니까! 그 후 나는
그에게 약속한 대로 그 근처에서 목회하는 친구목사님과 함께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30만 치유사역자 중 일원으로 살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세상은 왜, 고민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괜찮다.
롬 8:26~27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셨으니, 이는 불신자만이 아니라 신자를 포함
인간은 누구나가 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으면 괜찮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셨다. 왜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8~29)
이것이 바로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의 수준이다.
만일 어떻게? 라고 또 묻는다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하였으니, 참 미쁘신 하나님! 이것이 기독교다.
14. 교회 문을 닫게 한 사모님
노회 전도캠프를 하는 중, 나와 팀이 된 짝꿍과 함께 어느 복지센터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 40대 초반의 멋진 부인이 반가이 맞이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하러 온 것을 알고는 자기도 믿는다면서 우리를
마치 벌레 보듯이 밀어냈다. 나는 그냥 나오려다가 그 눈초리에 독이
올라 있는 것이 보였기에 되돌아서서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당신 예수 믿음에도 불구하고 참 피곤하겠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잠간 올라오세요. 하고는 차를 내왔다.
나는 막 바로 복음과 은혜를 한 30분쯤 나누었다.
그 부인의 얼굴에 기쁨과 환희가 넘쳤다.
나는 가방 속에 있는 메시지를 있는 대로 건네주면서 당신을 위한
선물이니 꼭 읽어보라고 했다. 한 주 후 같은 시간에 다시 갔다.
그녀는 이미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아주 기쁘게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내가 준 메시지를 읽어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즉각
다 읽어보았고 참 감사하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자기는 목사 사모라는 것과, 자기 때문에 교회 문을 닫았다는 것과,
남편은 그 일로 강원도에 기도하러 올라가 있다고도 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신자들이 불신자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었고,
목회를 계속하려면 차라리 이혼하자고 해서 교회 문을 닫은 지
한 달 조금 넘었는데, 복음을 듣고 힘을 얻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전도에 마음껏 활용하라고도 했다.
그 사모님은 지금 가까운 곳에서 목회하고 계신 우리 교단 목사님과
복음을 함께 나누며 예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장에는 복음을
외면, 욕하고 비방하는 사람이 90%가 넘는다. 통계적으로 그렇다. 그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영이 틀리거나 다만 시간표다. 그래서 전도자들은
때때로 고달프고, 때때로 아프다. 그러기에 어쩌다가 만나는 예비 된
영혼과 숨겨둔 사명자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그리 큰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성령의 인도 속에서 되어지는 전도자의 삶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의
세밀한 인도를 관찰하고, 그때그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든 담대하게
선포해보라. 점점 더 그 맛을 알게 되리라 믿는다.
15. 삼성 디지털 프라자 점장
2013년 봄 핸드폰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서 서비스센터를 찾아가기에
앞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삼성 디지털프라자에 들렸다. 아무 이상이 없다
는 말을 듣고 나오는데, 아! 그러면 전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식으로
목사임을 밝히고, 조금 전 당신이 나에게 작은 유익을 주었는데, 나는
당신에게 아주 귀한 선물을 드리겠다고 하면서 전도지를 꺼내 놓고
3분 메시지를 했다.
손님이 수시로 드나드는 삼성 디지털 프라자 입구, 그런 경우는 대개
3분~5분 메시지를 한다. 메시지를 마치고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
나에게 시간이 있으시면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날 그는
예수를 영접하고 말씀운동 스케줄을 잡았다.
3개월쯤 지났는데 메시지를 몇 장 더 달라고 했다. 자기 부인이 분당
모 교회에 다니는데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만남으로부터
그날까지 말씀 나누는 시간을 빼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무리 바빠도 그랬다.
물론 그가 점장 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갈급하거나 숨겨진
일꾼들이 있다. 전도자의 발걸음이 머무는 그곳이 바로 전도 현장이다.
말하고 싶을 때 그냥 말하면 된다. 물론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포함한다. 나는 거의가 후자인 편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10분 이상 진행된 만남에서는 거의가 다 예수를 영접한다.
전도는 과연 하나님의 타임스케줄이다.
16. 중환자실의 시한부 인생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경험도 하게 했다. 1998년 3월쯤 된다. 안산의
어느 권사님이 안산에서 교회 옆 삼성 1차아파트에 사는 딸네 집에
왔다가 주일 예배에 참석을 했다. 메시지에 은혜 받은 것이다.
예배 후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아주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아들에게 기도 한번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순복음교회 권사였다. 물론 그 아들도 집사였다고 한다.
난처했다. 그분은 내게 무슨 신통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기도를 부탁한 것이다. 필자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담임목사 기도를 받으라고 했다. 그분의 말이 예배도 수없이 드렸고,
기도도 수없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제야 그러면 한번 가겠다고 하고,
아내와 중직자들과 함께 아주대병원 중환자실로 갔다. 경험이 없는지라
다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나만 혼자 병실로 들어갔는데 권사님은 보이지 않았다. 환자와 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 단 둘 만이 방 가운데 덩그라니 놓여 진 석고상에
다름이 아니다. 환자는 의식불명 식물인간, 필자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처럼 멍하다. 병 낫기 위해 안수기도 한번 한 적이 별로 없는 목사,
그러니 하나는 병실 한견에, 하나는 한 가운데 덩 그라니 놓인 석고상,
낸들 어쩌라고! “하나님 참 황당하네요!”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 황당?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래도 영혼은 있지 않겠는가?!”
아! 그래 바로 그거야, 영혼을 향하여 설교하는 거야,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그때처럼 신나게 쏘아댄 적은 별로 없다.
“당신 집사라며, 예수가 그리스도란 말 들어봤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해봤어?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어본 적 있어? 그러나 부끄러울 건 없어, 나도 그랬으니까!
당신이나 나나 똑같아, 내 속 들여다보면 나도 개판이라고, 나도 주의 일
한다고 교회 건축하고서 말로 다 못할 어려움도 겪었고. 지금도 빚쟁이들
전화에 시달리는 목사, 당신은 의식 없는 환자, 나는 의식 있는 환자,
당신은 숨 못 쉬는 환자, 나는 숨 쉬는 환자,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 맞아, 그래서 그가 우리의 구원자 맞아, 그가
우리 인생의 주인 맞아! 맞다고! 그래서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야, 뭐,
의사들이 죽는다고? 다 헛소리야, 그런 말 믿지 마, 예수쟁이는 병으로
못 죽어, 하나님이 데려가셔야 죽어, 그러니까 00때문에 죽는다든가
00때문에 산다든가 다 거짓말이야! 내가 볼 때 당신 날라리 집사였지?
엄마 권사가 그러더군, 집사였다고,
그래도 그게 중요해, 당신이 집사로서 할 일이 있다면 그냥은 죽을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볼 때 아무래도 당신 그냥 데려갈 것 같지는 않아,
만일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집사답게 복음을 위해 살아, 예수 증인으로
살란 말이야, 물론 당신이 살아난다면 그 자체로도 증인이지, 이거는
사탕발림 아니야! 내가 이 마당에 당신한테 사탕발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잖아? 그가 듣는가, 마는가! 그렇게 40여분을 아주 신나게 쏘아댔다.
그리고 주기도문으로 또박또박 기도하고 돌아왔다.
못내 궁금했다. 그래서 이틀 후 몇 사람이 함께 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그는 이미 일반 병실로 옮겼고, 일어나 앉아 있었다.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믿는다. 그 후 나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다. 왜? 하필이면 그때
그랬을까? 그 권사님 말따나 지금까지 예배도 수없이 드렸다. 사람들의
기도도 수없이 받았다. 그래서 왜 어떻게 나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목사, 전도사 기타 등등 수없이 왔다 갔으니까 어느 코에 걸렸는지,
그러나 어느 코에 걸렸든지 하여간 다 죽었다던 그가
마침내 퇴원을 했다. 이것이 기독교다!
17. 우리 아들 괜찮지 않다구요!
따르릉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첫마디가 아들 때문에 미치겠
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무려 2시간 30분이나 털어
놓았다. 지금 대학을 졸업도 못하고 10년 째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기분
좋다고 가고, 기분 나쁘다고 안가고, 선배•후배•친구가 이말 저말 한다고
가고 안가고, 듣기 좋다고 싫다고 시험 보고 안보고, 시험보다 말고도
뛰쳐나오고, 그러니 학점도 안 나오고 그렇게 하기를 10년이란다.
지금은 아예 골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내가 못살겠다고, 나도 간간히 맞장구치면서 하나하나 체크했다. 아들이
혹시 교회 다니느냐고, 혹시 예수영접은 했냐고, 목사님은 뭐라 하더냐고,
상담은 받아 봤느냐고, 정신과 상담도 해 봤느냐고, 하기야 그 마당에
이것저것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렇게 처음에는 맞장구도
치고 내가 생각해도 미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당사자는 오죽 하겠
느냐고,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명색이
목사요, 자칭 최고의 성경적 치유사역자인데 말이오.
그래서 간간히 베이스 넣기를 예수영접 했다고 하지 않았냐고,
그러면 괜찮지 않느냐고, 간간히 라도 교회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대학 못나왔어도 고등학교는 나왔지 않느냐고, 하물며 일류대학 그만큼
다녔으면 꽤 괜찮지 않느냐고, 예수쟁이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니,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예요?” “아니 내가 이제껏
우리 아들이 왜 어떻게 괜찮지 않은지, 두 시간도 넘게 말했잖아요?”
내 말이 “알아요, 다 들었어요. 그 중에는 교회도 다니고 예수영접도
했다면서요?” 그래요, “그러면 그 아이가 하나님 자녀라는 건 알겠네요?”
그래요, “그래서 괜찮다는 겁니다.” 그러면 또 뒤집어진다. “아니 괜찮지
않다는 말을 그렇게나 많이 했는데 말 귀를 못 알아들으시네요.”
나도 즉각 “사돈 남 말 하시네, 그건 그 쪽이요. 목사가 괜찮다는데
괜찮지 않다고 박박 우기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요?” 목사가 괜찮다면
뭐가 괜찮은지 알아듣게 이야기 해주세요. 그렇게 되묻는 게 상식이거늘,
“어허! 내 귀에는 마치 당신새끼 패대기 쳐주고, 한 번 더 쳐주었으면
좋겠다고 들리는데, 과연 그런 거요?”
그랬더니 “뻔~한 대답이 나올 건데 그것을 내가 왜 물어요?” 그래서
“내가 시방 뻔~하지 않은 대답을 하고 있지 않소?” 잘 생각해보세요.
“뻔~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그 대목이 당신에게 진짜 함정이요. 그냥
뻔~한 상식이 아니고, 그냥 답이 되었다면 벌써 끝났을 거요.” 그랬더니
“뭐 이따위 목사가 다 있어! 지금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거요 뭐요. 말꼬리
잡고 늘어지고” 이쯤 되면 나도 상식이 출장가고 무식이 찾아온다.
“아니 이제 보니 당신 아주 나쁜 여자야! 어쩌면 당신 새끼 그렇게 된
것도 다 당신 때문이야, 지금 목사인 내게도 그러는데 당신 새끼에게는
오죽 했겠어?” 막무가내로 “업어 치고, 뒤집어 치고, 메어치고 그러면
어쩌라고? 당신 새끼 돌아버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줄 알아요.”
“아니 해결책이 있다는데 “우기기는 왜 우겨?”
그제야 풀~석, “ … ” 한 줄기 폭풍우 지난 후, 내 말이 “권사님
미안해요, 그 아픈 상처에 고춧가루 확 뿌린 거 아니까! 왜 아니겠어요.
저보고 남의 새끼니까 그런다고 그러시겠지만 사실이오. 제가 여느
상담자처럼 맞장구나 치고 위로하며 등 두드려주고, 그래도 참으셔야죠,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우아하게 속이고 오히려 권사님의 그 지치고 곤한
마음에 꿀이나 발라주고, 곱사 짐으로 한 짐인 등과 그 두 어깨에 보너스
한 짐 더 얹어주면 시원하시겠소?”
제가 지금까지 한 말은 이론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상담
하면서 적어도 몇 개월 진행되었다면 치유 안 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니 이제 용서 하시오. 저도 권사님께 이처럼 내질렀는데
상처투성이 그 아들은 오죽 했겠습니까! 말씀 안하셔도 훤히 보입니다.
권사님의 그 마음을 영상으로 찍어 놓으면 아마도 벌집 같겠지요.
그로부터 12회 정도 만났을 뿐인데 그 아들은 골방에서 나왔고 정상적인
삶이 시작되었음은 물론 그 권사님 또한 치유되었으니 실로 감사한 일이
다. 과연,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는 유일한 책이다. 차제에 모든
상담자들 또한 복음으로 자유 함을 누리는 상담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18. 내버려 두세요, 홀연히 돌아올테니
어느 집이나 그러겠지만 요즘은 한 가정 두 자녀 아니면 한 자녀다.
그렇지만 대를 이어 외톨이로 내려온 가정이라면 여느 가정과는 다를 터,
그 가정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부모가 볼 때에 양이 안 찬다. 물론 부모의
눈으로 보면 거의가 다 그러겠지만, 필자가 볼 때에도 그랬다. 정말이지
문제투성이고, 정말 괜찮지 않아 보였다. 상식선에서 보면 누가 보아도
괜찮지 않다. 그래도 복음의 눈으로 괜찮다고 말할 것밖에 없다. 아무리
괜찮다 말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들고나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어느 날 차라리 저 죽고 나 죽어야 하겠단다. 내 말이 집사님 어차피
그 정도로 갈 데까지 갔으면 없는 셈 치면 되지 않소이까? 하물며 그
아이가 예수영접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러면 하나님 자녀
맞지요? “네” 그러면 “그 아이를 집사님이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더 사랑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그야 물론 하나님이…”
그런데 너 죽고 나 죽어 가문에 씨까지 말리면 되겠습니까? 아예 없는
셈 치고 버려두세요. 그냥 버린다고 생각하시면 미치고 환장하실 테니까!
하나님께 맡겨 버리세요. 그리고 제발 뒷치닥거리, 그만 하세요,
오히려 그것은 집사님의 작품이오.
하나님을 종이호랑이로 생각하신 그 작품 말이오.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집사님의 그 아집, 매사에 하나님 노릇하는 그 버르장머리 치유
계획이 포함되었다면 어쩌실 건데요? 어느 날 홀연히 돌아올 것이고,
어느 날 홀연히 예수 증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괜찮다는 말에 악을 박박 썼는데, 예수 안에서 계속 사용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지 않은가!
정말 그렇구나! 하나하나 확인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말장난이 아니다.
말씀의 능력이다. 불신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의 씨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그래서 사실임을 보게 되어 있다.
그 집사님이 어느 날부터인가 전도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다말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가지 말라고 해도
간다. 예수 안다면 예수 자랑 아니치 못한다. 우리가 착각해도 예수는
그리스도! 착각하지 않아도 예수는 그리스도, 그럼 무엇인가 예수쟁이는
딱 두 마디 질문밖에는 할 게 없다. “미치고 환장 하다가 승리할래?
아니면 하나님 자녀! 그 신분과 권세를 누리다가 승리할래? 그 말이다.
그것도 너와 나의 의(義)가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말이다.
그 아들도 어느 날 홀연히 돌아와서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말이다. 이 달에 신학대학을 졸업한다.
19. 한 마디 언어로 딸을 키운 목사
내가 잘 아는 한 사람 목사가 있다. 3대째 예수쟁이 집안이다. 그 목사
의 딸이 고 1때 가출을 했고, 17살에 아기를 낳았다. 그 과정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 그 사모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그 아기를
소리 소문 없이 지우려고 했다. 어린 딸의 손을 이끌고 병원에 갔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드러난 모습은 사모의 양심 때문이었다. 사모는
병원에 가기 전에 남편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 어디 좀
다녀올 테니 기도해주세요.” 그 목사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겁이 났으니까!
그 속마음은 이랬다. “제발 이유는 말하지 마, 그리고 제발 나 모르게
그냥 지워줘!” - 그런데, 다 저녁 때 그 사모가 힘없이 돌아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이미 예상된 일인 것을 어쩌랴?!
애비는 마침내 마음을 정리했다. 딸을 불러놓고 애원을 했다. “딸아! 아
기는 낳아도 좋다. 그러나 결혼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니면 대학을
마친 후에나 하면 안 되겠니?” 딸이 말했다. “싫어요, 저는 그 남자를
사랑해요, 사랑 한다고요.” 애비가 즉각 말했다. “뭐? 사랑? 착각하지
말라! 어디 16살짜리 데리고 그런 놈이 제대로 된 놈이겠니?” 딸은 한술
더 떴다. “아빠는 설교 한 대로만 사세요!” 애비는 네가 나보다 낫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또 애원을 했다. “그러면 낳아라. 그러나 결혼은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한 후에 하면 안 되겠니?” 실상 그 속마음은
그 안에 마음이 바뀔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막무가내 딸은 고교를 중퇴하고 이듬해 봄 3월에 결혼을 했다.
그때 주례자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목사인 애비가 축도를 했다. 그리고 한
여름, 8월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기를 낳은 지 3개월 만에 가정파탄이
났다.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다보니 하나하나 가면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잘 살아보겠다고 일식집 종업원을 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던 성실
남에다가 키 크고, 잘 생기고, 그리도 다정했던 그가 실상은 본드를 흡입
하며 밤늦게까지 술 속에서 살아가야 할 만큼 이미 맛이 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 딸은 얻어맞기 일쑤였고, 출생 후 3개월 만에
피투성이가 되어 집을 뛰쳐나왔다.
어느 날 새벽 2시경, 전화벨소리가 울리는가, 했더니 그 사모가 거실에
서 소리 없이 울면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 사실은 얼마 전부터 그런 일
들이 자주 있었고, 그때마다 두 모녀끼리만 속닥거렸다. 하기 사 어느 정
도 미래를 내다본 그 애비의 간청을 목사의 자존심까지 박박 긁어가면서
한 결혼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게 바로 어린 자녀들의 한계다.
그러나 실상은 그 애비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사방팔
방이 캄캄절벽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오랜 세
월을 함께 살면서도 피차간 오해 속에서 살아간다. - 숨을 죽이고 있던
애비가 전화기를 낚아채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한 밤중에 두 모녀가
신파영화 찍고 있나? 전화기 이리 내라!” 그리고는 딸에게 소리쳤다.
“거기 어디야! 애비가 갈 테니 꼼짝 말고 기다려라! 아빠도 여전히 널
사랑한단 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그 밤에 피투성이가
된 딸을 데리고 들어왔고, 그 외손자를 할아비가 기르게 되었다. 할 수만
있으면 그 결혼을 막아보려고 내 뱉었던 그 말이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았더라면 능히 알 수 있었던 것을 목사들은 때때로
너무도 단순하여 하나님의 뜻이라면 앞 뒤 가리지 않고 아멘 하는
습성이 있으니 그리했으리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다. 복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계획과 그 스케줄이다.
그 사이에 어느 덧 19년이란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그는 지금
도 그 손자를 기르면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 19년
동안의 이야기를 글로 쓰자면 어찌 몇 줄의 글로 나타낼 수 있으랴!
늦가을에 생후 3개월 된 아들을 품에 안고 돌아온 딸이 그 겨울을
나지 못하고 집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 애비는 OO누명 등 연거푸 터진 대형사고로, 대지 400평, 실 건평
169평, 등록교인 2백여 명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5억 부채만 덩 그라니…,
때마침 불어 닥친 IMF한파, 채권자들의 빗발치는 전화, 그나마 남아 있는
20여명 교인들의 따가운 눈총, 여기저기서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창피해서 우리 딸을 교회에 데리고 올 수도 없다는 둥, 목사님 가정에
어찌…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건가? 등등, 뒤 꼭지가 몹시도 따가웠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캄캄절벽, 집을 나가는 그 딸에게 만원짜리 지폐
한 장 쥐어주지 못하는 주제에 하는 말, “애비는 비록 넥타이 맨 거지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네 아버지 그것은 맞다.” 했겠다. 딸이 귀를
막고 또 막으며, “아빠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 애비의 말, “그래도
하나님이 네 아버지 맞다.” 그 딸, “제발 하지 말라니까! 이제는 아빠
얼굴조차 보기도 싫어!” 하며 발악을 했다. 애비, 마치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이 “어허! 그래도 맞다니까!” 하고 연거푸 쏘아댔다.
“나도 너 같은 딸은 싫다. 싫어! 그러니 하나님이 내 아버지 맞다 고
믿어지지 않으면 돌아오지 말라! 너도 골치 아프겠지만 나도 골치
아프다!” 충격인지 지친 건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도 묻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말이 없다. “ … ” 애비는 그 딸이 그래도 안쓰러웠다. “딸아!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래도 내 할 말은 그 뿐이다. 했다.
혹시 말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악도 써보고,
발악도 해보고, 절규도 해 보거라! 그러나 하나님이 과연 내 아버지
맞는지! 그것만은 꼭 확인하라! 어느 날 홀연히 믿어지는 날이 올 거다!
그때 돌아오라.” 집을 나가는 딸의 뒤통수에 마치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애비는 그렇게 쏘아댔다. 그 후 연락두절, 그 딸도 그렇게 독하게 집을
나갔다. 생후 5개월 된 아가를 남겨 둔 채, 깊어 가는 겨울 흰 눈이 펄펄
날리는 그 날, 그렇게 집을 나갔다. 그 후 서로가 연락 두절이었다.
과연 그 아비에 그 딸,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마침내 그랬다.
그 딸이 13년 만에 돌아왔다. 그것도 2009년 1월 하필이면 30년래 찾아온
강추위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그 강추위 속에서 수도 전기마저 끈긴
채 옥탑 밑 상가에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그 때 말이다.
그리고 그 봄에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영적원리가 그렇다. “예수가 그리스도” 하거나, “성령이 나의 보혜사”
하거나, “하나님이 내 아버지” 그러면 된다. 왜냐면 “아버지 외에는 아들
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했으며, 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라든가,
“성령으로 아니고는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 롬 8:15)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적원리다. 그러므로
그냥 “믿어라 보다는 믿지 않고 배겨!” 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20. 한 마디 언어로 외손자를 키운 목사
그 목사는 위에 언급한 대로 17살 딸이 남겨두고 떠난 그 핏덩이를 기
르게 되었는데 당시 OO누명 등 대형사고로 모든 것을 순식간에 다 잃고,
5억 원의 빛만 덩 그라니, 희망이 절벽이었다. 분하고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곤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이쯤 되면
치명적이다. 불신자 가족은 발이라도 동동 굴러준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일단 수근, 수근 째려본다. 상처가 건드려지고 왕따가 보인다. 명절이면
자녀들이 고향을 거부한다. 주변에 친구들도 떠나간다.
고향에서도, 교단에서도 수근, 수근 비방한다. 목회자끼리도 도다리는
도다리, 송사리는 송사리끼리 모인다. 돈 없어 훈련도 못 받고 절절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잘 몰라서라는 또 다른 누명에 운다.
목사 자존심에 말도 못한다. 부모 형제들로부터의 지원도 없다. 오히려
선교사들에게는 물심양면 지원이 쇄도한다. 잘 난 사람 잘 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 난 대로 산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 아내가 생후 3개월부터 외손자를 키웠다. 맡길 데도 없다.
그냥 데리고 다녀야만 했다. 사람들은 늦둥이 봤냐고 물어온다. 일일이
답하기 궁색하다. 어느 날 아! “예수가 그리스도” 그러면 되는데, 비로소
자신만만하게 우리 딸이 17살에 아기를 낳았다오, 말하기 시작했다.
외손자가 어느덧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 갔다 오면 아무도 없다.
전도자의 삶을 살려고 하는 자들은 대개가 전도가 되든, 안 되든 훈련과
전도현장에서 살아간다. 아이는 엄마 얼굴도 가뭄에 콩 나듯이, 아빠는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친구들 아빠가 함께 게임도 하며 놀아주는 것을
보면 몹시 부러웠나 보다. 오죽했으면 어느 날 “너 장래 소원이 뭐냐?”
물었더니 서슴지 않고 “아빠 되는 거” 라고 말했으랴!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이 오라 가라 했다. 성적 때문이다. 아이는 늘
혼자다. 그사이 게임에 빠졌다(중1때 전교게임대회에서 3등 할 만큼).
할머니는 선생님에게 한글만이라도 깨우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는
날마다 닥~달을 한다. “얘야 너 도대체 어쩔라고? 도대체 장가는? 직장은?”
그렇게 10년 후의 근심 걱정 염려를 마구 끌어다가 쏟아 붙는다.
그 목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어쩌랴 목사는 목사인 것을 성경적으로 생각해 보니 그래도 괜
찮지 않은가 말이다. 그때부터 자신만만하게 “거 하나님 자녀 성적 가지
고 기죽이지 마세요.” 그러나 되돌아온 말은 “그래도 걔가 할아버지 말은
좀 듣는 편인데 당신이 그 모양이니까…” 인간은 속이 상하면 상할수록
말이 더 거칠어진다. “어허 괜찮다니까!” 그러면 “그래도 그렇지…” 좀 더
강하게 “어허! 참, 걔는 하나님 은혜로 살아갈 아이야” 그렇게 뱉어놓고
곰곰 생각하니 맞아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물론 처음에는 꼭
믿음이 있어서는 아니다. 믿음 반, 오기 반, 어쩌면 하나님을 향한 불만
같은 그런 거였는데 “걔는 하나님 은혜로 살아갈 아이” 하면 할수록,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기 시작했다.
그 손자는 실력 때문에 신설고등학교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해 2월 선
교사대회 때 귀국한 필리핀 선교사님이 청소년 특강을 마친 후 그 아이
를 보더니, 바기오로 보내세요. 했단다. 그래도 돈 때문에 미적대고 있는
데 선교사님 말씀에 “돈 걱정 하지 마시고 보내세요.” 힘을 얻어 유학을
보내기로 하고 성적표를 받아보니 양가집 규수다. 그것도 체육과 음악만
양 두 마리, 그래도 그렇지 어이가 없더란다. 그러나 이내 웃으면서
“선생님 이 양 두 마리를 가로 바꾸시면 안 되나요?” 선생님은 참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OOO할아버지 맞으세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목사인데 걔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아이니까 말이오.” 했더니 아!?
바기오에서도 수업 시간에 잠만 자더란다. 1년 6개월을 내내 깨워놓으
면 자고, 깨워놓으면 자고, 그래서 “너 어젯밤 잠 안 자고 뭐했니?” 했더
니. 천연덕스럽게 하는 말, “저 잘 잤는데요,” 그래도 선생님이니까
깨우거나, 상담하거나, 격려하거나, 별의별일 다 해도 속수무책, 어느 날
아이가 실실 웃으며 하는 말, “교장선생님 너무 안타까워 마세요.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저는 하나님 은혜로 살 사람이라고 했어요.”
하더란다. 그래 미워할 수도 없더란다. 실은 그 아이도 오죽했겠는가!
처음 1년간은 여러 번 “할아버지 저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돼요?”
그때마다 그 할아비 말이, “그냥 개겨,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니
그냥 개겨” 했단다.
참~황당하지요? 더 황당한 것은 그 할아비 목사가 가끔씩 바기오에
들러서 성경적 치유메지지 하는데 그때마다 그랬단다. 어느 날 교회와
전교생 앞에서 메시지 중간에 그 손자를 일으켜 세워놓고 한 말이,
“바로 저애가 양가집 규수란다. 여기서도 수업시간에 잠만 잔다지?
그래도 괜찮다. 홀연히 되어지는 날이 올 테니까,” 재미있는 것은 강의
후 손자가 실실 웃으면서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할아비, “쪽팔리지
않더냐?” 그 손자, “괜찮아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 할아비에 그 손자?
어렸을 때부터 그 말만 들어왔으니까?! 했단다. 만일 그랬다면 정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이다. “하나님이 은혜주시니까” 이것이 기독교다.
생각해보라! 공부가 세뇌시킨다고 되겠는가 말이다. 누가 보아도 비상
식이다. 그 손자는 그렇게 고교 3학년 1학기를 마칠 때까지 18년 동안을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교장선생님의 눈에
는 어떻겠는가! 그래 그 속말이 “할아버지가 저 모양이니까 손자가 그렇
지 저런 목사는 제발 여기에 안 왔으면 좋겠다, 맨 날 초만 치고 다니고”
누군들 아니 그러겠는가?! 이쯤해서 한번 물어봅시다. “성경이 상식선에
서 기록된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 말씀인가요?” 예수쟁이 치고 누구나
후자겠지요. 그럼에도 그래도 그렇지가 현실이다. 그것이 필자가 어려서
부터 보아온 교회의 모습이다. 필자도 그렇다. 어쩌면 그 교장선생님 보
다 더 각이 졌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내 말하는 싸가지 보라!
불신자 입장에서 보면 “막무가내 박박 우기는 거다.” 그래도 내 말이
“예수가 그리스도” 이 하나면 되는 것을 낸들 어쩌라고! 조선말로 풀어
요약하면 “예수는 나의 구원자, 나의 주인” 이란 말이다. 목사라고
처음부터 그랬겠는가? 어느 날부터 홀연히 그랬다. 시방도 90% 이상의
성도들이 그래도 그렇지 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불신자 눈에는 더욱
그랬나보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만 있고 교회 밖에는 하나도 없다.”
고 비아냥거린다. 이것이 현실이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다.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막을 자 있으면
나와 보라다. 마침내 그랬다. 공부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이해되기 시
작했다. 사람들은 바기오 학교가 하이그라스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그
렇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학교다. 대부분이 한국에서
하다하다 안 되는 아이들을 보낸다. 교육비도 싸다. 그런데 졸업하면 엘
리트가 되어 나온다. 내가 언제 공부하지 말라 했는가! 오히려 신나게
하랬지, 만일, 해도 해도 안 되거들랑 그래도 기죽지 말라 했지,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그 스케줄 말이다. 논리적으로도 생각해 보라!
어차피 못하는 거 쥐어박으면 상처만 깊어지고, 성격 비틀어지고, 오고
가며 걸리는 대로 시비 걸고, 생각은 경직되고, 생각의 폭도 좁아지고
열거하자면 그러면 좋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말씀의 능력! “예수쟁이는
하나님 은혜로 산다는” 이 하나로 10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너와 나의 불신앙 치유되고, 성격 밝게 자랐고, 인간관계 좋고(그 손자를
누구나 좋아한다), 웃어른 공경할 줄 알고, 상처 받을 즈음에 자신을 염
려하는 상대방 마음 싸안고, 오히려 힘주고, 기독교에 대한 오해 바로
잡고, 살맛나는 사회로 발전하고, 이게 혹 자들의 말처럼 말의 능력이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말씀의 능력이다. 이것이 기독교다.
21. 기타 개인 전도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
1) 어느 약학박사 이야기
어느 약국에 들어갔다. 약사님이 전도자인 것을 이내 알아보고 저는 예
수 믿으니까 그냥 나가세요. 하고 문전박대를 했다. 그래서 돌아 나오려
다가 아니 적어도 이 사회의 엘리트가, 하물며 자칭 예수 믿는다는 사람
이 흰머리 날리는 전도자를 보고 하는 첫 마디 치고는 꽤 고약하다는 생
각이 들었다. 또 그 영혼을 위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서자마자 메시지를 시작했다. 그렇게 15분 만에 예수를 영접했다. 그
녀는 약학박사로서 여기저기 강좌도 다닌다. 성경공부 3주 만에 자기나
어머니나 다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전 이때까지 어머님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존경해 왔거든요.
그런데 이따금씩 불신자 같은 모습을 보면서 의문을 품어오곤 했어요.
그런데 그게 이해되고 왜 그런지를 알게 돼서 참 기뻐요,
그런데 어쩌죠? 제가 오래전부터 나가는 교회가 있거든요.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하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더 염려하지 마세요. 지금
섬기는 그 교회에 그렇게 종교생활 하시는 분 많잖아요? 오히려 그들을
치유해서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집사님이 할 일입니다. 그녀는 지금
3년째 교제하고 있다. 현재 수요일 예배는 우리 교단 교회에서 드리면서
(직장이 옆에 있기에) 한 사람의 치유사명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연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처럼 정교하다.
2) 어느 큰 교회 권사님 약사
노회캠프 때 외부 전도자가 들려서 우리교회 전도지를 주었다. 그가 전
도지를 잠간 훑어보더니 나는 이 교회 잘 알고 있어요. 했다면서 목사님
혹시 만나보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가끔씩 오가며
그냥 전도지 주고 아무 반응이 없기에 그냥 그랬다 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 찾아가 만난 후로 2년째 교제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거의 매주 우리
교회 주일 메시지로 5분 메시지를 한다. 어떤 때는 3분 메시지도 한다.
3개월쯤 지나자 가족같이 느낄 만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신앙생활과 종교생활이 분별 되었다. 주일 오후 권사님끼리 하는 대화
내용을 보면 정말 그렇구나! 불신자나 신자나 그 기도제목이 비슷하고,
문제와 사건 속에서 갈등하고, 근심 걱정 염려 충만하고, 아! 이게 바로
종교생활이구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회 목사와 장로를 약국에서
만났다. 그로부터 나를 대하는 권사님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도
많이 당해온 터라, 그 느낌 아니까! 이처럼 나는 진실로 지구촌에
30만 치유사역자 그 뿐인데, 사람들은 거의 99% 오해한다.
나는 이제 이만큼 했으면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마무
리를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권사님 저하고 교제
한 지 10개월 쯤 된 것 같은데 그동안 제가 영업에 지장을 준적도 없고,
헌금을 요구하거나, 교회를 바꾸라거나, 그 어떤 요구도 한 적이 없는데
맞나요?” “…” “제가 한 것은 예수 이름에 생명이 있고 예수 이름에 권세가
있으니 먼저 행복하게 사시라는 것과, 종교생활 열심히 하고 계시는 다른
성도들을 살리고 세우는 치유사명자로서 사시라고 한 것 밖에는 없는데
맞나요?” “ … ”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현제 상태로서는 권사님과
만남이 별 의미가 없어요, 저도 마지못한 만남은 싫습니다. 저는 제자 이
하나 때문에 지구촌을 누비는 사람인데 그게 아니면 그만 오려고요.”
잠시 후 “겸연쩍게 웃으시며 목사님 다음 주부터 또 오세요.” 이것이
전도자의 보람이요, 성경적 치유 사역자의 자존심이다. 그분은 지금 매우
행복한 치유사역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주위의 존경을 받으면서 말이다.
3) 어느 큰 교회 부목사의 고백
어느 날 이웃 큰 교회 부목사님이 나를 찾아왔다. 자기가 바로 위 약국
에 갔을 때, 자기교회 전도자들이 전도를 하러 왔다가 그 약사님이 나는
교회 권사예요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어느 교회 다니느냐? 우리교회가
더 좋은 교회니까 한번 와 보라는 둥 치근거리는 것을 옆에서 들으니 목
사 체면이 말이 아니라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데, 잠시 후 그 약사가 우리
교회 주보와 메시지를 주면서 목사님 한번 읽어보세요. 하더란다. 그래서
찾아왔다면서 서너 시간 정도 교제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자기는
목회 초년생인데 한국교회가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탄식하며
목사님 같은 분이 계셔서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도 했다.
4) 어느 전도대원끼리의 대화
어느 날은 전도대원끼리 전도를 하려고 목적지를 향하여 가던 중이었
다. 평소 잘 알고 있는 불신자를 만났다. 멈칫 차를 세우려고 했는데
마침 좁은 골목이라서 망설이는 사이에 그 전도 대상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뒤에 탄 전도자가 운전하시는 목사님에게 묻기를 “목사님 집은
모르세요?” 하니 그 말이, “집은 모르는데요.” 하니까, “아! 차를 빨리
세웠어야 했는데 중요한 제자 하나 놓쳤네요.” 그때에 중간에 앉아 있던
필자가 불쑥 던진 말이 “그럴리가요! 그냥 진행하세요.”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간다고, 욕먹을 줄 알면서도 한마디 했는데
뒤에 계신 전도자 말이, “그렇군요, 오히려 그냥 진행하는 게 맞네요!
목사님 그렇죠?” 그때 내 말이 “목사님 고마워요. 그렇게 이해해 주셔서,
그리고 우린 어차피 모자라는 사람이고 자라야 하니까!” 하고는 대화를
마무리 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예비 된 영혼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예수를 영접했는데, 그 중 한명은 사명자이고, 그의 거처가
전도의 밭이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판단은 바로 여러분의 몫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 주변에 전도를 즐기고,
삶 자체를 누리는 전도자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5) 전도자의 탄식 - 내 책임 이예요.
어느 날 한 전도대원이 전도 현장을 다녀와서 장탄식 하며 말했다. 내
책임 이예요. 제가 어제 한 쌀가게에 들어갔어요. 조금 바빠 보였어요.
사장님은 지금은 좀 바쁘니까 내일 만나자고 했어요. 제가 잘못 했어요
어제 그냥 기다려야 했어요.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분은 내일이
라도 만날 수 있으니까, 오늘은 다른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무
심코 돌아왔는데 오늘 갔더니 어젯밤 퇴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데요.
내 책임 이예요. 오늘은 죄책감 때문에 전도를 제대로 못했어요. 다른
전도대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왜 아니겠어, 안타깝지 뭐 그러고 보니
우리도 조심해야겠다는 둥 그에 공감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그때 나가서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그 대원의 슬픔이 너무 컸고, 또 필자도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기에, 그만 침묵하고 말았다. 그러나 차제에 한번은
짚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후배 목사님이 자기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내 생각을 물었다.
그래서 “어제 거기에 예수님이 계셨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니, “우리를
감동하시고 마음에 소원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래서요?
“어제 그 분에게 전도 했다면 구원 받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내 말이 “매사에 그렇게 가정을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은
“큰 혼란이 오지 않겠어요?” 기준이 사라지니까요! “결국 구원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오해다. 결국 성경 이해에 대한 오류란 말이다.” 그제야
이해가 조금 된 듯 했으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안타깝지만 단 칼에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어제 그 사건은 이미 결제가 끝났다고!”
6)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감사 할 것 뿐이다.
그 수많은 환난과 풍파 전에는 세계선교를 지향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결국 “내 교회”가 내 중심축이었다. 연거푸 터지는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참으로 원망
스러웠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앉아서 씩씩 거린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폭삭 늙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말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를 악물고 전도훈련을 받게
된 출발점이다. 처음에는 오기 반, 믿음 반이었다. 좋다! 내가 억울해서
라도 향후 5년은 유구무언이다. 일단 모든 훈련을 다 마치고 보자! 했다.
그렇게 밑줄 좍 긋고 집사님들과 함께 전도훈련과 전도현장을 오고갔다.
① 여기서는 목사님이 우리 후배야
집사님들이 뒤에서 수근 거렸다. 여기에서는 목사님이 우리 후배라고,
나는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내가 거기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이고 행복이었다. 좌석을 맨 앞에서 두 번째
줄로 옮겨 앉았다(맨 앞줄은 넘 설치는 것 같아서 싫다. 나는 넘 설치는
사람 매우 싫어한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전도훈련
3개월쯤부터 앞으로는 예수만 말하겠다면서 강해설교를 집어 던졌다.
그러나 28주 만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듣는 사람도 왜 같은 말만?
그러나 그보다는 내가 먼저 나가떨어졌다. 다시 강해설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기 반, 믿음 반 세월이 흘러갔다. 드디어 전도 신학원 입학
2년 8개월 만에 바보 도트는 소리, “아! 예수는 그리스도! 그러면 되는데”
그로부터 “예수가 그리스도” 이 말을 줄기차게 말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② 예수만이 그리스도 - 이 말이 참 좋다.
“예수만이 그리스도” 이게 아니면 틀림없이 종교생활이다. 무엇을 해도
그렇다. 결국 무엇인가 예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 테
니까 말이다. 그리고 주둥이로 “예수만이 그리스도”라고 아무리 씨부려도
“예수 자랑할 수 없다면” 그 또한 종교생활이다. 한국교회 수많은 지도자
들의 말년을 보라! 그게 종교생활의 결국이다. 가면은 결국 벗겨진다. 필
자도 그랬다. 열심히 전도 하면서도 열매가 없을 때는 낙심이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내가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예수는 그리스도, 비록
전도가 되지 않아도 예수를 자랑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좋다. “예수만이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그냥 힘이 난다. 모든 게 이해된다.
③ 예수만이 그리스도 - 세계화의 시작이다.
필자도 속물이라서 처음에는 우리교회 부흥을 위해서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성장하다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가 반복되었다. 필자로 말미암
아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 하도 많다. 그들 중 태반이 신앙생활은 타 교
단 교회에서 하고, 살아남은 자들도 시스템을 찾아서 갔다. 혹자는,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고도 했다. 필자는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래도 예수가 그리스도” 그러면 되지,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괜찮지
않다는 눈초리다.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하면서도 교회가 작으면 멸시
했다. 그래도 필자가 할 말은 “어허! 괜찮다니까!” 이 씨름은 지금도 순간
순간 계속되고 있다. 그때마다 “예수만이 그리스도” 정말 맞아요? 수없이
질문하곤 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가면 갈수록 반석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이다. 그리고 실로, 이것이 세계화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가방 하나
둘러메고 삶의 현장에서 예수 자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우리 교인이
되고 안 되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구원 받았으면 되었다. 그들 중에는
여전히 천주교에 그냥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예수만이
그리스도” 이 말이 이해되고 믿어지는 날 자기 발로 걸어 나올 테니까!
그 전에라도 하나님이 이끌어 내시면 나올 테니까! 아니라면 거기 있는
게 맞다. 거기서 사람을 살리면 된다. 하물며 다른 교회로, 또 하물며
시스템이 좋은 교회로 행복을 찾아서 가는 것이겠는가 말이다.
④ 이 시대의 전도운동
이것은 전도자로서 자존심 문제다. 우리는 세계복음화를 위한 역사적,
시대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교
회의 일원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다. 전도에 목숨을 건 전도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이 시대가 살고 세상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맞다. 그러므로 각
교단마다 전도목표를 세우고 추진하는 것은 주님이 너무나 기뻐하실 일
이다. 그러나 혹시 전도를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했다면, 그리고 내 교회,
내 교단만 키우려고 혈안이 되이 있다면 본질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많고
(어쩌면 이미 이탈) 마침내 믿음에 실패하고 태반이 종교생활을 하거나
방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다양한 주제와 어떠한 목표 보다는
그리스도 복음을 깊이 누리고 묵상하는 것이 먼저 중요하다고 믿는다.
평소 필자의 신앙과 전도에 대한 소신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셨던 나의
아버님이 은퇴하시기 전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가 그리스도, 너만
아냐? 나도 안다. 너무 별나지 말라!” 하셨다. 그러나 평생을 고향목회만
하시다가 소천하시기 1년 전에 필자를 불러놓고 하신 말씀이 “네 말이
옳다!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 그러면 되는데 …,” 그러면서 앞으로
가정예배는
김 목사가 주관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기독교다!